버스를 타는 풍경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해후 끝에 돌아서는 걸음만이

반드시 외로운 법은 아닐 게다.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보는

오래된 벗을 만날 요량이면

벌써 돌아오는 길목에 남겨진

자기 발걸음소리만  맴돌아

귓가에 얹히곤 한다.

그래도 터벅터벅 얼굴을 마주하는 까닭은

반드시 할 말이 많아서는 아닐 게다.

더러는 각기 다른 기억으로

서로가 공유했던 추억을 짜맞추다

잠깐 적요해진 순간엔 어색하여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다 끝내 우리는

서로의 삶에 가장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로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때우겠지만

무엇이 그토록 아쉬운지

서로 각기 다른 정류소로 돌아서는 길

서로가 마중을 하겠다며 아옹다옹하다

누군가는 버스를 타는 뒷모습을

누군가는 인파에 가려진 얼굴을 찾아

서로 미덥게 내내 바라다볼지도 모른다.

그렇게 버스는 떠나고 인파도 밀려나겠지만

오래도록 남겨진 서로의 잔상을 안고

해후 같은 만남과 이별을 꿈꾸며

우리는 또 다시 외로운 버스 한 대와 

수없는 인파의 물결 속 사라질 한 얼굴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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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들에게 띄우는 편지

 

 

 

그때 우리가 동아리 방

습작집에 치열하게 쓰던 시들과

서로를 향해 뜨겁게 묻던 안부들은

글이 아닌 우리들의 낭만이었다.

그때 우리가 학교 근방에서

허공에 붕 뜬 말들로 미열에 들떠

떠들었던 사상들과 생각들은

언어가 아닌 우리들의 꿈이었다.

그때 우리가 젊음이란 멍에에

치기 어린 감정으로 쏟아낸 독설들과

감당할 수 없는 열정으로 자학했던 몸짓들은

방황이 아닌 우리들의 숨결이었다.

그때 우리가 밤새 마신 술과

그때 우리가 아침에 게워낸 토사물과

그때 우리가 내내 안달했던 사랑은

모두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다.

그때 우리의 글들과 언어와 숨결이

모두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도 진실로 살아있고

꿈꾸고 있다.

 

 

간혹 서로의 안부를 담담하게 물으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또 다시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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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엔 붕어가 없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다

이 말의 의미를 알아버린 순간

넌, 허무의 끝 조금씩 차오를

새살을 기다린다 하고선

눈물에 젖은 앙꼬를 파내어

붕어빵을 강물 위로 띄어 보냈어

퉁퉁 부르터서 너덜거리는

붕어빵이 조각조각 흩어지고

수면 위를 뻐끔거리는

붕어들이 고개를 내밀었어

바늘도 없는 낚시를 드리운 채

시간을 기다리며

너는 빵을 굽기 시작했어

번쩍거리는 비늘을 달고

꿈틀거리는 지느러미가 퍼덕이며

생생한 아가미로 뻐끔거리는

붕어빵을 굽기 시작했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했지만

누구도 네 붕어빵을 먹을 순 없었어

혼자서 꾹꾹 집어삼키며

넘실대는 비린내를 꾹꾹 견디며

이물거리는 날것의 흔적들을

꾹꾹 게워내며

넌, 낚싯대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꿈꾸듯이 바라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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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아직 ‘신비’라 말할 수 없는

 

 

그토록 목마른 까닭에

메마른 가지 하나

어느 귀퉁이에 툭 하고

떨어져 버린다

 

 

-내내 썩어지기를 기도하며

목 놓아 울은 슬픔들로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단지, 푸르른 넝쿨에

파묻혀 감추어진

가지 끝 위로

어느 새가 내려앉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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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백

 

 

어디서 그 많은 먼지들이

그대의 방구석에 쌓여있는지

그대는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 해묵은 먼지들이

그대의 문지방 사이사이

보이지 않는 구석 틈새로

짙게 자리를 잡아갔는지

그대는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대의 그 수많았던

바람의 조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노라고

그대는 줄곧 믿어 왔겠지만

차마 치우지 못한 그대의 미련들이

그렇게 깊숙한 곳에 숨겨져

반짝거리고 있는 것인지도

그대는 알지 못합니다.

언젠가, 그대는 그대의 우울한 독백처럼

이곳을 깨끗이 떠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곳 그대의 방에 머물며

모든 흔적들을 지워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그대가 남긴

마지막 미련 몇 가닥만큼은

아직 이곳에 뒤엉켜 뒹굴고 있음을

그대는 끝내 알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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