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승리자들 - 콜럼버스에서 마릴린 먼로까지 거꾸로 보는 인간 승리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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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짜가 뭔지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때는 진짜를 알 수 있는데도 가짜를 숭배하기도 한다. -p17

 

<만들어진 승리자들>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위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가 도대체 어떤 인간에게 ‘영웅’ 또는 ‘위대한 인물’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것인가? 라는 물음의 시작으로 시작된 이 책은 많은 위대한 이름들이 나온다. 나폴레옹, 니체, 마오쩌둥, 히틀러, 루소, 괴테 등등 많은 인물들 속에서 그들의 위대함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알게끔 하는 책이다. 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저술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저자는 우리가 허깨비 앞에다 넙죽넙죽 큰절을 올리듯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만 있다면 정말 제대로 알고 경탄해야 할 사람들이 있고, 또 ‘무명의 천재’라는 묘비를 세워주어야 할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세종류의 인물로 나뉜다. 위대한 유명인위대하지 않은 유명인, 그리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인물이다.

 

세상의 가장 큰 변화들은 반미치광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영웅이라는 것이 천재나 일반사람과는 비교되는 빼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영웅이라는 것이 마치 우리안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본능에 의해서 사람들은 끊임없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그것의 표출이 바로 영웅숭배로 나타나는 것임을 알았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위대한 남자에 대한 갈망은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시대에든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은 꼭 있었고 시대의 요구에 따라 위대한 인물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위대한 개인은 언제나 하나의 우연이란 말처럼 시대와 개인이 만나는 것은 우연에 기인한 것이며 시대적 욕구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위대한 인물이라는 명성은 재능과 우연을 인간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들 중에 여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역사가 남성중심의 역사였다는 것도 이유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성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기록으로 표현될 수 없었던 이유도 있다. 그러므로 과거 여성은 역사와 백과사전 편찬자들에게 명성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어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위인들에 대한 환상을 과감히 깨버리는 이야기들이 있다. 위대한 인물들이 성품까지 고결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는 하지 말라. 작품의 아름다움이 작가의 모든 것이 아름다울거라는 상상도 하지 마시길 ! 베토벤은 천연두로 얽은 투박하고 어두운 얼굴에 코까지 주먹코였으며 소크라테스는 콧등이 말안장처럼 잘록하고 못생겼으며 장 폴 사르트르는 지독한 사시였다. 사도 바울은 사팔뜨기에 안장다리 난장이였고 모차르트는 포동포동한 데다 주먹코에 귓불까지 없는 참으로 볼품없는 인물이었다. 링컨은 193센티미터의 키에 해골처럼 앙상하고 팔다리와 손발이 병적으로 길었으며,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피프터는 좁은 계단에서 마주치면 안 될 정도로 뚱뚱했다. 따라서 천재적이거나 우리가 익히 알고 영웅들에 관하여 고상하고 완벽한 외모를 연상하는 것은 전설일 뿐이다. 오히려 천재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못생겼거나 기형인 경우가 더 많다. 거기다가 대분분이 육신의 병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에게 육신의 병이 차지하는 역할은 무척이나 크다. 루소는 아픈 방광 때문에 평생을 지독히 고통스러워했을 뿐 아니라 30년 이상을 끊임없는 이명에 시달렸고, 프로이트는 구강암으로 스물세 차례나 수술을 받은 뒤에도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세련미가 넘치는 문체를 잃지 않았으며, 말라리아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알브레히트 뒤러는 말년의 작품들에다 ‘고통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서명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베르디는 위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속에서 오페라[시몬 보카네그라]를 작곡했다. 간질환자와 결핵환자,난쟁이, 불구자, 말더듬이 건강하지만 스스로 육신을 병들게 한 천재들도 있다.

“천재는 병 속에서 깊은 체험을 하고 병에서 창작의 물을 긷는 생명력의 창조적 표현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위인들의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해본다. 위대한 이들에게 닥친 불행은 그들을 더욱 확고한 명성을 얻게 한다. 많은 위인들이 자신의 고통을 미화하고 어쩌면 과장까지 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위인들 가운데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불구자나 우울증 환자, 간질 환자, 주정뱅이, 약물 중독자, 거기다 스스로 목숩을 끊거나 미친 사람도 드물지 않다. 몽테뉴의 말처럼 “명성과 휴식은 한 지붕 밑에서 살 수가 없다.” 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면에서 천재의 불꽃을 느끼는 사람은 슬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불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게 천재의 불꽃이니........천재는 세기를 잠시 비춘 뒤 소실되고 말 유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에는 많은 위대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스스로를 신격화한 사람도 존재한다. 그리스 신화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그리스의 신들이 현대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듯이 우리는 언제나 신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위대한 인물들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듯이 우리는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사랑받기를 열망하고 그 열망이 누군가를 향한 갈망으로 이어져 우리 내면에서 신과 같은 완벽한 영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영웅은 신과 같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영웅이 결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영웅의 탄생은 우리안에 있는 갈망에 의한 것이므로 영웅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그런 끊임없는 갈망에 의해 탄생된 지도자나 현대 우리가 만들어낸 스타들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며 만들어진 갈망의 표상으로서만  받아들이길 바란다. 최근 완벽할 것 같은 유명인들이 많은 실수를 보여주는 것은 그들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원래가 그런 사람이다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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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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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프로이트의 마지막 학설이었던 죽음본능에 관한 책을 접한 적이 있었는데 인간에게는 죽음을 향한 본능적인 충동이 있다는 학설이다. 가끔 스릴러를 읽거나 잔인한 공포영화를 보며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보며 마치 내 안에 무의식적으로 공포나 무서움을 느끼고 싶어하는 숨겨진 본능이 꿈틀대고 있는 것을 자각하기도 한다. 그런 공포나 무서움에 대한 갈망때문이었을까. 왠지 무서운 그림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 이 책은 그림보다 그 그림이면에 숨겨진 진실에 더 무서운 책이다.또 고백하건대 나는 그림에는 문외한이라 명화를 보며 이야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유혹이었다.하지만 조금 충격적인 것은 고전을 읽을 때 우리가 작가의 숨겨진 의도와 작품이 품고 있는 역사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서 시대의 역사와 화가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한 후 그림을 보는 기분은 무척이나 놀랍고 황홀하다.

 

예를 들면 에드가 드가 의 [무대 위의 무용수]라는 그림을 보면 그저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춤을 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림 안으로 들어가보면 검은 그림자가 숨어 발레리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드가가 검음 그림자를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검은 그림자는 누구일까. 아마도 저자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당시 시대의 풍조를 비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하던 여성이 경멸당하던 시대에 더군다나 조신한 여자는 긴 스커트를 입어야 했던 시대, 무용수를 지망하던 소녀들 거의 전부가 노동자 계급출신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런 계급의 사다리에서 올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좋은 후원자를 만나야 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니 점점 무용수들은 후원자에게 잘보이려 하였고 자연적으로 후원자가 모든 공연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발레역사의 시작은 이 그림하나로 설명이 된다.

 

그리고 그림처럼 비극적인 삶을 산 주인공 뭉크의 이야기도 무서운 그림에는 빠질 수 없는데 뭉크의 [절규]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붉은 하늘과 뒤틀린 풍경에서 느껴지는 뭉크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존재의 불안이 느껴지는 그림을 볼 때마다 항상 무섭다. 그가 느끼는 고통이 그림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기에.....

 

그리고 정말 무서웠던 그림은 고야의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림이다. 사투르누스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아버지의 저주 ‘너도 네 자식의 손에 죽을 것이다.’라는 저주로 태어나는 아이를 모두 잡아먹었지만 결국 여섯 번째 아이에게 죽음을 당하는 사투르누스는 누벤스도 그렸지만 둘의 그림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바로 눈동자이다. 이 눈동자를 보며 정말 깜짝 놀랐는데 공포의 광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눈동자를 그린 것이 바로 고야의 눈이다. 비정함과 냉정함이 번득이는 지배자의 눈,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나폴레옹전쟁군의 침공이 있었는데 그때 고야는 고문,강간,총살,교살,사지 절단... 하는 행위들을 지켜보게 되었고 또 그림으로 그렸다. 눈앞에서 지옥을 경험한 그는 이후 청력이 소실되자 모든 신경을 눈에 쏟아 부었다. 고야는 자신이 경험한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투르누스를 그려야 했으며 그림을 완성한 후 지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고야는 자신의 모든 공포와 고통과 분노를 사투르누스의 눈을 통하여 완성한 것이다.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는 네 개의 패널로 나위어져 있는데 그림만 봤을 때는 참 이상한 그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네 개의 패널에 공통적인 것은 알몸의 여자를 사냥개가 허벅지를 물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여자를 따르는 백마탄 기사이다. 근데두번째 패널에서는 죽은 여자의 창자를 꺼내 사냥개에게 주는 그림을 보고 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는 더욱 놀랍다. 알몸의 여자와 백마탄 기사는 [데카메론]에 나오는 나스타조와 파올라의 이야기인데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사랑의 표현은 이러헥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서울 지경으로 까지 표현되어 지는 것이다.

 

죽음과 광기를 품고 있는 그림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린 화가들, 공포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공포가 될 수 있는 그림들을 보고 나니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평생을 광기에 사로잡혀 살았지만 광기가 사라지자 그림 한점 못그린 뭉크, 강간을 당한 분노를 실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그림을 그린 아르테미시아를 통하여 화가의 개인사를 관통하여 들려주는 숨겨진 이야기들에서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저자의 말처럼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닌 정신적인 죽음 바로 ‘광기’라는 색다른 공포를 체험하기 때문이리라. <무서운 그림>은 그림을 보는 것만이 아닌 그림을 느끼기의 진수를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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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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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충청도가 본적이시지만 서울에서 자리잡으신지가 얼추 40년이 되어간다.바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무작정 상경 1세대’가 우리 부모님께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는 언제나 신세를 한탄하고 돈 없어 괴로워하고 자식이 많아 괴로워하셨는데 어렸을 적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러나 내가 커서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서야 내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삶이란 것이 원래 그런것이더라 , 돈이 없으니 신세가 처량하고 돈 없어 보니 사는 게 녹록치 않음이다. 가끔씩 나와는 먼 이야기로 느껴졌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세상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화자는 복천영감이다. 복천영감은 아픈 아내가 죽고 나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시골을 버리고 서울가면 무조건 쌀밥을 먹는다는 꿈을 가지고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다. 그러나 서울에 꿈을 안고 왔지만 막상 서울은 눈감으면 코베갈까 걱정을 해야하는 두려움의 도시였다. 서울 사람들의 몰인정에 치를 떨고 냉정함에 질려가며 복천영감은 고향사람을 만나 도움도 받고 의지를 하는데 그네들의 삶 또한 복천영감보다 더 못하면 못했지 나은 사람은 없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만나게 된 떡장수 아줌마로부터 먹고 사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막노동판을 전전해보고 지게꾼일을 해보려다가 영역침범이라며 몰매맞고 땅콩장사를 하다가 리어카를 눈앞에서 도둑맞고 결국 밑천없이 장사하는 칼가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정들었던 떡장수 아줌마가 연탄가스 일가족이 죽었지만 너무도 허망한 죽음에 슬퍼할 틈도 없이 칼을 갈러다닌다. 그러던 중 같은 고향 식모아가씨를 만나지만 그 아가씨 또한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다.

 

하루하루 벌어 먹고 살면서도 복천영감이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이유 그것은 바로 자식들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자식이라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반면에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 하나 더 움켜지려 더 표독스럽게 더 악랄함으로 살아간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줏은 벽지로 아들의 사과궤짝 책상을 발라준 복천영감과 영수의 기쁨을 가진 자는 겪을 수 없는 기쁨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남의 삶을 함부로 짓밟을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 앞에서 없는 자들은 그렇게 삶의 밑바닥을 전전하게 되는 것을 빈민이라는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복천 영감에게 들을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는 그렇게 가난이라는 긴 터널이 지나왔다. 그러나 그 터널이 지난 뒤 밝은 빛은 잠깐이며 우리는 또 한번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여전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세상이고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며 빈민의 삶을 견뎌내고 있는 음지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 <비탈진 음지>는 우리부모님 세대의 가난과 아픔을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내어 애잔한 감동과 함께 마지막 복천영감의 말은 귓가에 울려 떠나질 않는다.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묵고 살아도 비렁뱅이 짓거리 허는 사람만 비렁뱅이제 그 자석들은 비렁뱅이가 아닌 법잉께. 비렁뱅이 되라고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멀여살리는 것이 아니랑께.평생얼 넘 발 밑에 깔려 비렁뱅이 진배웂이 산 한얼 풀게라도 훌륭한 사람이 돼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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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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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시대 역사를 들여다보면 언제나 등장하는 형벌이 있다. 바로 유배라는 형벌이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도 유배의 형벌은 많았지만 조선 시대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다. 조선시대에 벼슬아치 네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유배를 당한 사살로 볼 때, 뱌슬아치 치고 유배를 경험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할 정도이다. 정쟁이 심해질수록 형벌이 더 가중되면서 등장한 벌이 절해고도(육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로운 섬)에 위리안치(머무는 집의 지붕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쳐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키고 개구멍 같은 작은 틈으로 먹을 것을 넣어주어 목숨을 연장하도록 한 형벌)라는 형벌이다. 이 형벌은 연산군때 처음 시행되었는데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수많은 젊은 관리를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도록 한 연산군 또한 이 형벌로 죽는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의 섬들은 그렇게 사람을 유폐시키는 유배지로서 고독과 절망 속에서 어떤 이는 안식과 마음의 평화로, 어떤 이는 학문으로 승화시켰는데 이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라는 형벌은 조선시대의 문학을 꽃피우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섬은 여행객들에게는 아름답기만 한 것이지만 그 섬이 담고 있는 것은 유배객들의 절망과 고독 또한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저자는 유배객의 자취를 따라 직접 섬을 답사하여 이쁜 사진은 사진작가 이한구씨가 글은 이종묵 교수와 안대회 교수가 조선시대 유배객들의 흔적을 담아둔 책이다.

 

유배라는 형벌로 절망가운데 살았던 연산군과 광해군의 마지막은 씁쓸함을 남기지만 진도에 유배된 노수신은 절망하지 않고 진도 사람들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애환을 담은 소재로 많은 시를 남겼다. [귀양지의 네가지 맛]이라는 시에서는 ‘맑은 새벽에 머리를 빗는 맛,늦게 아침밥을 먹고 천천히 산보하는 맛,환한 창가에 앉아 햇볕을 쪼이는 맛,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맛’ 이 귀양지의 맛이라며 유배지의 한가로움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훗날 노수신이 시의 대가로 칭송받고 귀양지에서 풀려 정승이 되는 데 유배 시절의 독서가 바탕이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유배지를 “신선사는 거리“ 라고 노래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대기이다 . 이대기는 백령도에 유배온 바로 그 해에 [백령도지]를 지었는데 [백령도지]는 한 섬의 전모를 충실히 기록한 보물로 남았다. 칠십 평생을 살면서 꼭 짓지 않으면 일없이 시나 문장을 거의 짓지 않았으나 그가 백령도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 한수는 그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 적어 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땅에 몸이 있고

아무 생각도 없는 지경에 마음이 있네.

생각을 잊고 사물에 뜻을 두니

사물마다 모두 아름다워라.

남만의 바람과 흉노의 달도

오히려 빼어난 풍경이려니.

바다의 대나무와 섬의 소나무도

신선사는 거리인가 보구나. -[무회옹] 설학집 1권-

 


 

제주도에 유배된 정조와 순조 연간의 사람 조정철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인데 조정철이 역사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제주에 유배되어 30년의 모진 세월을 살며 당한 설움을 시로 표현하였는데 거의 천 편에 이르는 작품에 분통과 억울함,슬픔과 괴로움,굴욕과 부끄러움,은혜와 원망을 담아 놓았다. 그러나 조정철이 눈에 띄인 것은 조정철이 유독 다른 유배객과는 달리 제주목사로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조정철과 홍윤애의 사랑이 너무도 절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적인 것은 제주목사로서 제주 땅을 다시 밟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인홍윤애의 무덤을 찾아 ‘홍의녀지묘’라는 비를 세워주고 그 묘비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

 

이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섬은 유배지로서 유배온 사람들의 손길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위도에서 이규보, 교통도에서 연산군과 광해군이, 나라를 위해 투쟁하였으나 적국인 대마도에서 최후를 맞이한 최익현을, 흑산도에서는 정약전을, 남해에서 한글 고전 소설의 걸작을 낳은 김만중을 만나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유배라는 형벌로부터 시작된 것을 볼 때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배란 조선 학문의 위대한 발전을 가져왔다라고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섬을 찾아 수백년전의 자취를 온전히 찾을 수는 없었으나 사진으로 보여주는 섬의 모습에서 유배를 온 유배객들의 쓸쓸함과 고독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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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
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 이덕임 옮김 / 이가서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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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에는 용기라는 것이 살아가면서 갖춰야할 성품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용기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같은 것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다.그도 그럴것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접한 대중매체들은 절대 죽지 않는 영웅들이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007시리즈에 나오는 제임스본드같은 영웅을 꿈꾸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하지만 현실은 영웅을 흉내내다 죽는 사람들도 간혹 보게  되고 얼토당토 않은 무모한 도전으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무모함이 바탕이 된 용기는 절대 미덕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과도하게 발달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특히나 용기있는 행동으로 생명을 잃는  행위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이 방해받거나 위협받지 않는 한 타인에게 적대감을 품지 않고,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을 감수하며 삶과 생존을 누릴 권리가 있는 자아의 주체로서  겁쟁이가 되어야 함을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결국은 인류가 생존법칙에 의해서 오랫동안 자연과 공존하며 인류의 역사를 써 왔듯이  인간이 인류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생존에 근거한 역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삶과 생존의 문제, 바로 이 두가지 키워드가 우리에게 당면한 재앙으로 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과거 겁쟁이로 간주되었던 도덕적 개인주의(윤리적 이기주의)가 우리의 삶을 생존하게 할 것이다. 

 

이어 저자는 용기라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없는 이유와 용기가 무모함으로 변질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이 땅에 살아온 동물들이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서 생존을 위한 행동들을 통하여 생존과 멸종의 이유를 보여주고 있으며  인류 최초 존재하였던  먹이사슬 가장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육식동물 중 티라노사우스는  멸망한 반면에 가장 온순한 포유류 흰긴수염고래는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는 이유를 바로 흰긴수염고래의 온순함, 겁쟁이 기질을 예로 들고 있다. 흰긴수염고래뿐만이 아니라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 생존하고 있는 동물들은 모두 겁쟁이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다윈의 적자생존의 법칙을 통하여  진화의 법칙을 제시하고 있음을 말하는데 한 개체가 멸망하지 않고 생존을 유지해온 이유가 바로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사회가 자연을 통하여 배워야하는 단 한가지가 명시된다. 바로 '생존'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생존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진화를 거듭해왔고 과학적인 문명이 발달해왔지만 모든 인류의 소망은 될수 있는 한 오래 사는 것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몸과 마음은 병들어가고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며 자연재해와 인재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자연의 위대한 법칙 '생존'하기 위한 법이 제시되는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전쟁가운데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인류가 심각한 생존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럼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왜  윤리적이기주의자인  겁쟁이가 되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모든 개체는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개체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갈등의 불씨를 안고 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적인 관계는 우리가 이기주의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기주의를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의 개체로 받아들인 후 도덕이 바탕이 되는 것을 책에서는 윤리적 이기주의자라고 말한다.

 

러셀이 인간에게는 두종류의 재앙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자연재앙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는 데서 오는 재앙이다. 자연 재앙에 대하서라면 그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안전하게 대피하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

 

여기에 저자가 이 책을 펴낸 핵심이 있다.바로 인류가 인간에게서 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겁쟁이가 되어야만 생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아가 숨 쉴수 있는 자리를 발견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며 무조건 남의 일에 동참하지도 말며 자신의 관심사를 살피는 것이 먼저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겁쟁이가 다가오는 미래를 지배할 것을 말이다. 처음 겁쟁이란 비유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읽었던 반면에 겁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듣다보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많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급변하고 있는 사회,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문명사회에서는 이제 과거 사회가 요구했던 영웅이라는 개념보다는 개개인이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사회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의 문제, 인류의 재앙에서 생존하기 위한 생존전략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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