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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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진왜란 이전의 한반도는 유라시아 동부라는 거대한 무대의 주변부였으며, 21세기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지정학적 요충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해양 세력인 일본은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의 완전한 정복을 꾀했으며, 대륙의 한인 세력은 해양의 일본 세력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한반도를 이용했다. 이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대두한 사건이었다. p.9

 

 

  

 2013년 말에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선임연구원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남한은 종종 21세기의 중국과 북한보다 1930년대의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 같다"라고 비꼰 것이 미국의 입장을 상징한다. p.13

 

  

현재 한반도의 독립과 번영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국가를 굳이 들자면, 일본이 아닌 중국이다. p.13

 

  

  

이런 의미에서 2015년 현재 유라시아 동해안의 상황과 구한말과는 전혀 다르며,120년 전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한국 일각의 해석은 역사의 전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결과다. () 그러나 각 시대와 지역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 시기의 역사가 후대에 반복된다는 발상은 학문이 아닌 종교에 속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 나라에 군사-정치-경제 등 모든 부문을 전적으로 의존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이다. p.13

 

  

 

또한 한반도 북부에 진입한 일본군은 개전 때 경험하지 못한 조선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임진왜란 이전에 한반도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세력은 언제나 해양이 아닌 대륙 쪽에서 왔다. 따라서 조선을 비롯해 한반도에 자리했던 국가는 영토 북쪽에 주력부대를 배치하고, 남쪽에는 소규모의 왜구 세력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병력만을 배치했다.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군이 무력하게 무너진 이유가 이것이다. () 여기에다 날씨도 조선군을 도왔으니, 따뜻한 기후의 일본열도 서부 출신이 주축을 이룬 일본군 장병은 한반도 북부의 혹독한 겨울에 견디지 못한 것이다. p.59

 

 

   

그러나 건주여진의 누르하치는 빠른 속도로 여진 집단을 합병해나갔고, 임진왜란으로 조선과 명의 관심이 유라시아의 해양 세력인 일본으로 가 있는 사이에 그 과정을 거의 완성했다. 말하자면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끝낸 뒤 통일 일본 세력이 한반도를 공격하고, 그 파장으로 만주지역의 전국시대가 끝나는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p. 62

 

 

   

유럽의 해부도를 입수했으니 실물과 대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막부의 허가를 받아 사형수의 몸을 해부해보니, 과연 인간의 몸은 한의학서의 설명과는 다르고 유럽 해부학서의 도판과 같았다. 중국책과 유럽책에 그려진 인체 구조가 그토록 다르니, 저자가 "중국인과 중국인 아닌 사람 간에는 (몸에) 차이가 있는 것인가?"라고 고민한 것도 이해가 가는 바다. p.155

 

  

  

네르친스크조약은 역대 중국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외국과 평등하게 맺은 조약이었다. 이는 청나라의 지배층인 만주인이 준가르 세력을 절멸시키고자, 러시아에 중화질서에 입각한 상하 관계를 요구하지 않고 실리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p.166

 

 

  

조선은 러시아군과 무력충돌하면서도 끝끝내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으며, 이들이 향후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리라고는 더더욱 예견하지 못했다. p.167

 

  

어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거나 미국과 중국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 한국의 역사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미국과 중국의 존재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바람에 중요한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p.167

  

 

"너는 양반집 자식이니 저 무식한 백성하고는 다르지 않느냐. 거기다가 너같이 잘생긴 사람이 어찌 그 고약한 교를 믿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있단 말이냐"라며 회유하는 심문자의 말에 "의리에 있어서는 상하의 구별도, 반상(班常,양반과 상민), 잘나고 못난 얼굴의 구별도 없고 다만 영혼만이 구별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18-19세기 조선의 가톨릭교도들은 지금도 '양반', '명문가'를 늘 입에 올리는 현대 한국의 시민보다도 더욱더 인간의 평등함을 믿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평등주의가 조선의 지배계급에는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정치적 사태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p.230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 후 제시된 민족자결주의가 패전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 계산의 결과로 나온 편파적인 사상이었음에도 조선 사람들은 이 사상의 보편성을 믿고 봉기했다. 마찬가지로 서구 국가들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18-19세기의 전환기에 크리스트교는 조선에서 계급 타파와 개인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사상으로서 기능했다. p.231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 주민이 버린 차가 미국의 독립을 이끌었다면, 청나라 사람들이 버린 아편은 중국의 반() 식민지화를 이끈 셈이다. p.244

 

 

 

이러한 충돌을 통해 서구 세력의 압도적인 힘을 실감한 웅번들은 영국을 비롯한 서구 세력에 급속히 접근했다. 이들 전쟁으로부터 3년 뒤인 1866년에 프랑스의 침략을 물리친 조선이 쇄국정책을 강화한 결과 국제 정세 변화에 더욱 둔감해진 것을 생각하면, '잘 진 것은 잘못 이긴 것보다 낫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p.256

 

 

 

 -당이 고구려 및 신라와 충돌했던 경험을 통해, 중원 세력은 한반도를 완전히 병합한다는 야망을 포기하고, 한반도 세력은 중원의 국가를 상국(上國)으로서 존중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도출하여 이를 천 년 이상 유지해왔다. () 그러나 임오군란을 계기로 중원 세력이 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한반도 세력은 이에 반발하여 일본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중원 세력을 축출하고자 했다. 이것이 1884124일에 김옥균 등이 쿠데타를 일으켜 3일간 정권을 차지한 갑신정변이다. p.279

 

 

  

하나는 "갑신정변 세력은 친일파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친일파라면 연구할 필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학계가 친일파 문제를 냉철한 학문적 관점에 입각하여 정면에서 다루지 않은 결과, 한쪽에서는 아무에게나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이들이, 또 한쪽에서는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두 친일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탄생했다. pp. 280-281

 

 

 

이를 위해서는 유럽 문명의 결정체인 국제법, 현대적 군대, 입헌정체가 크리스트교 백인 이외에는 실현할 수 없다는 당시 유럽인의 편견을 깰 필요가 있었다. 무쓰 무네미쓰는 황해 해전의 "결과는 비로소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크리스트교 국가 이외의 국가에서는 유럽식 문명이 생식될 수 없다는 비몽사몽에서 깨어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며, 나아가 우리 군대의 혁혁한 무공을 표명함과 동시에, 우리 국민 모두가 유럽 문명을 채용했고 이것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고 주장한다. p.293

 

 

 

여행자들은 조선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으나 러시아와 만주에 이주한 조선 사람들의 활력과 인내를 보고, 그들이 집을 치장하거나 그들의 번영한 모습을 보고 난 후에 나는 조선 사람의 게으름을 기질의 문제로 여기는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조선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가난이 최고의 보신책이며 가족과 자신을 위한 음식과 옷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탐욕적이고 타락한 관리에게 노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pp.327-328

 

 

 

 

한국인이라면 근대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19세기 말에서 1910년에 걸친 병합 과정에 큰 분노를 느낄 터다. 그러나 극동재판의 대상이 된 시기는 1928-1945년이다. 이 시기에 이미 일본의 일부였던 조선인은, 타의적이라고는 하지만 만주국의 건국에 '애매모호한' 일본인으로서 참가했고 동남아시아의 전선에는 일본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이는 비단 조선인뿐 아니라 조선보다 이른 시기에 일본의 일부가 된 타이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극동재판에서는 조선인과 타이완인 일본군도 전범으로 처벌받았고, 한반도 남부에 들어온 미군은 식민지 조선의 해방자라기보다는 적국 영토에 대한 점령자로서 행동했다. pp. 355-356

 

 

 

그래서 한반도 역사가 시작된 이래 900여 차례의 침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고는 한다. 그러나 한반도 국가가 바깥을 침략한 사례 역시 적잖이 확인된다. 고구려인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라져간 주변 민족, 여진인을 철저히 탄압했던 조선 전기, 만주인-몽골인과 함께 만리장성을 넘어 베이징으로 진입한 소현세자의 조선군, '일본인'의 일원으로 참전한 태평양전쟁, 미군과 연합군으로 참전한 베트남전쟁 등등. 이러한 후자의 경험을 제쳐둔 채 '피해자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수립하려 한 결과,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수많은 희생자가 의도적으로 잊혀졌다. 현재와 가장 가까운 베트남전쟁을 예로 들면, 한국인 '고엽제의 피해와 전쟁의 트라우마에 고통 받는 참전군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미 연합군에 살해된 베트남 주민을 잊고 있다. pp.364-365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미국 경제는 기존의 모든 경제학 이론을 무시하고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신경제(New Economy)'의 환상을 떠올린다. 금융위기와 함께 미국의 신경제라는 환상이 붕괴했듯이,중국이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달성한 성과가 민주주읮거 질서의 뒷받침없이도 확고한 것이 되리라는 주장 역시 결국은 기각 될 것이다. 더 강하게 말하자면 중국의 부상을 기뻐하는 한국 사회 일부의 모습을 보며, 중국과 한국을 동일시하려는 전통적인 오류에, 일본이나 미국에 대한 증오가 결합된 것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한국 사회는 언제쯤이나 중국이라는 프리즘 없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될까? pp.368-369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한국 사람들은 서로를 '북한인(빨갱이)''일본인(친일파,매국노)'라고 비난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할 뿐, 그 배후의 국제적인 상황을 간파하거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현명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p.370

 

 


문장 발굴단


         본 코너에서는 제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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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제외하고 5월 한 달 동안 처음 쉬는 날을 가졌노라 첫 문장을 완성했는데, 벌써 6월 6일 현충일이었다. 학기 후반부에 갑자기 여러 일거리가 몰려왔다. 지도교수님의 학부 수업에 주2회씩 들어가게 되었고, 다른 수업에서 원치 않은 발제를 대신 떠안게 되었고, 그와중에 페이퍼 발표 순번이 돌아왔다. 거기엔 두 달이나 준비기간을 줬으니 퀄리티를 높여오라는 엄포가 복리로 동봉되어 있었다. 공모전을 두어개쯤 나갔고, 기사 마감 하나와 등반대회 및 킥스 같은 자잘한 학과행사가 있었는데, 거기 있었던 나는 아마 내 본체가 아니라 그림자 분신 중에 하나였으며, 실체는 사회대 530호에 유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달 동안 한 권의 이론 원서를 읽었고, 영어 논문 한 편, 선행 연구 10개 가량, 17개의 참고문헌을 살펴서 철야밤샘을 한 끝에 소논문을 하나 완성하였고 발표를 했다. 꽤 완성도있게 잘 썼으나 곳곳에 여기저기 빨간줄이 그였고, 수정해서 퀄리티를 높여오라는데, 내가 부족해서인 것인지 나에게 기대를 크게 걸고 있으신 건지, 여튼 지도교수님의 의중을 모르는 상태로 일단 오후 여섯시에 잠이 들어 다음날 오후 네시에 일어나서 보니까 6월 6일이었던 것이다. 가르마 펌을 새로 했고 피로가 가득한 초췌한 얼굴로 셀카를 찍었고, 용건은 없는데 마음이 시켜서 시 하나를 옮겨 적었고, 카페에서 마음 편히 독서를 했다. 두 문단으로 정리되는 한 달을 살았는데 왜 이리 나는 바빴던 것일까. 앞으로도 페이퍼 두 개와 학회 아르바이트, 면접 아르바이트, 원고 마감과 두 개의 기사마감, 서평 대회와 공모전 참가를 각각 하나씩 앞두고 있다. 스스로 자처한 일인데 누구를 탓하리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일단 이번주는 쉰다.

- 2018.06.06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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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북조선 기밀파일
어우양산 지음, 박종철.정은이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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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농밀한 중북관계는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중북관계를 '같은 팀의 우두머리와 부하'라는 식으로 파악한다. 이는 '중국이 뒤에서 북조선을 조종하고 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조선을 저지할 수 있다'는 명료하고 단순하며, 어쩌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일본인만의 '염원'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일본은 국제관계의 술수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그래도 치명상을 피해왔던 것은 대륙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지리적 조건 덕분이다. 바다에 고마워할 일이다. p.20



현재의 북조선 미사일 발사 능력으로 추정해본다면 톈진(天津), 다롄(大連), 칭다오(靑島)를 포함한 화북지역 대도시에 사는 약 1억 8,000만 명의 중국인이 핵무기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 셈이다. 그러나 북조선이 이렇게 중대한 의미가 내포된 핵실험을 감행하면서도 중국에는 겨우 20분 전에 통고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다. p.31



중국은 지난번 미사일 발사 때와 마찬가지로 UN안전보장이사회가 주도한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때 중국은 미국, 일본과 같은 대북강경파 사이에 조건을 내건 투쟁이나 흥정 없이 오히려 적극적인 태도로 대북 제재에 찬성하는 자세를 취했다. p.41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중북관계를 '혈맹관계'라고 믿고 있으나, 이 말이 처음 불거진 조선전쟁 때부터 줄곧 깊은 불신과 경계심이 양국 사이에 놓여 있었다. 김일성은 조선전쟁 말기부터 정전 후까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일찍부터 중국의 영향력을 북조선에서 배제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른바 '연안파 숙청'이다. p.53



조선반도의 남북은 서로 유사한 점이 하나 있다. 미국을 믿는 일은 있어도 중국을 신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67



근대사에서 중국이 조선에 발을 들여 잘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갑오전쟁과 조선전쟁은 중국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한 것을 계기로 발발했다. 갑오전쟁은 중국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중국은 타이완을 할양해야만 했고, 수억 냥에 해당하는 백금을 배상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국력이 쇠약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일본에 노출된 탓에 정복하기 쉬운 민족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것이 훗날 중일전쟁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해도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려 들지 않았지만, 중국이 조선전쟁에 개입하게 되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높아졌다. 그 후 미국은 적극적으로 타이완 문제에 개입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대륙과 타이완의 통일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p.67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직접 교섭을 통해서 강화(講和)를 해야 한다. 핵실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양자 간 직접교섭 테이블로 앉히려는 데에 있었다. p.266



불안정한 조선반도 정세는 중국의 안정과 성장에 있어 반드시 마이너스 요인이 되며, 심지어 타이완과의 통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p.273


북조선은 최근 수십 년간 중국의 경제적 원조로 지탱해왔으면서도 앞에서만 중북우호관계를 외칠 뿐 뒤에서는 필사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려고 했다. 궁극적으로 미국 등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반대로 중국을 견제하는 힘을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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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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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처럼 일렁거리던 촛불 바다는 텔레비전 뉴스로만 보았다. 쉼터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아내는 우리 편이 저렇게 많이 왔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겁이 났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 시민들의 함성에 실려왔다. pp.240-241



독재 시대 그 신문들은 국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정부가 준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고, 그 대가로 여러 가지 특권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한 기자들이 그 시대 언론의 역사를 빛나게 했지만, 이 신문사들은 부당한 기득권의 성벽 안에서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치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보수신문들은 시장 권력과 유착되었고 그 자신이 새로운 사회적 권력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언론 자유의 과실을 먹으면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p.276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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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24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서재 프로필 사진 바꾸셨군요.
좋네요.^^

프리즘메이커 2018-05-25 16:54   좋아요 0 | URL
저는 못 읽고 있다가 이제서야 읽습니다.. 가끔 그런 책이 있지요 ㅎㅎ 사진 바뀐 걸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입니다.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원주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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