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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달린다.
좋아하는 영화의 좋아하던 장면이었다.
순한 사람과 영화처럼 이별했나보다.

그의 죽음이 항상 강렬한 슬픔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계속 생각나고 또 떠오르며 문득 측은해지곤 했다.

나를 둘러싼 온 일상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그가 불러낸 슬픔은 꼭 그를 닮았다.

일주일이 못되어 뒤늦게 추모한다.
망설임과 장난이 많던 그의 웃음을 기억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7.11.5 @Pris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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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11-14 21:59   좋아요 0 | URL
뷰티인사이드 입니다!

2017-11-14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기 그.. 택시..” 매표소 직원이 너무 예뻐서 말을 더듬었다. 오랜만에 어머니께 효도 좀 할 겸 영화를 보여드리러 갔다. 어찌저찌해서 할인과 포인트를 사용하니 기분 좋게 반값에 영화표를 샀다.


※ PC버전으로 감상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 가족과 영화 보러가는 일은 항상 즐겁다.)



광주역에 운집한 시민들이 나왔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복받쳤다. 한상 푸짐히 차려놓고 차린 게 없다고 너스레 떠는 사람. 남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사람. 정 많고 잘 부러워하고 눈에 자주 밟히는 사람. 내가 느껴온 전라도 사람. 차별과 핍박의 역사적 소용돌이에 부당하게 쓸려갔던 순박하고 평범한 사람들. 나는 1년 전 오월에 5·18 국립 민주묘지와 망월동 묘역에 방문했다. . 이 사람들이 여기서 졌겠구나.

 



삼수해서 그것도 정외과를 간다니까 어머니께서 신신당부했다. 데모하지 말라고. 잡혀간다고. 나는 어머니께 요즘 시대에 그런 게 어딨느냐 호들갑 좀 떨지 말라며 성내고, 종종 집회에 나갔다. 원래 사람 심리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처음엔 심심해서, 때로는 궁금해서, 어쩔 땐 누가 가자 길래, 탄핵 땐 열불 나서 데모 하러 갔다. 세월호 집회 때는 불법 채증 당할 뻔했다. 탄핵 땐 한겨울에 비를 맞았고, 아스팔트에 시린 엉덩이와 저린 발로 앉아있었다. 몇 번 안 나갔는데도 많은 일이 있었다.

 



( 차린게 별로 없어서... @택시운전사 공식 포토갤러리)




영화가 끝났다. 한껏 상기된 어머니는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전남 완도 출신이다. 어머니네 마을 회관 맞은편 집 아들내미가 그날의 5월에 광주 갔다 죽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딸이 바로 175월 문 대통령이 껴안아준 광주 유족이라고 했다. 어머니 말로는 805월의 신군부는 고금도 충무리, 그 깡촌의 선착장마저 틀어막았다고 했다. 닫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닫으려 들었다고 했다. 빛고을 광주. 그 틈새에서 새어나온 한줄기 빛의 굴절. 사실이 영화를 좇는게 아니라, 영화가 사실을 흉내내는 굴절된 빛의 탈출사.

 



문 대통령이 유가족 손을 잡고 추도식에 입장한 날 광주가 뒤집어 졌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 단톡방이 요란했다. 우리에게 이런 날도 있다고. 한을 풀겠다고 했다. 멀쩡히 내 옆에도 나도 몰랐던 한 명의 광주가 살아있었다. 그 빛고을을 지켜본 어머니의 눈빛, 그 빛은 산란하며 세월호 때도 탄핵 때도 글을 쓰는 지금도 꼭 한마디씩 당부한다 잡혀가지 마라장난인 줄 알았더니 진심이었다. 광주의 겁을 갖고 있는 엄마가 반골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가지 잡혀가지 마라였던 게다. 나는 돌아가는 버스에서 애처럼 배가 고프다 칭얼거렸다. 엄마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잡혀가지 말라면서. 그리고 여느 날처럼 차린 것 없다며 한 상 크게 내주셨다. 물론 설거지는 내가했다. 효도할랬다가 되려 사랑을 말로 받았다.



-2017.9.8 @PrismMaker


※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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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dla2189 2017-09-08 2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한편 더 본 느낌. 잘 읽었습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09-08 23: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yo 2017-09-08 2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틈새에서 새어나온 한 줄기 빛의 굴절. 사실이 영화를 좇는 게 아니라, 영화가 사실을 흉내내는 굴절된 빛의 탈출사˝

크- 너무 멋지고 적확한 문장이라 몇 번을 봤는지 외울 지경입니다. 글 정말 잘 쓰십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09-08 23:07   좋아요 1 | URL
칭찬 감사합니다!! 올해 안에 에세이 집을 출간하고 싶은데 좋은 반응 보여주셔서 용기가 납니다!!
 

(▲사진 속 글쓴이는 대학에서 돈 안 되는 공부만 열심히 골라 했다고 한다.)

※PC버전으로 감상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오늘은 어떠십니까? 아. 남들보다 뒤 처진 것 같아 불안하다. 매일매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하다. 또 주변사람들 기대에 못 미칠까봐 숨이 막힐 지경이군요. 무얼 위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가면서도 다른 도리가 없어 하고 계신다.

 

  하는 일마다 잘 안돼서 위축되고, 아주 단순한 일상생활에도 잔 실수가 잦아지니, 무얼하든 내 자신부터 의심이 가는 군요. 남들은 저렇게 행복하고 다들 열심인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내 자신은 한없이 초라하죠? 남들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자기비하는 멈출 줄 모르고.
 

  당신. 옛 영광과 무너진 자존감 사이에서 방황하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 방에서 나와 양지바른 곳에서 하루 30분, 따사로운 햇빛과 선선한 바람을 쐬면 조금 낫지요. 또 적당히 조용한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한잔 앞에 두고 세상구경 역시 권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루 한번. 아래의 마법의 주문을 ‘손 글씨’로 베껴 적을 것을 이 글을 읽는 당신께 처방합니다.

 

<주문>
  나는 실수투성이에 못난 구석이 많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잘난 모습뿐만 아니라, 찌질 하고 겁 많은 모습도 나의 모습이다. 무엇하나 똑부러지게 못해도 나는 여전히 나를 신뢰한다. 잘난 사람 앞에 기죽지 말고, 못 한 사람 깔보지 않는다. 부족하지만 나는 내가 좋다. 다시 고를 수 있더라도 나는 나로 산다.
 

  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살고 싶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남들은 생각보다 내 생각 안한다. 주변사람 눈치보다 기회 놓치지 말자. 주저하다 후회하지도 말자. 자신에게 만큼은 솔직해져 본다. 인정 받으려 구걸하지 말자, 강요하지도 말자. 나는 타인의 기대와 인정 속 안정된 노예가 아닌,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나 자신의 ‘불안한 왕’이다.
 
 
  신세한탄 하지 말자. 나 자신을 자기만의 드라마 속 비극의 주인공으로 끊임없이 포장하지 말자. 돈과 가난에 무덤덤해지자. 가난은 불편할 뿐 고개 숙일 이유 아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당당히 살자. 사람 죽으란 법 없다. 이제까지 돈 없어 굶어 죽은 적 없었다.
 

  되도록이면 당장한다. 하고싶은건 그냥한다. 물론 대부분 실패하겠지. 그러나 한다. 거절당하기 위해 다가간다. 실패하기 위해 시도한다.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칠까 지레 겁부터 먹지 않는 것. 사서 괴로워하지 말자. 너무 마음쓰다 속 앓이 않겠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적절히 대처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미래를 예측하여 들지 말 것. 알 수도 없을 뿐더러, 막상 그때가면 미래는 달라져 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눈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해보자. 굴러온 행복에 불안해말고,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부디 종이가 아닌 그대의 가슴에 새겨지길 바라며. 인생에 한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



-2017년 9월 5일 @PrismMaker


※ 본 글은 2016년 부대신문 1490호 [청춘, 펜을 들다] 섹션에 실린 필자의 기고문 입니다.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3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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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dla2189 2017-09-05 2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있습니다! ^^

프리즘메이커 2017-09-05 21: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빅대디 2017-09-05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처럼 살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09-05 22:15   좋아요 0 | URL
까뮈 사진이 멋지십니다. 감사합니다.
 

(▲부산대학교 사회관에는 붙임성 좋고 귀여운 고양이가 산다/ 사진 : 글쓴이)


  우연히 터키의 길고양이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곳의 고양이는 고양이답다. 마음먹은 대로 누워 편히 쉬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다가가 안긴다. 우리네 길고양이들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이 땅의 가여운 친구들은 단지 그 어떤 악의가 실리지 않은 발걸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도망부터 치고 본다. 후미진 골목 자동차 밑바닥에 웅크려 언제 어디서든 바로 피신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어째서 같은 유전자를 가진 고양이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나는 정답의 자명함을 뒤늦게 인식했다. 이들이 눕는 아스팔트가 정반대의 정서를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스팔트는 석유의 찌꺼기이다. 주로 길바닥을 포장하는데 쓰인다고 고등학교 기술 시간에 배웠다.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더 이상의 전문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다. 다만 포장된 도로가 갖는 객관적인 기능이 아닌,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뿐이다. 이 땅에 흘겨진 시선을 포착하고 그려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글은 추상화 일지도 모르겠다. 


  아스팔트를 덧칠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무엇이었을까? 이 사회의 구성원인 나 자신부터 돌이켜 본다. 멸시 풍토가 빚어낸 위축된 반경을 원래 그런 것인 양 당연하게 여긴 건 아닌지. 나와 너의 단 한 번은 수백 번의 폭력으로 불어 날 수 있다는 걸 간과해온 건 아니었는지. 두려움을 장난으로, 정당함을 과민함으로 치부해버린 건 아닌지. 외려 화가 가득 찬 변명부터 해오지는 않았는지. 인과를 뒤집어 책임을 전가한 건 아니었는지를 말이다. 아스팔트의 두께에는 나의 편협함과 고양이의 두려움이 퇴적되어 있었다. 이렇게 보면 나 역시 아스팔트를 쌓아 올린 주주(株主) 중에 한 명임이 틀림없다.


  어느 영화 속 소녀의 대사처럼 무엇이 중한 것인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대를 이어 걷어 차여왔던 고양이들이 본능적으로 체득했을 공포감의 누적치를 먼저 이해하고 반성하는 것. 무엇이 고양이로 하여금 사람의 발소리에 발길질부터 떠올리도록 학습시켰는지부터 파악하는 것. 그래서 강자의 불쾌함과 약자의 공포감 사이의 제대로 된 경중을 아는 것. 그냥 걷는 누군가와 누워 쉬는 어떤 존재 사이에 어울리는 감정은 불쾌한 공포가 아닌, 문제없는 평온함이어야 한다는 것. 아스팔트 위에 깔릴 서사는 공포와 혐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인지하지도 못하고 내는 평범한 발소리조차 누군가에겐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일 수 있다. 악의 없는 평범함이 어쩌면 얼굴 없는 혐오 일지 모른다. 도망치는 고양이를 탓하기 전에 바로 이 길에 깔렸었던 수많은 발길질과 발자국부터 지워내야 한다. 이 글은 고양이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글은 못난 사람에 의해 벽에 던져져 세상을 떠난 새끼 고양이를 위한 애도이기도 하고, 못난 나의 뒷발질에 알게 모르게 몇 번이고 채였을 웅크린 소수자들을 향한 나의 진중한 사과문이자 반성문이기도 하다. 강남역과 고양이의 사잇길에서, 얼마간의 고민을 글로 적어 보낸다. 선(善)의 평범성을 위해서.


-2017년 9월 3일 @PrismMaker



※ 본 글은 2016년 부대신문 1526호 [청춘, 펜을 들다] 섹션에 실린 필자의 기고문 입니다.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5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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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열심히 수학문제를 풀고있는 동안, 나는 친구들 뒤에서 이 글을 적는다.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아픈거야˝ 


  이 좋은 봄날에, 봄 기운이 꽃송이에 가득 맺힌, 밝고 따뜻한 날에 나는 이 책을 집었다. 글자가 무거웠다. 맑고 밝은 계절에, 생명이 역동한다는 이즈음에도 글자는 검었고 글은 탁했다. 







이 아이들도 봄 좋은지 알았겠지. 봄 내음 나리면 공부하기 싫고, 잔디밭 보면 주저앉고 싶고 그랬겠지. 훈풍에 봄볕 같은 아이들이 시린 물에 잠겼고 세상을 떴었다. 애석하게도 세상은 바닷물보다 더 차디찬 냉골이 됐다. 금요일엔 돌아오라니, 돌아왔으면 어제 만우절이라고 교복입고 하하호호 돌아다녔겠구나.


2년이 지났다. 속으로 아니 벌써?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내 마음도 여전히 병들어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있지? 언제고 변명않고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두렵고 무섭다. 사실 자신, 없다. 다만 이 글로 죄책감을 좀 달랠 수 있을지, 나는 비겁하게 오늘도 세상 분위기 파악 못하고 혼자 공상에 젖어 있을 뿐이다. 부끄럽다.


장난기 어린 친구들과 장난기 어린, 자칭 선생인 내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한다. 부디 모두가 행복하길, 봄 날에 빈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잊혀진 사람들을 위해. 안녕히


               - 2016년 4월 2일 @PrismMaker


※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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