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낯선 동행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11
김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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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낯선동행자 #김진영 #현대문학



 

여자 혼자서 외국 여행을 하게 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나쁜 소식에 괜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 여행 카페에서 함께 여행할 동행자를 구하고 미리 준비해 함께 간다면 가족들도, 당사자도 조금 안심하지 않을까. 더구나 나이대가 비슷하다면 여행 친구로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주인공 혜성처럼 말이다.

 



혜성은 소규모 영상편집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대표의 성적인 접근에 사표를 쓰고 나왔다. 대표가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보지 않아 모른다는 비아냥거림 때문이었다. 가진 돈의 반을 털어 스페인 여행을 준비한 혜성은 유럽 여행 카페에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올렸다. ‘29살의 여성이며, 또래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분만 연락 주세요.’라고 말이다. 마침 9월 스페인 여행 준비 중이라는 27살의 지효가 메시지를 보내며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공항 입국장에서 지효를 기다리는 장면으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 열여섯 시간의 비행, 인천에서 출발하여 암스테르담을 경유한 혜성과 달리 지효는 김해에서 일본으로 출국해 파리를 경유해 도착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효의 휴대폰 전원은 계속 꺼져있었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함께 예약한 호텔에 도착해 예약 확정서를 내밀었음에도 취소됐다는 답변만 들었다. 스페인 여행 경험이 있는 지효가 호텔 등 숙소를 예약했고, 입장료 등은 혜성이 예약했다. 물론 숙소 비용의 반을 지효에게 보냈다. 갈 곳을 잃은 혜성은 다시 공항으로 가려고 버스를 예약 후 정류장에서 울고 있다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윤길우가 예약했다는 말만 믿고 한인 민박집으로 따라가 비어있는 방에 짐을 풀었다.





 

아마 그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길우가 여행 일정을 궁금해하고, 혜성에게는 2인 입장료 티켓이 있으므로 함께 움직이고 싶어 했던 건 당연했다. 혜성에 비해 길우는 스페인어 및 영어도 잘했으므로 의지하고 싶었으리라. 마치 혜성의 여행 일정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길우는 비슷한 코스로 다니기 시작하지 않으냐 말이다. 숙소 또한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그때부터 혜성이 조금씩 길우를 의심했던 것 같다. 계속 함께 다닐 수는 없었다. 길우에게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여행을 해야 했다. 혜성과 길우는 로맨스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나, 흔히 여행지에서 생기는 로맨스와 어긋나 있었다.

 



장르 소설의 특징처럼 어느 순간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독자도 주인공 혜성도 깨닫는 순간 말이다. 혼자 하는 외국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분에게는 조금은 걱정스러울 수도 있겠다. 체크인을 위해 제출한 여권 사본이 누군가가 이용해 여행자들에게 소액의 돈을 갈취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걱정 말이다. 자기의 여권 사본이 타인이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 피해자는 갈수록 늘어갈 것이다. 사람은 가까워지면 자기의 개인 정보를 너무 많이 노출하곤 한다. 다니던 직장, 집 주소, 전화번호, 함께 여행한다는 이유로 여권 사진까지 건넨다. 만약 관계가 틀어져 내 개인 정보를 이용해 범죄에 이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깨닫는 순간 얼마나 아찔하겠는가.



 

김진영 작가가 낯설다고만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의 원작을 쓴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나니 이 소설 또한 충분히 영화적인 스토리였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 짜릿했다. 여행 콘텐츠가 많아지는 요즘, 한 번쯤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다. 개인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낯선 사람을 너무 믿지 말 것.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여기면 가장 편할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 쉽지 않겠다. 그렇다고 낯선 사람과 동행하는 것도 최선은 아닌 것 같다. 낯선 타인과 동행해도 혼자 하는 여행이라고 여길 것! 잊지 말자.

 

 

#나의낯선동행자 #김진영 #현대문학 #핀소설 #핀시리즈 #핀시리즈장르소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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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5
박지영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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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영팬클럽흥망사 #박지영 #현대문학



 

지난 3월 광화문에서 <BTS 컴백 라이브: ARIRANG>이 펼쳐졌다. 예고편부터 설레게 했다. 일정이 있어 라이브 방송은 보지 못하고 다음 날 넷플릭스에서 방송을 보았다. 음향 상태도 썩 좋지 않았고 멤버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칼군무의 댄스와 노랫말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음악에 임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했다. 다만, 한 가지, 노랫말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가 대다수라 조금은 서운했다. 팬덤이 아닌 나도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게 되는 그룹이다. K-POP을 이끌고 있는 뮤지션 중 하나로 뷰티뿐 아니라 음식까지 전 세계를 한국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끔 좋아하는 배우는 있지만, 특별하게 누군가의 팬은 아니다. 그마저도 여동생의 취미가 덕질이라 BTS의 멤버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박지영 작가의 핀소설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는 무언가 할 말이 많을 거로 보였다.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복미영은 배우 W의 팬클럽 열성 회원이었다. 하지만 W가 음주운전에 뺑소니, 그것도 모자라 불법 촬영물과 관련된 메신저 단체 방 멤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렸지만, W는 쓰레기로 판명이 났다. 이에 실망한 복미영이 팬 페이지에 작성한 탈덕 선언문이 여기저기에서 재인용되어 널리 퍼져나갔다. 복미영은 쓰레기 처리반, , 좋아하는 사람을 쓰레기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복미영 팬클럽을 만들었다.

 



용맹하고 경솔한 복미영이 단 한 명의 팬을 위해 설계한 역조공 팬 서비스는 어떻게 실패했는가. 라는 문장 때문에 이 소설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가 만든 팬클럽, 당신은 내 팬클럽에 가입할 거라는 무모함과 당당함을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복미영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있을 거로 보았다. 소설은 복미영이 살아온 이야기뿐만 아니라 복미영 팬클럽의 1호 회원 김지은의 이야기까지 한국의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돌봄에 대한 민낯을 보여준다. 이모라고 불리는 이들, 쓰임을 다하면 어딘가로 버려질 그들을 돌볼 사람은 누구인가. 그 선택지에 는 없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런 면에서 복미영과 김지은은 서로 맞는 관계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쓰레기로 바꿔버리는 여자, 아프고 돌봄이 필요한 이모를 버려야 하는 입장에서 복미영이 구세주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간과한 게 있다. 복미영이 속해 있는 동네북클럽 이름이 열린 엔딩 닫기 북클럽이란 사실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주로 책을 수선하기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면 마음에 안드는 결말을 다르게 바꾸는 식이다. 열린 결말을 하나씩 닫았다. 모든 책의 엔딩을 똑같게 만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네 까짓 것에서 를 빼면 까짓것만 남는다. ‘이모님 주제에주제에를 빼면 이모님만 남는다. 이 얼마나 통쾌한가. ‘버리기 아티스트답다.

 



오래전의 인연과 관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책임과 의무가 없는 관계라면 그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늙고 병들어 돌보아야만 하는 관계라면 금방이라도 지치고 만다. 쓰임을 다한 물건을 버리듯, 사람도 그렇게 버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빛 같은 거 남기고 싶지 않기에 방법을 찾는 것이리라. 예를 들면, 연락이 끊긴 이모의 딸을 찾는 방법 같은 거. 과거 늙고 병들었던 부모를 산속에 버려두고 왔던 고려장을 떠올리며 나에게 부담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도 되는 사람. 복미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침을 뱉는 행위, 타인에게 불쾌하게 비치는 행위인데도 복미영이 하는 행동이기에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복미영이 침을 뱉기 시작한 행동에 과거의 기억과 관련이 있었다. 타인의 호감 있는 눈빛을 알아채고 더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거부 반응과 비슷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필요에 의해서건, 감정에 의해서건. ‘나는 아마 안 될 거야에서 을 빼고 나는 아마 될 거야로 바꾸며, 복미영은 스스로 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복미영은 그래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복미영팬클럽흥망사 #박지영 #현대문학 #핀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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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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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네 #아베아키코 #은행나무

 



일본문학에서 관심을 두는 문학상 수상작 첫 번째가 나오키상이며 두 번째가 일본서점대상이다. 서점인들이 가장 팔고 싶은 소설을 투표로 선정하며, 감동적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 ‘카프네는 포르투갈어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빗겨주는 행동를 의미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따뜻한 음식이 주는 위로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치유하게 되었다는 사연도 많다. 이 책도 그중의 하나로, 깨끗하게 청소한 집과 맛있는 요리로 치유를 받은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 그 이상의 감동을 다룬 소설이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오히려 타인의 행동 하나로 치유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나. 타인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가족 형태가 많아지는 추세다. 아베 아키코의 카프네도 유사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담았다고 해야겠다. 사랑하는 남동생을 잃고, 남편에게는 이혼 통보를 받은 가오루코가 남동생의 전 여자친구 세쓰나를 만나며 소설이 시작된다. 거짓말처럼 생일날에 죽은 남동생이 세쓰나를 위해 유산을 남겼다. 유언장에 적힌 대로 가오루코는 남동생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쓰나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하여 퉁명한 목소리로 유산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세쓰나는 가사 대행 서비스 회사 카프네에서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남동생 하루히코가 세쓰나에게 유산을 남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기며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고 싶었다. 가오루코의 생일날 예약된 선물이 배달되고, 세쓰나를 위한 선물도 있었다. 가오루코의 집에 찾아온 세쓰나는 엉망이 된 집안 상태를 바라보고, 가오루코를 위해 요리를 해주었다. 오랜만에 요리다운 요리를 먹은 가오루코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벌써 몇 달이나, 아니 몇 년이나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이제 나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필요로 해주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를 도울 수 있었다. 고작 두 시간이었고, 심지어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은 나다.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118페이지)



 

가오루코는 세쓰나와 함께 카프네 일을 시작한다. 국가공무원인 가오루코가 쉬는 토요일에 청소를, 세쓰나는 요리를 담당했다. 평소 가오루코에게 하던 말과 달리 의뢰인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만들어 데워 먹을 수 있게 했다. 오히려 일터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왜 가오루코는 세쓰나에게 신경이 쓰이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다정하지 못한 부모를 만나고 난 후 세쓰나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지쳐있는 상태였으며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질식할 것 같은 피로를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그들에게 두 시간의 요리와 청소 도움은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너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고 있니? 네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돼.’ (275페이지)



 

하루히코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는 나중에야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가오루코와 세쓰나의 연대일 것이다. 누군가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세쓰나의 마음을 가오루코는 다정하게 품어줄 수 있었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과 유사한 공동체를 이루는 관계를 살펴보게 했다. 우리나라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가족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가족보다 나은 형태일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면서 도움을 받고 또 줄 수 있는 관계라고 보면 되겠다.



 

세쓰나의 앞머리가 헝클어지자 가오루코가 세쓰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를 배척하는 관계였던 이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마치 답변이라도 하듯 가오루코의 머리를 쓰다듬는 세쓰나의 행동에서 우리는 여성들의 연대와 환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새로운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카프네의 의뢰인들을 향한 다정한 행동들이 내가 받은 위로와 치유의 답변 같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카프네 #아베아키코 #은행나무 #책추천 #소설추천 #일본소설 #일본문학 #2025일본서점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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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1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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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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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 #히라노게이치로 #현대문학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자를 그린 그림이 있다. 변호사 기도 아키라가 그 그림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한 사람의 뒷모습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이야기를 듣고 그의 삶의 궤적을 논한다. 하지만 그가 말한 모든 게 거짓이었다면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그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주인공 기도 아키라는 리에의 부탁을 받고 한 남자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하는 변호사다. 죽은 남편의 정체를 조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리에는 아픈 아이가 죽자 치료 문제로 서로 의견이 달랐던 남편과 이혼 후 본가로 내려와 문구점을 운영하였다. 3년여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리에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를 다니구치 다이스케로 알았다. 남편은 다른 사람의 기억과 이름을 사용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을 시간에도 그는 왜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리에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유토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말해주고 싶었다. X에 관한 조사를 하던 기도는 재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받았던, ‘재일교포 3라는 아이덴티티에 관하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관한 깊은 고민을 한다.



 

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용했는가. 그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조사하는 과정은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X라는 남자에 관하여 깊은 이해를 하는 시간이다. 추리 형식의 소설이며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사를 시작한다. 미스즈를 만나 다이스케와 사귀었던 일련의 과정을 듣는다. X가 다이스케를 죽이고 그의 신분을 도용했는지 의심하는 한편 우연히 참석했던 사형수들의 전시회에서 어떤 그림을 마주한다. 리에의 남편이었던 X와 화풍이 비슷한 그림이었다. 사형수의 그림을 토대로 그가 저질렀던 살인 기사의 사진을 보고 X가 고바야시 겐기치의 아들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후 어머니의 성을 이어 받은 그의 이름은 하라 마코토였다. 그는 과거 복싱 유망주로 이름을 올렸으며 그마저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은 X가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소설이 변호사, 기도 아키라의 시선으로 사건의 정황, 현재의 감정들을 담았다면 영화는 하라 마코토가 처한 상황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느꼈을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뭇매, 아버지를 꼭 닮은 거울 속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괴로워했다. 사람들은 그를 하라 마코토가 아닌 살인자 고바야시 겐기치의 아들로 보았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와 낙인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버리고 싶은 과거가 있는 경우, 이처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고 싶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런 사람을 위한 브로커가 존재했는데,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라 마코토와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상황에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전히 앳되고 미남인 츠마부키 사토시와 특별한 매력이 있는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꽤 괜찮았다. 거짓된 삶을 살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했을 거라는 안도감에 공감하지 않았나. 뭇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조용한 시골에서 삼나무를 베는 작업, 다른 사람의 이름일망정 아들과 딸, 아내와 소소한 삶을 누렸던 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삶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존재가 아닌 한 남자의 소박한 삶이었다.



 

죽은 자는 자기 쪽에서는 부를 수 없고 그저 불러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정확하지 않은 죽은 자는 어느 누구도 불러줄 수 없어서 그만큼 한층 더 깊은 고독 속에 있는 것 같았다. (106페이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남자의 혼란을 지켜보았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주길 기대하는 남자의 외침 같았다. 김연수 작가와 협업한 작품을 읽은 후 히라노 게이치로의 매력에 빠져 읽은 책이다. 오래전 구매 후 읽지 않은 결괴를 꺼내어 읽을 시기가 된 것 같다.

 

 

#한남자 #히라노게이치로 #현대문학 #책추천 #일본소설 #일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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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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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창비



 

생명에 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주로 인간을 거론한다. 그것도 아니면 동물 정도다. 하지만 자연 속의, 인간과 동물이 죽고 새로 태어나도록 그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나무일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서 죽을 때까지 나무는 한자리에서 지켜본다. 어디 인간뿐일까. 새들이며 동물들이 나무에서 쉬었다 가고 또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나무와 함께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은 한낱 미물일 뿐이다. 그저 잠시 자연을 누리다가 사라질 뿐인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굴지 않은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개똥지빠귀라는 새였다. 추운 나라에서 남쪽 나라로 날아온 개똥지빠귀의 뱃속에는 팽나무의 열매가 있었다. 폭설이 내리던 날,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빈터에 떨어져 죽었다. 이른 봄 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에서 싹이 트고 실 같은 뿌리가 생겼다. 여름이 되자 줄기가 나고 잎사귀가 자라 점차 나무의 모습이 되어갔다. 큰 나무 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산다. 개똥지빠귀의 무리가 오고 가며 팽나무 가지에서 쉬고 배가 고프면 열매를 먹는 동안 팽나무의 나이테는 겹겹으로 쌓인다. 팽나무가 육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조선은 천주교 박해와 동학 운동을 겪고 새만금 개발까지 지나온다. 팽나무는 할매 나무가 되어 그늘이 되어주고, 안식처가 되어준다.

 



할매라는 제목 때문에 어렸을 적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았나. 작품 속 할매는 사람이 아니다. 바로 육백 년을 같은 자리에서 지켜온 팽나무를 가리킨다. 자연의 순환과 격동의 한국사를 망라한 작품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팽나무는 모든 걸 지켜본 존재다. 정지아 소설가는, 이 소설은 생명그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군산의 팽나무는 고유한 생명을 이어오고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서낭당이라고 하여 나무를 향하여 제사를 지내고 소원을 말하는 팽나무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적산가옥과 근대건축물을 보기 위해 군산을 방문하였으나, 일제가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설계한 장소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소설 속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및 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도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며 우리의 염원을 말하고 그것을 들어주는 팽나무의 존재는 어쩌면 아서왕의 전설에서의 멀린과 비슷하다. 즉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서 격동의 시기를 바라본 팽나무는 우리들의 할매와 같다.

 



유 신부는 혼자서 폐허의 길 흔적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동이 훤하게 터서 낮게 깔린 구름 틈새로 주황빛 아침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마을 터의 가장 안쪽 철망과 대숲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검은 몸을 뒤틀고 서 있는 고목이 보였다. 방지거 신부는 아! 하며 잠깐 그 자리에 섰다. 그는 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팽나무에 안기듯이 두 팔을 벌리고 뺨을 대보았다. 그때 그는 분명히 나지막한 쉰 목소리를 들었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216~217페이지)

 



이 책을 읽고 하제 당산마을의 할매 나무인 팽나무 사진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6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버텨온 할매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골네 뿐 아니라 하제 마을 모든 사람의 염원인, 뿌리 깊은 인연의 고리를 보게 되었다.

 



생명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또 스러진다. 스스로 갯벌에 들어가 칠게의 먹이가 된 인간, 그것을 먹은 칠게를 새가 잡아먹고, 새는 나무 아래서 생명을 다한다. 새의 주검은 나무의 자양분이 되어 나무의 뿌리를 굳건하게 한다. 생명의 순환 과정을 엿보는 듯하다. 마치 불교의 윤회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작품으로 인해 새만금에 새로운 활기가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작품 하나가 주는 반향을 기대해 봐도 될까. 사라지는 갯벌, 자연의 위기에서도 버티고 선 할매 나무의 저력을 믿어보고 싶다.



 

 

#할매 #황석영 #창비 #책추천 #소설추천 #한국문학 #한국소설 #서낭당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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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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