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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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를 읽었던 우리는 동화가 어떻게 변주되던 작가들이 변주해놓은 글들을 즐긴다. 오히려 기대하기까지 한다. 하나의 동화와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변주된 글을 읽노라면 작가의 생각 조각들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화가 어떻게 변주되던지 우리는 글 속에서 동화를 찾고 동화같은 삶을 꿈꾸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상상일 뿐이지만. 동화는 우리들의 판타지이므로 우리는 오늘도 동화속 판타지를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구병모의 작품을 꽤 읽었다. 작가가 처음 쓴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부터 『그것은 나만이 아니기를』, 『파과』등등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의 책들을 골라보니 한 권 빼놓고는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로서 작가의 나쁜 동화 변주곡은 꼭 읽어야 할 소설로 간주 되었다. 더군다나 동화의 변주곡이라잖나. 『파란 아이』에서 잠시 만난 「화갑소녀전」에서 느낄 수 있었듯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읽으며 이런 식의 소설도 괜찮겠다 싶었었다.  

 

  『빨간구두당』은 그림형제나 안데르센, 유럽이나 러시아 민담 등을 참고로 하여 다채롭게 변주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다.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읽어도 무방한 소설로 고전 동화의 내용과 현 시대와의 상황을 조화롭게 쓴 소설이었다. 작가의 판타지적 글이 뛰어났고 이 책에서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빨간구두당」은 제목에서부터 알다시피 안데르센의 『빨간구두』를 새롭게 쓴 글이다. 한 마을에 흰색이나 검은색 혹은 회색 빛깔의 옷만 입고 다니는 곳에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가 나타났다. 죽어가는 늙은 신부가 빨강색을 한번 보고자 해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를 데려왔다.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는 빨간 구두를 신고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팔다리를 움직여 춤을 추는 처녀는 멈출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처녀를 마녀로 몰아 빨간 구두를 신은 발을 잘랐고 빨간 구두를 신은 자른 발은 여전히 춤을 추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춤을 추는 빨간 구두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빨간구두당이라고 불렀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잔혹한 동화다. 동화가 원래 잔혹한 내용을 품고 있었고, 어린이들에게 맞게 순화되어 나온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잔혹했다. 춤을 추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고 마녀로 몰아 처녀의 발을 자르다니. 물론 이 동화를 처음 읽었을때 춤을 추는 것을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했을때 발을 자를수 밖에 없었겠구나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서 다시 읽는 동화는 참혹하기 그지 없는 잔혹동화였다. 많은 동화들이 그랬다.

 

  동화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화갑소녀전」은 또 얼마나 슬펐던가. 성냥을 팔았던 소녀가 몸을 녹이기 위해 화광 공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경비원과 비서, 공장장이 어린 소녀를 어떻게 했는지 보면 현재를 거울로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순무」에서는 죽은 괴한을 땅에 묻었다가 거대한 사람모양의 순무를 캐 왕에게 바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성경속 구절과 로마신화 속 인물을 예로 들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했다. 진실은 어둠속으로 달아나고 전달자에 의해 임의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힘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작품이었다.

 

  단편 소설들 중에서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작품은 「헤르메스의 붕대」라는 소설이었다. 그림 형제의 「유리병 속의 작은 도깨비」의 동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입구가 코르크 마개로 덮인 유리병을 숲속에서 발견하고 병에서 무언가를 꺼내주게 되었다. 그에게서 한 장의 거즈를 받았고, 거즈의 왼쪽 부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입은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고, 몸을 문지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고열, 내상, 각종 염증을 몸 밖으로 떠나보낼 수 있었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그에게 진료소의 의사는 그에게 어떤 의심을 했던가.

 

그녀는 바람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빗줄기의 속삭임을 들었고, 흩날리는 눈발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한 알의 주근깨만 한 초파리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도 그것이 다음 순간 어느 자리에 가 앉을 것이며 따라서 언제 일격필살이 가능할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한들, 그것이 내일 먹을 곡식을 여물게 하는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181페이지,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 중에서) 

  다시한번 작가의 이야기의 변주에 놀랐고, 작가의 글에 압도되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우리가 꿈꾸었던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성들을 글로 만날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는 거. 작가 구병모의 나쁜 동화의 변주곡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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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09-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궁금합니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 1
박시인 글.그림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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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쿡방이 인기여서 여기저기 방송에서 음식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고 있다. TV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평일에는 아예 없고 주말에 잠깐씩 보면 다 음식하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금요일 저녁 삼시세끼부터 본방사수하고 보기는 한다. 유일한 평일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 음식은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좋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며 먹는 사람들을 보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것을 알수 있듯, 음식은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 참 달라지기도 한다. 음식을 함께 만들어 함께 먹는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친해지고 스스럼이 없어지게 된다.

 

  이제 만화도 음식이 대세인가 보다. 순정만화속 인물들이 표지로 나와 '저녁 같이 드실래요?' 라고 묻는 제목이다. 함께 저녁먹을 사람도 없는 외로운 주말 저녁, 카툰 속의 주인공들에게도 저녁먹을 사람이 생겼다. 그렇다고 연인도 아니고 친구라 부르기도 애매한 사이. 그저 같이 저녁먹는 사람이다. 어느 날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스테이크 하우스에 갔다가 커플 세트메뉴 할인이라는 말에 우연히 합석하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다. 8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헤어진 도희, 여태 15명의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도화살이 있다는 말에 누군가와 진지하게 사귀는 걸 꺼리게 된 해경의 이야기이다.

 

  둘은 주말 저녁 인터넷이나 하고 맥주나 한잔 하면서 영화보다가 자는 심심한 생활을 하고 있던 차 주말저녁에 만나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그저 저녁을 함께 먹는 사이. 친구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약간은 어색한 사이였다. 둘은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 헤어진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매주 다른 음식, 추억이 깃든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다. 서로에게 인터넷의 익명의 게시판 같은 이들. 그래서 그럴까 스스럼없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함께 스테이크를 먹고 뷔페, 수제 돈가스, 우동 등을 함께 먹었다.  

 

  음식을 함께 먹은 시간만큼 이들도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다양한 음식들을 먹는다. 음식을 함께 먹으며 이들도 서로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주말 저녁이 그들에게는 서로 기다리는 시간이 되는 건 당연지사. 이제 그들에게도 함께 이야기하고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할수 있게 된 것. 저녁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주 개인적인 내밀함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주말 저녁을 함께 먹는 이들을 보며 누군가와 저녁을 혹은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건지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낯선 이들은 친근하게 해주고 이미 친했던 사이는 더 유대감을 갖게 해준다는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와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그처럼 사람들을 다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 이거 너무 재미있잖아. 1권 읽고 났더니 다음 2, 3권이 너무 궁금해지잖아. 이들이 풀어갈 그들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어떤 음식들을 함께 하며 그들 만의 시간을 함께 나눌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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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익숙한
심윤서 지음 / 가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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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늘에서 보면 조그만 행성에 불과한 푸른색의 지구. 오로지 지구에서만 사람이 살수 있는 곳. 아직까지는. 그 지구가 몸살을 앓고 멸망이 도래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늘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기도 하며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곳에서 사는 우리. 여전히 사랑이야기에 목말라하는 우리. 태양에서 세번째 행성에서 사는 우리. 우리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내가 상상해 왔던 이야기이기도 하는.

 

  심윤서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작가의 글보다 더 좋아하는 건 글 속에서 말하는 따스함 일 것이다.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가슴이 찡하면서도 따스해져 오는 감정. 그런 감정을 나타내는 작가의 글이 참 좋다. 연재글을 다 챙겨보지 못하고 겨우 몇 편 보았을 뿐이지만 좋은걸 어떡해.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러브 고 라운드』속 윤은홍의 친구인 가비, 연갑이다. 연갑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연갑의 오빠 연준의 이야기도 함께 말하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 중에서 유달리 애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가비의 오빠 준이었다. 뭔가 애틋하면서도 특별한 사람이어서 준이라는 인물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너무 아프면 그 사랑했던 시간을 온통 잊을수 있을까. 단 한번의 교통사고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깨끗히 잊어버릴수 있을까. 그 사랑이 너무 아파서, 그 헤어짐이 믿을 수 없어서 였을까. 갑이라는 이름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아빠가 늘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딸만큼은 어디가서든 갑의 인생을 살라며 이름을 갑이라 지었다. 그런데 갑은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홍보대행사에서 역시 을의 입장에서 일하고 있다.  

 

 갑은 계속 꿈을 꾼다. 어떤 남자와 함께 사랑을 나누는 꿈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건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늘 꿈속에서 나타나는 사람이지만 얼굴만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꿈을 꾼 어느 날, 기흉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을녕이라는 남자, 외국에 있다가 어머니가 불러 병원에 찾아오게 되었다. 7년만에.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여자가 탔다. 깜짝 놀라서 바라보았지만 정작 그 여자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전혀 모르는 얼굴처럼 대하고 있었다. 갑이었다. 윤갑. 가비. 갑자기 서울에 남고 싶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의붓형이 인수하는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어졌다.

 

 

  분명 낯선 사람이었는데 그에게서는 익숙한 향기가 났다. 언젠가 맡았었고 꿈 속에서 늘 만났던 향기. 사랑의 기억은 때로 향기가 먼저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연갑에서 서을녕의 향기가 그랬던 것처럼. 갑의 회사를 인수한 새 대표가 왔다. 그에게선 익숙했던 향기가 났고, 갑의 귓가에 '가비야'라고 부르는데 그 말은 늘 들었던 것처럼 익숙했고 아파왔다. 그리고 그 남자 서을녕을 기억하게 되었다. 교통사고가 난 모든 순간과 함께.

 

준아,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뭔지 아니?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야. 바로 곁에 있어도 안드로메다보다 더 멀게 느껴질 때도 있어. 반대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282페이지)

 

  사랑은 때로는 기억이고 추억이다. 좋았던 순간이나 아팠던 기억마저 훗날에 느껴보면 너무 소중한 추억들이 된다. 오히려 무심했던 걸 아파하게 된다. 좀더 잘해줄걸 하는 생각. 좀더 많이 사랑할걸 하는 생각들. 연갑과 서을녕의 사랑은 좋았으면서도 아팠다. 다른 한편으로 가비의 오빠 연준과 은하의 사랑은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사랑이었다. 사람에게 낯설어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서툰 준에게 은하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갖춘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에서는 흔히 있는 가족간의 갈등, 서을녕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시험 같은 일들, 출생의 비밀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 부분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귀기울였다. 

 

  온 우주를 통틀어 우리는 별의 반짝임보다 더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먼지의 작은 입자 정도 될까. 별을 사랑하고 행성을 사랑하는 준을 보면서, 준이 운영하는 '태양에서 세번째 돌 위에서'라는 이름의 블로그처럼 우리는 때로는 행복한 삶을, 때로는 아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어느 순간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의 존재가 사라질지라도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은 늘 여전히 바삐 움직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므로.    

 

P.S. 연준이 우주에 심취했던 소설 속 내용을 보면서 소장하고 있는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를 살펴보고 싶어졌다. 우주의 탄생, 은하계의 진화, 태양의 삶과 죽음, 우주를 떠돌던 먼지가 의식 있는 생명이 되는 과정, 외계 생명의 존재 문제 등이 수록된 책을 보면 연준이 생각날 것 같다. 그 책을 읽어보면 연준을 좀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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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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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동물을 길러보지 않았다. 털 달린 동물을 무서워하고 피부가 예민해 알레르기도 있는 터였다. 개나 고양이 등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자기 자식처럼 키우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키우는 것을 보고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친구들이 기르는 개를 자주 보며 정이 들고, 아파트를 거닐다가 배고파하는 표정을 지으며 애교섞인 표정으로 쳐다보는 고양이를 보며 점점 거부감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 외에 다른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매를 기르는 사람은 여태 보지 못했다. 크기가 적은 매도 아니다. 60cm가까이 되는 크기이며 상당히 위협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참매를 기르는 작가가 에세이를 썼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즉사하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뎌내기 위해 매잡이가 되어 참매를 길들이게 되는 과정을 글로 썼다. 저자는 처음부터 매였다. 매에 사로잡혔다. 새 중에서도 맹금류에 집착했다. '맹금류가 지금껏 존재해 온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생물체라고 확신했다'라고 했다. 저자의 부모는 애착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집착은 더 심해졌다. 저자는 매잡이가 되기 위해 매 훈련법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T. H. 화이트의 『참매』가 저자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화이트는 아서왕의 이야기인 『돌에 박힌 칼』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했다. 화이트가 쓴 『참매』를 읽으며 진짜 참매를 이해하지 않았던 화이트를 느꼈고 화이트의 참매 고스를 좋아했다.

 

  저자 헬렌 맥도널드는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기로하면서 화이트가 쓴 『참매』 와 많은 부분을 비교하며 글을 썼다. 글의 처음에서부터 마지막까지 화이트의 고스, 고스를 길들이는 화이트. 메이블을 길들이는 과정은 여러모로 화이트와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화이트는 매를 두려워해 매를 날리다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고스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화이트의 두려움을 고스가 고스란히 느꼈던 것. 공포에 떠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매와 시선을 맞추지 못했고 또한 매도 화이트의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

 

  동물과 사람사이의 교감이 굉장히 크다고 알고 있다. 동물이 느끼는 감정을 사람이 느끼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동물이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 교감하게 된다. 아직 어린 매 였을때 데려와 고리를 주며 매를 길들이고 나는 연습을 시킬때 참매는 훨훨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화이트의 고스처럼 날아가 주인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잡이와 매가 교감을 하게 되면 매는 날아가 꿩이나 토끼 사냥을 하고서도 다시 주인의 손등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세상이 항상 새로운 것들로 넘쳐나기를 바라는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온다. 삶이 구멍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 부재, 상실, 거기 있었는데 이제는 없는 것들. 그리고 또 깨닫는다. 그 구멍들을 피해 가며 구멍들 틈새에서 성숙해져야 된다는 것을. 비록 전에 그것들이 있던 곳에 손을 뻗으면, 추억이 있는 공간이 가진 특유의 긴장되고 빛나는 아련함이 있긴 해도.  (272페이지)

 

<참매>

 

메이블과 밖에 있으면 내게는 가정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깥에 있을 때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다. 매가 보는 모든 것은 날것으로,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졌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내 머릿속에서 풍경은 압박처럼, 빛처럼, 선물처럼 느껴지는 의미를 빚어냈고, 그 감각들은 말로 옮길 수가 없다. (295페이지)

 

  저자는 메이블이 온 이후로 매일 저녁 일지를 썼다. 날씨, 메이블의 행동, 체중과 바람과 먹이의 수치를 기록했던 것. 매가 날기 위해서는 체중을 줄여야 했으므로 체중 관리를 했고, 먹이를 장소에 따라 달리 주며 길들였던 것이다. 메이블에게 처음 나는 연습을 시키기 위해 공원으로 갔을때의 두려움도 이겨냈다.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웠고, 저자의 손등에 안착하기 위해 발톱으로 찔러 피를 흘리게 했어도 메이블을 날게 했다는 것으로 뿌듯해 했다.

 

  상실감에 빠진 그를 이끈 것은 메이블을 길들이는 과정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참매를 길들이며 어느새 고통을 잊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사랑을 메이블과의 교감으로 훈련을 시키며 슬픔을 견뎌낼 수 있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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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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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의 고요함을 잘 알지 못한다. 어쩌다가 가끔 새벽에 깰때면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잠을 자려고 애쓴다. 늘 짜여져 있는 시간에 맞추어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도 같다. 밤에 깨어있는 사람은 밤의 고요함을 사랑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고요한 밤 시간. 한 밤의 시간에 그들은 주로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일들을 하며 보낼 것 같다. 내가 만약 깨어있으면 전날 읽던 소설을 마저 읽고 싶을 때이다. 소설을 몇 장 남겨두면 그 다음 내용의 궁금함에 못이겨 읽게 되는 게 한밤중에 깨어 있을 때라는 것을.

 

  나는 겁이 많아서라도 한밤에 돌아다니지를 못하는데 여기 한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에리와 마리라는 자매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시작은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한 젊은 남자가 다가가 말을 걸며 시작된다. 에리의 동생 아니냐고. 백설공주처럼 예쁜 에리언니와 함께 어느 날에 수영장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말을 건넸다. 자신은 근처 지하 음악실에서 밴드 연습을 하는 중이고 배가 고파 음식을 먹으러 왔다며 마리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 남자가 하는 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처럼 흘려 듣다가도 한 마디씩 건네는 모양이 아주 싫지만은 않은 듯 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밤의 식당에서 혼자서 책을 읽는 일이 어느 정도 지루했을까. 

 

  다음 장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에리의 모습을 비춰준다. 마치 영화 화면이 돌아가듯, 누워있는 에리의 침대와 방의 모든 것을 카메라 앵글로 돌리듯 그렇게 묘사를 하고 있었다. 왜 그녀의 자는 모습을 장을 달리할때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마리 이야기의 다음 장에 비춰주는데 그녀의 자는 모습과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만 같다. 그리고 에리의 침대곁에는 한 남자의 팔이 보인다. 그 남자는 누굴까.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수가 없고, 시간이 지나도 에리는 자고 있을 뿐이다.

 

 

 

  젊은 남자가 나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책을 읽고 있었던 마리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러브 호텔의 매니저로 문제가 생겨 마리가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다. 중국에서 불법 입국한 중국 여자가 일본어를 하지 못해 통역을 부탁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여자와 함께 러브호텔로 가게 된 마리는 중국 여자에게 사정을 들어 호텔 매니저에게 전해주었다. 중국 창부는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리의 언니 에리도 항상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에 비해 마리는 늘 예쁜 언니와 비교당했고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백설공주 같았던 언니 에리와 씩씩한 양치기 목동 같았던 동생 마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한밤에 홀로 나와있는 마리와 잠에서 깨지 않는 언니 에리. 한밤의 시간은 고독하고 고요하다. 우리는 에리의 잠자는 모습, 마리가 책을 읽는 모습, 호텔 매니저를 따라 중국 창부를 만나고 한밤의 거리를 움직이는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 마치 우리가 화자가 되어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화 화면을 보듯 그들의 동선에 따라 움직이며 관찰해가는 우리.  

 

 12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 어둠만이 가득한 시간. 특히 한겨울의 밤시간은 7시가 되어도 어두운 시간이다. 잠을 자는 우리는 7시간의 시간이 아주 찰나일 뿐인데 마리의 시간을 따라가다보니 밤 시간이 꽤 길다는 걸 느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이처럼 많은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밤이 지나고 여명이 비치는 새벽의 시간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기도 했다. 잠에서 깨지 않는 에리의 시간도 고독하고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고 또다른 사람을 만나는 마리의 시간도 고독해 보였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다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시의 한밤중의 시간을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 그들의 시간은 고요하고도 고독했다는 것. 그리고 소설의 화자가 우리였듯,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인 우리도 밤의 고요와 고독이 어둠처럼 몰려왔다는 것이었다. 7시간의 시간이 꽤 길었다. 누구에게는 찰나의 시간일수도 있지만 소설 속 시간은 꽤 길었다는.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을. 언니의 침대로 들어간 마리처럼 이제 새벽의 빛이 떠오를 때 화해의 손길을 내밀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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