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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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스스로를 가르켜 활자중독이라고 일컫는데, 이처럼 나같은 사람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오래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활자중독이라고 표현하지만 다른 표현으로 보자면 책벌레도 맞는 말이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짬이 날때면 책을 펴고,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 또한 다른 이들로부터 책벌레라는 말을 듣고 싶기는 하다. 책벌레라는 게 조그만 알갱이처럼 생긴 벌레가 아니던가. 오래된 책장에서 책을 꺼내어 펴보면 조그만 알갱이같은 책벌레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 속의 글자들을 파먹고 사는 벌레, 나도 한낱 미물인 그 책벌레라 일컬어지고 싶다.  

 

  과거 조선시대의 책벌레라고 하면 이덕무를 빼놓을 수 없다. 이덕무라면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냉골방에서 책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옆집에 살았던 노인은 혹시나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걱정하고 자신의 마당을 쓸때 이덕무의 마당까지 쓸고 신발까지 눈을 털어 가지런히 놓아주곤 했다는 일화를 보고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방에서 책을 읽는 목소리. 이웃집에서건 이덕무 형제들의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책읽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흐뭇해 했을 것도 같다.  

 

  장서인이라고 할것 까지는 없지만, 나도 한때 책을 구입하면 내 이름이 적혀진 책도장을 꼭꼭 찍고는 했었다. 이 좋은 책이 내 책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아니 나 혼자서라도 내 책이라는 인증서 같은 것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책에 대한 사랑때문에 이처럼 장서인을 찍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 우리 고서 속에서도 그랬었다는 걸 이 책으로 인해 알 수 있었다. 저자가 하버드 대학교 엔칭도서관에서 1년 동안 머물때 한, 중, 일의 책자들을 살폈는데, 각 나라마다 장서인을 찍는 경우가 조금씩 달랐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책을 자신이 가졌을때는 자신의 이름이 있는 장서인을 찍었다가 팔때는 혹시라도 자신의 가문에 누가 될까 자신의 장서인을 도려내고 팔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책을 구입했을때 다른 사람의 이름을 파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장서인을 찍었다는 것. 일본의 경우는 전에 찍혀져있던 책에 대한 인연의 말소라는 글을 새겨넣었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큰 나라답게 이전 주인의 장서인에 손을 대는 법이 없이, 다른 사람의 장서인 옆에 자신의 장서인을 찍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고서에서도 장서인에서 책을 소유한 사람들의 이름이 길게 늘여져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학자들이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덕무를 꼽는다는 것이다. 가난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했던 이덕무이기에 그런 것 같다. 가난한 이덕무는 지인들에게 책을 빌려 보았는데,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책 주인에게 책을 베껴써주며 읽었다고도 한다. 책을 베껴쓸때는 책 주인에게 줄 것과 자신의 책을 포함해 두 권의 책을 베껴썼다. 지금의 이덕무를 우러른 것은 아마도 오랜 세월 베껴 써주다가 식견이 풍부해져서 학문의 안목이 열린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베껴 쓰기가 요즘엔 필사로 대신해서 좋은 시詩나 소설을 베껴쓰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짧은 단편을 필사해본 적이 있었다. 그저 눈으로 책을 읽는 것과 필사하며 책을 읽는 것은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일단 필사를 하게 되면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입으로 말하듯 읽으며, 손으로는 글씨를 쓰는 세가지 읽기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가지 읽기법으로 하다보면 그 책에 대한 느낌은 어마어마하다. 깊이 있는 책읽기가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의 책읽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가 메모의 역할이다. 저자는 『옹기』라는 책과 『독기』라는 책을 소개하며 메모법에 대해 말한다. 경전에 대한 메모와 역사에 대한 메모를 달리해 메모를 옹기에 담았고, 메모가 쌓여 순서를 정해 묶으면 가제본 형태의 책이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도 메모를 하지만, 보통의 우리같이 책을 쓰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메모지를 버리거나 책 속에 꽂아 두거나 한다. 책을 다 읽고 난뒤에는 메모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다산의 위대한 학문 뒤에는 체질화된 다산의 메모의 습관에 있었다고 했다. 수많은 메모가 그의 학문의 자산이었던 셈이다.

 

  이웃분 중의 한 분이 독서를 할때 동시다발적으로 몇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 방법이 참 부러웠다. 집중력이 좋아지는 방법으로 동시다발적 독서가 좋다는 말을 들었으나 집중력이 짧아 시도를 해보았지만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홍석주의 동시다발적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습관처럼 반복하는 책 읽기는 뜻밖의 효과를 거둘수 있다는 말도 했다. 다시 한번 실천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이덕무의 구서재 라는 것에 대해 말하여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구서재라는 것은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활동이 이루어지는 집이라는 뜻이다. 

 

첫째, 독서. 입으로 읽고, 눈으로 읽고, 손으로 읽었다.

둘째, 간서. 눈으로 읽는 것.

셋째, 초서. 책의 중요한 부분을 베껴가며 손으로 읽는 것.

넷째, 교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아 교정해가며 읽는 것.

다섯째, 평서. 책의 인상적인 부분이나 책 전체에 대한 감상과 평을 남기는 일.

여섯째, 저서. 남의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제 생각을 펼쳐보이고 싶어지는 것.

일곱째, 장서. 책을 보관하는 것.

여덟째, 차서. 남에게 책을 빌리는 일.

아홉째, 포서. 책에 햇볕에 쬐어 말리는 일.

 

  이덕무의 구서재를 실천한다면 완전한 책읽기가 될 것이다. 이처럼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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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12-0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평 써야하는데~~~

정완기 2016-01-2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서인에 관한 각국의 세태를 알게 해주셨군요. 헌책만이 장서인을 발견할 수 있어 아쉽지요. 홍대입구 서교동 길가에서 헌책을 구입했는데 유명인사의 서명이 적혀있더군요. 혹 도난품이 아니지 의심됐지만 그냥 구입했죠.중년에 장서인을 새겼는데 그것도 게을러져 장서인을 안찍게 되더군요. 전서로 새겨진 장서인이 빨간도장에 찍힌 흔적이 매력적이죠. 첫 댓글에 말이 많았군요,.

비로그인 2016-02-0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읽기에 게을렀는데, 추운 골방에서 항상 책을 읽었다는 학자 이덕무 얘기를 듣고 보니 부끄러워지네요.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이라도 부지런히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문장을 많이 읽다보면 좋은 시들이 써지겠지요. 다독,다작,다상량이 좋은 글과 시를 쓰는데 있어서 하나의 시금석이거든요. 책을 읽으면 메모를 해 두었다가 서평을 남겨야 겠습니다. 하나 하나 쌓이다 보면 필력이 늘어나 있겠지요. 건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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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평가단 활동을 재개한다니 일단 반가움이 먼저 앞선다.

신간 평가단으로 활동하면서 신간에 대한 깊이있는 사고를 하게 되었다.

내가 추린 책이 선택되는 즐거움이 컸고,

내 취향의 책이 아니지만 새로운 책을 만난다는 즐거움이 컸다.

책에 대한 호기심, 책에 대한 기대를 안고 독서를 하기 마련.

역시나 12월 신간 평가단 활동을 재개하며 읽고 싶은 책, 관심 가는 책을 추려본다.

 

 

먼저 아모스 오즈의 책이다.

아모스 오즈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처럼 늘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아직 수상을 하지 못한 작가이다.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시골 생활 풍경>이란 작품 한 권만 읽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를 정도의 책이면, 그의 책을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좋아하는 작가보다, 새로운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고 싶은 도전 정신을 신간 평가단을 하면서 가져보고 있다.

 

 

 

최근 독일 소설을 읽게 되면서 독일 소설만의 감성을 알아가는 중이다. 보통의 독일 국민들처럼 딱딱한 글은 아니라는 것. 독일 국민들보다 훨씬 다양한 감정으로, 다양한 소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중.

 

열린책들에서 나온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라는 소설도 독일 작가 한스 라트의 소설로 유머러스한 소설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우울한 시기, 지금의 나에겐 이처럼 유머러스한 소설이 필요해.

 

마음껏 웃고, 읽으면서 기분좋아지는 소설이 필요해.

 

 

어른들을 위한 모노동화다.

동화라고 하지만 엄연한 소설.

그림이 예뻐, 저절로 마음이 활짝 펴질것만 같은 소설이다.

그이름은 <나무 위의 고래>

 

 

 

 

 

 

 

 

 

 

 

백민석 작가의 새로운 소설집인줄 알았는데

개정판이다.

처음엔 문학동네에서 이번엔 한겨레출판에서 나왔다.

작가의 작품 중 어떤 걸 읽었더라, 생각해보고 있다.

재작년에 <혀끝의 남자>를 읽고는 그의 작품을 좀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걸, 내 블로그에서 검색해 보고 알았다.

 

10년간의 절필. 절필하면서도 책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독백이 들어있는 작품도 있었다.

그의 작품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금은 떨린다.

 

 

 

 

이외의 책들.

좋은 책들, 재미있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다 읽은 책들이네.

읽으려고 구매했거나 가지고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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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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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종이약국'일까. 처음엔 심리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다. 사랑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문학의 약제사. 이런 말 들어보셨나? 사랑의 상처에 책을 처방해준다.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을 꿰뚫어보고 듣는 사람이 있다. 페르뒤 씨다. 그는 파리의 센 강 위에 배를 띄워놓고 수상 서점을 운영한다.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책을 처방한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책을 처방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 꼭 맞는 책을 처방한다. 맨처음 그 책을 거부했던 사람도 읽고나서는 다른 책도 소개해 달라고도 한다.

 

  우울할 때나 슬플때 연애 소설을 읽으며 함께 웃고 울며 그 감정에서 벗어나오곤 하는데 이처럼 페르뒤 씨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책을 골라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왠지 굉장히 멋진 일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종이약국' 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상처 치유라는게 거창한 것은 없다. 소소한 일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사랑의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치유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걸 책이나 실생활에서 알게 되었다.

 

  수상서점을 운영하는 페르뒤 씨는 어떻게 이런 종이약국을 열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괴로움에 처방을 내리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아파트에서 최소한의 가구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종이로 된 약을 처방하지만 정작 페르뒤 씨는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을까. 이쯤에서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페르뒤 씨의 아파트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방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 중 20년 동안 문을 닫아놓은 방이 있었다. 라벤다라는 이름이 붙여진 방. 사랑의 상처를 안고 그 방을 봉인해놓은 곳이었다. 갑작스럽게 남편이 떠나고 난뒤 괴로워하는 카트린에게 오랫동안 숨겨놓았던 가구 하나를 건네주고 그녀에게서 편지를 발견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로부터 그는 20년 전의 연인 마농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 그녀에게 결혼할 약혼자가 있음에도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남긴 편지를 20년 동안이나 뜯어보지 않았다는 것. 그는 마농이 남긴 편지를 읽고 충격에 빠진다. 마농을 잃었다는, 그녀가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로 떠났다는 것에 대한 상처를 여태 봉인해두고 있었는데 20년만에야 그 상처의 봉인이 다시 풀린 것이다.

 

 

 

책은 의사인 동시에 약이기도 해요.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죠. 손님이 안고 있는 고통에 맞는 적절한 소설을 소개하는 것, 바로 내가 책을 파는 방식입니다. (39페이지)

 

 

  그는 수상 서점의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것이었던 마농을 향해 떠난 것이다. 배가 움직이고 있을때 한 아파트에 사는 신예 작가 막스 조당이 배에 탔고, 그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들 뻘인 막스 조당은 더이상 글을 쓸수 없어 괴롭다고 했고, 페르뒤 씨는 5년간 사랑했고, 20년간 봉인해두었던 마농을 찾아 떠났다. 그들이 가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들 사랑의 상처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룻밤 사랑했던 여자를 찾아 평생을 헤매고 있는 쿠에노를 배에 태웠고, 페르뒤 씨가 마농을 잃은 상처에 괴로워할때 힘이 되어 주었던 '남녁의 빛'의 작가 사나리 등을 배에 태웠다.

 

 

독서는 끝없는 여행이다. 기나긴, 그야말로 영원한 여행. 그 여행길에서 사람들은 더 온유해지고 더 많이 사랑하고 타인에게 더 친근해진다. 조당은 그 여행을  시작했다. 이제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세상과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걸 가슴속에 품게 될 것이다. (172페이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중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인해 치유받는 것. 사랑 또한 마찬가지라고 본다. 죽도록 사랑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풍경이 마치 영화처럼 그려졌다. 치유와 로맨스가 있는 '종이약국'이라는 수상 서점에 한번 타보았으면 싶다. 온통 사랑에 빠져있거나 사랑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곳. 페르뒤 씨가 나에게 골라주는 책은 어떤 책일까 못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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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궁금해요.^^아휴..이 책욕심은 끝이 없다죠!^^;;;
저녁시간 물리고 찾아드는 밤 ㅡ내내 편안하시길.
잘 읽고 갑니다.~
 
조선 마술사 무블 시리즈 2
이원태.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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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같은 소설, 소설 같은 영화라는 뜻을 가진 '무블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는 『조선 마술사』이다. 조선시대에도 과연 마술사가 있었을까?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이 책이 탄생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작가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에서 조선시대에도 마술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이에 작가는 소설을 구상하고 소설을 퇴고하는데까지 5년이 걸렸다고 했다. 상상을 해본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시대에 마술사가 있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들은 사대부와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을까. 사대부들의 핍박으로 자취를 감추지 않았을까.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술사들에게 열광했다. 생각해보면 마술사들이 있었을 것 같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예인집단이었던 사당패의 한 줄기가 아니었을까. 소설을 읽지 못하게 했어도 소설을 즐겨 읽었던 우리 선조들처럼 그들도 눈에 휘둥그레지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잘생긴 미남자가 마술사라면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젊은 처자들은 미남자인 마술사를 보겠다며 물랑루로 달려들었을 것이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열광했을 것도 같다. 소설속 조선 마술사가 활동했던 무대인 물랑루는 프랑스의 물랑루즈처럼 상상되기도 했다.

 

영화 속 '물랑루'

 

  마술 하나로 조선 시대를 호령하는 마술사 '환희'가 있다. 그는 자신의 마술 실력을 제대로 뽐낼수 있는 물랑루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선시대의 옹주 '청명'은 궁궐속 단 하나의 친구인 은미와 함께 물랑루로 마술을 구경하러 갔다가 환희의 마술을 지켜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환희를 바라보느라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데, 무대의 천정을 바라보는 청명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혹은 청명의 하얀 목덜미 때문인지 관객과 함께하는 마술 시연에서 청명을 지적해 나오라고 한다. 물론 많은 여성들이 환희에게 지목당하고 싶어한다. 은미까지도. 태어나자마자 어미인 소원 조씨가 죽은후 궁궐 속 깊은 골방인 별당에서 있는듯 없는듯 외롭게 생활해 온 청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다. 이에 환희의 부름을 거절하고 궁궐로 돌아오게 되는데, 여태 자신의 부름을 거절한 적이 없어 환희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때의 시대는 청나라에 조공을 했던 때이다. 청나라의 사신이 찾아와 태자의 아홉번째 후궁을 뽑아가기 위해 조선의 처녀들을 데려갔었는데, 이번에는 청나라의 사신의 눈에 띄어 청명이 가게 되었다. 청명을 보내고는 못살것 같은 왕, 어느새 청명에게 사랑을 느껴 청명을 지키려는 환희의 분투가 시작된다. 소설 속 중간중간마다 환희가 살아온 과정들을 청명에게 이야기한다. 조선 태생의 환희의 어미를 때려적인 청나라 마술사 요물, 요물을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쳐 나와 세상을 주유하며 마술을 배운 이야기가 환희의 입으로 전해진다.

 

판 아래에 누워 벌이는 상상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오. 마술이 어찌 펼쳐질 것인가를, 열 가지 기술을 바탕에 깔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니까. 기술을 알수록 상상은 더 힘차게 나아가고, 나아갔던 상상도 기술을 통해 다시 현실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오. (194페이지)

 

 

 

  마술은 판타지이다. 사람들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듯한 판타지이다. 우리가 갖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고, 마치 꿈속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것은 마술은 우리들을 환희의 도가니로 물들게 한다는 것. 옹주와 하찮은 마술사와도 사랑을 하게 만드는 것은 마술에 판타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1,000가지의 마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했던 마술사의 열정,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아무래도 잘생긴 미남자인 유승호가 영화에 나온다는 소식을 접해서인지 그의 이미지가 자꾸 떠올랐다. 그 정도의 미남자 마술사라면 조선 팔도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했을 것이다. 원래 갖지 못하는 것에 더 애달파하는 게 당연지사. 환희와 청명의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를 읽는 일이 즐거웠다. 소설 속 판타지를 영화속에서 잘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오히려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적인 소설, 소설같은 영화를 표방한 무블 시리즈 답게 소설도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졌으니까. 아름다운 물랑루를 재현한 것만 봐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한때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데이비드 카퍼필드보다 더한 판타지를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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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주세요 - 제13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72
진희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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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즐거운 청소년 소설을 읽었다. 전에 읽었던 작품들은 청소년들의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우울한 이야기들, 예를들면 폭력과 따돌림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과를 주세요』는 좀더 긍정적인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다. 한참 크는 아이들이 느끼는 성적인 고민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들,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사과를 주세요』는 푸른책들의 제13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네 편이 들어있는 소설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표제작 「사과를 주세요」의 진희 작가 때문이었다. 일찍이 로맨스 소설을 여러 편 썼고, 동화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작가의 로맨스 소설을 꽤 여러 권 읽었기에 동화라면 모를까 청소년을 문학은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함이 일었다.

 

  우선 이 글의 표제작인 진희 작가의 「사과를 주세요」를 보자. 의지라는 여자 아이가 있다. 이름처럼 의지가 굳은 아이다. 작년 4월 우리는 고통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배에 탔던 한 고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많은사람들이 카톡에 노란 리본을 한동안 달고 있을 정도로 우리를 가슴아프게 한 사건이었는데, 작가는 아마도 이 이야기에서 의지라는 인물을 창조하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지나서도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던 의지에게 수학선생은 노란 리본을 그만 떼라고 했고, '리본은 애도의 권리'라고 했던 의지에게 수학 선생은 '개나 소나 권리 타령'이라는 말을 했다. 이에 의지는 자신에게 사과를 하라는 의미로 '사과를 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학교 교문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의지의 모습을 보며, 의지를 바라보는 교사들이나 학생들의 소리없는 응원을 보며 우리의 청소년은 공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런 일이 생겼을 경우 쉬쉬하며 덮어버리기 일쑤 일텐데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던 의지의 모습이 왠지 뿌듯하게 느껴졌다.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시간을 들여 알아야만 한다. 고통은 순간이 아니기에 사과도 순간이 될 수 없다. 사과는 시간을 들여 반복, 지속해야 하는 행위다. 우리는 잊고 묻으려고만 하는 사과에 저항해야 한다. (88페이지, 「사과를 주세요」중에서)

 

 김은재 작가의 「연애 세포 핵분열 중」이라는 작품은 한참 성에 대해 민감할 나이, 또한 이성에 대에 눈을 떠가는 나이의 남자 고등학생의 이야기이다. 태어나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한 근복의 이야기를 통해 요즘의 청소년들의 연애에 대한 진솔하고도 유쾌한 고민을 알 수 있었다.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 마음에 드는 방법들은 어떤게 있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겠지. 오늘 아침엔가 자매나 형제만 있는 사람들보다는 남매가 있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연애를 잘한다는 말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그것에 대한 반론이 방송인 김제동의 예를 들어 수많은 싱글들의 원성이 있었다. 연애는 나이가 어리나 젊으나 늙으나 영원한 화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리처드 용재 오닐 때문에 비올라의 음색에 반해 그가 연주하는 비올라 연주곡을 꽤 들었다. 모든 청소년들은 자신이 꿈꾸는 것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거나, 노력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 만큼의 결과물이 보이지 않으면 고민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진정 원하는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기는 단편이 허혜란의 「우산 없이 비올라」라는 단편이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비올라로 바꾸게 된 선욱은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일주일쯤 레슨을 쉬고 할머니 댁으로 오게 되었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데도 예쁜 하이힐을 신는 할머니는 예쁘게 차려입고 마을회관에서 노래 부르시거나 춤추며 즐겁게 보내신다. 연습에 연습을 해도 선생님은 '네 소리를 내, 네 소리를!'이라고 말씀하셨다. 우연히 할머니를 따라 회관에 가게 된 선욱은 즐겁게 노래부르며 노시는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저절로 즐거워졌다. 

 

나만의 소리, 나만의 음악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음악으로 '놀게' 한다는 것을 또한 그것은 누구에게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필사적으로 연습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3페이지, 「우산 없이 비올라」중에서)

 

  마지막 단편은 이순미의 「바다를 삼킨 플랑크톤」이다. 꼭 공부를 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공부 하라거나 하게 되는데, 공부에 전혀 취미가 없는 아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공부에는 취미없고 자신의 생각에 기발함을 불어넣어 전단지를 만드는 것에 취미가 있는 산하의 이야기다. 나도 역시 부모로서 산하가 내 아이라면 전단지 한다는데 무턱대고 찬성할 수 만은 없다. 틀에 박힌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못알아보는 사람들은 역시 어른인 것이다. 나 또한 이 어른들의 범주에 들었으니 할말은 없다.

 

  소통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 중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정작 자신이 알아듣지 못한 경우가 많지는 않은지 뒤돌아 볼 일이다. 아이들과 선생님, 아이들과 부모, 모두 소통의 부재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는가. 상대방이 내게 진심을 털어놓는데도 자신만의 생각안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소통이 될리가 없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기울일 준비를 해야하는게 아닐까. 그래야 소통도 되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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