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김동영 지음 / 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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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도, 책 속에서 혹은 주변에서 죽음을 만나면 나의 미래, 불투명한 미래의 모습, 혹은 죽음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보다 과학이 발달하여 목숨을 몇십 년쯤 연장할 수 있다고 해도, 나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언젠가는 올테니까. 내가 아무리 다가오지 말라고 해도 시시각각 다고오고 있으니까.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만, 언제가는 죽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다가, 나에게 죽음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존재. 수백 권의 책을 읽은들, 수백 편의 영화를 본들, 죽음에 초연할 수 있을까? 나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숙연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지만, 갈수록 인정하기 힘들어진다. 내가 놓고 갈 것들, 가족, 친구들. 그 모든 것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것도 같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때 정리하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정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 책 속의 주인공을 보며 너무 많은 것을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와 『나만 위로할 것』이 작품을 읽지는 않았지만 김동영의 책을 사랑하는 이웃분의 글에서 만난 책은 아주 다감한 여행 에세이였다. 그런 그가 장편소설을 냈다. 제목도 로맨틱한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라는 책이었다. 책 표지 또한 한지 느낌이 나는 질감으로 된 코랄핑크빛을 지닌 표지다. 로맨틱한 제목과 로맨틱한 표지는 당연히 로맨틱한 글을 상상하게 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 여든아홉 살된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첫 장을 읽고, 그 다음 장을 펼치면서, 당연히 그가 사랑했던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겠지 하는 나만의 상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든아홉 에서의 아주 최근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과학이 발전하여 줄기세포로 인해 백이십 세 까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대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오십대의 나이에 사랑니 때문에 수명을 연장하는 시술을 받게 된 남자는 오십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든여덟 살의 남자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연구소에서 수학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노웨어라는 카페에 앉아 있길 즐겼다. 여전히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카페 여주인과 카페에 드나드는 한 여고생과의 친분을 유지하면서, 자신에게 없었던 진정한 친구, 파릇파릇한 여고생 친구를 보면서 저절로 기분 좋아지는 저 머나먼 순수의 시대로 그를 이끌어간다. 새가 지저귀듯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는 젊은 날의 추억과 그를 스쳐간 아내들을 기억한다.

 

 

몸은 오십 대의 모습이지만, 속은 구십이 가까워진 그대로를 느끼고 있는 그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다. 외적인 젊음을 가졌지만, 외적은 젊음을 가진만큼 행복한것 같지는 않다. 젊은 날에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그는 카페 노웨어에서 담배와 커피로 자신을 혹사하면서 찬란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는 글을 쓴다. 그가 글을 쓰고 있을때 열여덟 살의 친구는 그의 곁에서 그에게 몇마디의 말을 건네면서 나이를 떠난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의 젊은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했던 젊은 날이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청춘이 영원할 줄 알았다. 더이상 늙지 않으면 시간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더 많은 일들을 하고 보다 밝은 미래가 내게 비춰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253페이지)

 

나이대로 시간이 지난다고 한다.

아마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십대 때는 시간이 너무 더디가는 것 같고, 나이가 어느 정도 든 4,50대의 중년들은 시속 4~50킬로미터의 속도대로 시간이 흐른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바도 그렇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십대의 나는 시간이 너무 가지 않아 애를 태웠다. 어서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의 나를 얼른 만나고 싶어 애를 태웠다. 지금의 나는 40대,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디 갔으면 좋으련만, 엊그제 1월인것 같았는데, 며칠 있으면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그만큼 시간이 빨리가는 것 같아, 어떨때는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애를 태운다.

 

이럴때 시간의 도둑이 나왔던 모모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때가 많다. 붙잡고 싶은 시간만큼 지금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찬란한 시절인가를 우리는 아주 먼 시간이 지난후에야 깨닫게 된다. 지금 현재가 우리에게 찬란한 시절임을 우린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깨달을지도 모른다. 시간의 소중함, 현재의 모든 순간이 찬란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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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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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이면 나는 신문에서 '책의 향기' 코너를 먼저 읽는다. 기자들은 어떤 책을 소개하고 있을까. 어떤 책이 새로 나왔을까.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열어보며 그 즈음의 신간 서적들을 눈으로 읽는다. 좋다고 생각한 작품은 메모를 하고, 언젠가 구입해서 읽어야 겠다 생각을 한다. 닉 페어웰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생소했다. 신문의 작은 꼭지 기사에 닉 페어월 작가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짧게 나왔다. 브라질 작가려니 했지만 '이규석'이라는 한국이름도 있었다. 작가 이력을 들춰보니 열네 살때 브라질로 이민가 28년을 브라질에서 살고 있는 한국 출신의 작가였다.

 

외국에서 성공한 작가. 한 편의 자전적 소설로 브라질 고등학교에서 비치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책이라 한다. 아이들은 GO라는 글자를 몸에 새기고 다니기도 하고,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다닐 정도로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했다. 한국 출신 작가가 외국에서 성공을 하면 앞다투어 인터뷰를 하고 작가가 쓴 책을 소개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사실 『GO 고』라는 제목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앞을 향해 달려가 할때의 GO.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라는 GO인것 같았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담고 있는 『GO 고』는 역시나 작가의 독백처럼 들린다.

작가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형식으로 글이 이어져 가는 것이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나'는 특별한 직업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여자친구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하는 일이라곤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는 일이다. 적은 돈을 벌면서 살아가지만 그는 글을 쓰고 있다.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을 하고 있다.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을때 마음이 통하는 여자애 진저를 만났다. 진저로 인해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주인공은 굉장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글을 쓰는 것,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 아이들로 하여금 꿈을 갖게 하는 일이 무척 마음에 든다. 글을 쓰고자 하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그 아이들이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는 희망을 갖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가장 위대한 점은 삶에 있어서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어서 만나고 싶다. 바로 이런 거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사람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 사람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84페이지)

책을 읽지 않고 좋은 작가가 될 수는 없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면 책을 읽어봐. 글 쓰는 것보다 훨씬 좋은 연습이 될 테니까. 작가가 쓴 것을 경험해봐. 거기서 감정을 느껴봐. 작가의 의도를 느껴봐. 그 모든 게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도록 해봐. 그 모든게 여러분 각자의 것이 될 거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될 거야. 마치 여러분 자신의 단어처럼 말이지.  (95~96페이지)

 

 

삶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네가 내 삶을 통해 보았듯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으로 가득해. 하지만 모든 게 최악일 때는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를 떠올려봐. GO. 가, 앞으로 가 글을 써, 그림을 그려, 사진도 찍어, 춤을 춰, 바느질을 해, 연기해, 노래해.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 최악일 때마다 딱 한 단어만 기억하는 거야. GO. 가, 앞으로 가. 그냥 해봐.  (128페이지)

작가는 책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영하고 있었다. 읽었던 책들, 작가에 대한 생각들, 그가 디제잉하며 들려주는 음악들은 우리를 다양한 음악속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가 들려 주었던 노래들은 내가 아는 것도 있고 들어보고 싶은 음악도 있었다. 실생활에서 음악을 생활화하는 그의 음악사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글 잘 쓰는 법을 물어보자, 책 속에서 작가의 생각들을 만나라고 하는 글귀는 압도적이었다.

 

작가의 감정, 작가의 의도, 작가의 쓴 것을 대신 경험해보는 일이 책을 읽는 일이 아닌가. 우리가 책을 읽는 일을 아주 잘 표현해 주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주인공의 삶은 어떻게 보면 아주 절망적인 삶이다. 아버지에게도 버림받고, 사랑했던 진저에게도 순간의 실수로 버림받고, 좋았다고 생각한 여자애에게서 어이없는 일까지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그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 자신의 심연으로 침잠하며 글을 썼던 일들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나도 그에게서 희망을 읽었다. 희망의 빛이 비춰지는 걸 느꼈다. 이런 희망적인 글들이 브라질의 고등학생 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듯 하다. 사진에서처럼 몸에 문신을 새겨가며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이 절망적이어도 꿈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말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이 책을 많이 읽고, GO라는 말을 기억하며, 삶이 힘들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때도 앞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GO. 앞으로 가. 그냥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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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前사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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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역사 관련 책이 나오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역사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강한 편이다. 우리 역사 관련 책을 읽으며 현재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현재의 정치 상황이나 역사적인 사실과 맞닿아 있는 경우를 보면 그렇다. 지나온 역사를 알면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아는 것과도 같다. 그만큼 지나온 역사는 우리가 알아야 하고, 우리가 갈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최근 역사 교과서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여태는 일본이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때문에 열분을 토했었는데,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도 문제가 될줄은 몰랐다. 아이들은 역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왜곡된 내용으로 공부한다면 우리 역사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즐겨 읽던 역사서를 아이들이 점점 재미없어하고 있는데, 왜곡된 역사를 배우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저자 이덕일은 들어가는 말에서, 일본의 우경화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충격을 받은 일본인들이 일본 본토에서 벗어나기 위한 집단적 병리현상의 표출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극단의 공포가 독일처럼 원전 해체라는 이성적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아시아 일부를 식민지배했던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5페이지) 라고 했다. 저자는 일본의 우경화가 실패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시작했다. 이 말은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쓰는 그들,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이처럼 그들을 몰아가고 있는건가 싶다.

 

얼마전 신문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상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보고 씁쓸함을 감출수 없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없지 않을까 싶지만 일본의 젊은이들도 만만치않은 걸 보면서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는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사』에서 표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일제시대였던 1918년에서부터 1945년까지의 우리나라 근대사를 말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저항했던 이들이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생성되는 과정을 담았다. 또한 일본의 만주 침략과 꿈을 잃은 사람들이 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과 부호들이 등장했고 일본이 패망하게 되는 과정들을 담았다.

 

내가 생각한 사회주의는 해방 바로 전에 생기지 않았을까 했었는데, 3.1운동이 일어나기 전해인 1918년에 한인들이 모여 민족해방에 도움이 된다면 볼셰비즘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고, 민족주의자들은 이탈했지만 볼셰비즘에 찬동하는 한인들이 다시 모여 결성했다 한다.

 

공산당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김일성과 박헌영 이름 정도였는데, 책에서는 박헌영의 이름이 자주 나오고 세세하기 기록되어 있었다. 모르는 인물들이 많아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나라를 구하려고 했던 민족주의자들이 어떻게 사회주의에 발을 들였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더글러스 맥아더가 국무장관 제임스 번스의 답변에 따라 "천황제를 해체하고 일왕을 전범으로 처벌"했다면 전후 아시아의 정치 지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현 현재 동아시아 상황의 원죄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366페이지) 라고 역설했다. 일제에게서 해방은 되었지만 미국과 소련의 군정으로 인해 절반씩 나뉜 역사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 분단되어 있는 것이다.

 

몇몇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를 통틀어 말하는 글이라 다소 집중하지 못한 면도 있었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근대사를 세세하게 알수 있어 유익한 글이었다. 아직도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일본, 파란만장한 격동의 한국 근대사.  우리의 근대사를 제대로 알수 있는 유익한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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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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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을이 되니 책을 말하는 이웃분들의 댓글에서 서야 작가의 『은행나무 장자』를 말하는 걸 보고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모 연재 사이트에서 연재글로 읽고,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 몇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몇 번을 읽어도 책은 읽을때마다 설레고 두근거렸었다. 로맨스를 말할때면 생각나는 몇 권의 책중 한 권이라,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구입해 읽게 된 책이다. 하나의 작가에 꽂히면 작가의 신작이 나올때마다 꼭 구입해서 읽게 되는데 서야 작가의 책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내가 네게로 가는 길

이곳은 네가 내게로 오는 길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이런 글귀가 써 있는 것에 더 혹했는지도 모르겠다.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이웃분들도 쓸쓸한 가을이 되니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읽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걸 봤는데, 역시나 나 또한 추운 계절이면 따스한 이야기가 읽고 싶어진다. 그것이 로맨스라면 더욱 즐거운 일이고. 최근에는 다른 책들에 밀려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지 못하는데, 이처럼 한 번씩 읽어주어야 할 때도 있다. 서야 작가의 『길』처럼.

 

사실 서야 작가의 『삼거리 한약방』을 읽을때, 『은행나무 장자』의 주인공이 깜짝 출연을 해줘 무지 반가웠었는데, 이 책도 그러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지만, 나오지는 않았다. 나와서 깨알 웃음을 줬으면 더 반가울법도 했는데 말이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면, 이 책에서도 고택이 나오기 때문이다. 종가는 아니지만 고즈넉한 고택에서 생활하는 이가 주인공이라서 그랬다.

 

만물을 품어 주는 지리산을 닮은 남자, 홍이문

개량한복을 입고 흰 고무신을 신은 남자, 이문이 고택 소선의 주인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기대를 했다. 더군다나 직업도 대안학교장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고택의 논을 빌려주어 짓게 하는 등 베푸는 삶이다. 또한 일제 시대때 항일 열사이기도 한 집안이다. 자신의 집 소선으로 찾아든 제이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 이문은 농담처럼 "얼른... 도망가라, 제이야" 라고 말을 건넸다. 

 

한겨울 눈 속에 핀 시린 꽃을 닮은 여자, 진제이.

암투병을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화장터에 들어가신 날 제이를 스토커처럼 쫓아다녔던 동채가 죽었다 한다. 이 모든 게 너무 버거운 제이는 호젓한 시골에서 힐링을 받고자 한다. 서점에서 발견한 지리산에 관련된 책을 보곤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친구 가람의 친척집이기도 한 소선으로 향했다. 고택의 아름다움, 시린 바람, 자신을 가족처럼 품어주는 소선 안주인과 단덕 아주머니 때문에 그곳에 정이 들어 몇 달을 그렇게 소선에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한 남자, 자신에게 농담처럼 도망가라고 하는 남자 이문을 만났다.

 

 

내가 소설에서 제일 싫어하는 남자의 직업이 정치인과 연예인인데,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때로 느낌이 달라지기도 한다. 가슴이 설레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보기 시작하는데 그가 정치인이란다. 아,, 정치인이면 내용이 빤한데 하면서도 멈출수 없었다. 자칫 그저그런 글이 될수도 있을텐데,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도 괜찮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내용을 풀어가는 솜씨가 좋기 때문인 듯 하다.

 

1인칭 화자의 소설일때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 좋긴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몹시 궁금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에서도 1인칭 화자로 제이의 마음이 담긴 글이 한 편씩 끝날때마다 이문의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이문이 제이를 처음 만나던 날의 느낌, 술 한 잔을 마시고 저도 모르게 별당에 까지 발걸음을 하던 일, 제이를 부여잡고 진한 키스를 하고는, 자신에게 할 질문이 두려워 피해다니던 마음까지 그대로 전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향해 길을 건너고 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오는 길을 그린 지도를 준다면 그 길을 따라가기가 너무도 쉬울텐데, 때론 험한 길이 우리 앞에 다가오기도 한다. 사랑을 향해, 사랑하는 상대방을 향해, 험한 길도 마다하지않고 헤쳐나갈수 있는 길이 분명 우리 앞에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길에 마주 설 때 즈음 우리는 사랑이 서로에게 닿아있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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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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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태까지 '공쿠르상 수상작'이란 닉네임이 붙은 소설이 좋지 않은적이 없었다.

공쿠르상 수상작을 읽을때마다 감동을 받곤 하는 책이었기 때문에, 다소 거창한 제목의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지만, 주저없게 읽게 되는게 또 공쿠르상 수상작인것 같다. 읽을 책이 쌓여있는데도 이 책 부터 읽는다는 것, 그만큼 공쿠르상 수상작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작가 프랑수아 가르드는 이력이 특이하다.

전문 작가도 아니었고, 그로노블 행정판사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다. 그의 이력을 보고는 이 책이 소설이 아닌 르뽀인가 했다. 하지만 책장을 처음 폈을때부터 내용에 압도되었다.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까 싶었던 이 책의 내용은 실제 일어난 일이며, 이 책의 주인공 나르시스 펠티에는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실제 인물에게 일어난 일들을 소설화 시킨 것인데, 문명과 야만, 이성과 광기라는 대립되는 테마를 다루었다고 했다.

 

책 내용에서부터 한 편은 나르시스 펠티에가 조난당하기 시작한 3인칭 과거의 이야기가, 다른 한 편은 지리학자 옥타브 드 발롬브룅이 파리 지리학회장에게 보내는 편지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과거의 이야기에서는 그가 조난을 당한후 배고픔, 외로움, 절대적인 고독감에 떨며 목숨이 위협받을 처지에 그를 도운 야만인 노파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노파를 따라가 그들이 함께 움직이는 야만족 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과거 자신이 살았던 과거를 잃고 17년 동안이나 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말, 그들의 생활에 적응해가는 나르시스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지리학자 옥타브는 나르시스를 관찰하며, 그가 야만인의  사회에서 모든것을 잊고 파리로 돌아와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며 학문적 고찰과 그에 대한 인간애가 생기는 걸 느낄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나르시스가 야만족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가족에게로 가지 못하게 될 것을 알자, 야만족의 말을 배우고, 그들이 몸에 문신을 하듯 자신도 그렇게 하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던 것처럼 말이다. 잊고자 하는 것은 잊게 되는 것인가. 17년 전에 썼던 말을 잊게 되기도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난 네 살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데, 자신을 키워준 부모, 가족, 자신이 했던 말을 그렇게 잊어버릴수도 있는가 싶었다. 한 마디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다 잊어버린줄 알았던 말을 옥타브에게서 듣고 입안에서,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을 내뱉는 몇마디의 외침. 그 외침은 나르시스의 무의식 속에서 늘 살아있었나 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만 그가 몇마디의 말을 배우고,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변화하는 나르시스를 보는 것은 감동이었다. 처음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었고, 이제 문명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아이처럼 하나씩 배워나가는 모습들 말이다.

 

이 모험을 통해 저 자신도 변화한 것이 아닐까요? 제가 관찰을 심화하면 할수록 제가 가진 평소 신념이 뿌리째 흔들립니다. 도대체 야만인이라는 것이 무얼까요?  (158 페이지)

 

말한다는 것,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옛 시절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끝없이 이끌어내려 했지만 영구적으로 봉인되어 버린 기억을 말로 풀어내는 것, 즉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가 만약 내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스스로를 극도의 위험에 빠뜨리는 꼴이 될 겁니다. 죽는 거죠. 임상적인 죽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에 대한 죽음 말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두 세계를 동시에 머릿속에 담을 수 없음으로 인한 죽음, 동시에 흰둥이와 검둥이로 존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죽음. (349 페이지) 

 

야만인이 문명인의 사회에 와 적응해 가는 사람도 있었고, 조난을 당해 야만족과 함께 생활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이렇듯 나르시스처럼 두 사회를 모두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나르시스는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조난을 당한 깊은 숲속에서도, 다시 문명인으로 돌아와서도 적응하려 했다. 어떻게든 생존하려하는 그의 본능적 노력이 문명사회에서 와서도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끝까지 입을 닫았는지도 모른다. 

 

공쿠르상 답게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정글'이라고 표현한다. 이 험난한 정글을 두 번이나 겪는 나르시스의 속마음을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아온 모든 삶에서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쳤던 나르시스와 그런 나르시스를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도 변해갔던 한 지리학자의 생각들에 동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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