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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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빛처럼 퍼져 오르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그리운 순간이다. 아마도 정신없이 바빠 몸이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기에 무언가로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들,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 이런 건 굳이 거창한 글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에세이처럼 짧은 소설들에서 느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지금과는 시대가 달라 마치 오래전에 유명했던 드라마를 보는 듯도 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들이 그 시절을 거쳐왔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외국의 단편 소설 같은 경우 짧은 글들이 많다. 글이 그렇게 심오하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감정들을 담은 글이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단편은 무척 어렵다. 감정들을 문장속에 압축해놓아 긴장을 하며 작가가 숨겨놓은 게 뭘까 골몰하며 읽게 된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히면 좋으련만 쉽지 않다.

 

최근의 추세는 이처럼 짧은 소설들이 인기다. 아마도 긴 글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독자들 때문인 것도 같다. 이처럼 짧은 소설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아무 생각없이 읽어도 좋다는 데 있다.  몇 꼭지 씩 읽어도 부담이 없다.

 

 

 

1970년대의 이야기들을 담은 소설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의 삶과 닮았다. 그 시절의 가족의 형태, 결혼의 조건,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이었다. 일단 아들이 귀한 집 딸에 다음 번엔 아들을 낳으라며 후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건 오래전 드라마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좋은 시어머니로 남고 싶어 교묘하게 말을 내비치는 부모가 있는 가 하면, 그 시절에도 시어머니 위에 서서 할 말 하며 사는 며느리들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혼의 풍속 중에서 궁합이 맞지 않아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에야 그런 경우가 없지만, 예전엔 궁합이 맞지 않는다며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궁합이 맞지 않다며 결혼을 반대하는 여자의 말이 이해되지 않은 남자가 점집에 찾아갔을 때 점쟁이가 했던 말은 꽤 일리 있었다. 예부터 궁합이란 원치 않는 청혼을 거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겨났다는 말이었다.

 

사랑의 소멸과 거기에 따른 편리한 거절의 필요성이라니, 남자가 받을 충격이 이해되는 시점이었다. 지금에야 상대방에게 사랑이 식었다면 문자라던가 카톡으로 헤어지자고 하겠지만 그 시절엔 거절의 말 또한 일종의 서로의 체면을 위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연작 소설들도 몇 편 있었으니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  <마른 꽃잎의 추억>이었다. 주인공 '나'는 남편 모르게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소장품이 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시집인데 그것은 총각 시절의 남편이 바친 시집이다. 다른 게 아니라 그 시집엔 '나'를 열렬하게 추종하던 총각들이 졸업식날 바친 꽃다발 중에서 각각 한 송이씩을 눌러 간직하고 있다. 결혼 생활이 무료해져서 일까 꽃잎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데 그 사연이 재미있다. 지금같으면야 몇 번이고 바람 핀 여성과 남성이 등장하겠지만 그 시절 만의 순수성이 보였다.

 

짧은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게 있는데, 이야기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들이 이야기라는 것. 작가는 그 사연들을 수집하고 꿰매어 새로운 이야기들로 탄생시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과 시대는 다르지만 1970년대에는 이런 일들도 있었지 하고 받아들이면 현재 스무살인 친구들도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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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1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설연휴 잘 보내시고 언제나 감사한 일상이 되소서! ☕️
 
검은 개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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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경의 소설을 청소년 문학으로 먼저 만났다. 『내이름은 망고』와 『벙커』였다. 영화같은 소설, 따스함과 뭉클함이 있는 소설이었기에 추정경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읽고 싶은 작가가 되었다. 작가의 신작이 반가운 이유다. 

 

소설 첫 부분에 박기자가 K 코치와 인터뷰를 시작으로 주니어 테니스 유망주였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파헤치는 르포 형식의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박기자가 임석의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거라는 예상과 달리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어 청소년 보호소에서 사건이 시작되었던 그 날을 떠올리는 과정들을 임석과 임지선 변호사의 시점으로 말한 소설이었다. 일단 열여덟 살 소년 임석은 그날의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다. 운전도 못하는 제가 운전자가 되어 있었고, 친구를 죽일 뻔했다는 정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이에 자기가 어떤 행동을 했던가. 그날,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가 관건이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김유진이 죽게되면 장래 테니스계의 유망주 임석은 살인범으로 기소될 것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양촌의 길가의 흔적은 CCTV에서 찾기 힘들었고, 차량엔 블랙박스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친구라 여겼던 승모와 성구가 자신이 운전했다고 말했다. 테니스 선수로서 호주로 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을텐데, 그의 미래에 먹구름이 가득 끼었다.

 

 

 

임석을 돕는 이가 나타났으니 허름한 회색 티셔츠에 금방 자다 일어나 나온 흐트러진 머리칼을 가진 임지선 변호사다. 엄마가 선임한 변호사는 내뺐고, 외국에 있는 아버지가 선임한 변호사였다. 임지선 변호사는 이혼전문변호사라는 게 임석은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그 날의 진실도 기억나지 않은 일들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알아보는 법인가. 임지선 변호사의 임석에 대한 애틋함은 자기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임석을 버리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매달린다. 어쩐지 임지선 변호사가 임석의 진실을 제대로 파헤쳐 줄 것 같았다. 그런 희망을 기대했다고 봐야겠다.

 

 

성년이 안된 소년들은 형이 확정되기전 분류심사원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이곳 또한 범죄를 저지른 많은 소년들의 있는 곳으로 흔히 영화에서 보는 방장과 완력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다. 드라마 로 방영되었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그야말로 휴먼드라마였을 뿐이고, 이곳에서도 힘과 권력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29호 혹은 25호의 방에 기거하며 꼽이 될 것인가 상납을 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었지만 스스로 꼽이 되어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는 석이었다. 스스로에게 지지않기 위해서였다.

 

임석은 누군가가 쳐놓은 덫에 걸렸다. 제대로 걸려 들었다. 운동 선수에게 아주 중요한 약물에 노출되었으며, 사경을 헤매는 친구를 죽일 뻔 했다는 스캔들에 휘말렸다. 테니스 선수로서 생명을 다했다고 여겼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 그를 죽음의 감옥에 가둬놓으려는 자가 누구인가, 예상했으나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족쇄를 만들어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의 행동 또한 자주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 못내 궁금했다. 자신의 과거속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임석의 사건을 제대로 볼 줄 알았던 임 변의 행동은 꽤 통쾌했다. 누군가를 부숴뜨린다는 것. 대리만족을 여겨도 되는 것일까. 사건이 해결되어 갈 수록 임석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였다. 만약 무죄라는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곁에 누가 남을 것인가도 궁금했고, 테니스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도 궁금했다. 수많은 선수들이 약물에 노출되고, 약물로 인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테니스 선수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꽤 디테일하게 살려 책읽는 즐거움이 컸다. 이걸 보편적인 결말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결말 또한 마음에 들었다. 어른들의 추잡한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성년이 되지 않은 청소년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지 않는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얻어야 할지 알만한 나이다. 스포츠를 하므로써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히려 어른들보다 지략이 뛰어나지 않는가. 추정경의 소설이 이토록 재미있다니! 마치 정유정의 소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의 소설도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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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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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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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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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아이는 살던 땅을 잃고 새로운 땅을 찾아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이 살던 땅은 무서운 전염병이 휩쓸어 사람뿐 아니라 온갖 살아 있는 것의 목숨을 앗아갔다. 다만 한 노인과 한 아이만이 살아남는것은 노인의 심장은 너무 딱딱해서, 아이의 심장은 이무 무구해서 악역도 차마 침범을 못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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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19
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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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다리며 약 두 시간동안 시집 한 권을 읽었다. 시인계의 아이돌이라는 박준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휘리릭 한 권을 넘겼다, 천천히 첫장부터 다시 읽었다. 시는 아주 천천히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의미들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 한 번을 읽고 다시 읽는 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처음에 그냥 좋았던 시 였다가, 다시 읽게 되면 온 마음을 차지하는 시가 된다.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장이었습니다  (9페이지, 「선잠」 전문) 

 

사실 시집을 처음 읽게 되면 그렇게 많이 좋은 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휘리릭 넘긴다. 다시 읽는 시에서 마음 깊이 들어오는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박준 시집이 그런 경우였다. 「선잠」이란 시의 전문인데 시집의 맨 첫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떤 시를 맨 첫 페이지에 수록할까 고민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시인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시를 첫 장에 수록하게 될터인데, 그래서 그런지 「선잠」이란 시가 가지는 느낌이 시집 전체를 가로지를 화두일 것이다.  

 

 

늦은 해가 나자

약을 먹고 오래 잠들었던

당신이 창을 열었습니다

 

어제 입고 개어좋았던

옷을 힘껏 털었고

그 소리를 들은 저는

하고 있던 일을 덮었습니다

 

(중략)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13페이지, 「84p」 중에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시집을 읽게 된다. 그 시를 처음 보았을때의 마음, 다시 읽는 시의 마음이 다른다. 내가 읽었던 시를 이웃의 글에서 만날 때면 그 감동이 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 이것은 다시 읽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느꼈던 감동과 타인이 느끼는 감동이 서로 맞닿을때의 희열때문일 수도 있겠다.

 

 

늘어난 옷섶을 만지는 것으로 생각의 끝을 가두어도 좋았다 눈이 바람 위로 내리고 다시 그 눈위로 옥양목 같은 빛이 기우는 연안의 광경을 보다 보면 인연보다는 우연으로 소란했던 당신과의 하늘을 그려보는 일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94페이지, 「세상 끝 등대 3」 전문)

 

 

어떻게 보면 단순한 문장 같다.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몇 줄의 문장이 이처럼 마음을 옭아매다니. 그래서 시인의 감성은 남다른 것 같다. 소설가가 쓰는 산문보다 시인이 쓰는 산문을 더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같지 않을까. 문장의 나열이 아닌 감성의 다른 표현일 것이므로.

 

 

첫 시집보다는 훨씬 성숙된 마음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내 개인적 느낌일 뿐이다. 그저 시가 좋아 읽게 되는 경우. 그럼에도 마음 한가닥 위안을 느끼는 시간이 좋다. 누군가와 감정을 교류하는 것. 홀로 있는 시간, 마음까지 홀로인 건 아니었음을 느끼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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