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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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에 출간된 여행서적을 읽는다는 건 책이 쓰여진 시대를 안다는 것. 과거의 기록이지만 현재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에 우리는 감동하고 다시 여행에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방랑이라는 말 자체가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뜻한다. 후지와라 신야의 400여 일간의 방랑의 기록이자 동양 여행기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한 겨울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여행은 앙카라, 이슬람, 콜카타, 티베트, 버마, 치앙마이, 상하이를 거쳐 홍콩과 한반도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향했던 여정의 기록이다.

 

그의 기록을 보자면 후미진 뒷골목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번화한 도시보다는 후미진 뒷골목의 사람들의 모습을 살폈다. 사창가의 뒷골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민낯을 찍었다. 가슴을 드러내는 사진도 마다하지 않았다. 창녀들의 벗은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섹스어필하다기 보다는 오늘을 사는 그네들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 식당에서 손님의 옆자리에 앉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거구의 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식당측으로부터 손님의 접시가 비워질때마다 그에 대한 수당을 받는다. 먹고 살기 위해 손님의 음식을 먹어치우는 여자. 그게 신기해 자꾸만 접시를 그 여자 쪽으로 보냈던 후지와라 신야의 호기심을 엿볼 수 있었다. 장사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또한 음식을 먹어치우는 그 여자에게서 삶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다. 

 

후지와라 신야는 한 겨울의 서울, 돼지 머리가 진열되어 있는 시장 한복판에서 순대와 간을 먹으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 전에 택시를 타고 오면서 들었던 한이 서려있는 듯한 읖조림이 판소리라는 것. 판소리는 전라도의 음악이라는 것. 판소리를 듣고 마음을 후벼파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방문한 시기가 1981년의 서울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1981년 서울의 시장은 남루하다. 치열하게 몸싸움하며 달아났던 창부와의 사투에서 어떤 처절함을 엿보았다. 눈내린 한 겨울 서울의 모습은 어쩐지 그 시기 만큼 시린 모습으로 다가온다. 서울을 소울(영혼)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그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길을 걷는 자'였고 보고 느낀 것들을 '보고하는 자'에 불과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알아차렸을 텐데, 나는 지난 1년 동안 누구나 들고 다니는 평범한 카메라 한 대와 렌즈 하나만 써서 대부분의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도 사용하지 않았다. 삼각대는 기계의 다리지 내 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477페이지)

 

그가 방랑했던 장소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 도시의 풍경들에서 드러나는 장면들. 때로는 감추고 싶은 장면일지라도 그가 머물렀던 시간에의 사유로 비춰졌다. 때로는 여행자에 의해 그 도시의 민낯이 드러나는 법이다.

 

고지대 산사에서의 며칠을 묵었던 그의 기록을 보자. 40세가 넘어서도 더이상 승려를 할 수 없다며 떠나는 자들. 열두어 살 먹은 소년 승려의 이탈. 한번 나간 자는 다시는 승려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떠날 수 밖에 없는가. 그저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또한 막지않은 산사에서의 기억은 마지막 노승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모든 것을 통달한 자의 모습이 이렇던가. 작가가 이만 산을 내려가야겠다고 했을 때 누운 채 그를 바라보는 승려의 사진 한 장에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진다. 산다는 게 이런 것인가. 많은 것을 체념하고 살다보면 이런 얼굴이 될 것인가.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람이 살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만나듯이

여행에도 빙점이 있다.

여행 초기의 뜨거웠던 피는 식고

마침내 그것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얼어붙는다.

눈앞에 무엇이 나타나든 시들하다.

 

(중략)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어쨌든 사귀어보라. (514~515페이지)

 

인간에게 실망하다보면 다시는 인간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또 마음을 여는 건 인간때문이다. 다시금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그. 사진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루한 인간이든, 그들이 창녀든, 시장 사람들이든. 다시금 인간에게 마음을 여는 그의 마음을 우리는 그의 사진 속에서 발견한다.

 

그는 그저 '길을 걷는 자'라고 표현했다. 남루한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그의 글에서 삶의 한 부분을 엿보았다. 일상을 떠난 가까운 여행지에서 이 책을 읽었다. 작가처럼 여행의 기록을 사진과 함께 남기고 싶다. 오래도록 읽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비로소 나를 만나는 시간, 그것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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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05-3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이런 게 나왔군요... 구판이 집 구석 어디에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아마 없을 것 같은데...뭐 또 있다고 해도 신판구판 같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어쨋든간에 살 궁리만 하고 있는 홍돈입니다.... 일단 장바구니로.....ㅎㅎㅎ

Breeze 2018-05-31 21:20   좋아요 0 | URL
구판 있으면 읽어 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구판 있으면 신판도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
 
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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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다작을 하는 작가도 없다. 수많은 작품들을 써왔고, 여전히 많은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

계절에 맞게 출간된 『눈보라 체이스』는 설원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 쫓고 쫓기는 레이스를 펼친다. 현재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한국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을 비롯해 스피드 스케이팅은 꼭 챙겨보고 있는데, 이와 맞춰 출간된 탓인지 역시 재미있는 레이스를 보는 듯 했다.

 

소설은 세 가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살인 누명을 쓰게 된 대학생 와키사카 다쓰미와 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 고스기, 온천있는 스키장의 마을 사람들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먼저 다쓰미는 한 스키장에서 여자의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다. 예쁜 여자라 그녀를 '여신'이라고 칭하며 잘해보고 싶었으나 그녀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름도, 어디에 사는 지도 확실치 않는 그녀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 살인 누명을 벗을 방법은 그녀 '여신' 밖에 없었던 것. 다행히 고글을 벗은 탓에 그녀의 얼굴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다쓰미에게는 법학과 출신의 친구 나미카와가 함께 해 그의 증인이 되어줄 여신을 함께 찾는다.

 

다른 한편으로 고스기의 시선을 다루는데, 계장의 지시하에 살인 용의자일지도 모르는 다쓰미를 좇는다. 그가 묵었던 숙소에 찾아가 그의 흔적을 찾는 한편, 그들의 차에 잠깐 동승했던 여자가 밝힌 GPS 위치 때문에 다쓰미 일행을 쫓는다. 스노보드 동아리 멤버였던 다쓰미의 사진을 받아 그들을 찾아야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키장을 운영하는 온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들은 스키장을 홍보하기 위해 결혼식 행사를 하게 된다. 그곳의 공연 연출가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다쓰미가 보았던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물방울 무늬의 스노보드 복을 입은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형사들은 온천마을 스키장에서 다쓰미 일행을 쫓고, 어떻게든 형사들을 피해 자신의 증인이 되어줄 여신을 찾아야 하는데, 자신들의 뜻대로 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스노보드를 즐기는 사람들,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은 꽤 흥미로웠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여신을 찾는 부분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었다.

 

다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느 소설들과는 다르게 반전이 없다. 독자가 예상했던 대로 귀결되는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느른한 결말이었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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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 나사의 회전 외 7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1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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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처음 만난 건 『워싱턴 스퀘어』였다. 한 여성의 결혼과 유산 상속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남성 작가임에도 여성의 입장을 섬세하게 표현한 글이었다.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작정했으나 여태 읽지 못했고, 이번에 현대문학에서 나온 헨리 제임스의 단편집을 읽게 되어서 좋았다. 무려 여덟 편의 단편집이라는 것. 그동안 읽고 싶었던 「나사의 회전」과 「데이지 밀러」까지 수록되어 있어 무척 기분좋은 독서였다.

 

일단 「나사의 회전」은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다. 콜린 퍼스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것 같은데 책을 읽고난 뒤 영화를 보고 싶어 찾아봤으나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영화로는 어떻게 그려졌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실망감을 감추고 그 다음 작품을 읽으려고 했으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작품이었다.

 

유령이란 게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나사의 회전」속 가정교사는 정말 유령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신경 쇠약증에 걸려 헛것을 본 것일까. 유령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일까. 유령을 믿지 않지만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없다. 지난 연휴때 비소식이 예보되었음에도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캠핑을 떠났었다. 저녁부터 내리는 비 때문이었을까. 잠을 청했다가 놀래서 깼다. 꿈 속에 어떤 젊은 엄마가 나타나 사진 석 장을 내밀며 한 장만 골라달라고 했다. 그때 느꼈던 게 죽은 아이의 사진이로구나 했다. 그때가 새벽 3시 30분경이었는데 옆 텐트에서 자고 있었던 여동생이 비명을 질렀다.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그때 생각했던 게 우리가 야영을 했던 곳이 무덤이 아닐까 했다. 여동생 또한 한 아이가 텐트 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했다. 이런 것을 보면 유령이 있다는 건데. 

 

 

 

단편 중 「제자」와 「나사의 회전」에서 가정교사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느껴지는 건 가정교사는 아이들을 훈육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을 무척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돈을 주지 않아도 제자 곁에 있었고, 무심한 그의 부모를 피해 달아날 생각까지 했다. 이 모든 게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사의 회전」에서 보면 스물두 살의 여성인 가정교사는 저택에서 보이는 유령들 때문에 아이들을 보호하려했다. 혹시라도 그 유령들이 아이들이 데려갈까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가정교사의 역할과 의무, 아이들을 대하는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양탄자의 무늬」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작품속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소설이다. 작가는 평론가들에게 명쾌한 단서를 준다고 여기고 있으나 평론가가 느끼는 단서와 작가가 의도한 단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움을 주는 게 아니라, 어떤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즐거움이 줄어들었다. 저자의 힌트를 따라가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 책들에 대한 지식을 직업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명예로우리라고 생각했다. (309~310페이지)

  

작품들이 지닌 전반적인 의도, 진주알 들을 꿰는 줄, 묻힌 보물, 양탄자의 무늬(346페이지)를 아는 일은 지난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평론가라 할지라도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부모를 따라 여행을 많이 했던 작가의 이력 답게 여행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품고 있는 주인공들도 만날 수 있었다. 「네 번의 만남」과 「데이지 밀러」 혹은 「제자」라는 작품에서도 여행자들을 주인공으로 했다. 여행중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가정교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과 꿈에 그리던 유럽 여행을 떠났다가 미술학도인 사촌에게 여행자금으로 모아둔 모든 돈을 주고 만 여성의 이야기가 「네 번의 만남」 이었다. 주인공 남자가 그토록 염려했건만 어리석은 행동이 빚은 결과물이었다. 또한 「데이지 밀러」에서도 미국인 여행자 데이지 밀러의 이야기를 한다. 다소 자유분방하거나 바람둥이로 표현되지만 자신만의 감정에 충실했던 데이지 밀러였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 또한 결국 그 나라, 그 도시의 관습에 따라 평가된다는 내용이었다.  

 

경제적 궁핍을 해결하고자 모델 일을 하려 했던 모나크 소령과 그 부인에 관한 이야기인 「실제와 똑같은 것」은 사람은 바꾸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중년」에서는 새로운 소설을 펴낸 유명한 작가가 절벽 산책길에서 자신의 책에 열광하는 젊은 길동무로 인해 열정을 다시 찾은 이야기였다.

 

헨리 제임스는 여성의 섬세함, 작가로서의 고뇌, 가정교사라는 직업, 유령의 존재 유무에 대해 깊이 파고든 작가로 여겨졌다. 가장 의미있었던 작품이 「나사의 회전」과 「양탄자의 무늬」였다. 유령의 존재와 작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쓰는 가, 그에 대한 질문을 건넸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때때로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 글을 썼는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내가 느껴지는 감정대로 읽기는 했지만 답답함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책을 읽는 행위는 스토리에 대한 즐거움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 다. 얼마만큼 작가의 의도를 이해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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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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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는 좋아하지만, 사랑이 떠나갈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는 약간 멀게 느껴졌다. 그저 과거의 이별을 생각할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별을 견디는 시간이 너무도 아픔에도 나한테는 어느 한 순간, 그랬던 적이 있었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에게 사랑이 이토록 멀었던 것일까. 수많은 사랑이야기를 읽지만, 이별에 대한 건 언제나 안타깝다. 사랑의 상처를 안고 그 시간을 견뎌봤기에 그렇다. 하지만 아직도 사랑이 아픈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그에 몇 퍼센트는 이별을 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너무 가까우면 이별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 상처받는 나를 발견했기에 그렇다. 덜 상처받기 위해서는 덜 사랑을 줄 것.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 것. 이렇게 다짐함에도 늘 이별을 맞는 마음은 아프기 그지 없다. 내가 잘못을 했건 하지 않았건 이별 그 자체가 아프다는 소리다.

 

적당한 거리감은 인간관계에서 무척 중요합니다. 상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가장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어요. (17페이지)

 

이별을 잘하는 법을 말한 글을 만났다. 꽤 직설적으로 말한다.

남남으로 돌아가는 게 이별이에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과거의 자신과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습니다. (57페이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 ' 이 점만 고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실낱같은 희망, 남

이 보기엔 절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사소한 기대감이 바로 미련의 본모습이에요. (67페이지)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글에서처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언젠간 연락해주겠지 하는 기다림, 이런 게 미련이라고 말한다. 밤늦게 술마시고 그에게 전화하는 것도, 언젠가는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애타게 매달리는 것도 자기애가 아닌가. 사랑은 한 사람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해야 비로 사랑인 것이다. 일방적인 감정은 깨지기 마련이다. 이미 식어버린 마음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한번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마는 것처럼. 이별은 그런 것이다.

 

 

 

오늘을 살지 않으면 현재는 보이지 않아요. 과거에 살기를 멈춰야 드디어 현재에 눈뜰 수 있습니다. (111페이지)

 

헤어진다는 건 잔혹한 일이에요. 사귈 때는 서로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별에는 필요 없거든요. 어느 한 쪽이 "더 이상 안되겠어" 라고 말하면 그냥 거기서 끝인 겁니다. (중략) 남아 있는 정을 싹둑 잘라 버리고 비정해질 것. 그게 서로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119페이지)

 

이별을 한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은 디제이 아오이의 말에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것 만큼 현명한 방법이 없다.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갖고 있으면 자신만 아플 뿐이다. 하루쯤 어쩌면 사흘쯤 아픈 뒤에 털어내려고 해야 잊는 법이다. 어느 순간 문득문득 떠오르겠지만 과거 속에 묻혀 두어야 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꺼내보는 게 현명하다.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곧게 일어설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197페이지)

 

아주 진부한 말이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처럼 정답도 없다. 이별을 했을 때는 무슨 그런 말이 있느냐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역시 시간이 약이었다. 하루하루를 견디고 한 달, 두 달을 견디면 서서히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이따금 꺼내어 보는 것까지는 나무라지 않는다.

 

사랑을 할때는 이 세상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고, 이별할 때는 오직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다른 누구도 필요치 않다. 오직 나만을 생각할 것. 그렇다보면 어느 새 이별이 덤덤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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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리커버 에디션)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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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던 게 타 인터넷 서점 서평단으로 활동했을 때이다. 문학 분야의 서평단에게 주었던 세계문학 엽서가 있었는데, 책갈피로 사용하던 중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 책의 표지를 보고 언젠가는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 작품이 에밀 졸라의 책이라는 것도 머릿속에 각인시켰고. 그러다 리커버 특별판을 알게 되었고, 이처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두 권을 합본해 두께가 상당하지만 흥미진진한 스토리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제목이 다른 것도 아닌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지 않는가.

 

세일 할 때의 백화점을 가본 적이 있는가. 지하의 식당 매장에서부터 1층의 화장품이나 명품 매장 등 아주 넓은 공간인데도 발디딜 틈새가 없다. 모든 사람이 백화점으로 몰려왔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치이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실라치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향수나 립스틱이라도 고르려면 판매직원이 나에게 오는 시간 또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여자들은 물건에 집착한다. 쇼핑이라는 병에 중독되면 가산을 탕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쇼핑은 습관이다. 습관처럼 구매하다보면 그 욕망을 자제할 수가 없다. 백화점을 비롯해 쇼핑몰은 우리의 소비의 욕망을 부추기고 사람들은 욕망에 굴복하고 만다. 소설 속 여자들의 소비 행태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100여년 전의 소설임에도 현재와 같다는 것이다. 백화점에 가서 예쁜 물건을 보고 그 욕망을 이기지 못해 한두 개 사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핸드백에서 조용히 꺼내 들추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가 구매한 제품을 자랑하고 싶어 어쩔줄을 모르는 것이다. 다시는 사지 않겠다고 마음 먹어도 막상 물건이 있는 장소에 가면 그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특히 마르티 부인의 행동이 안타까우면서도 마치 우리를 보는 듯 했다. 남편의 수입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자꾸만 물건을 사들이는 그녀 때문에 남편은 가욋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다. 실크 스카프를 만지는 그녀의 탄식, 그 물건을 부러움에 쳐다보는 다른 여인들의 탄식어린 눈빛들. 백화점은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곳이었다. 여성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화려한 쇼윈도로 여성을 현혹시키고, 바겐세일의 덫으로 유혹했다. 여성들이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욕망을 자꾸 주입시켜 거대한 유혹의 덫을 놓았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이 소설 속에 있었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거대한 백화점의 장소를 이용해 인간들의 소비 행태를 말하는 한편 거대한 자본 속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에밀 졸라는 시골에서 올라온 드니즈라는 인물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니즈가 동생들과 함께 처음 파리에 도착후 큰아버지의 가게를 찾아 가던중 맞닥뜨린 백화점의 위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려한 백화점 건물의 한쪽에 어둡게 자리한 큰아버지의 가게는 사람들의 소비와 욕망이 어디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확연하게 보여준다. 거대한 자본앞에 소상인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거대한 자본이 투자된 백화점은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을 유혹한 후 더 많은 물건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실크 스카프 하나만 사겠다던 여성들은 모자며 장갑들을 사기를 주저하지 않고 실크며 기성복을 사들인다. 여기에는 여성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판매원들이 한 몫을 하게 된다. 기본급 외에 판매 수당을 주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이 팔려고 하기 때문이다. 출근 순서대로 판매 순서가 정해지지만 제대로 지키기가 힘들 정도다.

 

 

 

무레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야심은 여성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성이 자신이 이룩한 백화점의 왕국에서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여성을 위한 신전을 지어 바친 다음, 그곳에서 그녀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정중하고 세심한 배려로 여성을 취하게 한 다음, 그녀의 욕구를 부추겨 달아오른 욕망을 충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393페이지)

 

소설이 그렇듯 에밀 졸라의 주인공 드니즈는 이곳,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성장해 나간다. 시골뜨기에서 백화점 사장 무레의 인정을 받고, 판매직원들의 신임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진다. 더군다나 무레의 사랑을 받지만 현명한 여인답게 그의 식사 초대를 거절한다. 그를 사랑하되 하룻밤의 연인으로 머물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소설에서 드니즈와 무레의 사랑의 전개는 아주 미미하다. 여성들이 소비의 욕망에 어떻게 굴복하는지,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주로 보여준다.

 

드니즈는 백화점의 거대한 상권의 변화, 이것들에 관한 새로운 시대를 예감했다. 백화점 주변 소상인들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다는 이야기다. 여성들에게 물건을 파는 행위는 욕망의 본질을 파는 행위와도 같다. 그 사람의 욕망을 자극해 유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거울'로서의 소설이 요구되던 시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소설에 심취했던 에밀 졸라. 스무 권으로 이루어진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한 번째 작품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다. 놀라운 작품이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그 모든 것을 담아 100여 년전의 소설이라 믿지 못할 정도였다. 고전문학이 왜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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