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의 시는 귀천으로 익숙하다. 그 외에는 잘 알지 못했는데 귀천보다 더 유명한 시가 인 거 같다. 는 천상병 시인 탄생 90주기 초판 복간본으로, 처음 이 시집이 발간된 연유는 그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마음이다. 술을 좋아하던 시인이 몇 달째 보이지 않자 실종을 의심하여 생전에 시인의 시집 한 권이 없음을 안타까워한 지인들이 돈을 모아 발간한 시집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았을까. 살아있는 시인의 유고시집을 발간했으니 말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48~49페이지, 歸天전문)


 

시를 알 뿐 어디서 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삶을 소풍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삶을 소풍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시인이 품었던 삶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생전의 시인은 술을 좋아했다. 돈이 없으면 주변 시인들이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주었다고 한다. 시인을 사랑하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는 윤동주 시인론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지붕 위

볓빛동네 선술집에서

누가 한 잔 하는 모양이다.

궁금해 귀를 쭈빗하면

주정뱅이 천사의 소리 같기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요절한 친구들의 소리 같기도 하고 (18페이지,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부문)


 


 

 

삶은 알 수가 없다. 시인의 유고시집이 발간된 후 그는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 알코올 중독 때문이었다. 그의 가난을 걱정한 지인들이 1992년도에 다시 복간한 시집이기도 하다. 초판본의 복간본이라 다소 촌스러운 표지다. 제목엔 금박이 입혀져 화려함을 더하고 세로로 쓰인 시는 한자가 섞여 있다.


 

는 연작시로 여러 편이 실려 있다. 를 읽지 않을 수 없다.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아시지의 프란시스코는

새들에게

恩寵 說敎를 했다지만

저 새는 그저 아프기만 한 모양이다.

수백년 전 그날 그 벌판의 日沒白夜

오늘 이 땅 위에

눈을 내리게 하는데

눈이 내리는데 (79페이지, 전문)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靈魂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일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聽感에 그득한 季節,

슬픔과 기쁜의 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84~85페이지, 전문)


 

시는 읽을수록 좋다. 처음에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고 감동하게 된다. 천상병의 시를 읽고 싶어 구매하여 소중하다. 그의 삶을 다 알지 못해도, 새처럼 훨훨 날아 자유롭고 싶었던 그의 영혼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삶도 죽음도 새처럼 왔다가 가는 것.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있을 그의 영혼에 안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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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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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법제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유명한 법률가 윌리엄 블랙스톤 경의 말처럼, 무고한 죄인 한 명을 만들기보다는 범법자 열 명을 놓치는 편이 낫습니다. (353페이지)

 


매 순간, 만약 그때 동생을 데리고 갔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살아간다면 그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을 거 같다. 동생이 실종되었다. 카우보이 액션 슈팅 챔피언 전에서 네 살 아래인 동생 세라와 동점으로 결승에 오른 트레이시는 동생의 의도적인 실수로 1등에 올랐다. 수상 후 프로포즈를 하려는 남자친구는 예약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며 조르고, 폭우가 쏟아지는 도로를 세라 혼자서 운전하고 가야 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세라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트레이시는 동생의 죽음을 제대로 조사하고 싶어 화학 교사를 그만두고 경찰학교에 입학하여 현재는 시애틀의 형사다. 세라를 강간하고 죽인 범인이 잡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나 트레이시가 생각하기에 증거불충분이며 살인자는 따로 있을 거라 여겼다. 얼마 후 20년 만에 세라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 근처에서 나온 증거품 또한 트레이시의 의문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세라의 살인범으로 복역 중인 에드먼드 하우스를 마을 보안관 혹은 아버지가 누군가를 끌어들여 살인자로 만든 거 같았다. 증거도 불충분했고, 알리바이도 규명할 수 없었다. 에드먼드가 자백했다는 녹음 파일도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세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다. 20년 만에 발견된 세라의 시체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변호사 출신이었던 작가는 법정 장면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었다. 1993년은 DNA 판별해내기에는 당시 기술이 부족했다. 새로운 증거품으로 그때 사건을 처리했던 사람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선고 후 감형 심리 요청을 재판부에 하게 되며 본격적인 법정 장면이 나타난다. 모든 것이 해결되려는 찰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돌변하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의문을 가졌던 거 같다.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결승전이 열리기 전 가득 채웠던 기름은 왜 하나도 없었는지, 마을 전체를 수색했지만 세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보안관과 검사,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왜 증거 조작을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세라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은폐하려 드는 것 또한 의심을 부추긴다.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형사로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개인적인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을 알아내려는 트레이시의 고통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결말 또한 잃어버린 진실을 꿰맞춰가는 순간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된다. 20년간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뒤로 하고 이제 타인의 사건에 매진할 트레이시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피해자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알기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살인자를 찾게 되지 않을까. 술집 댄서 니콜 핸슨의 사건의 범인부터 다시 들여다보지 않을까. 트레이시가 해결해 나갈 사건들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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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밀당의 요정 1~2 - 전2권
천지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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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플래너처럼 타인의 결혼을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자신의 결혼을 꿈꿀 것 같다. 현실은 전 남친의 결혼식을 도와야 하며, 늦은 신부를 대신해 웨딩드레스를 입고 진짜 신부를 기다리고 있다가 하마터면 식장에 들어설 뻔한 웨딩 플래너 이새아.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비혼주의자란다.


 

성진건설에서 유럽의 고성을 본떠 지은 웨딩홀 로안에서 투자자들에게 결혼식 장면을 보여주려던 권지혁 상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지나가는 신부를 보고 반했다. 운명처럼 나타난 여자가 다른 남자의 신부라니,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들어섰으나 그녀가 신부를 대신해 대기실을 지킨 웨딩 플래너라는 사실을 알고는 안도한다.


 


 

 

일명 밀당의 고수라 불리는 권지혁은 이새아에게 다가서고, 잘생긴 남자 지혁에게 반한 새아는 이제는 그만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렇지만 지혁은 비혼주의자다. 비혼주의자인 사람에게 더 이상의 체력소모는 하고 싶지 않다. 여태 밀당에서 을이었던 새아는 지혁에게 갑으로 다가서게 된다.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렵다. 결혼을 위한 만남이 대세인 것처럼 느껴져도 여전히 사랑은 건재하다. 조건을 따지다 보면 끝이 없다. 이왕이면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좋겠지만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도 좋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소설 속에서 새아가 도움을 준 신부들의 이야기에서 짜릿한 감정을 갖게 하는 사람보다는 편안한 사람을 고르라는 말을 한다. 살다 보니 그런 사람이 더 좋다는 것을 알기에 거기에 동의하는 바지만, 그렇다고 밀물처럼 밀려드는 사랑을 거부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기에 그렇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제약을 두다 보면, 자칫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폭풍처럼 다가오는 사랑을 거부하기보다는 마음껏 사랑하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사진작가 조예찬이 마음에 들었다. 왜 사람들은 주기만 한 사람과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걸까. 누구보다도 멋진 커리어를 가진 예찬이건만, 권지혁한테 밀렸다. 만약 조예찬이 주인공이었다면 시크한 스타일을 가진 멋진 남자로 여겨졌을 법한데, 작가는 이미 권지혁한테 모든 것을 주었다. 대기업 오너의 아들도 괜찮을 수 있지만, 사진작가라는 직업이 멋지지 않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무조건적이 된다. 그런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는데, 일방적인 감정 가지고는 안되는 법도 있기 마련이다. 관계라는 것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것 때문에 밀고 당기기가 필요한 것이리라. 정말 사랑한다면 밀당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없긴 하지만 말이다.


 

전작 소설 금혼령: 조선혼인금지령MBC 드라마화되고 밀당의 요정은 유명 플랫폼 웹툰 연재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즐겁게 읽고 있다가 2권 마지막 장에서 ‘3권에서 계속을 보고 혼자 툴툴댔다. 이럴 수는 없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견딜 수 없잖아!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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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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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를 만나게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처음 읽었을 때의 매력이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작품이었다. 출간된 지 14년째, 여전히 스테디셀러인 작품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호쿠리쿠 지방 K시의 저택. 3대가 같은 날 생일이어서 잔치가 벌어진다. 저택의 아이들을 포함해 아이 여섯, 가족과 친척 등 어른 열한 명이 독살되었다. 편지 한 장과 함께 배달된 음료와 술을 마신 뒤였다. 음료를 배달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훗날 자살한다. 저택의 독살 살인사건에서 살아난 가정부를 제외하고 유일한 생존자가 손녀딸이었다. 살인범을 아는 유일한 사람일 거로 기대했으나 그 소녀는 앞을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 누군가가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다양한 사람에게 건네는 다양한 답변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사건 만큼이나 다른 것을 보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날의 사건을 쓴 작가와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 살아난 가정부, 그 장소에 있었던 형제, 살인범을 따랐던 동네 아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 날의 사건을 들려준다.

 


정말이지 사람은 이상하죠. 장소와 상대방에 따라서 자기를 내보이는 방식이 달라져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든지 그런 부분이 있거든요. (64페이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경찰에서 발표한 범인과 다르게 한 사람을 지목한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그들이 가리키는 것은 한 사람이다. 증거로 살인범을 잡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처음 사건 현장을 보고 병원에서 맞닥뜨렸을 때 앞에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여겼다. 불가항력적인 요인과 관련되었을까.

 


사건이 일어난 때 경황이 없어 그랬겠지만 놓쳤던 부분이 훗날 생각나기도 하고,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숨긴 말들과 상황은 어느 시점에 드러나 심중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악의를 품고, 누군가는 두려워서, 누군가는 무심했던 결과다.

 


그네를 타는 그 사람의 표정이 말이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거예요.

환한, 세상을 손에 넣은 것 같은 얼굴.

그런 표정은 다른 때의 히사코 아가씨한테서도, 다른 사람한테서도 본 적이 없어요. 그 얼굴을 봤을 때, 전 죄의식 같은 걸 느꼈어요. 어쩐지 인간이 보면 안 되는 걸 본 것 같았어요.

문득 발밑이 푹 꺼지는 것 같았어요.

한순간, 그 사람이 그네를 타면서 느끼는 세계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거든요. (134페이지)


 


 

 

온다 리쿠 작품의 특색이 초자연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을 앞에 두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심연에 들어가 말을 건넨다는 점. 그림에서 드러난 기이함. 기이한 행적. 그 장소가 주는 꺼림칙함. 규명할 수 없는 모호함이 특징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했던 말이 계속 뇌리에 파고들어 떠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소설의 모티프 또한 그렇다. 자주 등장하는 하얀 백일홍은 작품에서 주요한 단서다. 소녀가 하얀 백일홍을 보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가는 일이 관건이다.

 


여러 사람의 인터뷰 내용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꿰어 맞춰진다. 드러난 진실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 파고들자면 폭력과 관계가 있다. 누군가를 물리적으로 해하는 폭력이 아닌 그 사람을 짓누르는 정신적 폭력 말이다. 이러한 폭력은 다른 이의 마음을 조종하여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은 이처럼 피로 물든 판타지의 세계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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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12-23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첫 출간 당시 읽었고 올 장마 기간에 이작품이 유독히 생각나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좋더라구요.. 진심 공감합니다. 다른 알라디너분께도 썼지만, 2000년대의 일본작가들의 작품이 유독 좋네요. 요즘은 화제성의 작품 읽어도 그닥인 경우가 넘 많아서 예전 작품들 꺼내서 읽곤 합니다.

Breeze 2021-12-23 15:09   좋아요 0 | URL
다시 꺼내어 읽으시다니. 진정한 독서가이십니다. 책에 파묻혀 다시 읽고 싶은 책도 못읽고 있어요. ㅠ.ㅠ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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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면 종종 소설 속 장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명한 작품 속 장소가 여행지 목록의 순위에 드는 이유일 것이다. 주인공이 거주했던 공간, 거닐었던 거리를 걸어보며 작품을 다시 음미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아마 역사적 장소보다 더 사랑받으리라.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다시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다와 교텐의 심부름집에 맡길 일 없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 않을까.


 

도쿄와 인접해있는 마호로 시. 마호로 역 골목에 다다 심부름집이 있다. 거창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서부터 헤어진 남자 친구 떼어내기, 어린아이 학원에서 집까지 데려다 주기, 집 비우는 동안 개 돌봐주기, 버스 운행시간 적기 등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거절하지 않는다.

 



 

 

외부의 다른 공기를 받아들이면서도 굳게 문을 닫아건 낙원. 유행이 지난 문화와 오갈 데 없는 사람이 맨 마지막에 찾아드는 곳. 그 질척한 자기장에 이끌리면 두 번 다시 벗어나지 못하는 곳. (58페이지)

 


새해를 앞둔 추운 날 저녁, 버스정류장에서 고등학교 동창 교텐을 만난다. 하룻밤만 재워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심부름집의 소파에 재워준다. 시니컬하고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다다가 교텐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던 건 오래전 자기 때문에 교텐의 손가락이 잘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후 교텐과 함께 심부름집을 운영해가는 일은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되었다.

 


다다 심부름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일을 맡긴다. 마호로 역 시리즈를 이어갈 중요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다 심부름집에서 나가달라고 해도 전혀 나갈 생각이 없는 교텐을 비롯해 콜롬비아 아가씨 루루와 하이시, 친부모의 삶이 궁금한 기타무라 등의 사연은 다음 이야기에서도 나타나지 않을까.


 


 

 

누군가한테 필요한 존재라는 건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는 의미야. (101페이지)

 


다다와 교텐은 기타무라로부터 한가지 의뢰를 받는데, 다다가 감춰둔 감정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매사에 관심이 없는 듯 아무래도 좋다는 듯 행동하는 교텐의 마음을 느끼며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혼자가 더 좋은 듯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갖게 되는 거다.

 


행복은 모양을 바꾸어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살며시 찾아온다고. (338페이지)


 

교텐이 집을 나간 후, 그를 찾아다니며 다다가 잃어버린 행복을 다시 찾게 되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행복이라는 것이 잃어버리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곁에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꾸 잊어버린다.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은 먹지 않고 술이나 담배만 피워대는 듯 보여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난 교텐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다다 또한 교텐과 시작된 불편한 동거가 어느새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었다.


 

흔히 말하길,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 갑자기,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이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이럴 때 해당하는 것이리라. 한번 불행이 찾아왔다고 해서 계속 불행하지는 않으며, 순간적으로, 찰나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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