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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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에 집을 알아보다가 지금 집과 비교해 실속 없는 내부평면에 주저앉기를 몇 번. 아이들도 각자 독립을 하고 집을 좀 줄여야 신규 아파트에 입주할 거 같다. 다시 드는 이사 생각에 고민하던 중 우리 아파트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 풍수가 좋기로 다섯 번째 안에 든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을 접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아주 간사한 것이어서 위치상 좋다고 하는데 굳이 이사할 필요가 있나 싶은 거다. 우스갯소리로 죽을 때까지 살자고 말하는 중이다.


 

24평형 아파트 기숙사에 살고 있던 딸에게 사정이 생겨 집을 구하게 되었다. 청년 전세대출을 받아 이사할 집을 구해놓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차라리 대출받아서 살 걸 그랬나 싶었다. 아파트 가격의 90% 전세금을 주어야 해서 임대인이 대출받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할 거 같아서였다.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처럼 우리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해서 평형을 늘려 지금에 이르렀다. 물론 지방이라 시세차익이 크지 않지만 말이다. 딸에게도 이걸 가르쳐야 하나 속물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엔 여러 가지의 모습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안보미에서 아버지가 사준 집에 살고있는 보미는 사적인 다큐멘터리를 위해 아버지를 찍으며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본다. 가족을 바라보는 것과 타인이 그의 유별난 행적을 블랙컨슈머로 보는 것의 차이다.

 


소설은 꽤 사실적이다. 우리가 느껴왔고 경험했던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렸는지 조남주가 작가가 가진 능력일 것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과 보편적인 면에서 생각이 다른 법이다.

 


서영동을 지키는 다양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의 행동을 봐도 그렇다. 학원이 밀집해있는 백은빌딩옆에 노인 요양원 건물이 들어선다고 하자 반대하고 나선다. 하지만 학원장인 경화를 대신해 아들 찬이를 케어해주는 엄마에게 치매 증상이 생기자 마음이 달라진다. 이게 사람인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가 극명하다.

 


우리보다 더 나은 직업,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면 부러워한다. 부러움을 넘어 시기 질투에 이르기도 하는데 샐리 엄마 은주는 숨기고 싶은 우리의 민낯이다. 모임을 주최해 앞에서 이끌어가는 케이 엄마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자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불편함 한편에 시기 질투가 숨어있다. 고등학교 때 소문이 좋지 않았던 동창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 한구석에 부정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경고맨을 읽으며 불편하면서도 속이 후련해졌다. 경비원을 함부로 대하고 갑질하는 모습을 보고는 뉴스에서 나오던 게 생각났다. 딸 유정의 입장에서, 하필 자기 집 근처의 아파트 경비원으로 왔는지, 라고 말한 부분 또한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시시때때로 전화하는 엄마 때문에 힘든 것과 아버지를 챙기는 모습, 서영동 커뮤니티에서 경비원의 이야기가 아버지라는 것의 곤란함. 불편함 등에 공감했다. 각종 경고문을 써 붙이는 아버지. 그대들이 함부로 대하는 경비원이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거.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서영동 이야기는 우리의 민낯을 보게 한다. 집값을 올리기 위해 시청이며 의원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시위하는 사람, 집값을 낮게 책정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가격 후려치기에 부녀회에서 저가로 매도하지 말자고 한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이면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속물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나를 보는 것만 같다. 말로는 절대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안승복 대표처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심히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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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1~2 세트 - 전2권
야마다 무네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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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음을 얻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생존제한법(LIFE LIMIT LAW)

불로화 시술을 받은 국민은 시술 후 100년이 지난 시점부터 생존권을 비롯한 기본 인권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1, 2, 13페이지)

 


스무 살 즈음 불로화 시술을 받는다. 대신 100년이 지나면 스스로 안락사를 해야 한다. 백년법이 만들어졌다고 치자. 100년은 아주 먼 미래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불로화 기술인 ‘HAVI’시술을 받고 젊음을 유지한다. 대신 패밀리 리셋 상태가 되어 부모와 자식 간의 교류가 없다. 이십 대의 모습으로 각자의 삶을 살면 된다. 아주 먼 시기였지만 순식간에 백 년의 세월이 흐른다. 미래 시대를 위해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하다. 이러한 소설이 나오는 이유도 그와 같을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은 어떻게든 그 삶을 유지하려 든다. 과거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아 헤매게 했던 이유와 같다. 젊음은 어떤가. 젊게 보이기 위해 얼굴에 보톡스 등 시술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전에는 대중매체에 얼굴을 비치는 연예계에서 시술을 주로 받았던 반면 일반인들도 성형 수술이나 시술을 아무렇지 않게 받는다. 예뻐질 수 있다면, 젊게 보일 수 있다면 자기의 뼈를 깎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한다. 생존제한법에 따라 불로화 시술을 받은 후 100년째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거부자는 그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누군가가 도와야 하고 거액의 돈을 치르고 고스트 카드를 구매해야 한다.

 


백년법 효력을 발생시켰을 즈음 죽음에 관한 인간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생명 연장을 위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건 기본이며 그 사람의 눈 밖에 나지 않게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누구보다 백년법 시행을 하고자 했던 유사 아키히토 일본공화국 총리마저 죽음 앞에서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생명 연장을 위한 면제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그의 입장이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권 연장이라는 게 특권층에만 해당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 상황이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누리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불로화 시술을 받은 자들의 장기에 나타나는 암 발병은 지금의 시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 불로화 바이러스의 변이로 인한 SMOC 발병은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인간이 만든 바이러스의 변이로 인해 세계는 2년 넘게 멈춘 상태다. 영원한 젊음을 얻는 대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병을 안고 있다면 그것처럼 두려운 것도 없다. 일시에 세계 혹은 나라의 붕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만약 나에게 불로화 시술의 선택권을 준다면 두말없이 시술을 받지 않을까.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다른 거 몇 개쯤 포기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나는 거 아니겠나. 죽음의 상실은 삶의 상실이나 다름없어. 이 나라에 결여된 것, 그건 바로 죽음이야. (1, 302페이지)

 


위 발췌 문장에 이 소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소설 전편에서 드러나는 주제로 인간에게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 소중한 법이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말이 주를 이룰 것이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오늘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전보다 더 소중한 오늘을 살면 된다. 무기력에 빠진 불로화의 삶보다 치열한 오늘의 우리가 더 낫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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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28 1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로화 수술, 백년 후 안락사. 전제만 읽어도 으, 끔찍합니다.

Breeze 2022-03-10 16:30   좋아요 0 | URL
한번쯤 죽음에 대하여, 혹은 불로화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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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하자키 목련 빌라의 모습을 그려본다. 하드보일드 작가로 유명한 쓰노다 고다이의 저택 앞으로 콘크리트로 지어진 다섯 채씩 총 열 개의 빌라가 있다. 빌라 입구에는 목련 한 그루를 심어 목련빌라라 불린다. 제법 두껍게 콘크리트를 지었던지 옆집의 소음은 들리지 않은 데 비해 창문 아래로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린다. 유일한 빈집 3호에서 사체가 발견되었다. 부동산 사장의 아내가 젊은 부부에게 집을 보여주다가 발견했다. 시체를 발견한 부동산 사장 아내와 젊은 부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주택에 시체가 발견된 경우, 주변 사람부터 조사하여 용의자를 좁힌다. 그런데 목련 빌라의 모든 사람이 용의자가 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도 주민들도 나름의 방식대로 살인을 유추해보지만 그럴수록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다.


 

피해자는 비교적 작은 키에 검은 피부를 가졌고, 오른쪽 송곳니가 없다. 돈이 없어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고 입고 있던 옷도 허름하다.


 


 

 

빌라의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이유는 시체가 나타내는 인물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는 거다.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시청 공무원 후유, 고서점 기토당을 운영하는 노리코, 빈집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고다마 부동산의 사장, 호텔 남해장을 경영하는 세리나, 이웃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아케미 등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다는 거다. 용의자들은 차고 넘친다.

 


이웃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두려움에 떨 법한데 목련 빌라의 주민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무언가를 숨기고 스스로 탐정 역할을 한다. 중요한 단서는 후유의 쌍둥이 딸의 떠드는 말에서 나타났고 경찰들은 용의자를 점점 좁혀간다. 그러다가 또 한 건의 살인이 발생하고 두 사건이 연쇄 살인인지, 살인이 일어난 틈을 이용해 다른 살인을 계획한 것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소설에서 하드보일드 작가 부부의 정체도 조금은 의심스러웠다. 작가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내의 말에서 무언가 숨기는 것만 같다. 결말에 가서야 쓰노다 부부의 정체가 드러난다. 살인 사건이라고 해서 모두 심각한 것만 아니다. 약간은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후유의 딸들이 켄을 쫓아 달리는 장면은 이 소설의 압권이다. 몇 명이 한 줄로 늘어서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가공의 바닷가 도시 하자키를 배경으로 하는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과 함께 읽으면 좋을 거 같다. 물론 각 권은 다른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어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도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바닷가를 거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닐까. 이들의 일상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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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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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아름다운 건가. 힘든 시절을 겪었어도 지나고 보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안드레 애치먼의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를 전자책으로 아주 서서히 읽고 있던 참에 이 책의 가제본을 읽고 책이 출간된 후 다시 읽었다. 하버드 스퀘어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을 그린다.



 


는 열일곱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여름 캠퍼스 투어 중이다. 마지막 일정으로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곳 매사추세츠에 와 있다. 아들에게 어릴 적부터 말해왔던 장소를 캠퍼스 투어 중에 찾아와 감회에 젖었다. 그리운 학창시절을 떠올리지만, 아들은 캠퍼스 투어에 시큰둥하다. 조금 변하긴 했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기엔 충분하다. 돌아갈 수 없었던 하버드 시절, 가난 때문에 힘들었어도 인생의 단 한 명의 친구를 만난 시간이기도 하다.


 

1977년 여름의 케임브리지. 여름방학을 맞은 캠퍼스에서 는 도서관 한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돈은 모두 집세로 들어갔다. 17세기 문학에 관한 종합시험을 치르는데 필요한 책을 읽는 중이다. 시간이 되면 카페 알제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러던 와중에 따다다다프랑스어를 들었다. 칼라슈니코프 즉 칼라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자와 친구가 되었다. 다소 거칠고 군인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그 시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케임브리지에서 유일한 친구였다.

 


가장 힘들 때 버팀목처럼 곁에 있어 주었던 친구다. 하버드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면서 지난 시절의 인연이 부끄러워졌다. 앨리슨의 부자 아빠와 저녁을 먹었을 때도, ‘는 칼라지와 마주칠까 봐 피해 다녔다. 종합시험에 통과하고 강사로 일할 때, 로이드-그레빌 교수와 저녁을 먹을 때에도 칼라지의 눈을 모른 척했다. 그린카드를 얻지 못하면 강제 추방이 될 줄 알면서도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비겁해지는 건 어느 한순간이다. 친구의 곤란한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주류의 삶에 끼어든 나와 차별을 두고 싶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교묘하게 바쁜 척, 모르는 척하면 된다.


 

수치심은 비유이고 단어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혼이라는 커다란 환전소에서, 수치심은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에 가까이 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또 하나의 결핍된 단어일 뿐이었다. (333~334페이지)

 


칼라지를 버리는 일은 현실의 자신을 버리고 싶은 것.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이집트에서 부모님이 추방당했던 것처럼. 그의 사정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지난날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 일부러 감춰 둔 기억을 헤집으며 그 시절의 자신과 마주했다. 단 하나의 친구를 버림과 동시에 묻었던 기억이었다. 부끄러움,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보면 떠올리는 기억. 오랜 시간이 지나 마주했던 기억들은 고통이며 또한 애증이었다. 아름다웠던 시절.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간이다.


 

만약 그 시절의 그라면 우리도 그러지 않았을까. 마냥 그의 책임만 물을 수는 없다. 칼라지도 그를 나무라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 작별인사쯤은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시절을 같이 보낸 관계로 누구보다도 가깝게 여겼으니까. 그 모든 일을 뒤로하고도 그 시절은 그리운 법이다. 다만 추억할 뿐이다. 그 시간 속에 머물렀던 기억들을. 어쩌면 그 기억들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삶이란 그런 법이므로.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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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설 상.하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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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와 여행을 자주 다닌다. 한 자매가 멀리 있을 때는 자주 보지 못했다. 내가 사는 곳으로 직장을 구해 이사 오면서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열심히 친해지는 중이다. 사람은 타인이든 가족이든 자주 만날수록 가까워지는 거 같다. 함께 밥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고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자매들이 나오는 소설을 읽게 되면 어쩐지 내 자매들과 비교해보게 된다. 이번에 읽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이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성적인 시각과 여성의 문화를 표현한 작품으로 오사카의 마키오카 집안의 네 자매 이야기다. 네 자매 중에서 셋째 딸인 유키코의 혼담을 주제로 하여 오사카 지방의 다양한 문화를 나타낸다. 자매들의 결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비교되기도 한데 자매간의 관계가 더 주를 이룬 게 특색이다.


 


 

 

소설 속에서 몇 번 언급하는데, 편지나 전화에서 받았던 자매간의 갈등도 마주보면 그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의견이 달라 다투지만, 결국엔 미워할 수 없는 자매들의 특성을 나타냈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일본식 미인으로 비치는 유키코의 결혼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남자들은 왜 유키코의 매력을 보지 못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니 우울하게 비치는 것도 있었다. 유키코와 혼담이 오갔던 남자들은 정숙하고 조용한 여성을 바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들을 더 선호하는 거 같았다. 미용실을 하는 이타니 씨가 화려한 외모를 가진 언니 사치코나 다에코가 함께 나오는 걸 주저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키코가 빛나야 할 자리에 다른 사람이 눈에 띄는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신부보다 화려한 옷을 입지 않은 것과 비슷했다. 가장 빛이 나야 할 사람을 가리게 되므로 그렇다.


 

유키코와 다에코, 사치코의 맏언니인 쓰루코를 내심 미워했다. 비록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였다지만 유키코와 다에코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쓰루코와 남편 다쓰오는 사치코의 집에 머무는 것을 은근히 바라는 듯했다. 물론 쓰루코의 자식들은 여섯 명이나 되어 경제적으로 빠듯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소설의 전개상 계산적인 면을 내보이는 데서 나타난 이유 때문이었다.


 

반대로 사치코와 데이노스케의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좋았다. 자매들에게 헌신적인 사치코를 이해했고 아끼는 모습에서다. 원래는 유키코나 다에코는 큰집에 있어야 마땅하지만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도쿄나 우에혼마치의 집을 불편하게 여겼고, 무엇보다 유키코는 사치코와 데이노스케 부부의 딸 에쓰코를 자기의 친딸처럼 아꼈다. 유키코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를 바랐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처럼 다아시 씨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랐다. 우리의 희망에 불과했다.

 


유키코와 대조적인 인물로 넷째 딸인 다에코를 들 수 있겠다. 인형 만드는 손재주가 있어 그 시대에는 드문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나온다. 자유분방한 여성으로 비치는데 일찍이 오쿠바타케와 가출한 전력도 있었다. 오쿠바타케나 그의 점원이었다가 사진사가 된 이타쿠라와 염문을 뿌리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자매들은 유키코의 혼담이 깨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다에코의 행실을 든다. 아무래도 이 시대는 혼담이 오가는 사람의 가족들 면면을 상세히 알아보고 결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성인 다에코를 응원했다. 유키코와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똑 부러지게 표현할 줄 알고 양재 기술과 인형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여성이 되길 바랐던 거 같다.


 



 

 

통속소설은 그 시대를 거울처럼 비춘다. 전쟁 중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임에도 다양한 문화를 즐길 줄 알았던 것들에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화려함을 엿보았다. 자매들과 함께 벚꽃놀이를 즐기고 여행을 즐기는 모습에서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의 문화를 볼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우리의 삶과 비교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 행복을 이루는 요소 중에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기도 하다.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한 달쯤 뒷면 벚꽃이 피는 계절이다. 매화가 필 무렵이나 벚꽃 필 무렵에 자매들과 다시 꽃놀이를 가야겠다. 거창한 게 필요하겠나. 그저 마키오카 가 자매들처럼 다음 해에는 함께 여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떠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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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2-21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 자매여행 부럽습니다. 형제보다 자매의 연이 더 끈끈한가 싶기도 하고 같이 나이 들어가며 비슷한 연대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여동생과의 여행이 편하더군요.
앞으론 좀 자주 하면 좋겠다 싶어요.
세설 리뷰 잘 읽었습니다 ^^

Breeze 2022-03-10 16:31   좋아요 1 | URL
여동생과는 더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