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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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을 여는 꿈, 혹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큰 탁자가 있는 북카페를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관망하고 있는 상태에서 주변에 책방들이 생기고 있다. 현실적인 고민을 해본다. 책방을 열었을 때 감수해야 할 것들을. 아무래도 책을 팔아야 수익이 생길 텐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다. 근처 독립 출판을 하던 작은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팻말을 본 적이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의 책방이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간직해야 할 꿈이다.

 


서점에 관한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들이 많다. 얼마 전에 읽은 책들의 부엌과도 비슷한 소설인데, 황보름의 작품은 더 정감 있고 다정하다. 최근의 소설 흐름을 보면 타인보다는 나를 위하는 내용이 강조되는 거 같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하다. 진심 어린 마음과 적당한 무관심이 필요한 법. 일부러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한 공간이 있으면 그곳으로 향하지 않을까.


 

 

 



후미진 골목길, 책이 팔리지 않을 장소, 서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곳에 새로 들어선 휴남동 서점. 서점 주인은 하루 종일 우느라 손님맞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서점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했다. 서점 주인 영주 스스로 슬픔에 겨워 지냈고, 주인이 아니라 손님처럼 낯선 공간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더니 달라졌다. 이제 서점 주인으로서 제대로 돌 볼 마음이 생겼다. 바리스타 민준을 채용하면서 휴남동 서점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영주의 방식이 좋았다. 어떤 책을 추천해줄까 고민하기보다는, 서점 주인이 읽은 책의 느낌을 메모지에 붙여 놓는 부분이었다. 책을 고르는 사람은 책을 읽은 사람의 느낌에 공감하여 책을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고, 취향에 맞지 않으면 다른 책을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휴남동 서점에 오는 사람들의 장점은 말이 없다는 거다. 물론 질문하는 대상에게 어떠한 말을 해줄까에 대한 부담이 작용하기도 했다. 서점을 찾는 손님에게 귀찮게 하지 않는 거. 한동안 면벽 수행하듯 명상을 하다가 나중에는 뜨개질했던 정서를 말없이 기다려주었던 것처럼. 정서는 휴남동 서점에 마음을 붙일 수 있었고, 명상하며 뜬 수세미를 서점에 기증할 수 있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서점 운영 시 책은 사지 않고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다면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을 자제하고 기다림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기다림의 미학은 민철 엄마인 희주와 민철에게도 찾아왔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민철에게 일주일에 한 번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씩 읽을 것, 그도 여의치 않자 서점에서 정서의 뜨개질을 바라보다 오도록 했다. 고등학생 소년이 서점에 앉아 하릴없이 뜨개질 장면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질문하기 시작한다. 삶의 본질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꺼내보았다. 희주는 민철이 민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남편을 기다려줄 것인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직업을 가질 것인가. 아들을 기다려주었던 엄마의 타박 아닌 잔소리를 듣고 민준은 생각에 잠겼다.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직장은 없었다. 몇 번의 좌절을 겪었다. 민준이 성철에게 말하는 단춧구멍에 관한 이야기는 이 소설이 가진 중요한 주제다. 열심히 단추를 만들며 살아왔지만 정작 단추를 꿸 구멍이 없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 컸다. 휴남동 서점에서 일하면서 민준은 단춧구멍이 없는 옷을 바꿔 입었다고 표현했다. 옷을 바꿔 입었더니 거기에 이미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에 맞게 단추를 만들었더니 잘 꿰졌다는 설명이었다. 일종의 변화였다. 서로를 기다려 줄줄 알고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도 귀찮게 묻지 않았던 것. 적당한 무관심과 배려가 그를 변하게 했다. 세상이 원하는 삶보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요. 작가의 목소리. 문장이 다소 서툴러도 좋은 목소리를 가진 작가의 글을 읽으면 힘이 느껴지잖아요. 좋은 문장이 중요한 건 이 목소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문장이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거든요. (148페이지)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민준 씨는 휴남동 서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혹시, 민준 씨를 잃어버린 채 일하고 있지는 않나요? (343페이지)


 

새로운 삶의 기로에 서 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부딪쳐 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밤잠을 설쳐가며 생각을 거듭했다. 어떤 선택이 나의 삶에 더 좋을까. 결론은 부딪쳐 보자는 거였다. 도전했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때는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이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거고 나를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휴남동 서점의 다음 이야기가 계속될 거 같은 느낌이다. 서점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서점에 찾아와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을까. 엉터리 문장과 완벽한 문장에 관한 글쓰기 강의를 했던 승우 작가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책과 함께 따뜻하고 진심어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휴남동 서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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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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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시인 김수영이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00주년을 기념해 한겨레에서는 거대한 100, 김수영이라는 타이틀로 반년간 평론이 기획, 연재되었고, 26개의 키워드를 이용하여 썼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의 시인 김수영의 이름만 알았던 거 같다. 읽고 나서야 김수영이 가진 거대한 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사상과 뿌리, 삶 그리고 기억들이 하나의 문장이 되어 김수영을 각인시켰다.

 


이 책의 제목은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중에서 가져왔다. 시 전문을 읽고 그 부분을 옮기려 적다가 포기했다. 원초적인 욕설 때문에 주저되었다. 이 책에서 한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만약 거대한 뿌리가 국어책에 실렸더라면 주구장창 외워야 했던 시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차마 리뷰에 옮기기도 주저되는데 말이다.


 



 

 

김수영이 한국어보다는 일본어를 잘했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번역일을 했다는 것이 새로웠다. 연극을 하다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삼남으로 태어났으나 장남이 되어야 했고, 4.19 혁명을 거쳐온 60년대를 아프게 풍자했던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수영의 배우자인 김현경 선생이 생존해 계시고, 또렷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김수영의 삶을 알 수 있게 했다. 전쟁 때도 챙겼던 귀한 자료집 때문에 육필 초고를 수록할 수 있었다. 다른 시인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시인으로 기억되는데,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 시인 김수영을 알리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


 


 

 


김수영의 시를 읽게 되면 양가의 감정이 생길 거 같다. 역사적 의식으로 가득 찬 시와 함께 생활인으로서의 시는 우리의 현재를 알게 하는 효과가 있다. 김수영은 특히 여성 비하의 시를 많이 썼던 거 같다. 아내를 여편네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다는 시 죄와 벌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물론 맹문재 시인은 여편네가 아내를 비하한 의미로만 한정하는 시각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김수영이 추구한 자유정신이라고 할지라도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 죽음과 생성의 원리는 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시 역시 죽음을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 김수영은 시의 감동은 새로움에서 올 수 있는데, 이 새로움은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죽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전 시의 내용과 형식이 죽음을 통해 새로워지고 자유로워질 때, 현대시의 모더니티도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현대시의 출발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병풍을 들고 이 시를 죽음을 노래한 시” (산문 연극하다가 시로 전향,1965)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237페이지)


 


 

 

역사와 실험적 정신으로 일갈했던 김수영 시인을 읽는 것도 실험적인 것에 가까웠다. 다만 김수영 시인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겠다는 것과 다양한 관점으로 김수영을 볼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그 성과는 성공했다고 본다. 김수영 시집이 아닌 김수영을 읽는 일이 값진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김수영 시인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책을 열었다가 다시 덮었었다.

이제, 김수영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를 읽을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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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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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설을 꾸준히 읽는다는 건 그만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인물을 창조하고 그에게 고통을 가하는 건 작가의 일이다. 독자들은 왜 주인공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가 의아해 하지만, 대체로 작가들은 냉정하다. 오히려 그걸 즐기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독자들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기다리게 될 테니까. 알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요 네스뵈 작가를 처음 만난 게 스노우 맨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의 행적과 수사 방법에 놀라면서도 응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부터 해리 홀레에게 반하기 시작했다. 연쇄 살인 사건에 관한 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 그렇다고 단번에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실수하는 인간에 가깝다. 해리 홀레의 가장 특별한 감각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장악하는 능력일 것이다. 스치듯 본 풍경도 훗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맞물려있지 않을 때 발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해리 홀레에게 라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사랑하는 사람, 돌아갈 장소, 영혼의 안식처다. 그런 라켈을 잃었다. 이후는 슬픔과 고통의 시간이다. 살인범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심연에 갇힌다. 마침 스베인 핀네가 출소했다. 그는 발렌틴 예르트센의 생물학적 아버지며 해리에게 복수를 한 것이라 여겼다. 살인 사건이 생겼을 때 첫 번째 용의자는 늘 남편이다. 형사들이 하는 일 중에 용의자에서 제외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살해된 사람의 가까운 사람부터 제외시키는 것. 두 번째부터는 원한이나 복수 혹은 질투, 시기심일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 그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치명적인 고통을 부른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이 소설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스베인 핀네가 어린 여성들을 성폭행하며 내뱉은 말로 나중에 해리도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 같지만, 종종 큰 파장을 가져올 뿐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로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된다.


 

내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면서 큰 자산이 된다. 해리 곁에는 그를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가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알코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도 그가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한다. 때로는 그를 많이 사랑하기까지 하는데, 그 또한 더할 수 없는 행복이다. 그렇기에 그를 시기한 자도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 깨닫는 자각, 그것은 질투를 유발하고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칼은 남성성을 나타낸다. 날카롭고 무거우며 고통을 가할 수 있는 무기다. 그 칼로 사람을 찌르는 행위야말로 치명적인 고통을 야기한다. 피가 낭자한 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렵지 않겠는가.


 



 

 

라켈과 결혼 생활을 하는 해리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남자로서의 해리, 아빠로서의 해리는 안정적이며 느긋해 보였다. 그런데 작가는 심술이 났나 보다. 행복한 해리를 지켜보는 독자도 어쩐지 불안하긴 했다. 그 시간이 짧을 것만 같은 예감에. 누군가 말했다. 가장 행복한 시간에 불행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행복은 고통과 상실의 슬픔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짧고 불행은 길다.


 

해리의 다음 행보가 내심 불안하다. (Knife)로 이어지는 피(Blood), 미국의 어느 거리에서 노숙자가 된 해리 홀레를 그려본다. 삶에서 행복한 시간은 아주 찰나였고 그에게 삶은 고통뿐이라 여기며 거리를 헤매는 해리를 안타깝게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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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9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6-13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 네스뵈의 책들 모음이네요.
여러권 이어지는 시리즈를 보니 한 권씩 생각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Breeze님, 시원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Breeze 2022-06-15 13:5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시리즈는 계속 읽어야 더 재미가 있으니까요.
비가 오다말다하는 날시 입니다.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
 
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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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파 길을 헤맬 때 뜻밖의 장소에서 위안을 얻는 경우가 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편안함.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듯, 발을 딛고 서 있는 장소가 큰 의미가 된다. 마음을 둘 데가 없어 길을 떠났다. 시골 어느 변두리,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온다. 커피 한 잔을 내줄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에 책과 음식이 있었다. 물론 예약해야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게도 아주 작은 공간 하나 내어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의 이름은 소양리 북스 키친.


 

일명 책들의 부엌이다. 책과 음식, 북 스테이를 겸할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근처 음악 공연에 갈 수도 있다. 풀리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혹은 번아웃을 느꼈을 때, 목표를 향하여 쉼 없이 달려왔으나 가로막힌 순간을 경험할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책과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구매하고 엽서에 편지를 써 크리스마스에 받아볼 수 있는 이벤트도 있다. 여행 시 우체통 앞에서 1년 뒤에 받을 수 있는 편지를 써 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을 쓸까 고민하면서 쓴 글이 받아보았을 때는 그때의 고민이나 염원은 매우 가벼운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희망적인 언어를 주로 쓰는데, 불안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거라는 마음을 담는다.

 


저마다 우울한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꼭꼭 숨겨두었던 마음을 꺼내 놓기도 하고, 삶을 달리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듯.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아온 사람들은 이 장소에서 비로소 자기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게 된다.

 


어떤 고민을 하고 있다고 치자. 내가 하는 고민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중요할 거 같지만, 누구나 이런 고민 하나쯤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비로소 우리의 시야가 좁았음을 알게 된다. 누구나 비슷한 고민과 더한 고통을 가지고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스 키친은 말 그대로 책들의 부엌이에요. 음식처럼 마음의 허전한 구석을 채워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지었어요. 지난날의 저처럼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마음을 돌아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맛있는 이야기가 솔솔 퍼져나가서 사람들이 마음의 허기를 느끼고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만나게 됐으면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225페이지)

 


소양리 북스 키친 운영자 유진은 그 사람에 맞게 책을 처방해준다. 인생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문장 한 구절, 책 한 권은 큰 의미를 갖는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책의 느낌도 달라지는 법. 어느 순간에 확 와 닿는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듯 음식도, 공간도 기분에 따라 좋은 곳이 될 수도, 그저 그런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유진이 처방해주는 책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작가가 좋아하는 책, 읽었던 책들의 목록이 반가워서였다. 내가 읽었던 책의 공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가웠을 것이다. 빨강 머리 앤의 모퉁이에 대한 부분은 나도 아주 좋아하는 문장이다. 읽을 때마다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는 한다. 좋은 문장을 인용해 이 소설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마음을 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감정. 그것이 애틋한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대화를 했을 때 드러난다. 마음에 담고만 있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동식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엄마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거부의 표현으로 엄마를 미워하고 자신을 학대했다. 물어보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마음을 열었던 거다.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책이 있으면 그 곁으로 다가가 책들의 목록을 살핀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반가움 혹은 공감을 하며 책 목록에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취향을 짐작해본다. 소양리 북스 키친이 어디쯤 있을까. 작가의 상상력의 장소이지만,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다. 싹싹한 성격의 시우가 손님을 맞이하고, 말없이 커피를 건네는 유진의 손길이 따스할 것 같다. 머물고 싶은 장소. 마음을 나누는 장소가 될 소양리 북스 키친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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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데이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0
서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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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인종이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거 같다. 문화와 습관이 차이에서 오는 다름. 그것을 넘어서기란 마치 문화가 가진 본질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전에는 국제 연애하는 사람을 볼 때면 참 낭만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어쩌면 굉장히 어려운 연애라는 것, 평생 이해하지 못할 일도, 견해의 차이가 클 거라고 예상했다.

 


삼십 대의 호주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이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서로의 연애에 대하여 깊이 파고드는 것과는 다른,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인식하는 과정들을 나타낸 소설이다. 두 사람의 사고방식은 좁힐 수 있다 치더라도 상대방 부모와의 견해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거 같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유진은 한국인으로,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호주인으로 자란 데이브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연애의 시작에서부터 다르다. 집에서 물담배를 하자는 초대의 의미와 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의 차이. 집에 초대했을 때 물담배 말고 다른 것을 할 건지 하지 말 것인지를 미리 말해야 한다고? 한국인처럼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건 없는 거 같다. 그에 따른 문제, 상대방이 잘못 인식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에게 그어진 선에 대하여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만의 선을 그어놓고 그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한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데이브에 반해 유진은 엄마의 요구도 그렇고 결혼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인이 서로의 부모에게 초대받은 일을 결혼의 시작점이라고 보는 반면, 외국인은 자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상황을 비교적 가볍게 받아들인다. 데이브의 부모 집에 갔을 때 유진이 입었던 원피스에 대하여 말해 보자. 격식을 갖춰 불편한 옷을 입었으나 데이브의 부모나 여동생과 여동생의 여자친구가 편한 옷을 입은 것의 차이는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불편하다. 초대받은 집에서 한국식으로 도와드리겠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의 차이와도 같다. 초대된 손님이 설거지하는 경우는 없다는 걸 유진은 몰랐다.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생각했다.

 


이와 반대로 데이브가 한국에 왔을 때, 무거운 물건 때문에 엄마가 도와주러 집 밖에 나왔을 때 데이브를 마주쳤다. 데이브는 당연히 자기를 초대할 줄 알았는데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하겠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집에서 편하게 입었던 옷이 불편했고, 데이브는 집에 찾아온 손님을 내쳤다고 생각했다. 데이브가 유진의 엄마에게 정식으로 초대받아 갈 때 데이브가 선물하려 했던 빗자루는 압권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선물은 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주고 싶은 선물을 할 거라고 말하는 데서 오는 이질감 혹은 다름의 인식이다.

 


한국 사람들도 결혼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결혼과 동거의 차이에 대하여 서양처럼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변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거 같다. 결혼에 대한 확고한 생각, 결혼과 아이에 대한 미래를 그리지 않은 사람이 하는 행동에 마냥 그의 뜻이 맞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얼마나 불합리한가 말이다. 자기의 유전자를 물려준 아이가 자기의 아이인가 가족의 아이인가. 어쩌면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거라 여길 수밖에 없다. 물론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만약 우리가 특정한 나라의 외국인을 만났을 때 저절로 그 나라의 정치적 현실이 궁금해 질문하게 될까. 평소에 궁금하게 여기는 건 좋으나, 국가를 대표하여 답을 내놓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유지하지 않느냐 말이다. 언젠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에 대하여 표현하는 걸 보았다. 북한과의 갈등은 국가의 일이고 우리는 개인이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를 하기 마련인 것이다.

 


유진은 정성껏 그린 그림을 뭉개는 작업을 했다. 그림을 뭉갰다는 것은 유진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람의 얼굴이 뭉개졌다는 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 태즈메이니아 창에서 바라보았던 풍경과 뭉개지 않을 그림을 그릴 것 같았던 마음은 곧 다름의 차이로 역시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이 어디까지인지, 국적과 인종 간의 갈등과 다름을 극복하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그녀가 햇살 가득한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유진은 다른 삶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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