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 박태식 신부가 읽어주는 영화와 인권
박태식 지음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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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이로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반가운 일이다. 영화를 이야기하고 영화속에서 인권을 말하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우리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으니까. 영화속에서 혹은 소설속에서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난듯 느껴지는 건 그동안 우리가 폭력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었던가.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로 톰 행크스가 주연을 한 영화였다. 실화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화가 아닌것만 같았다. 비행기가 강에 빠졌는데 탑승했던 155명 전원이 살아남았다는게 과연 실화일까. 혹시 우리가 꿈꾸었던 상상의 결과물 아닌가 했다. 이륙한 비행기가 새에 부딪혀 양쪽 엔진을 잃고 회항해야 하는데 건물과 인명 피해가 예상되어 허드슨강으로 비상착륙했던 이야기였다. 탑승했던 전원이 구출되는 장면을 보고는 나는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 맨 나중에 나오는 기장의 모습을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 캡틴이라면 무릇 탑승한 사람의 안전을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을. 대처가 빨랐다면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한국영화  「한공주」에서부터  「이다」라는 영화까지 우리의 인권을 말하는 에세이였다.  「한공주」와  「도희야」를 묶어 말하는 글에서 작가는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말했다.

 

우리에게는 이 영화들을 볼 책임이 있다. 그래야 약자들이 내쉬는 조그만 숨소리라도 들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폭력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 (23페이지 중에서)

 

과거  「도가니」라는 영화가 개봉된 뒤 장애자에 대한 폭력과 인권이 사회적으로 문제되었던 것처럼 폭력 피해자가 아프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았었다. 폭력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에 다니고 생활하고 있는데 왜 폭력 피해자가 학교를 옮기는 등 도망다녀야 하는지 비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던 영화였다.

 

 

국가는 통치술만 잘 구비한다고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완비된 통치술로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국가의 역할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힘으로 국민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비쳐진 프랑스 한국 영사 및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위선적인 미소는 결코 국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국가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30페이지)

 

세월호 사건시 국가의 존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떻게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그렇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것인지. 지금도 세월호 생각만 하면 눈물이 차오르는데, 저자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소개하며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국가의 역할 보다는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가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오래전에 보았던 <가족의 탄생>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더라도 더 가족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렇다. 최근에 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에서 키운 정과 낳은 정은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뒤바뀌어져 다른 아이를 키웠던 부모. 자식에게 상당히 차가운 부모였지만 그 아이가 타인의 아이라는 것과 이제는 함께 살수 없는 시점에서야 자신이 아들을 많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아버지가 되어가는 감정들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좋은 부모라는 것도 배워가는 과정인 것을 알수 있었다.

 

기억이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지는 걸까? 머릿속에서 과거가 모두 사라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때조차도 그 사람을 엄마나 아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껍데기뿐인 사람도 사람일까? (217페이지)

 

영화 <스틸 엘리스>에서 엘리스가 했던 말이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자신을 잊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는. 주변에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누구보다도 이 말이 와닿았다. 만일 나에게 병이 찾아온다면 그것이 암일지라도 치매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같은게 생겼다.

 

보지 않았던 영화들을 몇 편 찾아보았다. 시간을 정해놓고 볼 생각이다. 아무리 평이 좋지 않아도 취향에 따라,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면 그 영화는 나에게 굉장히 좋은 영화일수도 있는 것임을 이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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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갈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3
사쿠라기 시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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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을 읽을 때 특유한 감정을 만나는 때가 있다.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에서 느낀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희망없이 살고 있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은 그런 주인공의 삶에서 나는 허무함을 보았다. 내일이 없는데 희망을 갖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미래를 꿈꾸지 않을 것이므로. 전작인 『호텔 로열』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의 성을 위해 존재하는 곳. 호텔 로열을 경영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는 한 젊은 여자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엄마의 애인과 결혼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또한 결혼하기 전 다녔던 직장 상사와도 잠을 자는 사이다. 그 여자의 이름은 세쓰코. 그녀 엄마의 애인이며 세쓰코의 남편의 이름은 기이치로. 일본의 명절인 오봉에 한 여자가 분신 자살을 했다. 이야기는 과거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수많은 남자들이 드나들었던 집에서의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당했을 때도 지켜보았던 엄마, 또는 돈을 세었던 엄마의 모습이 진짜였을까. 세쓰코가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때 흔쾌히 허락하는 장면에서는 진짜 엄마가 맞나 싶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녀 만의 삶을 살라는 남편의 청혼이 그녀에게는 새로운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단가 모임을 다녔다. 그녀 이름으로 된 단가집을 내는게 꿈이었다. 그녀가 쓴 단가집의 제목은 '유리 갈대'였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라는 한 수가 그것이었다. 이 글은 세쓰코 자신의 삶을 나타냈다. 바슬바슬 모래가 되어 유리 갈대속에 흐르는 모래알 같은 자신의 삶을. 단가 모임에서는 성애를 주제로 했다고 평했다. 단가 모임에서 만난 사노 미치코와 미치코의 딸 마유미가 소설에서 세쓰코에게 큰 역할을 하게 한다. 

 

어느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세쓰코는 우연히 자신에게 말을 거는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와 이야길 나누게 된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마유미의 손목에서 멍을 발견했다. 자신의 엄마처럼 미치코도 마유미에게 학대를 가하는가. 그렇지만 그건 마유미의 삶일 뿐. 그녀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남편 기이치로가 사고로 죽을 위기에 처해 병원 집중치료실에 입원해 있었다. 그 와중에 마유미가 온 몸에 멍 투성이로 세쓰코에게로 왔다. 남편 딸의 집에 마유미를 맡기고 보살피게 했다. 마유미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이해했던 세쓰코였기에 미치코는 마유미를 그녀에게 맡겼으리라. 그냥 그렇게 흘러갈 것 같은 소설은 마유미가 집으로 돌아간 후 미치코의 남편이 유괴 사건으로 신고하면서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된다. 허무함 가득한 다소 밋밋해보이는 소설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남편이 죽을 경우 그녀가 호텔을 계속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호텔 일을 도와주던 도시코가 맡아 하길 바랐다. 이때 도시코가 세쓰코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직 젊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요, 홀가분해지는 건 무서운 거예요. 속박이 없는 생활의 무서움, 아세요? 의지할 데도 없고 구속하는 곳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이 필요 없어져요. (221페이지)

 

홀가분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어느 정도 구속은 활력소가 되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아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우리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내일을 계획 했을까? 그녀가 버리고자 하는 것, 그래서 얻고자 하는 것. 진정한 홀가분함을 느꼈을 그녀의 표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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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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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태양이 뜨는 워터멜론 슈가 마을이 있다. 이곳은 호랑이가 말을 하는 곳이다. 호랑이가 사람과 말을 한다는 것은 판타지 또는 우화가 분명할텐데, 책을 읽다보면 우화 같지 않다. 그저 워터멜론 슈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일컬어 자연주의 작가라고도 하던데, 『미국의 송어낚시』와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워터멜론 슈가마을의 '아이디아뜨(iDEATH)' 근처의 한 통나무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나'. 창밖으로 아이디아뜨를 볼 수 있고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가 머물고 있는 오두막은 워터멜론 송어 기름으로 만든 등이 타고 있고, 이곳에서 그는 책을 쓰고 있다. 그에게는 첫사랑 마가렛이 있다. 그의 오두막으로 건너올 때 늘 널빤지를 밟고 건너온다. 오로지 마가렛 만이 소리내는 널빤지를 밟기 때문에 그는 누가 건너오는지 금방 알수 있다. 어느 날에도 널빤지 밟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가렛이 돌아가고 난뒤 친구 프레드가 찾아와 폴린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정해진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대로 불러달라'고 했다. 어떤 곳을 걷던지, 강물을 응시하고 있을 때라던지, 아이였을때 했던 놀이, 누군가 부르는 소리, 메아리에 가까운 목소리가 그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호랑이가 오두막으로 들어와 엄마 아빠를 먹었던 때를 기억한다. 부모님을 먹으면서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때. 그리고 산수 숙제를 도와줬던 호랑이들을 기억한다. '잊혀진 작품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그들이 모아두었던 물건들. 인보일 일당이 있었던 잊혀진 작품들의 세계로 들어갔던 이해할 수 없었던 마가렛. 그리고 송어 부화장에서의 인보일 일당의 죽음들.

 

 

 

삽화와 함께 짧은 시적인 글들로 채워졌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말하고자하는 궁극적인 의미를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그리는 워터멜론 마을은 모호한 안개 풍경이었다. 요일마다 다른 색을 내는 워터멜론과 요일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워터멜론의 의미. 오두막 전체가 워터멜론 슈가로 만들어진 폴린의 집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의 이상향이었던 걸까. 헨젤과 그레텔이 발견한 과자로 만든 집처럼. 요리를 하고 사랑하는 폴린과 함께 워터멜론 슈가로 만들어진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가 아름답다고 표현했던 아이디아뜨도 결국엔 죽은 호랑이들의 집을 태우고 난 뒤의 장소가 아니던다.

 

아이디아뜨는 죽음과 생성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호랑이들이 죽인 자리에 만들어진 송어 부화장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본다. 이미 죽은 것과 앞으로 살아갈 것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송어 부화장은 피바다가 될지도 모르고 이어 송어들은 집단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마음이란 뭔가 다른 것이야. 어떻게 될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 (56페이지)

 

워터멜론 슈가라는 아주 달콤한 제목에서, 잊혀진 것들을 생각하고, 잊혀진 것들의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과 그곳을 멀리하려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엔 삶과 죽음은 한끝차이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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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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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들을 마주하는 일은 그녀에게 위무의 시간.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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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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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숲속의 집에서 이틀밤을 묵었다. 숲속이라 지네가 탁자 밑으로 기어나와 모두들 앉아 있던 자리에서 펄쩍 뛰어 지네 잡기에 돌입했지만, 한가지 드는 생각은 우리가 오염되지 않은 숲속에 있기 때문에 지네도 나오는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했다. 창문 틈에 있는 배수구멍을 화장지로 막고서야 안심했지만 밤잠은 설칠 수밖에 없었다. 숲은 벌레와 함께 공생해야 하는 곳이므로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것의 하나이다.

 

여름 별장으로 옮겨가는 사무실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사무실의 일원이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소설속 마리코나 유키코처럼 사무실의 여름에만 도와주는 일이어도 괜찮겠지. 도쿄와는 다른 여름 별장에서의 일정이 시작되는 하루는 어쩌면 꿈에 그리던 여름날의 휴가와도 같을지 모른다. 다만 직장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고 일도 해야하는 몇달을 보내야한다는 단점이 있을 테지만 말이다.

 

소설속 건축사무소의 신입사원 사카니시 군의 시선으로 표현되는 글은 그리움이었다. 함께 머물렀던 존경하는 선생님의 기억이 묻어나는 곳. 특별할 것 없는 그들의 여름별장에서의 일상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을거라는 사실이었다. 사카니시는 국립 현대도서관 입찰 경쟁을 위해 3년만에 새로 뽑은 신입사원이었다. 대학다닐때 무라이 건축사무소의 무라이 선생님이 건축했던 교회를 몇달에 걸쳐 실측했던 그의 열정에 선생님이 뽑아준 것이었다. 사키니시의 선생님에 대한, 무라이 건축사무소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왔다. 유명한 건축가가 속해있는 사무소에서 그에게 사사받는 것이란 굉장히 큰 감동일 것 같다. 더구나 그가 존경해온 건축가라면 더더욱 큰 영광이겠지.

 

소설은 여름 별장에 도착한 후부터 시작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나가는 무라이 선생님. 선생님이 일어날 때 서고에서 지내는 '나' 사카니시 또한 눈을 떴다가 아침을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국립 현대도서관 입찰 경쟁에 맞춰 건축 사무소의 직원들은 도서관을 설계하고, 혹시 낙찰될 때를 대비해 도서관의 의자 하나, 레스토랑의 위치 등 세세한 면까지 미리 만들어보는 일을 한다. 사카니시는 선생님의 요청으로 현대도서관의 스태킹 체어를 설게하는 일을 맡았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스태킹 체어와 자신의 생각으로 만든 스태킹 체어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설계를 시작했다.  

 

목소리란 참 이상하다. 목적도 마음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키코의 온갖 것이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것 같고 그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사람을 잘 설득한다. 귀에 쉽게 들어오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설명으로 다 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 남는다. 그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말의 의미 그 자체보다도 소리로서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62페이지) 

 

 

 

스물세 살의 청년인 사카니시는 무라이 선생님의 조카 마리코와 가깝게 지내며 여름을 나고 있었다. 여름 별장은 모두에게 추억의 장소였다. 무라이 선생님의 친구가 가깝게 머물고 있었고, 지인의 집을 돌봐주기도 하는 곳. 별장이 처음 생겨나던 시기의 이야기며, 벼락으로 인해 집이 무너졌지만 굳이 넓은 장소가 필요하지 않아 남은 곳만 이어 붙였던 여류 소설가의 별장까지 갖가지 사연들이 있던 곳이었다.

 

집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설계할 때 불이 잘 나지 않을 집,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 집, 그런 것에 가능한 한 신경쓰지. 그것이 건축가에게는 중요하거든. 그렇지만 말이야, 만일에 도쿄 전체가 전부 불타버리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 집만 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 (202페이지)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건축물은 영원할까? 그렇지 않다.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건축물도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추앙받지만 보수를 필요로 한다. 최대한 건축가가 만든 원형에 맞게 보수하지만 때로는 전쟁의 상황에서, 때로는 자연재해로 인해 유실되기도 한다. 하지만 건축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건축물은 자신의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달에 걸쳐 실측하고 설계도를 그렸고,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건축 설계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자부심이 있을테니까.  

 

건축물에 대한 애정. 건축을 배우는 사람의 자세.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건축사의 마인드를 알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건축을 배우는 사람이거나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이 보면 더욱 좋을 소설이었다. 한적한 여름 별장의 풍경이 그려지고, 그 공간에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의 회상에서 우리는 가슴가득히 스며드는 감정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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