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출간 10주년 리미티드 에디션)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3
루이스 캐롤 지음, 김양미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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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이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동화를 읽고 자란 아이와 읽지 않은 아이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동화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동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렸을 적에 동화를 읽고 자란 아이가 커서도 읽었던 동화를 찾게 되므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다. 아이는 동화를 읽으며 상상력을 기르고, 어른은 동심과 추억을 읽는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책은 읽지 않았어도 대강의 스토리는 알고 있을 작품. 루이스 캐럴이 세 소녀들과 피크닉을 간 곳에서 들려준 이야기이다. 책의 앞부분에서도 나오는데, 어린 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또다른 이야기를, 또 그 다음의 이야기를 원한다.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만들게 되고,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이야기의 한 중간에 있는 양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사랑스러운 소녀 앨리스가 흰토끼를 따라가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는 꽤 사랑스럽다. 동물들과 이야기를 하고 무얼 먹을 때마다 상황에 따라 키가 커지거나 적어지는 경우도 꽤 재미있다.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삽화가 그 이미지를 더해주고 있다. 작은 병에 든 것을 마시다가 집안이 가득차도록 키가 자라서 팔을 창밖에 내놓고 있는 장면은 저절로 웃음짓게 만든다.

 

장갑과 부채를 가져오라는 토끼의 명령을 받으며, 자신의 고양이 다이너에게 명령을 받는 장면 또한 재미있다. 우리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에서 배우곤 하는 것처럼, 앨리스 또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키가 아주 많이 자랐을 때 너무 슬퍼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 웅덩이가 바다인줄로만 알았던 장면도 재미있다. 많은 동물들이 눈물 바다게 빠져 젖은 채로 있자 달리기 시합을 하며 몸을 말리는 장면은 아주 기발하다. 그것처럼 빨리 물이 마르는 경우도 없으므로. 누군가와 시합을 하니 자신이 젖었다는 것도 잊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드로 된 사람들은 또 어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목을 쳐라'라고 명령을 내리는 카드의 여왕. 한낱 카드일 뿐이지만, 카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즐겁기만 하다. 여왕이 목을 쳐라고 외쳐대는데도 사라져 버리는 이들. 또한 여왕이 빨간 장미를 심으라고 말했는데, 실수로 하얀 장미를 심어 열심히 빨간색을 칠하고 있는 파이브와 세븐, 투. 여왕에게 들켜 죽을 위험에 처하자 그들을 구하려는 앨리스는 용감하게 여왕에게 대들기도 했다.

 

 

언니가 읽었던 책이 그림도 없고 대화도 없어 재미없었지만, 이처럼 상상의 나라에서 앨리스는 누군가를 도울 줄도 알게 되었고, 누군가의 말을 경청할 줄도 알게 되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사람이 많다. 비록 동물들의 말이지만 그들의 말하는 사연에 귀기울일 줄 아는 일들이 살아가는데 굉장히 필요한 일이잖는가. 배려와 경청, 무엇보다 중요한 '용기'를 배울 수 있게 했다. 나의 크기가 작더라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으며, 나보다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함부로 무시하지 않고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출간 10주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다시 나온 작품이라 지난 판본에 비해 책의 판형도 커졌을 뿐아니라 그림도 더 예뻐진 듯한 느낌이다. 소장가치를 높인 책으로 책 속으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 앨리스라는 소녀와의 모험은 무척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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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시간과 머물러 있는 시간이 있다. 어느 순간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반면, 어떤 순간은 늘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연을 간직하기에 우리는 늘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잊고 싶지 않아서? 다시는 돌아오지 삶을 삶이라서? 같은 시간이 존재하고 있지 않아도 같은 시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겪는 때가 있다. 이 소설에서처럼. 어느 한 순간이 머물러 있는 것처럼. 혹은 머물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시간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나오라고 불리는 한 소녀가 있다. 열여섯 살의 소녀는 교복을 입고 메이드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일기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있다. 아니 지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누군가를 위해. 사람은 마음 속에 있는 고통을 잊기 위해 글로 나타내는 수가 있다. 이 소녀 나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는 나오가 있고, 나오의 일기장을 주운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루스. 소설가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비닐봉지 하나를 주웠다. 쓰레기 봉지일거라고 생각하고 주어왔지만, 여러 겹의 비닐 봉지 속에는 프랑스어로 쓰여진 책 한 권이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이다. 살펴보니 책 내용은 뜯어져 있고 그 속엔 나오의 일기가 쓰여져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 소녀의 힘겨운 적응기라고 해야겠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아이들은 그 도시에서도 학교에서도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직장이 없는 아빠, 멍하게 앉아 있는 엄마의 가난한 집 아이가 되었다면 더더욱. 아이들은 나오를 꼬집고 찌르는등 심한 학대를 하는 이지메를 한다. 견딜수 없었던 아이는 몇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다. 나오가 죽음을 생각했던 건 아빠 때문일 수도 있다. 지하철에 몸을 내던졌던 아빠.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던 아빠는 집 밖엘 나가지 않았다. 할수없이 엄마가 직장을 구해 나갔다. 나오는 아빠와 있는 시간이 좋았지만, 아이들의 이지메를 견디기 힘들다.

 

소설가 루스가 나오의 일기장을 한 편씩 읽고, 일기장의 나오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나오는 할머니와 아빠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루스와 올리버가 읽는 식이다. 나오의 이야기가 안타까와 사실여부를 확인하고자 루스는 인터넷에 작가였다는 나오의 지코 할머니를 검색하며 어떻게든 나오를 찾고 싶어한다. 지구 반대편에 어떤 소녀가 끝없이 자살을 꿈꾸며 자기를 보아달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루스는 나오의 지코 할머니의 유령을 꿈속에서 만나고, 방학 동안에 변화가 필요했던 나오는 비구니로 있던 지코 할머니의 절에 가 있으면서 아빠의 외삼촌이자 지코 할머니의 아들인 하루키 1번의 유령을 꿈 속에서 만난다. 꿈속에서 만난 사람은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한번도 사진을 보지 못했던 지코 할머니를 보았던 루스도, 하루키 1번의 유령을 만나 각자가 가진 진실을 듣는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누군가 한두 명은 있어야 한다. 만약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글로 자신의 마음을 쏟아낼 수 있어야 한다. 쏟아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으므로. 나오도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것이리라.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랐을 것이므로.

 

일본 도쿄에 있었던 나오의 일기장이 어떻게 해서 루스가 있는 캐나다로 오게 되었을까. 루스는 그게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오가 말한 나오의 가족들을 인터넷에 검색했던 이유가 그들의 생사를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오와 루스의 시공간을 넘어서 연결되어 있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자살과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몸부림, 그런 나오를 구하려는 루스는 어떤 끈으로 이어져 교감을 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너의 안녕을 바라는, 나를 죽음에서 구해달라는 강한 염원이었다.

 

하루키 1번의 자살, 아빠의 자살 시도. 더이상 이지메를 겪지 않으려 자살을 선택하려는 나오. 그럼에도 자살과 죽음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고픈 강한 몸부림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말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나를 구해달라는 강한 몸부림이었다. 그저 감상적인 소설일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각자의 죽음에 직면한 감정들을 엿보았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죽음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답은 많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진실을 알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나오가 하루키 1번을, 나오가 하루키 2번인 아빠를 이해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를 바라봐 줄 사람과의 온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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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맘 2017-04-04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삶은 살아야하니...그 몸부림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Breeze 2017-04-07 08:48   좋아요 0 | URL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싶었던 거였어요. 어떻게든 삶을 살아야하니까요. 감사합니다. ^^
 
시가 나를 안아 준다 -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
신현림 엮음 / 판미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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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할때 시 한 편을 읽고, 하루를 마감할 때 시 한 편을 읽는다면 우리는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을까. 지치고 힘들때 읽는 시 한 편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다. 짧은 시에서 가슴을 치듯 다가오는 느낌에 우리는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쓰게 되었을까. 그 생각을 하다보면 시는 더 깊이 스며든다.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교감이 되어 스며드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최근 시집을 자주 읽게 되었다. 한 장소에 앉아서 한 권의 시집을 다 읽는게 아니라, 어딘가로 이동할 때 비행기 안에서 혹은 차 안에서 시집을 꺼내어 읽었다. 한두 편씩 읽다보면 어느새 한 권의 시집을 다 읽고 첫 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다.한 시인의 시집은 시인의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반면, 여러 시인의 시가 수록된 시집은 다양한 감성을 느끼게 된다. 엮은 시집의 대부분은 몇 가지의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다. 신현림이 고른 이 시집에서는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엄선한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시는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시의 느낌과 비슷한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준다. 그림을 바라보며 시를 읽는다.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몇 번이고 읽다가 장을 넘긴다. 다른 책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시도 좋았지만, 내게 생소한 우리나라 시인의 시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 중 제일 좋았던 시가 김광규 시인의 「밤눈」이라는 시였다. 얼마나 좋던지, 몇번이고 다시 읽은 시였다.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이 시가 왜 좋았느냐고 물어보면 특별히 대답할 말이 없다. 하지만 모든 시어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두근거릴 정도의 떨림이 있었다. 겨울밤의 그 시린 풍경이 가슴을 데워주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 시를 제대로 이해했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가슴을 채워주는 그 느낌때문에 김광규 시인의 다른 시가 궁금해졌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도 참 좋아하는데, 여기에 수록된 시는 「발작」이란 시였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는 시다.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奇蹟(기적) 아녀

 

누군가는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장을 간다고 했다. 북적북적한 사람들 틈 사이로 걸어가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활기에 저절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시인은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장소인 터미널을 떠올렸나 보다. 삶이 무료할때, 쓸쓸할 때 훌쩍 떠났다 돌아오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시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기억으로 견딜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밤의 고요한 시간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 사랑과 감사에 대하여, 그리고 희망에 대한 시를 보며 마음을 위안을 얻는다. 시를 읽으며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잠못 드는 시간, 여러가지 일로 마음이 어지러울때 읽으면 좋을 시다. 마음을 적시고 영혼을 적시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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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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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그저 글을 통해 보는 세상이 좋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 내가 살아보고 싶은 세상. 이 모든 것들이 책 속에 있었다. 때로는 아파하고, 상처로 인해 고통받을 때 위로가 되어주는 글들의 집합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상처를 잊었고, 다른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삶의 방향을 배웠다. 책을 읽은지 삼십 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 수두룩하고, 읽어야 할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제일 좋았던 책은 역시 내가 읽었던 책이 아닐까. 누군가가 책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을 적은 글에 의견을 표할 수 있는 것도 읽은 책인 경우 할 말이 더 많은 건 당연하다. 그리고 같은 책에 대한 공감이 사람을 더 가깝게도 만든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면서도 누군가가 좋았다는 책 목록을 보게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읽었던 책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메모를 하게 된다.

 

아예 메모장을 옆에 두고 책 읽기를 시작했다. 과연 뇌과학자가 읽은 책은 어떤 책일까. 독자에게 소개할 만큼 좋은 책일 것이며, 여러 사람이 두루두루 읽을 수 있는 보편적인 책이어야 할텐데. 책의 첫장에서부터 마음에 들었다. 어떤 글이든 첫 문장이 가장 중요한 법인데, 역시 그의 독서 이력이 먼저 나오게 되니 괜시리 반가웠다. 저자는 신화에서부터 철학, 역사, 과학 서적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않은 책도 소개할 정도로 저자의 다양한 독서에 감탄하게 되는데, 얼마전에 읽었던 호메로스의 『오딧세우스』에서부터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와 그가 읽은 책들의 기억을 함께 한다.

 

우리는 소위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질문하는 것 보다는 답변을 내놓는데 급급하다. 어떤 것을 질문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는 때가 많다. 내가 읽었던 책 이야기도 결국 말하지 못하는 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질문에 대한 준비 작업일 수있다. 언젠가 기계가 질문할 수 있는 위험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보스트룀 교수의 말처럼.

 

꽤 여러 권의 책을 소개하는데, 나는 내가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 중 꼭 읽어보고 싶은 책 몇 권을 메모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가 그 중 한 권인데, 궁금했지만 읽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도서였다가 저자의 글을 보고는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과학 분야에 젬병인 까닭에 소설이어도 이해하지 못한 면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소개글을 보니 꽤 흥미를 돋우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과학 기술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이라는 건 둘째 치고 공상과학 소설이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소설이라고 해야겠다.

 

 

오래전에 영화로도 보았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영화를 보았을때나 원작으로 읽었을 때에도 그저 그 스토리를 따라가느라 정신없이 읽었던 듯 한데, 이 책에서 새로운 걸발견했다. 물론 움베르트 에코가 기호학자이자 중세학자라는 건 책을 읽은 다음이었다. 중세를 연구한 학자답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이 실제로도 존재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 속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역사서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 또한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책은 또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인간의 뇌가 몰입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눈은 글을 읽지만, 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읽는 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책. (74페이지)

 

내가 메모한 책 중에서 전부터 꼭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던 책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아직까지 읽지 못했는데, 역시 저자는 이 책을 소개한다. 어렵지만 이해하기 불가능하지 않다고 표현했다. 또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 『축복받은 집』에 대한 것도 말했다. 줌파 라히리의 책은 궁금했으나 다른 책들을 읽느라 놓친 책인데, 이웃 분도 왜 그 책을 아직까지 읽지 않았느냐며 강력히 권한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내게 익숙한 작가의 책을 먼저 선택하게 되는데 습관적으로 이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느냐에 관심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생각지 못했던 책의 발견이며, 잊고 있었던 책의 새로운 발견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속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일이다. 나 혼자 책을 읽는 것하고 책을 읽는 이웃들과 소통하며 책을 읽는 일은 천지차이다. 다양한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한 좋은 책을 선별해서 읽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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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3-30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눈은 글을 읽지만, 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책만큼 독자의 상상을 풍부하게 불러일으키는 사물도 드문 듯하고요.

저는 다른 책을 통해서 여러 번 ‘어떤 책‘을 거듭 소개받는 경우에, 결국 나중에 언젠가는 그 책을 붙잡고 읽게 되는 경우가 제법 많았던 듯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그런 책 가운데 한 권인데, 읽고 나서도 정말 오래도록 계속해서 그 책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답니다. 지금도 가끔씩 펼쳐보는데, 언젠가는 다른 번역자를 통해서 그 책을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답니다.(저는 김종건 교수님이 번역한 제4개역판으로 읽었는데, 동서문화사에서 펴낸 김성숙 교수님의 번역으로 읽으면 그 책이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Breeze 2017-03-30 13:10   좋아요 1 | URL
어문학사에서 나온 율리시스 보려고 했었거든요. 동서문학사 판도 괜찮으려나요? 율리시스는 전부터 읽고 싶었던 작품이어서 역시 이번에도 읽고 싶은 마음에 메모했습니다.
다른 번역으로 읽으면 또 새로운 느낌이 있더라고요. ^^
 
수요일에 하자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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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가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위로를 받게 된다. 내용이 조금 약해도 음악만으로도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게 음악 영화다. 그래서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것만을 위해 음악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 음악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에 따라 음악을 만들고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다보면 오히려 음악이 더 사랑받는 경우도 있다. 배우 박중훈이 주연했던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도, 정진영이 주연했던 「즐거운 인생」 이란 영화도 마찬가지다. 별볼일 없는 사람들, 사는게 바빠 그 좋아하는 음악도 포기하고 사는데, 밴드를 하게 되는 어떤 계기가 있다면 하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밴드 이야기를 다뤄서인지 영화 「즐거운 인생」이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음악만 하며 사는게 이토록 힘든 일인가. 음악이 좋아 밴드를 하지만, 돈이 되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처럼 기획사에서 미리부터 준비된 아이돌들이 활동하는 시대, 중년의 아마추어 밴드가 성공하기란 정말 힘들다. 그럼에도 음악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포기하지 못한다. 생업은 그대로 유지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 연습하며 지역 축제에 나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밴드 '수요일에 하자'도 그렇게 탄생되었다.

 

밴드의 구성원들을 보면 하나같이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유일한 대학 졸업자 기타리스트 리콰자. 대장암 수술을 마친 후 딸과 함께 젓가락 행진곡을 치는 클래식을 전공한 키보디스트 라피노.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기타리스트 니키타. 마치 운명처럼 베이스를 쳐야하는 배이수라는 이름을 가진 베이시스트. 사업을 말아 먹고 경찰에 쫓겨다니는 드러머 박타동. 룸에서 노래를 부르던 보컬 김미선이 이들의 멤버다. 리콰자야 나이트클럽에서 간간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와서 그나마 실력이 녹슬지 않았고, 사업을 한답시고 음악과는 담을 쌓았던 박타동은 아직 박자감이 살아나지 않았다. 클래식의 영향때문에 밴드 특유의 높낮이를 내지 못하는 라피노에게 리콰자는 재즈 음악을 들어보라고 하기도 한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열정이 살아 숨쉰다. 좌충우돌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모여 제대로 된 밴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들의 열정은 젊은이들 못지 않다. 일주일에 한번씩 수요일에 꼬박꼬박 모여 연습을 한다. 밴드 연습을 하기전 음악에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술을 마시는 건 기본이다. 왜 뮤지션들이 대마초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마 술과 담배에 취하지 않으면 음악이 너무 밋밋하게 여겨지는 탓일 것이다.

 

몇 년전에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를 간 적이 있다. 다른 가수들이 두시간 정도를 하는 반면 그들의 콘서트는 네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콘서트의 마지막에서 그들은 소주를 마시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까지 울컥해지는 기분이었다. 무대에서의 열기, 콘서트에 온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감동의 메시지는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책을 읽는 독자가 직접 그들이 밴드 연습을 하는 '낙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현장에서 그들의 음악을 듣고 함께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랄까. 보통 사람들과는 적응하지 못할지 모르나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인 사람들이었다. 음악이 있어 그들은 행복하고 배고파도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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