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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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바쁘지 않으면 인터넷 서점의 신간 서적을 검색한다. 책들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발견한게 작가정신에서 나온 소설 몇 권이었다.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 제목을 살펴보고는 작가정신에서 새로운 소설 몇 권을 발간했나보다 이렇게 생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십여 년 전에 나온 소설향 시리즈가 새롭게 특별판으로 발간된 것이었다. 소설향 시리즈는 20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로 시집 크기의 작은 사이즈에 가격도 시집 가격과 비슷한 팔천원 대다. 가방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녀도 부피감이 없어 어디든 가지고 다니기 좋은 책이다. 다만 함부로 다뤘다가는 찢길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책은 소중하니까.

 

퇴근후 집에 들어가면서 항상 우편함을 살피고 들어가는데, 만약 우리 가족에게 온 우편물이 아니면 오배송함에 넣어두곤 한다. 하지만 다른 우편물들과 끼어 들어왔을 때는 생각이 나면 밖에 나갈때 우편함에 넣어두는데, 만일 손글씨로 된 편지가 왔다면 나도 모르게 읽게 될까. 아니, 모르고 개봉했다면, 그 편지를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몇 달 뒤에 편지를 보낸 소년의 엄마가 또 편지를 보냈다면 말이다.

 

'죽은 올빼미 농장'이라는 곳에 기거하고 있던 소년이 형에게 보낸 편지였다. 형의 안부를 묻고,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기거한다는. 아파트에 기거하고 있는 '나'는 '인형'과 함께 휴가를 받아 그 농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주소를 들고 아무리 찾아봐도,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올빼미 농장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룻밤을 묵고 다시 찾아보았다. 주소지를 샅샅이 뒤져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핑크색 대야 등이 들샘에 파묻힌 상태였다. 함께 간 인형은 그곳이 섬찟하다고 했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만 있었던 곳이었다.

 

소설 속 '나'는 작사가로 보인다. 프러덕션에서 계약금을 받고 신인 가수의 노래에 사용할 가사를 쓰는 작가다. 작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어렸을 때 들었던 자장가의 가사를 기억하려 애쓴다. 근데 이상한게 함께 살고 있는 인형 또한 그 가사를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사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인형의 존재가 의심스러웠다. 처음엔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는 점과 인형과 대화할 때 대화에 사용하는 큰따옴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주변 인물이라고는 프러덕션의 김실장과 그의 친구 민, 작곡을 하는 여성스러운 손자가 그 인물이다. '나'가 민의 아파트에 찾아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도시의 숲을 거닐던 장면이 떠오른다. 폐허가 된 아파트를 찾아 가 민은 사진을 찍는다.

 

이 장소에서 민이 하는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무너져가는 아파트 건물이 죽은 올빼미 농장과 같다는 말이었다. 죽어가는 아파트, 이미 죽은 들샘이 있던 올빼미 농장. 그리고 재개발이 들어간다는 소식과 함께 아파트 건물 스스로가 곰팡이를 피어올린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벽은 속삭인다』라는 책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건물 스스로 죽어간다니. 건물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인형과 함께 어렸을 때 들었던 자장가의 가사를 찾아내는 일, 자장가의 가사 전체를 인형과 함께 기억해내고 그걸 신인가수 해이리에게 부르게 했다. 그 전에 몇 소절을 민에게 들려주었지만, 결국 추억을 가진 자만이 자장가의 가사를 기억해냈을 뿐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회색빛 건물 아파트.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우리의 대부분도 여전히 아파트 숲에서 살아가고 거기에서 생을 다할 지도 모른다.

 

백민석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했더니, 몇 년전에 읽었던 그의 단편집 『혀끝의 남자』의 작가였다. 10년간의 절필 후에 첫 책이라고 했었고, 『죽은 올빼미 농장』은 절필 하기전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다. 이 책 개정판이 작가에게는 많은 의미가 있는 책일 것 같았다. 다른 소설향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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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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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의 모중석 스릴러 클럽 시리즈를 상당히 좋아한다. 스릴러 중에서도 수작들이 많아 거의 챙겨보고 있는데, 이 책을 받아들고는 로리 로이라는 작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의문이 든 게 사실이다. 에드거상 최우수신인상 수상작이라고도 하는데 작가를 모르니 다른 책들에서 살짝 밀려나기도 했다. 작가들도 사람과의 관계와 같아서 모르는 작가의 경우 주저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로리 로이의 작품이 그랬다. 하지만 읽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했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에 긴장하며 읽게 되었다. 오죽하면 책을 읽다가 잠을 잤는데, 꿈까지 꾸었을까. 누군가 있을 것만 같은,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그런 불안감 혹은 공포였다.

 

처음엔 책을 읽다가, 이 소설이 왜 스릴러인가 의심스러웠다. 전혀 스릴러 같지 않아서 말이다. 다 읽고나서도 스릴러가 맞는가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의 등장만으로도 불안감과 공포감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 형사가 주인공이 아닌, 그렇다고 살인범의 심리가 제대로 그려지지도 않은 한 가족의 이야기였을 뿐이었으니.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이 소설이 왜 스릴러인가.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바로 스릴러였음을 알게 되었다.  

 

1965년, 디트로이트에서 캔자스로 향하는 한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 아서가 25년만에야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곳, 벤트로드였다. 나에게 캔자스는 토네이도때문에 집이 통째로 날아간  『오즈의 마법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일까. 어두운 밤 아빠 아서와 엄마 실리어가 각자의 차량에 아이들을 싣고 오던 중 어떤 물체가 따라오는데 토네이도가 연상될 만큼 강한 바람이 시야를 가렸던 장면이 저절로 연상되었다. 누군가를 치었을 수도 있지만, 그저 텀블위드(회전초. 바람이 날려 굴러다니는 말라붙은 식물 따위의 덩어리)려니 했다. 캔자스로 돌아온 때부터 어쩐지 이 곳이 심상찮다. 무슨 일이 그들 가족에게 기다리고 있을까. 아빠 아서는 25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서와 실리어 부부, 일레인과 대니얼, 에비네 가족을 반겨주는 사람은 리사 할머니와 레이 고모부, 루스 고모다. 여기에서 레이 고모부와 루스 고모는 이들 가족에게 특히 중요한 인물인데 그들은 반겨주는 모양새부터 어쩐지 불안감을 조성한다. 레이 고모부에게서는 술냄새가 나고 실리어를 바라보는 눈빛엔 어쩐지 엄마를 훑어보는 느낌이다. 엄마는 그 눈빛이 무척 싫었다. 살집이 없이 창백한 피부를 갖고 있는 루스 고모. 루스 고모는 불안해보이지만 가족들을 반기며 힘껏 안아주었다. 에비의 외모는 키가 작고 금발 머리를 가졌는데, 이 소설에서 에비의 외모는 큰 의미를 가진다. 죽은 이브 고모의 외모와 꼭 닮은 것도 있지만, 비슷한 외모의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서와 실리어 가족이 이사오고서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실종된 줄리앤 로비슨을 레이 고모부가 죽였을 거라고 의심한 것이다. 이십여 년전에 이브 고모를 죽였을 거라고도 했다. 술을 마시는 레이 고모부. 불안에 떠는 루스 고모. 이브 고모는 누가 죽였는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의문이다. 아서도 이브 고모의 죽음과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을텐데 쉽게 드러나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로하여금 불안감만 조성한다. 그러던 와중에 레이 고모부가 루스 고모에게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아서는 루스 고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때 아서는 레이 고모부를 심하게 때렸는데, 가족들은 그가 나타날까봐 두렵다. 

 

1960년대의 여성의 지위는 지금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고, 마을의 신부마저 아내는 남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루스 고모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아서와 루스 고모를 데려가려는 레이 고모부의 등장이 위태위태하다. 집안의 온갖 창문과 현관문의 잠금 장치를 잠궜다. 혹시라도 레이 고모부가 들어올까봐 아서는 외출도 자제할 정도였다. 여기에서 루스 고모의 임신 사실이 드러났고, 가족들은 레이 고모부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려 든다. 어떻게든 루스 고모에게서 떼어놓고 싶기 때문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캔자스로 이동해왔기 때문일까. 대니얼과 에비에겐 친구가 없었다. 키가 작아 놀림받던 에비는 학교에서도 친구들 만들지 못했고, 죽은 이브 고모의 드레스를 입어보며 집안에서만 있었다. 친구가 없었던만큼 이브 고모에게 집착했다고 해야겠다. 편하게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곤 이브 고모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브 고모와 레이 고모부가 함께 직은 사진도 발견했고, 그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것부터가 불안했다. 레이 고모부의 시선이 에비에게 머무는 게 두려웠고, 엄마를 바라보는 레이 고모부의 시선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그가 살인범인 것일까. 혹시 이브 고모마저 죽게한 것일까. 임신한 사실을 안 레이 고모부가 루스 고모를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할 것인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인 누군가가 살인범이고, 이브 고모의 죽음의 진실까지 드러나긴 했다. 레이 고모부가 라이플을 들고 루스 고모를 찾으러왔던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극도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마치 내가 집안에 갇혀있는 듯 했고, 금방이라도 레이 고모부가 쳐들어올 것만 같았다.

 

작가가 왜 에드거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는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작품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만큼 작가의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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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05-18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중석 시리즈 광팬인데 이 리뷰보니 굉장히 읽고싶어지네요 ^^

Breeze 2017-06-08 17:01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모중석 시리즈는 역시 믿고 볼만 하지요. ^^
 
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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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난 뒤 개츠비는 왜 위대한 개츠비인 것인가. 나 또한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후 든 의문이 그거였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었더니, 곁에서 같은 질문을 건네 받고 한참 고민에 빠졌다. 정확한 해답을 찾기 위해 개봉 당시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찾아 보았다. 한 권의 책과 동명 원작의 영화를 보는데 하루를 할애했다.

 

새움 출판사에서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자는 책의 뒷면에 오역 지적 역자 노트를 별도로 담았다. 전체적인 스토리에 집중하는 나는 큰 영향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오역이라고 칭할 만한 부분이 보이기는 한다. 번역자는 김욱동 번역본과 김영하 번역본을 비교하며 오역에 대해 지적했다. 나는 김영하 번역본을 먼저 읽고 이정서의 번역본을 나중에 읽었는데, 약간은 건조한 김영하의 번역본에 비해 이정서의 번역본이 더 감성적으로 다가왔음을 말하고 싶다.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개츠비. 그는 소위 찢어지게 가난했다. 가난한 그가 신분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한 부유한 사업가를 도우며 자신의 이름을 제임스 개츠에서 제이 개츠비로 새롭게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과거를 잊고 새로운 개츠비로 태어나고 싶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부풀었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에게 명망있는 가문의 여성을 만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인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제이 개츠비가 데이지를 만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분 상승의 꿈,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사랑. 하지만 전쟁은 개츠비를 데려갔고, 사랑에 목말라했던 데이지는 개츠비를 기다리지 못했다. 조상 대대로 돈이 많은 톰 뷰캐넌과 결혼한 건 당연했다. 그런 데이지를 오랜 세월동안 사랑한 건 개츠비의 몫이었다.

 

책의 화자 닉 캐러웨이가 웨스트 에그로 이사와서 웨스트 에그보다 더 상류사회인 이스트 웨그에 사는 톰 뷰캐넌과 데이지를 방문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자신의 옆 집의 커다란 저택에서는 매일 파티가 이루어진다. 초대받지 않아도 마음대로 들어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 수 있는 곳이 개츠비의 저택이었다. 개츠비가 사람을 죽였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저 그의 부를 누리면 그만이라는 사람이 허다했다. 처음으로 개츠비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닉 캐러웨이는 그곳에서 데이지의 저택에서 보았던 조던 베이커 양을 만났다. 그녀로부터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던 베이커 양의 이야기를 들은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가 왜 그곳에 집을 샀는지 이해가 되었다. 파티가 끝난 후 이스트 에그가 바라보이는 곳의 무언가를 향해 손을 내밀었던 장면을 기억했다. 초록색 불빛을 향해 손을 내밀었던 몸짓의 의미를 말이다. 그 장소에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기를, 자신에게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랬던 한 남자의 염원을 말이다.

 

그의 사랑을 이해했던 탓인가. 아마도 뉴욕에서 함께했던 톰의 술 파티를 목격해서 일까.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가 원했던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개츠비의 부탁으로 데이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던 닉 캐러웨이는 그녀가 올때까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한아름의 꽃을 가져오는가 하면 잔디를 깎는다 부산을 떨었다. 안절부절 못했다고 하는게 옳을 정도였다.

 

 

 

소설 속에서나 영화속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이 하나 있다. 개츠비와 다시 만난 데이지가 개츠비의 부를 확인하고, 그의 방에 들어서서 셔츠를 집어 침대에 던지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내뱉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슬프게 만들어요.' (153페이지) 이 얼마나 속물적인 발언인가. 이 한 마디에 데이지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부에 대한 욕망. 사랑도 한낱 부가 없으면 휴지조각처럼 흩어지고 말 것임을 보여주는 말이었던 것이다. 개츠비를 다시 만나 사랑해 겨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부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고, 그게 개츠비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얼마나 차갑게 돌아섰던가. 개츠비가 진정으로 필요로 할 때 아무도 그의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진 부를 마음껏 누렸던 사람들, 어느 누구하나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오로지 데이지 만을 바라보았던 개츠비에 대한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아버릴 수 있는 사람이 또한 데이지였다. 돈에 약한, 돈때문에 사랑한다고 믿은. 과연 그녀에게 개츠비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기나 했었을까.

 

그런 데이지임에도 끝까지 데이지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았던 개츠비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자신의 야망마저 버릴 수 있었던 그였다. 그의 죽음은 얼마나 허망한가. 그토록 사랑한다고 믿었던, 이제는 온통 자신과 함께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그저 한 줌의 공기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왜 고전을 읽는가. 작품이 쓰여진지 100년이 넘어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 작품들에서 우리의 본모습을 발견함이 아닐까. 이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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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7-06-07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Breeze 2017-06-08 17: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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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십여년이 지난 사건에서의 죽음이라면 가족만이 기억하지 않을까. 1980년 부산에서 일어난 '부림 사건'을 영화화한 「변호인」이 개봉되었었다. 그 영화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가. 그 영화를 떠올리게 했던 소설이 조완선의 『코뿔소를 보여주마』다. 1980년대는 그랬다. 과도한 충성이 죄 없는 자들을 가두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공안부 검사 출신의 변호사 장기국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이메일로 장기국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배달되고, 그의 시체가 있는 곳을 친절히 알려주기까지 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기자 출신의 시사 평론가가 실종되었다. 그는 장기국과 함께 '샛별회'라는 이름을 만들어 죄 없는 사람들을 엮어 죽음에 이르게 한 자다.

 

장기국과 백인찬의 실종과 죽음에서 드러난 증거들은 그를 좇는 경찰들과 검사에게 그들이 '샛별회'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샛별회'는 배종관, 고석만, 손기출 등 3인이 결성한 반국가 단체라고 규정짓고 그들을 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사건이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었을 때 드러난 정황이라고는 단체의 『신곡』 속의 문장과 대학 강사였던 배종관의 논문집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죽음의 신 카론과 이집트 신화의 '사자의 서'에서 죽은자를 심판할 때의 이비누스 등의 이름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검사 홍준혁, 경찰 최두식 반장, 범죄심리학자 오 교수, 지방신문 기자 송형진이 이들의 죽음과 사건을 좇는다. 각자의 아픔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사건을 조사하며 지난 날의 아픔을 회상하는 식이었다. 경찰의 곤봉에 맞아 죽음 아버지를 둔 최 반장, 시국 사건으로 수배를 받던 남자를 사랑했던 오 교수, 어렸을 때 연이어 죽어 친척들에게 사람 취급 받지 못하며 자라 성공에 눈이 먼 홍 검사 등 그들의 면면이 '샛별회'에 연루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소위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실종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 장기국과 백민찬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죄 없는 자들에게 사건을 엮어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반면 샛별회 사건으로 연루된 배종관, 고석만, 손기출 등은 교도소에서 고문으로 죽거나 단식으로 죽었고, 출소후 정신착란으로 올가미에 목을 매달아 모두 죽었다. 그들의 자식들은 어땠을까.

 

죽은 자들을 납치하고 죽였던 그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메시지 하나였다. 아무도 죽은 이들을 기억해주지 못하는 세상.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죄 지은 그들을 단죄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들을 꼭 죽여야 했을까. 또 한 사람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방조한 이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샛별회 사건을 주도했던 자들이 너무도 싫었고 억울했겠지만 꼭 이런 식이어야 했을까. 이런 방법 밖에 없었을까. 소설로 나타난 살인 예고를 보면 끔찍함을 금할 수없다. 우리가 소설을 읽지만 소설로 살인을 예고하고, 누군가에게 보라고 나타내기까지 하다니. 물론 소설이라 가능했겠지만 동조할 수 없는 부분도 꽤 많았다.  

 

초반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지만 중반부에 접어들수록 집중하여 읽게 되었다. 더불어 작가의 다른 소설도 궁금해졌다. 역사 속 사건을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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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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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바타유의 자전적 소설 『눈 이야기』를 읽고난 뒤 어떻게 하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놀라움을 뒤로 하고 다음 작품을 펼쳐들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거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폈다. 표지 또한 우리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고 있었다. 살집이 없는 창백한 피부의 아찔한 나신이 그려져 있는 표지였다. 서문에서 말했다시피 1935년에 쓰여졌으나 역사적인 사건때문에 출간되지 못하다가 친구들의 권유에 의해 출간된 작품이다. 이 작품 또한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었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작가의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는 트로프만을 내세워 한 남자의 격정과 욕망, 나치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을 암시한 작품이었다.

 

소설에서 이름이 나타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트로프만이 사랑하는 여자이나 그 여자와는 제대로 된 성행위를 할 수 없었던 도로테아를 가리켜 디르티(Dirty)라고 부른다. 런던의 더러운 자들이 모인 술집에서 역시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디르티를 사랑하게 되는 트로프만. 사보이 호텔에 취한 채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보이와 하녀가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줌을 누는 여인이 디르티다. 그런데도 트로프만은 디르트에게서 순수를 발견했다고 표현했다. 가장 더러운 곳에서의 순진함이라. 어떻게 보면 부조리하다고 느껴지지만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처럼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어쩌면 쥐가 지나다녔을지도 모르는 바닥에 맨몸으로 누워있는 디르트에게서 순수를 발견했듯, 사랑하는 여자지만 디르티와 제대로 된 성관계를 할 수 없었던 트로프만은 절망한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죽음에서 찾았을까. 시체를 보고 욕망을 느꼈고, 실제로 시체에게 매력을 느끼는 시간자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라자르는 그의 앞에서 시체처럼 누워 그의 욕망을 채우게 했다. 그 자신이 죽어 있는 시체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데도 도로테아와 라자르, 크세니에 이르기까지 다른 여성들과 폭음을 했다.

 

당신은 문학적인 사건에 말려든 거야. 당신은 사드를 읽었음에 틀림없어. 사드가 굉장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지. 사드를 찬미하는 자들은 사기꾼이야. 알아들어? 사기꾼이라고....... (101페이지)

 

 

 

소설은 『눈 이야기』와 다른 듯하면서도 너무도 똑같다. 변태적인 성향과 자신이 진짜 사랑하는 여자에게서는 발기 불능이 되어 결국 죽은자들 위에서 성관계를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정상의 사람과는 할 수 없었던, 창녀와 시체에게서만 가능하다는 변태적인 성향이 이해되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그를 이해하려 했다고 말할 수밖에.

 

우리는 모두 죽는다. 소설 속 곧 일어날 전쟁속에서 죽은 자들도 있고, 병으로 죽은 자들, 스스로 죽은 자들도 있다. 조르주 바타유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소설 속 문장에서처럼 '죽음을 만나고 싶은 욕망에 홀린' 자 였던가.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자들과 이미 죽은 자들위에서의 철학적 고뇌였던가.

 

어렸을 때 나는 태양을 좋아했다. 두 눈을 감으면 눈꺼풀 너머의 태양은 붉은색이었다. 태양은 무시무시했고, 폭발할 것 같았다. 태양이 폭발하여 생명을 죽이는 것처럼, 아스팔트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보다 더 태양다운 것이 있을까?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빛에 취하고 말았다. (157페이지)

 

그저 제목이 시사하는 바를 생각해본다. 전쟁속 하늘의 푸른 빛에 드러난 세상들, 자신의 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숨기려고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비틀려 나타났던 것일까. 아니면 그는 그저 트로프만이라는 이름처럼 잉여인간인 것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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