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야마다 모모코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직장, 첫 아이를 낳고 두 달간의 출산 휴가를 끝내고 직장에 출근해야 했을 때 전에 입던 옷이 하나도 맞지 않아 새 옷을 구매했었다. 어떤 이들은 아이 낳고 나면 늘었던 몸무게가 거의 원상태로 돌아왔다던데, 나는 출산후 6개월이 지나서야 제 몸무게가 돌아왔다. 물론 임신중독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체중이 늘긴 했었다.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출산과 육아는 정말 힘들었다. 젖을 줄때도, 아이의 대변을 치우는 것도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거였다. 매 시간마다 일어나 우는 아이, 젖을 물려보지만 또 금방 울어 세 시간후 수유는 맞지도 않은 말이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야마다 모모코의 생생 육아 체험기는 우리를 놀랍게 했다. 이처럼 적나라하게 나타내기도 힘들 것 같았다. 확연하게 드러난 배의 임신선, 그 모습을 찍은 남편의 사진, 연예인들의 만삭 사진은 일반인에게는 꿈일 뿐인가.

 

 

한밤중 수유를 하다 잠든 엄마, 아이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어 발에 대한 감각이 날로 늘어간다는 고백은 웃음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안타까운 면도 없잖아있지만, 책 표지나 아래 사진을 보라. 발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책의 뒷표지는 앞표지의 뒷모습을 그려냈는데, 저 와중에 방구까지 뿡 끼면서 TV를 보며 음식을 먹고 있다. 물론 발로 아이를 흔들어주는 건 기본. 엄마가 될수록 발재간이 점점 늘어가나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된 그림을 보며 책을 읽으며 낄낄거렸더니 옆에서 나를 보던 딸아이는 그렇게 재미있느냐며 책 내용을 궁금해했다. 나중에 꼭 보라고 하며 다음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는 출산후 부터 한 살이 될 때까지의 1년 동안의 생활을 리얼하게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림 한 편에 짤막한 설명이 있을 뿐인데도 폭풍 공감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가장 큰 고통이 잠을 제대로 못자는 것임에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다보면 그 수고로움은 금방 잊는다.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며 아이가 자는 동안에 잠깐 자다보니 남편 히데가 왔을 때 가슴노출하는 건 기본에 가깝다. 점점 여성을 잃어가고 육아에 지친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모모코처럼은 안했던 것 같은데 하면서 웃었다. 모모코의 일러스트를 보면서 웃긴 사연 또 하나는 화장실에서 일을 볼때도 우는 아이를 달래려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보는 것이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이런 경험 대부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윗 사진은 내 경험과 너무 비슷해서 사진을 가져왔다. 둘째 아이를 낳은 후 새로운 직장을 다니기 위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기로 하고 유치원을 보낸 첫날 집앞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고 한참을 울었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고이는데, 복직을 앞둔 모모코의 심정이 이해되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한가한 시간이 직장이 있을 때라고 우스갯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엄마들은 퇴근후부터 잠자는 시간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조금만 버티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는 금새 크고 친구들이 더 좋을 때가 오면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가장 힘든 시기이지만 반대로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닌 가 싶다. 아이가 오로지 엄마만 찾는 시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므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3-26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6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빵 고양이의 비밀
최봉수 지음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갓 짠 신선한 우유와 그 우유를 만든 버터를 이용해 식빵을 만드는 고양이들의 이야기와 고양이들의 휴식 시간에 티타임을 갖는다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렇다 고양이들도 티타임을 즐긴다는 것이다. 티타임을 즐길 준비에 꼭 필요한게 찻잔이다. 아름다운 찻잔, 영국제나 프랑스제면 더욱 좋겠다.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찻잔에 차를 담아 티타임을 즐기면 된다.

 

고양이들의 티타임에 인간들이 초대될 수도 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찻잔을 가지고 와야 한다. 앞서 말한 영국제나 프랑스제 찻잔을 가지고 와야 하며, 추르 등의 간식을 들고 오면 된다. 이때 중요한 사항 하나, 절대 추르를 먼저 꺼내면 안된다. 고양이들이 자칫 흥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르 봉지만 보아도 음식통으로 뛰어가는 고양이와 달리기 해 본적이 있는지. 가다가 멈추면, 앞서 달려가던 고양이는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고 빨리 자신에게로 달려오기를 바란다. 음식통에 짜주면 냠냠 잘도 먹는다. 추르 봉지를 쓰레기통에라도 넣었다면 조심하길. 고양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질지도 모른다. 추르 맛을 다시 보기 위해서다.

 

 

티타임에 초대된 사람들은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서로가 가져온 찻잔을 칭찬하면 된다. 서로의 찻잔을 칭찬하다보면 어느 새 어색함은 저 뒷편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차를 따를 때는 먼저 자신의 찻잔을 채우고 난 뒤 다른 찻잔을 채우면 된다.

 

4분의 3 정도 채우고 우유나 설탕이 필요한지도 묻는다. 잔을 채운 고양이들은 찻잔을 머리 위에 올려두고 온기를 즐긴다.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쏟을 수도 있으니 안전하게 손바닥 위에 올려두기를 권한다.

 

티타임을 마치고 빽빽한 아파트 숲으로 돌아온 사람은 쓸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고양이들에게 초대받았던 티타임이 아련하게 떠오를지도. 그럴 때는 자신의 찻잔을 꺼내 홀로 티타임을 즐겨도 될 일이다. 고양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면서.

 

 

 

그림이 무척 재미있다. 예쁜 찻잔을 좋아하기 때문에 찻잔과 티포트 그림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고양이의 특징이 도도함인데 도도함은 우아함과도 비슷하다.

 

우리집 고양이는 키가 길쭉하게 늘어났을 뿐 많이 뚱뚱하지는 않는데, 아파트에 사는 길냥이들은 제법 뚱뚱해 보였다. 임신했나 싶을 정도로 뚱뚱해 보이는데, 최봉수의 그림에서처럼 뚱냥이들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림이 무척 예쁘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면 고양이들을 싫어했던 사람들도 저절로 예쁘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즈음 2018-03-1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너무 귀여워요~~^^

Breeze 2018-03-19 21:19   좋아요 0 | URL
시리즈로 나와 있어요. 귀엽더라고요. ^^
 
고양이 식당
최봉수 지음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가 먹는 음식들, 건식 사료 외에도 국물이 있는 습식 사료와 마약 간식 추르, 캔, 소시지 등 다양하다. 매일 주는게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간식을 주고는 하는데, 간식을 먹고 입맛을 다시는 고양이를 보면 무척 귀엽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맛난 음식을 먹고 나면 만족감의 표정을 짓고는 하는데 동물도 마찬가지.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서 주방에 있는 사람을 기웃거리고, 추르를 주겠다고 손짓을 하면 자기가 먼저 음식통 앞으로 달려가는 열성을 보인다.

 

고양이 사료를 인터넷에서 주문한다. 잘 몰라서 이것저것 기웃거리게 되는데 살찐 고양이를 위한 다이어트 사료도 준비되어 있었고, 집에만 있는 고양이를 위한 사료도 있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게 생선인데, 사실상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사료에 익숙해져서 생선이 식탁에 나와도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만 맡을 뿐 달려들지는 않는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습관도 정해지는 법인가 보다.

 

 

 

최봉수의 그림책 『고양이 식당』은 뚱냥이들의 어느 날을 담았다. 곰같이 뚱뚱한 고양이들이 턱시도를 차려입고 손님들을 맞는다. 유명한 식당답게 아직 문을 열지 않는 식당 밖은 길게 줄이 서 있다. 식당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부엌에 들어가기 전 고양이 셰프들은 모여서 그루밍을 한다. 꼼꼼하게, 더 깔끔하게. 고양이 셰프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문을 열고 나면 그루밍할 틈도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고양이 셰프들이 요리를 시작한다. 

 

 

 

 

고양이 손님들은 음식이 맛있다며 즐겁게 춤을 춘다. 고양이 식당에 고양이들은 예약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약 손님이 있었다. 예약 손님은 고양이가 아닌 자신을 유명한 음식 평론가라고 말한 미식가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캣닢으로 만든 칵테일과 튀긴 가지에 타르타르 스테이크를 올리고 태운 고양이 수염으로 마무리한 음식이다. 전체적으로 싱거운 음식에 미식가는 소금을 달라고 하고, 소금을 달라는 손님이 처음인 고양이 셰프들은 당황한다. 야심차게 준비한 연어 스테이크를 손님에게 주지만 그는 엣취 하며 재채기를 하고 만다.

 

 

 

 

 

고양이 식당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회라는 만화가 두 편 실려 있는데, 아마도 내가 고양이를 키워서 그런지 무척 흐뭇하게 그림들을 바라보게 된다. 동물을 의인화했다기 보다는 동물 그대로를 표현했다. 고양이들과 사람이 함께 하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고양이들의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는 모양새다. 한데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고양이 식당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 길고양이들이 와서 음식을 먹게 해주는 용어를 고양이 식당이라고들 하나 보다. 고양이 식당을 여는 사람들이었다. 사료 값이 만만치 않을텐데도 기꺼이 고양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그들의 모습이 달리 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하루의 일과. 5시 30분 알람으로 신랑이 잠에서 깬다. 6시쯤 이른 출근을 하고 나면 나는 더 잠을 자다가 6시 30분에 알람을 한번 끄고 7시 알람에야 깨어난다. 여름 같으면 6시 신랑이 출근하고 난뒤 침대에서 책을 뒤적거리지만, 이른 아침이 깜깜한 겨울이면 일어나질 못한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7시에 겨우 일어나 라디오를 켜고 디제이의 멘트와 노래 한 곡쯤 듣고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출근 준비를 하다보면 아침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리고 출근. 사무실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때부터 내 시간이다. 고양이를 몇 번쯤 쓰다듬고 씻은 후 라디오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내 할 일을 시작한다. 일주일에서 5일을 그렇게 생활하고 주말에는 어딘가로 여행을 가거나 오전시간동안 침대에서의 독서를 하기도 한다. 출근을 하는 평일은 왜 그렇게 시간이 더디가는지. 반면 주말 시간은 또 왜그렇게 빨리 흐르는지. 마치 누군가 시계를 빨리 돌려놓은 것만 같다. 시간의 흐름이란 건 마음 먹기에 다른가. 어떤 때는 느리고 어떤 때는 너무 빠르고.

 

저자 사이먼 가필드는 이 책을 시계로부터 시작했다.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계초침 소리에 긴장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시계 초침 소리처럼 크게 들리는 것도 없다.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을 굉장히 중요시 하기 때문에 시간을 자주 확인하지만, 정작 손목 시계를 차고 다니지는 않는다. 휴대폰을 열기만 하면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차원으로 들어선 것이다. 슬프기도 하고 어느 누구도 함께해 주지 못할 시계와의 전쟁이었다. 내 눈엔 시계만 보였다. 관중들의 모습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점점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정신없이 서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31페이지)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말하는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아무 옷도 걸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여자 아이. 흑백 사진에서 여자 아이의 벗은 모습과 두려움에 떠는 모습만 보았었는데, 어느 책에선가 여자 아이의 흉터를 말하는 글을 본후 사진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이 사진으로 닉 우트는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베트남 전의 종전이 앞당겨 졌다고도 표현했다. 미국이 사이공에 네이팜탄을 터트린 순간, 종군기자였던 닉 우트가 도로를 걷고 있다가 사진을 찍었다. 찰나의 시간에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으면 이 사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던지 아주 짧은 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불과 1초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에 찍은 사진 한 장이 전쟁의 참상을 폭로한 것이다(사진 한 장이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중폭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사진은 무고한 어린 아이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지만 그 후 3년이 지나서야 베트남전이 끝나게 된다. (232페이지) 

 

 

 

한 편으로 사진을 찍지 않고 그 여자아이를 챙겼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종군기자였으니 전쟁의 참상을 사진으로 남겨야 할 의무가 있었다. 닉 우트가 사진을 찍은후 신문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전 세계 언론사들은 여성의 전면 누드는 신문에 실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규칙이란 깨기 위해 있는 것이라며 뉴욕 본사를 설득했던 사이공 지국장이 있지 않았다면 이 사진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시간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가. 한 때는 시간을 낭비하며 보낸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대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한번씩 잔소리하는 게 시간이란 한정되어 있으니 잘 계획해 사용하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하는데, 정작 그 시절엔 나도 잘하지 못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관리한다면 자신의 하고자 하는 것에 금방 다다를 것인데, 이게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저자는 시간에 대한 모든 역사를 이론적인 사실만으로 다루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겪은 일과 기사, 혹은 문학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했다. 때로는 쉽고 때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려웠으나 우리가 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각적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실시간보다 약 0.5초 늦다고 한다.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그 신호를 뇌로 보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다는 메시지를 뇌가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그 시간차를 교정하고 유동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겠다고 생각한 후 결심을 하고 그 행동을 실행하여 눈으로 보거나 듣기까지는 항상 생각보다 늦다. 따라서 인간은 늘 지금now보다 뒤에 있으며 절대 지금을 따라잡지 못한다. (429페이지)

 

어쩌면 인간은 항상 시간 뒤에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산다고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늘 뒤늦은 후회를 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때 어땠더라면 하고 만약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위 발췌 문장에서처럼 '인간은 늘 지금보다 뒤에 있으면 절대 지금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말이 조금은 슬프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한낱 미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혼을 했다'라고 시작하는 소설의 첫문장을 읽고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이혼을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쩐지 우울하지 않을까. 삶이 너무 지쳐보이지 않을까. 나이가 들대로 든 남자가 이혼을 하고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우아함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그의 전작 소설만큼의 감성이라면 이 소설에 대해 기대감을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마쓰이에 마사시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소설을 읽고 시골에서 사는 삶을 꿈꾸어 봤으니까. 소설속 주인공 다다시처럼 나도 우아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친구가 아파트 말고 주택에 살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친구가 독특하다고 여겼던 내가 말이다. 상상해 본다. 마흔여덟 살이 된 남자가 이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는 어떤 삶을 꿈꿀까.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근처에 있을 것. 잔디밭이 환하게 펼쳐진 공원이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은 거목이 우뚝 솟았고 놀이기구 따위 없는 살풍경한 공원이 좋겠다. 그리고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할 수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일 것. (13페이지)

 

위 문장과 같은 집을 구하게 되었다. 셋집인데 그가 고쳐도 될 것인가 싶지만, 그는 그가 꾸미고 싶은 대로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집을 고쳐가며 생활하고 있던 그는 전 주인 소노다 씨가 후미라고 이름 붙여준 길고양이가 그와 함께 한다. 우연히 혼자 간 국숫집에서 예전에 알게 되었던 애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의 단독주택과도 가까운 곳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혼도 한 마당에 그녀, 가나와 다시 만남을 이어가고 싶었다. 전화가 아닌 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저녁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녀와 잘해보고 싶었다.  

 

처음엔 그의 삶이 과연 우아한가 싶었다. 혼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아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나. 하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몇 사람의 말대로 우아한 삶을 산다고 하는게 맞았다. 월급이 꽤 되는 출판사에 다니며 고양이와 함께 고요한 삶을 사는 그. 단독주택은 그의 취향대로 조금씩 바뀌어져 갔다. 소노다 씨의 집인데, 그의 취향대로 돈을 들여 집을 꾸며놓고 과연 다른데로 이사하고 싶을까 싶었다. 만약 소노다 씨가 사정이 생겨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단독 주택을 어떻게 할까. 많이 아쉽지 않을까.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주인공들의 나이다. 다다시와 다시 만나는 가나 또한 어리지 않았고, 가나의 아버지는 칠순이 넘었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입원하게 되었고 치매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술후섬망이라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는 다다시가 가나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애틋했다.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도 각기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면서 서로에게 응어리 없이 만족하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167페이지)

 

우리는 누구나 나이가 든다.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있는 세대는 모두 치매를 걱정한다. 주변에서도 부모의 치매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정이 많다. 가나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의 우아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가나를 좋아하는 건 아닐텐데. 그는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불편하기만 했던 아들과도 어느 정도 편해졌다. 나이가 드는 탓일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군가를 표용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이해하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인정하는 일에도. 그가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 든 부모를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과도 같다. 점점 아파올 것이고, 기억을 잃어가고. 현재보다는 지난 날들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지나간 삶이야 어쩌지 못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잔잔한 파문은 어느새 짙은 여운을 남겼다. 짙은 여운이 부유했다. 머릿속에 잔상처럼 오래도록 남아있을 풍경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