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시작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했다면, 우리는 누가 살인범일지 궁금함에 책을 놓지 못하게 된다. 누가 죽였을까? 무엇 때문에? 그 이유를 알아가고자 아무리 지루하게 여기질지라도 소설의 마지막 권까지 파고들게 된다. 도나 타트의 이 소설이 그랬다. 전작 『황금 방울새』만큼의 흡입력을 기대했지만 그만큼의 재미는 주지 못했다. 다만 누가 로빈을 죽였을까, 이게 궁금할 뿐이었다.

 

소설은 끝까지 로빈을 누가 죽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이 로빈의 살인범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죽이지 않았다는 거.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괴로워하는 부분이 있을 뿐이다. 이걸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두 권의 소설을 읽으며 과연 그가 죽였는가를 끝없이 묻고 또 물었다. 해리엇이 살인범을 찾아주기를, 끝까지 살인범을 찾고 소설이 끝나겠지라는 희망을 안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소설의 결말이 궁금함에도 마지막장을 열지 못했다. 기꺼이 남겨두리라. 끝까지 읽을 때까지 호기심을 억누르리라.

 

다른 한편으로 이게 소설의 묘미 아닌가 싶었다. 모든 사건의 해결이 독자가 바라는대로 흘러간다면 우리는 소설 읽는 재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독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을 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소설의 전체를 흝어보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역시 작가다. 소설적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도 작가,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소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리게 하는 역할도 작가가 한다.

 

미시시피주의 어느 마을, 가족 모임이 한창인 저녁, 로빈이 나무에 목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때 마당에는 네 살의 앨리슨과 태어난지 몇개월 되지 않은 해리엇이 있었을 뿐이었다. 가족 모임 답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먹고 마시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로빈이 죽고 12년이 지났다. 아빠는 답답한 도시를 떠나 다른 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엄마는 로빈을 잃은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침대 밖을 나오지 않는다. 열두 살이 된 해리엇은 누가 오빠를 죽였는가에 대해 천착한다.

 

 

아기였던 자신보다 네 살을 더 먹었던 언니 앨리슨에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라고 한다. 하지만 앨리슨 역시 아기였을 뿐인데 제대로 된 기억이 있을리 없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 이디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들 사이에서 친구 힐리가 있을 뿐이었다. 해리엇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그저 마을의 골칫거리인 래틀리프 형제에게 눈을 돌렸을 뿐이었다. 나쁜 일을 일삼고 다니는 그들이 오빠를 죽였을 것만 같았다. 해리엇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린 아이의 눈에 왜 그가 살인범으로 비춰졌을지 의문스럽지만,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해리엇은 그가 살인범이라고 확신한다. 이후 그의 자취를 뒤쫓는다. 그의 형제들이 있는 곳을 훔쳐보고 따라다니며 그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찾는다. 물론 힐리와 함께 말이다. 

 

다르게보면 열두 살의 어린아이일 뿐인데 해리엇이 하는 행동들은 스무살 이상의 나이 못지 않다. 스스로 그들의 행적을 뒤쫓고, 뱀 상자를 뒤져 그들에게 해를 입혔다. 해리엇이 어린아이로 보이는 장면은 따로 있었다. 해리엇이 태어나기 전부터 집을 돌보았던 가정부 아이다가 그 주인공이다. 아픈 엄마 때문에 해리엇은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아이다를 엄마처럼 따랐다. 그녀가 해준 바삭거리는 침대보, 냄새, 적은 돈을 받고 일하고 있었던 아이다를 엄마가 해고 했을때의 감정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유년 시절의 감정, 엄마처럼 모든 것을 의지했던 아이다의 빈 자리가 컸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 아니다. 물론 오빠 로빈을 살해했다고 여긴 살인범을 쫓기는 하지만 어린아이의 생각일 뿐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오빠의 살인범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로빈을 죽인 살인범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하고, 해리엇의 아픈 모습을 담았다.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리비 이모 할머니의 죽음과 누군가를 죽일 뻔했던 자신의 행동들. 그 두려움에서 도망치고자 그토록 싫어하는 캠프를 떠났었다. 오빠의 살인범을 뒤쫒는다는 명분하게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이었다.

 

 

해리엇의 지독한 성장통이었다. 해리엇은 오빠의 살인범을 찾는다는 일념하에 십대의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았다.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렀지만 이 또한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이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9-22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추석인사 드립니다.
오늘은 연휴 첫 날이었는데,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 명절 보내세요 .^^

Breeze 2018-10-05 22:30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지요? 몇년전부터 우리집에서 명절을 지내니 부담감 백배랍니다. 철없이 놀던 싱글일때가 그리워지는 시점입니다. 감사합니다. ^^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리면 습관적으로 휴대폰의 앱을 실행시킨다. 라디오 앱으로 방송인 김제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그 전부터 듣기는 했지만, 김제동이 진행한 후부터는 더 즐거운 마음으로 듣는다. 오늘 아침도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했다. 그의 소탈한 방송을 들으면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달라진다. 오늘도 그렇다.

 

방송인 김제동의 책을 몇 권 읽었다. 방송인으로서도 좋아하지만 책을 쓰는 작가로서도 좋아한다. 이번에 꽤 달달한 제목의 책을 냈길래 궁금했는데 헌법에 관한 이야기란다. 일명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이라고 했다. 그가 헌법을 말한 영상을 본적이 있었다. 헌법 제1조 제1항에 관련된 조항을 들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말했다. 이제 김제동이 헌법을 말하는 구나 싶어 그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유심히 들었었다.

 

 

그렇다. 김제동은 그가 헌법을 읽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건넨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말하는 헌법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저 법관들의 법조문이려니 했던 게 사실이다. 김제동은 헌법을 읽고 헌법이 무척 쉬웠으며 헌법에 따라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와 의무에 대해 논한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이 법관들의 주인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이 주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헌법에 관해 논하는 것을 읽고 있다보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우리가 알아야 할 법인데 우리는 남의 법처럼 관심이 없었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좀더 일반인들 가까이에 있는 헌법이라 여겨지는 효과를 가진 것이다.

 

 

법이라고 하면 늘 우리를 통제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테두리 지어놓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헌법은 국민이라는 권력자와 그 자손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거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짜릿합니까?  (20페이지)

 

 

얼마전 평화적인 시위, 즉 촛불 시위로 권력에 몸 담은 자를 내려앉히고 새로운 대통령을 세운 다시 쓴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울분을 토하며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들었었다. 저자는 진짜 권력은 국민에게서만 나온다는 말을 강조하며 권력과 권한에 대하 이야기한다. 대통령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대행하는 사람을 '대통령 권한 대행'이라고 하지 '권력 대행'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예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김제동이 쓴 글을 불편하게 쓴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그를 종북이라고 칭하고 보통에서 벗어난 방송인이라고 하는 경우를 보았다. 나 또한 정치에 앞장서기 보다는 방송을 열심히 하길 바랐던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가 했던 행보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불의에 맞써 싸워야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헌법은 우리의, 국민의, 나라의 약속이니까요. (195페이지)

 

우리가 내고 있는 세금에 대해서도 말한다. 우리가 낸 세금의 생로병사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납세자들이 낸 세금이 어디쯤에서 쓰이고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세계 여러나라의 헌법이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 혁명의 영향을 받아 그 형식을 들여오고 문화와 철학을 들여오지 못한 게 아쉽다는 말을 했다.

 

또한 한 챕터가 끝나는 부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현직 헌법재판관 과의 화상 인터뷰와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 총회 의장과의 인터뷰를 실어, 헌법을 읽고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었음을 알수 있었다. 본인이 헌법에 대하여 알아야 독자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할 수 있는 법이다.

 

헌법은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무조건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헌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주장하고, 국가와 모든 이들에게 의미와 특질을 부여하는 것에 말입니다. (356페이지) 

 

연애편지 같은 제목 답게 헌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글이다. 그의 유머와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 결과의 글이다. 아침에 방송할 때도 '문득문득 행복하세요!'라고 말하는 그 답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향한 강한 외침이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13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7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토록 뜨거웠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으로 남는다. 헤어졌든 계속 만나왔든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아프고 때때로 미소를 짓기도 한다. 아팠던 사랑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는 것처럼 좋았던 일들만 떠오른다. 그러고보면 이상하다. 아팠던 기억들은 다 잊는 모양이다. 헤어지는 순간만 아플뿐 함께했던 좋았던 일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속에서 살아숨쉰다.

 

몇십 년 전의 일들을 떠올리게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기억나는 경우가 없다. 노트에 메모를 남기지 않는 한. 드문드문 기억나는 일들에서 누군가와 처음 맞닥들인 순간은 영원히 지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열아홉 살의 폴이 엄마 아빠의 권유로 테니스를 치러 갔을 때 스무살 이상 차이 나는 수잔을 보았을 때의 그 순간을 말이다. 복식으로 한 조가 되어 테니스 경기를 하게 되며 소위 사랑에 빠진 걸 알았다. 열아홉 살의 폴이 마흔여덟 살의 수잔에게 반했던 것이다. 수잔에게는 폴 또래의 딸이 두 명 었었고 술에 절어사는 남편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순전히 기억에 의존해서 쓴 글이다. 총 3부에 걸쳐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는데, 폴이 가장 사랑에 빠져있었을 때의 기억은 1인칭 시점이다. 기억이란 게 기억하는 자의 입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순전히 자신의 의도대로 수전과의 일들을 떠올린다. 수전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는 경우도 많았고, 수전의 남편 고든이 정원사 인줄 알 정도로 그의 존재는 미미하게 비춰졌다.

 

소설은 본격적인 사랑에 빠진 시기를 다룬 1부와 2부에서는 함께 살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수전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는 1인칭 시점과 2인칭 시점을 넘나든다. 자신이 바라보는 감정과 어느 정도 거리를 떨어져 바라보게 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3부에서는 급기야 3인칭 시점으로 기억들을 소환한다. 멀리 떨어져 마치 타인의 기억인듯 그렇게 떠올린다.

 

첫사랑은 늘압도적인 일인칭으로 벌어진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압도적 현재형으로, 다른 사람들, 다른 시제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137페이지)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정리되고 걸러진다. 우리의 기억이 우선순위를정하는 알고리즘에 접근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 짐작으로는, 기억은 무엇이 되었든 그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이 계속 살아가도록 돕는 데 가장 유용한 것을 우선시하는 듯하다. 따라서 행복한 축에 속하는 기억이 먼저 표면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따르는 작용일 것이다. (39페이지)

 

 

한 사람의 시선으로 기억되는 일은 종종 답답함을 일으킨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 뻘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집을 뛰쳐 나온 수전의 마음은 알 수 없다. 내내 폴의 기억속에서만 소환될 뿐이다. 스캔들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도 폴에겐 아무말도 하지 않으며 둘이서 도주하기로 했을 때도 묵묵히 그를 챙길 뿐이었다. 때로는 하숙집 주인처럼, 아들처럼, 조카처럼 혹은 대자처럼.

 

젊었을 때는 미래에 아무런 의무가 없는데, 나이가 들면 과거에 의무가 생긴다. 하필이면 자신이 바꿀 수도 없는 것에. (301~302페이지)

 

 

사랑했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진다. 그토록 뜨거웠던 사랑도 기억속에서 간간이 떠올릴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에게 오래된 사랑이 있었음을 떠올린다. 소중했던 기억마저 퇴색되어간다.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기억을 잃어가며 점점 자신을 놓는 여인을 바라보는 폴의 심정과 닮았다.

 

오래된 사랑의 기억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의 기억들 속에서 사랑과 슬픔, 고통들의 기억들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11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1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추석 연휴 끝자락. 여동생네와 함께 안동으로 출발했다. TV에서 나왔다는 숙소를 예약해 도착했더니 명절이라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었다. 주인장 또한 친구분들을 만나러 시내로 나가시면서 우리에게 오늘 도착할 손님 방을 안내하라는 전갈을 남기셨다. 그때 여행했던 곳이 안동의 하회마을, 안동 봉정사, 영주 부석사 그리고 영화 촬영지인 단양의 새한서점이었다. 2박 3일 간의 짧은 여행이었는데도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었다. 영화속에서 본 숲속에 자리한 헌책방의 모습이나 답사기에서 보았던 영주 부석사의 배흘림기둥을 본다는 건 감동이었다. 배흘림기둥을 한없이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곳에서 사진을 찍고 목조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에서도 몇 시간을 보냈다.

 

흔히 산사를 종교적 의미로 보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그냥 바라보아서는 모른다.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책을 먼저 읽고 바라보면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예를들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순천 선암사를 꽤 여러번 다녔었다. 외울 정도로 다닌 곳이었는데 유홍준 교수가 쓴 책에서 선암사의 다리 승선교를 논한 것을 보고 다시 선암사를 찾았었다. 교수가 한 설명을 기억하며 승선교를 바라보고 걷는데 그 느낌은 이루말할 수 없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 여행을 떠날 것이다. 책이 나오면 바로 읽고, 여행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읽으면 그 느낌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만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생각을 바로 일깨워주는 이가 유홍준 교수일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 산사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저자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언급한 산사를 가려 뽑아 책으로 내었다. 아직 그가 답사하지 못한 산사도 있지만 그는 머잖아 산사를 향해 떠날 것 같다.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는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등 7곳의 절이 '산사, 한국의 산지공원'으로 등재되었다. 산사라는 말을 발음 그대로 사용해 그 의미를 알게 했고, 우리나라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진 불교유산이라는 설명을 실었다.

 

 

 

 

 

엊그제 주말의 일이다. 우리는 주로 여동생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데, 좋은 곳을 가면 꼭 사진을 찍어 연락하는 습관이 있다. 이는 다음에 오자는 소리인데, 이번에 그들이 간 곳은 해남 대흥사였다. 대흥사는 목포에 살 때 수없이 다닌 곳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고, 3년전쯤 친구들과 함께 가볍게 다녀온 게 다였다. 명절에 해남 대흥사앞 유선관이란 여관에서 1박을 하자는 것이었다. 흔쾌히 오케이를 하고 이미 예약된 상태다. 이후 해남 대흥사 편을 읽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유홍준 교수가 설명해 주는 대흥사 편을 속속들이 외우리라 다짐을 할 정도였다.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이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한 후에도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이는 우리가 가진 것보다 우리가 접해보지 못한 다른 아름다움을 찾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산사야 흔한 게 아니던가 했단 말이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나 어렸을 때 수학여행을 가면 거의 불국사, 석굴암등 거의 절이 많았다. 왜 자꾸 절에만 다니는지 그때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마 역사 교과서에 수록된 사진 속의 문화유산을 실제로 보게 해주려는 의미였을텐데 그때의 우리는 그걸 알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내가 역사를 좋아하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꾸준히 읽는덕에 아이들 어렸을 때도 경주며 부여, 우리의 유물이 있는 곳을 자주 찾았으나 아이들은 그걸 싫어했다. 오죽하면 걷기 힘들다고 '박물관병에 걸렸다'고 했을까. 그러고 보면 나도 극성 엄마였다. 지금은 다 컸지만 아이들은 빼고 어른들끼리만 자주 여행을 다니는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어 그나마 낫다고 해야겠다.

 

산사의 미학은 건물 자체보다 자리앉음새에 있고, 산사의 답사는 진입로부터 시작된다. (361페이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는 총 20 곳의 산사를 수록했는데, 우리가 가보지 못하는 금강산의 표훈사와 묘향산의 보현사가 수록되어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마곡사와 속리산 법주사는 최근에 다녀와 만약 다음 답사기에 수록된다면 또한번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사의 고즈넉함이 좋다. 위의 발췌글에서도 나타났다시피 산사는 산사를 향하는 진입로에서부터 경건함을 느낀다. 절을 향해 나아가는 진입로를 걷다보면 저절로 사색에 잠기게 된다. 커다랗게 쭉쭉 뻗은 나무들과 좁은 길 틈새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그야말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석등이나 오래된 목조건물의 수수함에 발길이 머물고 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사를 바라보는 즐거움과 등재되지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과 기품이 서려있는 산사가 수록되어 있어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쉽게 쓰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학문을 알지 못해도 그저 그가 설명한 대로 따라보다보면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에서 마니아 층을 거느리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이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한 번 이라도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반해버리는 작가 중의 한 명.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작품이 상영될 때마다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중의 하나에 나도 포함된다. 최근에 개봉한 「어느 가족」이란 작품도 그래서 챙겨본 영화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꽤 많은 영화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피로 이어져 있던 가족이든, 전혀 상관없는 가족이든 가족의 끈끈함과 애정에 대한 깊이있는 시선을 바라볼 수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가족을 고찰하는 그의 영화가 가진 특색이다. 문학을 전공한 작가라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를 먼저 만들고 소설을 나중에 쓴. 그래서 영화를 두 번 보는 느낌이랄까. 영화 속 사람들의 내면에 깊게 다가선 것이 이 소설이 가진 역할이었다.

 

한 가족이 있다. 할머니, 엄마, 아빠, 이모, 아들로 보이는 다섯 식구. 그런데 추레한 옷을 입은 아빠와 아들이 한 마트에 가서 특유의 손짓을 하고 아빠는 직원의 시선을 가리고 아들은 배낭에 물건을 떨어뜨려 담는다. 집으로 돌아와 샴푸가 없다는 이모와 맥주를 들이키는 할머니. 좁은 집에 여러 명이 모여살고 있다. 집에 오는 길 아빠와 아들은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고 있는 여자 아이를 보았다. 아이가 안쓰러워 집에 데려와 음식을 먹이고 집에 데리고 갔으나 아이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사람들이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한테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퍼부으며 말이다.

 

 

아이를 데려다 주려고 했으나 그 장면을 목격한 엄마와 아빠는 여자애를 다시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말을 하지 않는 아이, 몸에 여기저기 멍을 달고 있는 아이였다. 부모가 싫다면야 굳이 데려다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아이를 거두기로 하고 유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때 그때 마트에 가서 집어 오고 옷은 대충 걸치고 다닌다. 유리에게 여자애다운 옷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옷가게에 가서 노란 수영복부터 차례대로 입혀 나올 정도로 좀도둑이 생활화된 가족이랄까. 일하기 싫은 핑계로 다리를 다친 아빠, 대형 세탁점에서 손님들의 물건을 슬쩍하는 엄마, 가슴을 흔들며 돈을 버는 이모, 아빠에게 물건을 훔치는 기술을 배운 아들, 그 오빠에게서 역시 물건을 훔치는 방법을 배우는 딸.

 

뭐 이런 가족이 다 있을까 싶다. 이들 가족은 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가족이었다. 비록 새 옷을 마음껏 사주지 못하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하지 못했으나 무엇보다 피로 이어진 가족보다 더한 끈끈함이 있었다.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들처럼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굳이 그 사람이 나쁘고 좋고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선택되었더라도 진짜 가족보다 더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면 된게 아닐까. 자기의 연금을 가로채려고 들어왔지만 그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에 갔을 때, 비록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고마웠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여느때처럼 익숙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진짜 가족보다도 더한 가족이 이들 가족이 아닐까. 가족이 와해되었을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 안타까움을 내비쳤던 것처럼. 다시 이전처럼 돌아간 주리의 삶도 어쩌면 가짜 가족보다 못한 거였다.

 

고레에다 히로가즈의 가족을 바라보선 시선이 좋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그 무엇보다 특별함을 나타낸 영화, 그에 속한 소설이었다. 감독은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은 다음 영화를 다시 한번 볼 것을 강조했다. 나 또한 영화를 먼저 보았고 소설을 읽었더니 다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울음을 삼켰던 나와 똑같은 소설을 읽으며 더한 눈물을 흘렸던 나는 이들 가족의 와해가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였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8-30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0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