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장류진.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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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으려 한다. 그 일환으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꾸준히 읽어왔고, 작년부터 출간된 문학과지성사의 계절별 '소설 보다'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이왕이면 장편이 좋지만 새로운 작가들이 꾸준히 발표하는 단편 읽는 재미가 크다. 그리고 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소설을 쓴 장류진 작가의 이름이 보여 더 반가웠다. 장류진 작가가 쓴 작품을 몇 편 읽지 않았지만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일의 열정과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록된 작품 「펀펀 페스티벌」도 다르지 않았다. 직장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자세하게 표현해 읽는 재미가 컸다.  「펀펀 페스티벌」은 연말 송년회를 앞두고 5년 전 세명그룹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는 소설이다. 기업은 다재다능한 인재를 뽑기 위해 심층 면접을 하기도 한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인적성 검사를 마치고 3차는 2박3일간의 합숙 면접을  마지막 면접이었다. 노래를 좀 했던 유지원은 밴드팀에 들어 보컬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거기엔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찬휘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외모가 출중하여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도 눈여겨 보았던 이찬휘였다.

 

 

 

외모는 여러모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TV 속에 나오는 배우나 아이돌 가수들도 일단 잘생기면 한몫을 하고 들어가는 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게 마련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회사에서 합숙 면접을 하는 이유는 여러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이라든가 제한된 환경에서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밴드팀에서 노래를 꼭 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공연 직전, 마치 딴지를 거는 것처럼 노래를 지적한 이찬휘 때문에 지원은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송년회 날 영어 가사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이찬휘를 바라보는 유지원의 냉소가 인상적이었다.  

 

5.18을 다루는 내용은 언제나 아프다. 실제로 겪지 않았지만 수많은 매체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도 생소한 한정현 작가의  「오늘의 일기예보」라는 소설이다. 내용은 로맨스 소설의 제목처럼 달달하면서 내용은 그러지 아니하였다. 고모와 오스칼이라 불렀던 제인과 그리고 복수와 나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고모는 소위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관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른다. 보나를 데리고 한강변으로 가 강 속으로 걸어들어갔던 고모를 아빠는 그런 일을 당하고 어떻게 한국에서 사느냐며 말한다. 아빠는 고모를 여동생이라 보지 않고 그런 일을 당한 여자 쯤으로 치부했다. 보나는 옆집에 사는 오스칼을 닮은 제인을 좋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제인이 트렌스 젠더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언제나 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사연들이 있어도 나는 그 시절 어떤 시간들에 대해선 여전히 귀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저런 말 못 할 기억이 이젠느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살겠다는 다짐을 만들기도 했다. (123페이지,  「오늘의 일기예보」 중에서)

 

동물을 예뻐하는 사람은 어쩐지 모든 사람에게도 다정할 것 같다. 동물에게도 잘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는 얼마나 잘할까, 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걸까. '나'는 골목길의 교회 앞에서 고양이 태비에게 먹이를 주다가 '너'를 만났다.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그들을 구해주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나'가 사는 동네는 재개발이 한창이었고, 재개발이 열리는 공청회에서 '너'를 만났다. 길고양이들에게 안식처를 주는 행동과 달리 재개발 지역에서 이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냉정한 말을 하는 걸 보고 다름에 대하여 생각한다.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대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너'를 따뜻한 사람이라 여겼던 거다.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고 격차였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너라는 사람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했던 다른 모든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얼마간 체념하는 심장이 되었고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34페이지,  「3구역, 1구역」 중에서) 투자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재개발이 확정되어 시세 차익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다. 지금의 트렌드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것이 자꾸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오래된 주택 특히 한옥을 개조하여 카페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왕이면 그런 곳으로 가 우리의 옛 것을 즐기는데 이러한 것들이 자꾸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차가 지나갈 수 없는 오래된 골목길의 높다란 계단도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면 아름다운 골목길이 된다.

 

물론 이 소설이 그러한 바람을 다루는 건 아니다. 간극과 격차에 대한 것이다. '너'와 '나'와의 격차가 커도 나는 너의 청을 거부하지 못한다. 고양이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너를 알 것 같아도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을 자신이 쉼터라 불리는 장소에서 돌보아도 오래된 것을 부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세 편인 소설속에서 새로운 작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젠더와 과거의 역사의 재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것에 대처하는 다양한 접근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이 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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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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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기 전 무라타 사야카의 작품 중 『편의점 인간』을 이웃 분의 리뷰에서 먼저 만났다. 그 전까진 그저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작가였다면, 리뷰를 다시 읽고 보니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였다. 그러다 만난 작품이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이란 다소 긴 제목의 소설이었다. 어떤 내용이길래 이러한 제목을 지었을까. 그 내용이 못내 궁금했다.

 

청소년 소설, 특히 일본 청소년의 소설들은 따돌림의 극치를 엿볼 수 있다. 아무래도 일본의 청소년들에게서 먼저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소녀 유카가 있다. 유카는 와카바와 노부코와 친하다. 다소 통통하지만 작은 키에 어린애로 보이는 노부코와 달리 와카바는 가슴도 나오고 좀더 성숙한 아이로 나온다. 유카는 은근히 노부코의 어린애같은 면을 무시하면서 서예교실에서 이부키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부키는 유카보다도 작은 아이로 다른 남자애들보다 더 아이같은 면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여자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2차 성징이 나오며 친구들과의 관계로 따돌림을 당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되고 예민해지는 나이다. 유카 또한 사춘기의 시작점으로 보인다. 자꾸만 변해가는 동네는 개발의 힘을 입어 여기저기서 공사장의 소음이 들리는 곳이다. 이 마을이 싫은 유카는 서예교실의 이부키에게 혀를 내밀어 키스를 시작하며 이부키를 자신만의 장난감이라 칭한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인 장난감은 유카만의 친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카와 와카바와 노부코의 사이는 원만한 편이지만 중학교에 접어 들면서 이들의 관계는 다른 양상을 띤다. 키가 크고 예쁜 편인 와카바는 소위 상위 그룹의 여자 아이들과 어울리고 눈동자가 작고 그에 비해 흰자가 많은 유카는 상체는 빈약하고 하체는 살찐 체형으로 얌전한 그룹이다. 반면 살이 찐 노부코는 아이들 사이에서 열등한 그룹에 속했다. 초등학교 때는 누구나 친하게 지내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생김새에 따라 급이 나뉘게 된다.  

 

 

 

유카는 이부키를 좋아하지만 학교에서는 모른척을 하고 있다. 다만 서예교실에서는 여전히 함께 글씨 연습을 하고 집이 같은 방향이기에 함께 걸을 뿐이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이부키는 이제 유카의 키스에 대하여 싫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와 달리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에게 서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아이가 되었다. 즉 유카가 학교에서 넘볼 수 없는 아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나 또한 사춘기를 겪어 왔지만 유카처럼 성장통을 겪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시대가 달라지기도 했겠으나 친구 관계가 이토록 복잡할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이렇게까지 따돌림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청소년, 특히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본 소설 중에서 따돌림에 관련된 소설이 유달리 많았다. 중학생이면 한창 첫사랑에 눈을 뜰 나이다. 좋아하는 남자애와 사귀고 싶은 마음은 나이와 상관 없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부키를 바라보는 유카의 복잡한 심정은 성적인 면에서 집착을 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이부키만은 잃고 싶지 않았던 거다. 자신만의 장난감으로 가지고 싶은.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은 친구였던 것이다.

 

 

 

유카가 좀더 현명해지기를 바랐고 자신감을 가지길 바랐다. 그래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토록 좋아하는 이부키와도 좋은 관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친구 관계도 성장의 필수 조건이다. 어떤 친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미래의 삶도 그에 대한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카가 바라본 광경은 비로소 그 아이의 눈을 뜨게 했다. 노부코가 자신의 모든 감정을 실어 소리지르던 장면이었다. 이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그 장면은 유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던 거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장면이기도 했고. 비로소 알을 깨고 나오듯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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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 - 무민 골짜기, 시작하는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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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얀손의 무민시리즈가 탄생된지 75년이 되었다. 무민 시리즈 탄생 75주년을 맞아 시리즈의 첫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0년대에 쓰여졌다. 전쟁이 시작되자 아이들에게 전쟁의 공포와 불안함을 떨치기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민이 탄생된 배경이기도 하다. 

 

무민과 무민의 엄마는 아빠를 찾아 나선다. 8월의 숲 속, 어둠속에서 두 눈이 빛나고 있는 작은 동물을 발견하고 작은 동물과 함께 모험이 시작되었다. 튤립에서 살고 있는 예쁜 얼굴을 가진 긴머리의 여자 아이 툴리파가 길을 밝혀 함께 걷는다. 

 

 

 

무민은 엄마에게 아빠에 대하여 묻는다. '네 아빠는 비범한 무민이었단다. 네 아빠는 언제나 이 벽난로에서 저 벽난로로 옮겨 다니며 살고 싶어 했어. 전혀 잘 지내지 못했지. 그러다가 사라졌어. 해티패티들과 같이 떠났지.' (23페이지) 여기에서 무민의 아빠의 성격이 드러난다. 물론 전쟁 특성상 아빠들은 떠나는 존재이긴 하다. 무민 파파는 방랑벽이 있어 자주 떠나곤 했다. 아빠는 더 큰 세상을 향해 떠났을 거로 여겨지지만 무민과 무민 마마가 무민 파파를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길다란 사다리를 내려주었던 노신사의 집에서는 캐러멜과 초콜릿으로 된 곳이었다. 문득 『헨젤과 그레텔』에서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가 나타나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했던 건 우리가 동화를 너무 많이 읽었던 결과다. 무민과 작은 동물 그리고 툴리파는 그곳에 남고 싶었으나 엄마는 신선한 공기를 향해 나가야 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이자 수영을 하고 싶은 무민과 툴리파 작은 동물은 물 속에 들어갔고, 무민 엄마는 모래밭에 누웠다. 그때 개미귀신이 나타나 엄마에게 모래를 뿌렸다. 모래를 파고 들어가 만든 구덩이에 엄마가 빠질뻔하자 무민은 엄마를 구했다. 그곳에 아빠가 따라갔다던 해티패티들이 배에 올라타는 장면을 보고 따라 나선다.

 

아빠를 찾기 위한 여정은 쉽지 않다. 엄마를 죽일 뻔한 개미귀신이 나타나는가 하면 또한 기꺼이 그들 일행을 도와주는 존재가 나타난다. 대머리황새가 그들을 태워 주었던 것처럼. 우리 삶은 누군가의 도움과 배려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위험에 빠진 아빠를 만나고 무민의 터전인 숲속 골짜기에 무사히 도착하여 새로운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의 공포와 불안은 크다. 불안 속에서도 일상을 살아야 한다. 70년 전에 이러한 글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했던 토베 얀손의 무민 시리즈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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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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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 혹은 꼬박 이틀이나 사흘을 잘 수도 있겠지만 1년이라는 시간동안 잠을 잔다면 마음 속의 슬픔이나 고통을 잊을 수 있겠는가. 마치 개구리나 뱀이 동면을 하듯 사람도 동면을 한다면 말이다. 물론 책 속의 주인공 '나'는 약간의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고, 부모가 물려주신 재산 때문에 이삼 년은 충분히 지낼 수 있는 돈이 있었다. 재산세 등을 자동납부로 처리해놓고 동면에 들 준비를 마쳤다.

 

 

주인공은 말한다. '나의 동면은 자기보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생명을 구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18페이지) 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거라고. 그 고통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다고. 1년 간의 동면이 필요했다고 보았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가리켜 '아직 예쁘고 금발이며 키가 크고 날씬하다' 라고 말한다. 더군다나 부유한 부모를 두었기에 타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나'의 곁에 하나남은 친구 '라바'가 부러워했다.

 

 

 

이러한 조건을 가졌음에도 주인공은 갤러리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으며 결국 해고를 당했다. 동면에 들어가며 모든 빗장을 걸어 잠갔으나 그녀의 잠을 방해하는 라바때문에 불편하다. 닥터 터틀에게 전화로 상담하며 필요한 약들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여러가지의 약들을 먹기 시작했고 잠에 빠져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을 시작했다. 몽유병의 시작이었다. 눈을 떠보면 새로운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잠에 취해 벌여놓은 일들이었다.

 

 

주인공의 동면의 시작은 부모로부터 나왔다. 술과 약에 절어 그녀를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와 그러한 어머니를 바라보며 자기의 마음을 둘 곳 없이 방황해 역시 무관심으로 대했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일종의 애정결핍이 불러일으키는 정신적인 상처였다. 그래서 주인공은 충분히 잠을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였다. 그런데 잠이 이러한 효과를 가져올까. 나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본다. 평소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책읽는 것으로 풀지만 진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잠을 피난처로 삼는 것 같다. 어떤 소설들에서도 자주 나타나지 않나. 오랫동안 잠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 거라는 상상 말이다. 모든 고통이 사라져 있을 것 같은. 그래서 평온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바람 같은 것.

 

 

만약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더라도 연인과의 사이에서 그 상처를 치유받을 수도 있을텐데 그녀의 연인 트레버는 나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잠시 스쳐가는 어린 여자로 보았다는 거였다. 나이 대가 비슷한 여성과 만나다가 헤어졌을때 그녀에게 잠깐 다가오는 식이었으며 그녀를 사랑해주기 보다는 일방적인 즐거움을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는 거다. 주인공은 부모에게서도 혼자였고, 연인 트레버에게서도 혼자라는 감정을 느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을때 선택한 것이 바로 잠, 동면이었다.

 

 

 

제대로 슬퍼하지 않을 경우 그 슬픔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도 만든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떨치지 못하였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잊으려 했던 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수도 있다. 상처를 치유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았더라면 괜찮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의 장례식까지 이어 치르고 제대로 슬퍼할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게 큰 이유라고 봐야했다.

 

 

'나'의 동면은 너무 일찍 부모의 죽음을 경험했고, 슬퍼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감정의 찌꺼기를 터는 과정이었다. 이제야 부모의 죽음을 떠올리고 받아들이는 장례식의 일부와도 같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상실을 경험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망각의 시간을 갖는 일처럼 중요한 게 있을까. 동면은 기억의 창고를 비우는 일의 과정이었다. 비로소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일. 우리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삶이 너무 힘들다면 이처럼 마음을 비우고 휴식과 이완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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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이토는 『달팽이 식당』과 시골에서 대필가로 활동하는 따스한 이야기 『츠바키 문구점』과 그 다음 이야기 『반짝반짝 공화국』으로 작가의 책을 읽으면 마음이 어느새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 책은 작가가 『츠바키 문구점』을 쓸 당시 약 1년 간의 글을 모은 에세이다.

 

 

봄이면 집안에 꽃을 피울 수 있는 화분을 들여놓곤 하는데 언젠가 하얀색 꽃을 피우는 히아신스와 수선화 구근을 사다 심었었다. 그 다음해에 또 꽃이 피는 걸 바라보며 죽지 않고 살아난 게 마냥 신기했다. 오가와 이토는 히아신스 구근을 사다 심어 조금씩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정경을 그렸다. 히아신스 향을 제대로 맡아본 기억이 없는데 저자는 꽃은 좋아하나 향은 아니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인공 방향제를 가리켜 향이 아니라 악취라고 표현했다. 나도 한때 인공적인 향이 좋아 빨래를 할 때도 섬유유연제를 꼭 사용했고 향수도 매일 뿌렸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기분이 아주 우울할 때만 뿌리곤 하는데 인공적인 향보다 더 좋은 게 자연의 냄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햇볕에 바짝 말린 햇볕 냄새를 아는지. 그것처럼 청량한 향이 없다.

 

 

작가는 유리네로 뇨키를 만든다. 삶은 유리네를 바싹 구워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뿌려 트뤼프 소금을 살짝 넣어 만든 간단한 요리다. 유리네가 무슨 식재료인지 궁금해 검색해보니 백합근이라고 하는데 백합뿌리를 먹는다는 얘기인가. 더군다나 그가 키우는 개 이름도 유리네다. 같은 뜻으로 쓰인 건지 다른 뜻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츠바키 문구점』을 읽어서인지 그 소설의 교정을 보는 과정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가만히 소설 속 정경을 떠올렸다. 연필과 지우개와 빨간 펜을 사용해 열심히 교정하고 있을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소설 속 대필가였던 포포가 쓴 글씨가 좋아 몇 번이고 손으로 따라 써보았었는데 작가 역시 글씨 쓰기 수업을 받았으며 연습한 일화를 말했다.

 

 

내가 지양하는 것은 틈.

시간에도, 공간에도, 인간관계에도 틈을 만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물건은 계속 늘어나니 의식해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 없는 물건은 손에 넣지 않는다. 집에 들이지 않는다. 인생에 덧붙이지 않는다. 이런 의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25페이지)

 

 

『츠바키 문구점』 책이 나오고 몇 번의 행사를 거치고 난 후 작가는 여름을 독일에서 보내기 위해 냉장고의 음식을 서서히 비우기 시작했다. 뮌헨에서 두 달, 베를린에서 두 달을 보낸뒤 귀국하게 되는 일정이었다. 『마리카의 장갑』의 배경이 되었던 라트비아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한다. 라트비아에서 샀던 꿀로 만든 영양크림과 꿀비누가 좋은 이유를 말한다. 보존료를 넣지 않았고, 천연 재료로 만든다. 또한 라트비아에 갈 일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이 '에비야'라는 연고다. 꿀을 사용한 만능 연고로 화상, 찰과상, 생채기, 벌레 물린 데 등 어디에나 사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마리카의 장갑』을 읽을 때도 아름다운 라트비아의 풍경을 그렸지만 이처럼 일상에서 라트비아를 느낀다는 건 큰 기쁨일 것 같다.

 

 

개를 데리고 펭귄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편과 독일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애견 미용에 관한 베를린과 도쿄의 다른 점을 말한다. 내 주변에도 개를 키우는 친구들이 많아 애견 미용실에서 미용을 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도쿄도 우리와 다르지 않는 모양인데, 베를린에서 언어 장벽 때문에 유리네의 미용에 대하여 고민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일본인 애견 미용사가 베를린에 있어 든든하다는 표현을 했다.  

 

 

고양이를 키우며 느낀 게 꼭 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는 거다. 나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고양이의 성격 또한 처음 데리고 왔던 딸의 성격과 아주 비슷하다. 놀아달라고 떼쓰고 모든 물건들을 발로 차고 다니며 호기심이 왕성하다. 또한 놀아달라며 내 발을 물기도 하는데, 잠이 오면 잠투정을 하듯 내 곁을 서성거린다. 이러한 것들을 작가에게서도 느꼈다. 키우고 있는 개 유리네가 아파 계속 설사를 했다. 밤중에도 두세 번은 화장실을 가는데 저자는 반사적으로 일어나지만, 아빠들은 원래 그런건가. 쿨쿨 잔다고 했다. 아이 어렸을 때 배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어 울어 젖힐때 나는 그야말로 반사적으로 눈이 떠져 아이를 돌보지만 남편은 쿨쿨 잤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나 의문이 들었었는데 유리네의 아빠 또한 남편과 다르지 않았나 보다. 남자는 어째서 이럴까, 하며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하는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올해를 휴식의 해로 잡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었다. 그동안 마음껏 휴가를 내지 못해 가지 못했던 유럽 여행도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하늘길이 막혀 옴싹달싹 못하고 있다. 뮌헨과 베를린 그리고 라트비아에서 겪었던 일들을 글로 읽고 있노라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펭귄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펭귄에게 저녁 약속이 있으면 와인 한 잔과 간단한 안주로 저녁을 대신하는 삶에서 삶이란 복잡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보통날들. 그 속에서 발견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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