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처방해드립니다 #이시다쇼 #다산책방

 

어쩌다 보니,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딸아이가 데리고 왔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는 바람에 고양이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안방 침대까지 차지했다. 거실에 있다가 우리가 잠들 즈음에 슬쩍 침대로 와 자리를 잡는다. 때로는 내 발치에, 때로는 신랑 발치에 누워 있는 바람에 우리는 불편함을 참고 고양이를 피해 잠을 잔다.

 


일본 아마존 독자 리뷰에 적힌 글처럼, 이 책은 고양이를 키우지 않은 사람이 읽으면 더 감동할 책이다. 물론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특별한 사랑스러움을 알기 때문에 더욱 공감하며 읽는다. 고양이의 행동 하나에도 감탄하며 사진을 남기니 소설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양한 고양이들의 행동에 감동한다.

 


제목만으로도 특별했다. 고양이를 처방한다니, 어떤 효과를 기대한단 말인가. 궁금증이 생긴다. 이러한 발상 자체가 신선했다. 정확한 주소가 없는 고코로 병원에 가면 육중했던 문이 스르르 열리고 무뚝뚝한 간호사가 환자를 맞이한다. 예약 환자가 있지만 찾아온 사람을 박정하게 대할 수 없어 진료를 시작한다. 꽤 잘생긴 의사는 약이 아닌 고양이를 처방한다. 이동장에 든 고양이와 함께 간호사가 건네는 처방전 또한 고양이의 이름과 나이, 식사와 물, 배설물 처리 등이 적혀있을 뿐이다.

 


고양이는 영역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물이다. 새로운 환경에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소설 속 고양이들은 외로웠던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슬그머니 나와 소설 속 인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사료를 먹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인물들은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고양이들이 받았을 고통과 외로움이 사무치듯 느껴졌다. 수상해 보이는 니케 선생님과 간호사 지토세가 있던 장소도 사연이 있는 곳이다. 고양이 번식업을 하다가 유기하고 도망친 장소였다. 마음이 아픈 환자들에게 일주일 혹은 열흘 간 고양이를 처방하는 이유는 고양이에게 치유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가기 싫다거나 연인과 헤어지기 싫어 자꾸 피하는 사람에게 고양이 처방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기도 한다. 애써 피하는 것보다 정면에서 마주할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짐작하기보다 상대방의 의중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감정이 움직인다는 건, 이런 것이었구나. 비가 있으면 즐겁다. 매일 그 귀여움에 치유받는다. 비는 앞으로도 계속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1, 108페이지)

 


1권에서 고양이를 처방받으려면 이 병원에 와서 스스로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 옆 사무실의 자석 목걸이 청년이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았던 것처럼, 고코로 병원은 간절한 사람에게 문이 열린다. 또한 고양이를 처방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정체 또한 서서히 드러난다. 어떤 마음으로 그 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혹시 다시 고민이 생겼을 때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 분명 다른 누군가도 이곳을 찾고 있을 터다. 모에는 앞으로 걸어 큰길로 나왔다. 도로명은 모른다. (2, 105페이지)


 

정확한 도로명 주소를 알지 못하는 병원을 찾으면 곧잘 길을 잃는다. 아무리 골목길을 돌아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고통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만 길이 보이고 문이 열린다.


 

고양이의 효과는 엄청나다. 가끔 우리 집 고양이의 어린 시절이 너무 짧았음에 한탄한다. 귀여웠던 아기 시절이 유달리 짧은 까닭이다. 고양이들에게는 저마다 머무는 가족들의 특성을 이어받는 거 같다. 우리 고양이는 매우 활달하다. 놀고 싶을 때 놀아주지 않으면 발목을 깨문다. 털실을 던지면 달려가서 물고 온다. 그리고는 앉아서 뛸 준비를 한다. 하지메라는 늙은 고양이를 키우는 레오나에게 병원에서 처방한 고양이는 샤샤였다. 샤샤와 하지메가 서로 의지하듯 몸을 말고 자는 장면은 애틋하다. 외로워하는 고양이에게 한 마리 더 친구를 만들어줄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다 큰 고양이가 치일까 봐 그러지 못했는데, 이 문제는 지금도 고민 중이다. 레오나의 고양이처럼 싸우지 않고 서로 의지하고 함께 놀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힘들 때는 참지 말고 고양이에게 의지하면 된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고양이로 인해 치유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고양이는 제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할 뿐이지만, 동물을 돌보다 보면 어느새 시름을 잊는다. 반려동물을 키워 본 사람은 안다.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라는 걸.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걸 말이다.

 

 

#고양이를처방해드립니다 #이시다쇼 #다산책방 #다산북스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일본문학 #일본소설 #판타지 #판타지소설 #힐링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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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1-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도시)에서 살아가는 이웃한테는 고양이 눈빛과 매무새가 여러모로 마음을 달래는 길동무 같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저로서는 날마다 숱하게 마주하는 새와 바람과 하늘과 별이 늘 마음을 다독이는데, 이 겨울에는 시드는 풀빛과 잎빛이 새록새록 길동무로 함께 지내는구나 하고도 느낍니다.

Breeze 2025-01-06 18:13   좋아요 0 | URL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동물에 더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어요.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 걸 새삼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노래 - 노래와 함께 오래된 사람이 된다 아무튼 시리즈 49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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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노래 #이슬아 #위고

 

어릴 적 아빠는 술을 많이 드시고 온 날이면 자는 우리를 깨워 앉혀두고 노래를 시키셨다. 싫은 노래를 쥐어짜면서 불렀던 것 같다.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가 자주 불렀던 노래를 불렀음 직한데,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건 사공에 뱃노래~’로 시작한 노래가 아니었을까. 아마도, 아빠의 영향인지 우리 자매들은 노래를 좋아한다. 함께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를 안 놓는다. 아빠는 예전에 노래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탄 적도 있고, 지금도 술을 드시면 노래를 부르신다.

 



노래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기분이 좋으면 저절로 콧노래를 부르고, 아침에 들었던 노래(일명 후크송)를 하루종일 흥얼거리기도 한다. 힘든 사춘기를 넘어올 때 노래가 있어 큰 위로 되지 않았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 부분일 것이다. 이슬아의 아무튼, 노래는 삶에서 노래가 어떤 역할을 하고 노래로 인해 달라진 삶의 한 모습을 비춘다. 거실에 노래방을 들여놓았던 할아버지와 노래 교실에 다녔던 할머니의 역사에서 이제는 손녀와 손자가 모두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자라온 가정환경은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얇은 책이라서 여행 중에 읽으려고 챙겼다. 얇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는 않았다. 작가의 음악에 대한 철학과 역사가 짙게 배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빠는 수첩 하나를 갖고 다니시는데, 노래방의 숫자가 적혀있다. 언젠가 아빠와 노래방에 갔는데 수첩을 꺼내시더니 번호를 부르시는 거다. 노래를 예약하면 쉬지 않고 부르시는 바람에 자식들이 낄 틈이 없다. 옆에서 적당히 컷 하지 않으면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는다.

 



나에게 노래는 글쓰기보다 훨씬 번거로운 도구다.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노래에 관해 쓰는 게 더 쉽다. 하지만 어디선가 취미가 적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다가 노래라고 적을 것만 같다. 이 취미 생활에서 나는 잘 알기 위한 노력과 잘 잊기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하고 있다. (42페이지)

 



우리는 글보다 노래가 더 쉽다고 여길 거 같은데 작가는 노래에 관해 쓰는 게 더 쉽다고 얘기했다. 노래를 부르고 살아온 타인과 나의 탐구 이야기는 삶의 많은 것들이 담겨 있기에 슬렁슬렁 읽을 수 없었다.



 

노래방에 가면 불렀던 노래만 부르게 된다. 아빠처럼 노래 제목을 메모장에 적어서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한번 불러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말이다. 인스타그램의 영상을 보다가 강변가요제에 나왔던 <이 어둠의 이 슬픔>이라는 노래였다. 캡처해놨지만 아직 불러보지는 못했다.

 



노래는 우리 마음을 뒤죽박죽 휘젓는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게 해서다. 노래를 듣고 부르다가 문득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어떤 점에선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지 어쨌거나 시간은 계속 흐른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로 미래의 내가 시간 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88페이지)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러지 않을까. 하나의 노래로 저마다의 추억은 결국에는 사람들의 역사가 된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현재와 미래를 이루는 게 아닐까. 김광석 노래를 들을 때면 친구들과 놀았던 이십 대 시절이 떠오르고, 특정한 팝 음악을 들으면 고등학교 때 한글 발음으로 적어 연습해 불렀던 같은 반 친구가 떠오른다. 노래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다. 이슬아 작가도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작가의 글에서 모부는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작가의 이런 글쓰기 방식이 좋다. 적당히 드러내면서 작가의 이야기를 하는 것. 친숙하게 다가온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좀 더 이슬아 작가를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배운, 작가의 글로 작가의 매력을 더 알아가고 싶다.

 


 

#아무튼노래 #이슬아 #위고 ##책추천 #문학 #에세이 #에세이추천 #한국에세이 #한국문학 #아무튼시리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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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
임진평.고희은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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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돌아갑니다풍진동LP가게 #임진평 #고희은 #다산책방


자꾸 과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이가 든 탓일까. 언젠가 어른들이 나이 먹으면 추억으로 산다더니, 틀린 게 없는 거 같다. 연이어 음악 관련 책을 읽었다. 하나는 노래에 관한 에세이, 하나는 음악 소설. 음악 영화를 보듯 주인공이 운영하는 이상한 LP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에피소드가 한 회, 한 회 거듭되는 영화나 드라마 같았다. 소설 속 LP 음반에 담긴 노래들을 계속 흥얼거리게 됐다. 이십 대 시절, 어딘가에서 들었던 LP 음반을 사기 위해 거리를 헤맸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거나 구입한 LP 음반이 꽤 됐다. 텃밭 정원에 가져다 두고, 새로 구매한 턴테이블로 아주 가끔 듣는다. 바늘을 올려두고 음반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며 추억에 젖는다. 그때 우리가 사랑했던 노래와 함께 들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나는 처음 이 소설이 LP 음반과 그에 관한 음악 에세이인 줄로 알았다. 그러니까 전국의 숨은 LP가게를 찾아다니는 내용이라고 여겼던 거다. 소설이라고 해서 더 궁금했다. LP 음반에 얽힌 사연들이 우리를 음악 속으로 이끌었다. 소설은 다소 어두운 내용으로 시작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음악 때문에 살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아빠가 들려주던 음악과 아빠가 남긴 6천 여장의 LP 음반을 팔고 죽어야겠다며 서울의 외딴 풍진동에 2개월짜리 월세를 계약해 이상한 LP가게를 연 정원과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다. 친구가 없거나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 타인의 시선이 괴로운 사람들이 모여 마치 가족을 이루듯 서로 연대하는 이야기다.

 






정원은 처음 가게를 열고 포스트잇에 음반을 들으며 느꼈던 감상을 붙였다. 이 에피소드는 어느 책방 사장이 읽었던 감상을 포스트잇에 남겼던 에피소드와 비슷하다. 나 같아도 책이나 음반 가게에 들렀을 때 주인이 적어놓은 감상을 읽으면 그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듣는 음악은 그 사람을 이루는 감정의 실체와 닮아있다. 슬플 때 듣는 음악, 사랑에 빠졌을 때 듣는 음악, 위로가 필요한 상황 혹은 상처받은 사람이 듣고 싶은 치유의 음악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에피소드와 함께 다양한 음악이 소개되는데, 영화 <위대한 쇼맨>디스 이즈 미 This is Me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다. 이 책을 읽고 영상과 함께 음악을 듣는데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더불어 Rewrite The Stars와 연달아 들었다. 상처받았을 때 힘이 되어주는 음악이며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동생 정안만이 삶의 전부였던 정원에게 친구들이 생겼다. ‘이상한 LP가게때문이었다. 죽음을 유보한 중고 LP가게가 누군가에 의해 알려지고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의 LP와 정원이 모은 LP 6312장의 앨범만 팔고 다 끝내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중고 LP를 기증하고 팔기도 했다. 이후 정원의 삶은 달라졌다. 그를 지탱하고 살아갈 힘을 준 이들은 이상한 LP가게에 들어와 청음 코너에서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열한 살 시우부터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미래와 불량품이라고 불렸던 다림은 차별에 맞서 싸우고, 육십 대의 원석은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이상한 LP가게에 들어왔다. 말이 없는 주인의 상처를 알아보고 말없이 위로해주는 사람들이었다.

 



혹시 친구가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달라질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그래서 정원은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은 아쉬운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252~253페이지)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정원이 있었다. 타인 앞에 서서 강연을 하고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음악이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마치 하나의 원처럼 서로 연결되어있었다. 피로 연결된 가족이 아니어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고 일컬었다.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거. 정원에게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살 만하지 않겠나.

 


 

#오늘도돌아갑니다풍진동LP가게 #임진평 #고희은 #다산책방 #풍진동LP가게 ##책추처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다산북스 #이상한LP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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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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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한끼

 

직장인에게 가장 안온한 공간이 탕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화장실과 순위 다툼을 할 수도 있겠다. 탕비실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며 누군가를 험담하기도 하는 곳. 하지만 비밀은 없다. 누군가는 지켜볼 것이며, 가장 꼴 보기 싫은 인간으로 추천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 탕비실처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이미예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다소 실망스러운 두께이긴 하지만 책 내용이 괜찮았다. 직장인으로서 공감하기 좋은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소설이 좀 더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탕비실은 누가 가장 싫습니까? 라는 예시에서 시작한다. 누군가는 배려라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걸 모른다는 게 안타깝다.

 



공용 얼음 틀에 콜라, 커피 얼음을 얼려놓는 사람.

공용 싱크대에 안 씻은 여러 개의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운동가.

인기 많은 커피믹스를 잔뜩 집어다 자기 자리에 모아두는 사람.

탕비실에서 혼자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는 사람.

 



탕비실TV 방송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탕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이다. 7일간 합숙 리얼리티쇼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선정된 이들이 주인공이다. 규칙을 깨면 힌트 교환권이 주어지며 탕비실에서 머무는 시간은 100분만 허용한다. 직장에서와 같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안쪽에는 침실이 있으며 자유롭게 탕비실을 사용하면 되었다. 이들 중 프로그램 제작진에서 가짜로 끼워 넣은 사람을 술래라 하고 그가 누구인지 밝히는 게임이다. 물론 상금이 걸려있다. , 이제부터 탐색전이다.



 

소설의 화자 얼음은 상대방의 배려 차원에서 콜라나 커피 얼음을 만들었다. 그게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어디든 편을 가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서로 돕자는 차원에서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리고 눈치를 보며 내게로 올 이득을 생각하는 것 말이다. 다른 출연자의 비밀을 들으려고 탕비실의 싱크대 하부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앉아있는 장면에서 인간의 이기주의적 본능을 발견했다.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얼음처럼 행동했을 거였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상당히 난처할 것도 같은데, 최근엔 일반인들도 TV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출연하는 추세다. 소설에서도 밝혔지만 구석구석 숨어있는 카메라도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게임에서 이길까,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은 직장인들은 자기를 돌아보지 않을까. 직원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지 궁금해하며 탕비실 사용하는 걸 신경 쓸 거 같다. 얼음처럼, 친절과 배려라고 했던 행동이 타인에게는 싫을 수도 있겠다는 거다. 나 또한 텀블러처럼 종이컵을 자제하고 텀블러나 도자기 컵을 사용하는 게 어떠냐?’, 라고 제안했었는데 그 또한 잔소리쟁이로 여긴다는 거다. 마냥 웃을 수만 없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여기서 질문, 당신은 탕비실에서 어떤 유형이세요? 혹은 어떤 사람이 싫어요?

 

 


#탕비실 #이미예 #한끼 #오팬하우스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리얼리티쇼 #하이퍼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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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마음
홍기훈 지음 / 득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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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마음 #홍기훈 #도서출판득수


 

사진 한 장을 보았다. 북한군 시체로 보이는 사진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투입되었다는 건 이미 뉴스로 확인했었다. 러시아가 북한군을 총알받이로 사용한 것처럼 보여 마음이 좋지 않았다. 쿠르스크 작전이었다. 몇 년 전 콜린 퍼스와 레아 세이두가 나오는 영화라고 해서 <쿠르스크>를 보았다. 나는 이 소설이 그 영화를 재구성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레아 세이두가 남편을 찾아다녔던 장면과 공허한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죽음은 이렇듯 슬픔을 안긴다.


 

가라앉는 마음은 미국 시애틀의 기자가 쿠르스크 관련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가 바렌츠해에서 침몰하며 118명의 승조원이 사망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 잠수함의 제독 등 그들의 시선으로 쿠르스크 사건을 바라본다. 먹을 것이 부족해 잠수함의 부품 등을 몰래 팔아야 했던 대화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리하여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만 겹치는 상황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던 것 같다. 쿠르스크가 침몰한 뒤 한 명의 사상자도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던 것과 책임 회피를 위해 침몰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던 장면은 세월호 사건과 흡사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은 절규했지만, 그들만의 사정일 뿐이었다. 쿠르스크 침몰 후 관계자들이 했던 행동은 세월호 사건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감추고자 하는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일까. 가족을 잃은 슬픔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며, 사건이 일어났던 때 군 관계자로서 회피했던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것도 다르지 않다. 기자가 인터뷰하러 갔을 때 가족들은 경제적 상황이 어려움에도 다과를 내어 넣고 함께 식사하기를 권하며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사고라는 건 많은 징조를 무시한 대가로 발생한다. 수직적으로 얽힌 윗사람들은 지탄받는 듯 보이다 어영부영 승진한다. 유족들은 운다. (177페이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데도 안전 불감증을 마치 습관처럼 가지고 있다. 병으로 아프든, 사고나 사건이 생기는 데는 징조가 있는 법이다. 무시하다가 수많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인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마야 카슨이 왜 그토록 쿠르스크 사고에 대하여 파고드는지 궁금하다. 물론 기자로서 취재를 위해 열정을 다한 걸로 보이기도 했지만, 사정이 있는 듯하다.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희생자들의 가족과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마야 카슨이 왜 슬픔에 잠겼는지도, 사고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에게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아픈 이야기를 한다. 낯선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들과의 감정의 전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쿠르스크 사고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사고를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 사고를 겪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배운다. 같은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좀 더 솔직해지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작가가 자료 조사를 많이 한 것 같다. 쿠르스크 영화를 보는 듯, 마야 카슨이 인터뷰를 하는 장면들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장면들을 그려본다. 정국이 시끄럽다. 다시, 평온했던 날들로 가기를 기원한다.

 

 

#가라앉는마음 #홍기훈 #도서출판득수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쿠르스크 #책방수북 #한국젊은남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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