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의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4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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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유령 #조예은 #현대문학

 


나는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특별을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분야의 책을 읽어도 일제 강점기 시대면 매력을 느끼고 만다. 암울한 시대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사람에 대한 애정과 그 시절에도 일상을 살기 위해 애썼던 보통 사람들에 관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그렇다. 다각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예은의 작품은 장르 소설임에도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그 잔재인 적산가옥에 얽힌 사람과 집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조예은이 안내하는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식 정원이 딸린 적산가옥은 현운주의 외증조할머니가 살았던 집이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외증조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자랐던 운주는 적산가옥을 일주일에 너덧 번은 찾아왔다. 적산가옥에서 죽겠다는 할머니의 평소 말처럼 외증조할머니는 10월의 어느 날 기이한 자세로 숨져 있었다. 외증조할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대학 졸업 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던 운주는 열심히 일하며 승진을 기대했으나 번번이 미끄러지고 급기야 홋카이도로 발령이 났다. 일본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며 적산가옥을 고쳐 게스트하우스를 열어볼까 고심 중이다.

 





소설을 보고 가장 놀랐던 건 운주의 남편, 우형민의 정체였다. 일반적인 남편은 별채의 어두운 장소에서 보았던 유령과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사람일 것이었다. 그러나 우형민은 운주에게 오히려 위협이 되는 인물이었다. 현운주와 우형민, 운주의 외증조할머니 박준영과 유타카의 관계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었다.

 



박준영은 일제 강점기에 간호사 자격증을 딴 인물이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원장의 권유로 개인 집에서 간호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어릴 적 보았던 일본의 갑부 가네모토의 집, 붉은 담장집이었다. 붉은 담장집의 환자는 가네모토의 아들 유타카였다. 연못 속의 금붕어를 난도질하는 듯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그를 보살핀다는 게 마땅찮지만, 가네모토가 숨겼던 비밀을 알아버린다. 가네모토의 친아들이 아니었을뿐더러 그에게 이용당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유타카와 박준영의 연대가 시작된다. 유타카의 말, 미래의 어느 순간을 말하는 단어는 적산가옥을 부유했다. 적산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집은 자신의 벽에 깃든 모든 역사를 기억한다. 안에 살던 사람은 죽어도 집은 남는다. 오히려 죽음으로써 그 집의 일부로 영원히 귀속된다. 먼저 무너뜨리지 않는 한 집은 누군가의 삶을 담으며 존재한다. (10페이지)

 



집에 담긴 역사는 사람에 의해 영원히 기억되는 것 같다. 사람은 떠나도 유령은 기억의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부유한다. 적산가옥에서 머무는 유령처럼 말이다. 별채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 손대지 않았는데도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연못에 서 있는 어린 소년의 정체. 띄엄띄엄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 두려울 수밖에 없다. 과거의 기이한 정체와 현재 곁에서 위협을 가하는 정체에 긴장의 숨을 들이킨다.

 

 


나는 말과 말을 이어주는 일이 좋았다. 언어를 배울수록 나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을 가지는 기분이었다. (25페이지)

 


내가 지나온 단어들. 언어에 담을 수 없는 마음들. 이미 잊어버린 것과 아직 잊지 못한 것. (195페이지)

 



유타카가 외증조할머니의 기억으로 꿈에 나타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었다. 박준영에게 알려주었던 미래의 일을 운주에게 인식시키고자 했다.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 운주는 적산가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적산가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나.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군산의 건물, 과거 영욕의 역사를 가리키는 건물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 또한 근대문화의 거리를 걸었고 소설의 장소가 된 건물을 방문하여 서성거렸던 기억이 있다. 건물에 스며든 기억을 기록된 역사와 상상력으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후속작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적산가옥의유령 #조예은 #현대문학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문학 #한국소설 #현대문학핀시리즈 #핀시리즈 #핀소설 #핀시리즈_장르 #추리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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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나들이 어휘력 편 - 신뢰와 호감을 높이는 언어생활을 위한
MBC 아나운서국 엮음, 박연희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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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나들이 #어휘력편 #MBC아나운서국 #창비교육

 

어렸을 적부터 책을 읽고 국어를 좋아한 사람으로서 맞춤법을 꽤 잘 안다고 여겨왔다. 시간이 지나며 맞춤법 기준이 바뀐 걸 자각하지 못하고 옛날식 맞춤법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생겼다. 잘못 쓰는 단어가 많다는 거다. 센 발음대로, 우리가 아는 대로 읽다 보니 틀린 단어가 꽤 많았다. 기억하기 위해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였다.

 


오래전에 TV를 자주 보던 시절에 MBC에서는 <우리말 나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짤막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지금도 진행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 본 적은 없다. 창비교육에서 펴낸 우리말 나들이 어휘력편MBC 아나운서국에서 엮은 책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공부하듯 읽었다. 아마도 최근에 어느 기사를 떠올린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금일을 금요일로, 사흘을 4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경종을 울리는 듯한 책이기도 했다. 바른 언어를 향한 길잡이로써 손색없는 책이다.

 






책은 4장에 걸쳐 헷갈리는 맞춤법을 소개하는데, 제대로 알면 헷갈리지 않는 맞춤법과 잘못된 발음에서 이어진 틀린 표현, 아는 만큼 바르게 쓰는 외래어 표기법, 올바른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는 순화어로 강조했다. 현재는 우리말과 영어를 혼용하여 표현한다. 또한 아직도 일본식 표현을 사용하는 우리말로 순화하여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밝혀보고자 한다.


 

갑 티슈각 티슈, 곽 티슈 중 어느 게 표준어일까. ‘은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 쓰여 작은 물건을 세는 단위를 이른다. 그래서 곽 티슈나 각 티슈가 아닌 갑 티슈라는 것을 기억하자.


 

김치를 담궈서 방에 있는 냉장고에 넣고 방문을 잠궜다. [x]

위 예문에서 보자면, 김치를 담궜다는 틀린 말이다. 김치를 만들었다는 건 담갔다가 맞다. 또한 방문을 잠갔다가 맞다. 김치 담근 날이면 김치 담았다라고 말하였는데, ‘김치를 담갔다라고 해야 한다.

 


혹시 부종으로 부은 상태를 붓기라고 사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바른 표현은 부기. SNS에서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부기보다는 붓기가 더 많이 나온다. #부기 #부기차 #부기빼기 #부기제거 #부기관리 #부기빼는법 #부기완화 등으로 해시태그를 바꿔서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어제 라면을 먹고 잤더니 부기가 있다.’라고 말해야 한다.


 

얼만큼 날 사랑해? [x]

얼마큼 날 사랑해? [o]

얼마만큼 날 사랑해? [o] (162페이지)


 

졸리다와 졸립다 중 어떤 게 바른 말일까?

친구들과 톡방에서 주로 졸려, 졸립다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졸립다’, ‘졸렵다는 잘못 쓰인 말이다. 표준어는 졸리다’ ‘졸리어(졸려)’, ‘졸리다로 활용할 수 있다. 일상에서 소리 나는 대로 말하고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주 틀리는 표현 중 좋아할는지가 아닐까. ‘‘좋아할는지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불확실한 사실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ㄹ는지라고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잘못된 표현을 사용한다.

 


일본어 표현이 많다. 그중의 하나가 감청색 혹은 감색인 곤색이다. 지금이야 감색 보다는 영어로 네이비라고 표현하지만, 우리말 표현을 알고 사용하면 좋겠다. #감색 #감청색 #짙은청색 #어두운남색 #검남색 #진남색 #반물색 이다. 개인적으로 반물색이라는 순우리말이 참 예쁘다. 반물색을 참 좋아하는데 그렇게 표현해 보고 싶다.

 


만전을 기하다라는 게 나온다. 공문서를 작성할 때 이 말을 자주 사용한 것을 보았고 나 또한 기안문 작성 시 그대로 사용했는데, 2024년 초부터 순화어 중 최선을 다하다라는 표현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책에서 보니 반가워 덧붙인다.


 

책을 읽으며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 아들과 남편에게도 읽어볼 것을 권했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책에서 나온 우리말 퀴즈를 냈다. 답을 맞히는 것을 보고 서로 응원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질문을 건네볼 생각이다.

 


 

#우리말나들이 #어휘력편 #MBC아나운서국 #창비교육 #우리말나들이어휘력편 ##책추천 #인문 #인문교양 #글쓰기 #언어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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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1-26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이 보면 ‘국어‘라는 말부터 일본말이고, ‘어휘력 편‘이라는 말씨도 일본말씨입니다.
우리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에서 ‘국민‘이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백성˝이라는 뜻이기에
‘초등;으로 바꾸었으나,
막상 다른 모든 곳에서는 버젓이 ‘국민‘을 쓰고
‘국어‘라는 군국주의 일본말을 안 버립니다.

‘순화어‘도 일본말이고, ‘퀴즈‘도 일본을 거쳐 들어온 영어이고,
˝공문서 작성˝도 일본말입니다만,
이런 말씨 하나하나를 느끼는 자리부터 돌아볼 때라야
비로소 낱말을 새롭게 살피고 배우면서
우리 삶과 살림을 사랑으로 가다듬을 수 있을 테지요.

Breeze 2025-01-26 17:04   좋아요 0 | URL
그동안 모르고 사용해왔던 말이 정말 많아요. 숲노래님 말씀으로 또 배웁니다.
 
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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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 #녹색광선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의 연기를 좋아한다. 그가 주연한 영화 콜레트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기사를 보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소설을 꽤 읽었는데도 콜레트의 작품은 생소했다. 기회가 되면 콜레트의 작품을 읽어보리라 생각하던 차에 녹색광선에서 출간한 셰리는 꽤 반가운 소식이었다. 작가이자 마임 배우, 무용수인 콜레트는 20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독보적인 작가로 일컫는다. 작품을 다 읽은 다음 영화 콜레트를 보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편의 이름으로 출간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 클로딘 시리즈는 젊은 여성들에게 사랑받으며 콜레트의 헤어스타일, 드레스 등 밈처럼 작용하였다. 그러한 장면들을 보며 작품이나 작가의 삶이나 미래를 앞서 나간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셰리는 콜레트가 첫 번째 남편 윌리와 이혼 후 자기 이름으로 쓴 작품이다. 자기보다 스물네 살 아래인 셰리와의 사랑과 욕망, 그 후에 오는 절망의 감정들을 담았다. 레아는 친구의 아들인 셰리와 6년째 만났지만, 레아와 셰리의 어머니는 그를 동년배의 젊은 여성과 결혼을 시키고자 한다. 셰리에게 누누라고 불리는 레아는 마흔아홉 살의 사교계의 여성으로 셰리의 젊음을 바라보며 나이가 들었다는 걸 느낀다. 나이를 숨길 수 없는 피부와 주름을 강하게 인식한다. 레아는 셰리가 결혼하기 전까지만 가볍게 만나는 거라고 여긴다.

 






나이 든 여자의 집착과 젊은 남자의 자신감은 어느 순간 무너지기 마련이다. 젊은 남자가 역시 젊은 여성과 결혼하자, 나이 든 여자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멀리 떠났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는 연습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늦은 밤 셰리가 찾아왔을 때 그를 붙잡고 싶지 않았을까. 젊은 아내를 떠나 자기 곁에서 머물러주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레아가 셰리와 밤을 보내고 난 후 흐트러진 자기의 모습을 보고, 정원사나 농부의 아내처럼 보인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셰리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반대로 늙어가는 자기를 바라보는 게 싫었을 것이다. 늘어난 뱃살, 숨길 수 없는 주름. 할 수만 있다면 젊음이 영원하길 바랐을 것이다.



 

넌 날 그리워하게 될 거야, 혹시 네가 네 소유이자 책임인 암사슴을 겁주게 될 것 같으면, 자제하고서 그 순간에 내가 가르쳐 주지 않은 모든 것을 생각해내길 바라. 그러고 보니 너한테 미래에 대해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구나. 용서해, 셰리. 나는 너를 마치 우리 둘 다 한 시간 뒤에 죽기라도 할 것처럼 사랑했어. 난 너보다 24년 먼저 태어났으니까 어느 정도 운명이 정해진 셈인데, 내 운명에 널 끌어들인 거야. (198페이지)



 

성숙한 여성과 젊은 남성의 파격적인 사랑과 욕망을 다룬 소설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도록 소개되지 못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여자와 남자의 관계보다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언젠가는 사랑도 빛이 바랜다. 그러한 것들이 슬펐다. 사랑하면서도 보내주어야 할 시절이 온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상상이 삶의 변화를 꾀한다. 콜레트는 넘치는 재능으로 소설을 쓰고 몸으로 표현하는 공연, 사랑에도 거침없었다. 어떻게 보면, 작가들은 앞서가는 사람이다. 여성의 삶에서 탈피해 진정한 삶의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누구의 아내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콜레트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레아는 콜레트의 다른 분신이 아니었을까. 자기의 작품에서 추구했던 게 실제로 일어났으니 미래를 내다보았음이 분명하다.



 

사진에서 보는 콜레트는 상당히 자유분방하게 보인다. 유행을 앞서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았던 그는 아름다운 여성이다. 젊음이여, 안녕. 삶이란 무릇 이런 것. 좌절하고 고통받으며 순응하는 것이다!

 



 

#셰리 #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 #녹색광선 #콜레트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문학 #프랑스소설 #프랑스문학 #불멸의고전 #고전문학 #사랑의아픔 #장소미 #Ch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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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골동품 서점
올리버 다크셔 지음, 박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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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골동품서점 #올리버다크셔 #RHK

 

런던의 새크빌스트리트에는 1761년에 문을 연 소서런 서점이 있다. 소서런은 중고 서적 및 인쇄물을 취급한다. 고서점의 수습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올리버 다크셔의 책과 서점, 책 판매자로서 성장하는 에세이다. 일자리 면접을 위해 찾은 고서점의 문턱을 밟는 순간 책의 마력에 빠지고 만다. 그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현재에도 여전히 건재한 소서런 서점에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고서적을 바라보는 감정과 누군가 내어놓은 책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모험은 책을 좋아하는 자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서점은 책을 구하는 사람에게 이윤을 남기고 팔아야 한다. 해서 값이 나갈 책을 사야 한다. 책에 깃든 사연을 듣다 보면 정작 값이 나가는 책이 없는데도 붙잡혀 있어야 한다. 서점에 찾아오는 사람, 일명 스핀들맨이 나타나면 직원들은 다 사라지고 저자가 그 앞에서 맞이하는 장면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내의 권유로 책을 처분하기로 한 남자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가 생각난다. 자신만의 애정으로 책을 소장해 왔으나, 값이 나가느냐고 물었으면서도 저자가 다녀간 뒤 연락을 끊었던 남자에 대하여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값이 나가지 않아도 책에 얽힌 추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처분하기란 쉽지 않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책을 정리하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많은 책을 처분하지 못했던 나처럼 말이다. 책에 얽힌 추억까지 버리는 것 같던 그 기분을 알까.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이 가진 희귀 서적으로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첫 번째로 넘어야 할 장애물은 드물어야한다는 것이다. 찾기 힘들어야 한다. 희귀 서적 판매자로서 말하면, 사람들은 다른 데서는 구할 수 없는 물품에 돈을 지불하게 되어 있다. (99페이지)


 

각 장이 시작될 때 소서런에서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 박, 성서 낭독대, 나무로 된 모자걸이, 외양간 올빼미, 존 밀턴의 흉상 사진을 게재했다. 책뿐만 아니라 골동품을 소장하여 희귀해지는 순간 좋은 가격으로 매매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나 책을 구매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비싸게 판매하는 줄 알면서도 구하고 싶은 마음에 손을 내밀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책이 결국 필멸하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책을 금고에 넣어 단단히 잠그고 아무도 그 책을 감상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책은 조금씩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180페이지)


 

전부터 느낀 바지만, 집에 어떤 책이 있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책 목록 작성이다. 서적 판매인에게 목록을 작성하라고 하면 기꺼이, 즐겁게 작성하는 걸 보고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일단 읽던 책 기묘한 골동품 서점이 첫 번째 목록에 자리했다. 안방에 있는 읽지 않은 책, 시리즈 몇 권을 입력하다 보니 금세 몇십 개의 목록이 나왔다. 시간 날 때마다 입력하면 언젠가는 다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희귀한 물품이 가득한 서점이 아직 존재한다는 게 놀랍다. 누군가는 고서적을 다루는 게 마음이 들어 일하고 있고, 귀한 작품을 찾아 헤매는 이들이 있어 가능하다. 이거야말로 고서점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책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 희귀한 책들을 찾는 사람이 있기에 오늘도 고서점의 책 판매인들은 희귀한 책을 찾기 위해 애쓸 것이다.

 

 

#기묘한골동품서점 #올리버다크셔 #RHK ##책추천 #문학 #에세이 #에세이추천 #영미에세이 #영미문학 #소서런 #소서런서점 #Sother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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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멜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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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문학동네 #김멜라 #공현진 #김기태 #김남숙 #김지연 #성해나 #전지영

 

젊은작가상은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십 년이 넘지 않은 작가들이 발표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봄이면 출간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해마다 읽고 있다. 2024년 제1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은 비교적 생소했다. 젊은작가상은 한국을 이끌 젊은 작가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2024년에 수상한 작품들을 보니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내용이라 책 읽는 즐거움이 컸다. 좋은 작품들을 읽어 신난다라고 말할 수 있어 기쁘다.



 

수상작들을 읽으며 작가의 이력과 이름을 기억했다. 김멜라 작가의 작품은 이전에도 읽은 적이 있어 대상작 이응 이응이 반가웠다.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올까. 개인의 욕망이 아닌 사회적 이익 때문에 쾌감을 느끼는 장치 이응의 탄생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미래에 이러한 상품이 개발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좋은 사람이란 뭘까, 라는 질문을 건넨다. 사출 성형기 작업장에 끼여 사망사고가 났는데도 멈추지 않은 공장을 바라보며 물속 깊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은 남자와 교사를 그만두고 지구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수영 강습을 받는 여자가 나와 변하지 않은 차별에 대하여 말한다.





 

김기태 작가와 전지영 작가, 성해나 작가의 작품이 특히 눈에 띄었다. 내 취향에 더 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혼모노뜻이 무엇인가.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실제 무속인의 속내를 보는 듯했다. 30년 경력의 남성 무속인의 건너편에 신애기가 새로 들어왔는데 남성 무속인의 몸주였던 장수 할멈이 신애기에게 옮겨갔다. 즉 남성 무속인은 더 이상 신점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신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건 알겠는데 몸주가 옮겨간다는 건 생소했다. 능력이 없는 무당이 벼린 칼 위에서 작두춤을 춘다. 늙은 야심가의 행태가 씁쓸하고도 슬픈 한 편의 굿판같다.

 



전지영의 언캐니 밸리를 보자. 왜소증이 있는 주인공은 크로키 작가이며 야간 택시 운전사다. 청한동 꼭대기를 오르는 당신을 태웠고 누군가 당신에게 염산을 뿌렸다. 작가는 당신에게 염산 테러한 사람을 밝히지 않으면서 주인공이 일본에서 성 상품화되었던 수치심 가득한 기억을 떠올린다. 또한 택시를 운전하며 룸미러로 보이는 손님을 관찰하며 그의 얼굴을 그렸고 나머지 부분은 상상력에 의하여 동물의 이미지를 채워 넣었다. 동기들은 역겹다고 했다. 택시 운전사는 청한동 꼭대기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습관이었다. 장신영 혹은 김승민이 없는 자리를 누군가 대신하는 거 같다. 집안으로 향하며 자갈을 밟는 남자는 어떤 마음으로 대문을 열었을까.

 



김기태의 보편 교양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단상이다. 국어 교사인 곽은 충분한 연금 수령액에 도달하려면 십오 년은 일해야 하며, 연금을 실제로 받으려면 이십오 년이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하는 장면은 직장인의 비애를 보는 듯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평범한 직장인일 수밖에 없다. 곽은 다른 교사들이 꺼려하던 고전읽기수업을 하기로 한다. 추천 도서를 선정해 아이들과 함께 읽을 예정이었다. 마르크스를 읽는다며 은재 아버지가 민원을 넣은 후 곽은 자신의 수업을 좋아하는 은재가 아버지를 설득했을 거라고 믿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곽의 마음은 어땠을까. 서울대를 보냈다는 교사로서의 뿌듯함과는 반대로 컨설턴트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 곽의 마음이 짐작되었다. 그런 법이다. 버리고 비우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비움의 미학을 배운다.

 



나에게 파주는 책의 도시라 비친다. 김남숙의 파주는 군대 시절에 폭력을 가했던 정호를 찾아온 현철의 복수를 말한다. 매달 백만 원을 입금하라며 일 년 동안 똑같이 괴롭히겠다고 말한 현철의 심리와 그를 바라보는 의 독백이다. 파주를 생각하면 현철이 먼저 떠오른다고 주장하는 는 정호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그와 함께 살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반려동물처럼 빚도 반려빚으로 불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자기와 함께 살아갈 빚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정현을 본다. 정현은 서일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언젠가는 갚을 거라고 여긴다. 다시 돌아온 서일이 잠시만 함께 살자고 했을 때 선주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승낙을 했을 것이다. 반려빚이 꿈에 나오는 장면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반려빚이 0인 상태야말로 완전한 삶인 것 같지 않느냐 말이다.

 



작가는 이처럼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되어 반가웠고, 김기태 작가의 소설집을 카트에 넣었다. 작가를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자아내는 긍정적인 효과 아닐까. 책이 책을 부르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을 읽는다는 건 한국문학의 미래를 짊어질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작가상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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