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예능 - 많이 웃었지만, 그만큼 울고 싶었다 아무튼 시리즈 23
복길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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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예능 #복길 #코난북스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드라마 보다 오히려 예능을 찾아본다. 고민과 시름을 잊을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어 그렇다. 집에 있는 주말이면 오랜 시간 마음을 쏟아야 하는 드라마보다 예능을 챙겨보며 웃고 웃는다. 그래서 이 책이 읽고 싶었는가 보다. 짐작하기로는 어떤 예능을 좋아하고 예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드러난 글로 여겼다. 하지만 저자는 예능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능인에 관하여 정확한 코멘터리를 한다. 놀라울 정도다.



 

성차별적인 진행방식과 주변인에 불과하게끔 여성을 축소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주요 인물로 강호동이나 유재석, 신동엽, 이경규 외에 나영석 프로그램에 대한 저자의 생각, 남성 일색인 예능인들의 대화에 대한 불편함 등을 거론한다. 저자의 글을 읽고 예능을 보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남성으로 구성된 여러 명의 진행자와 진행방식이 약간 거슬렸다는 게 정답이다. 이처럼 어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보이는 게 있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나영석 피디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신서유기> 빼고 거의 다 본 거 같다. 특히 좋아하는 건 <삼시세끼> 시리즈와 <서진이네>, <윤식당> 등이다. 일부러 시간 맞춰 보고, 여의치 않으면 재방이라도 꼭 챙겨본다. , 저자가 주장하는 바도 알고 있다. 나영석이 추구하는 건 우려먹기식 비슷한 포맷이지만 그게 편한 걸 어떡해. 좋은 걸 어떡해.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해 좋아하는 거라고 해두자.

 



제대로 수평을 잡으려면 기울어진 쪽에 더 무거운 추를 달아야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방송의 여러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많다. 그것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될 때까지 남성들의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감시를 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변화가 없다면 압력 또한 높여가야 한다. (182페이지)



 

남성 예능인과 더불어 여성 예능인에 관해서도 말한다. 최근 TV에서 자주 보이는 김숙, 송은이, 이영자, 박미선 등이다. 남성 주도적인 예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박미선에 관해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남성 패널의 편을 들다가 예쁘게 봉합했던 예전의 역할에서 벗어나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주 예능인이 하는 말에 장단도 맞춰야 하지만 정확한 주관과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이다. 저자는 박미선을 가리켜 겁에 질린 것같이 커다란 눈이 이제 정확한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고, 나의 엄마, 나의 달의 눈이 될 거란 기대가 생겼다.’ 라고 한 건 새겨들을 만하다.

 



대한민국의 간판 예능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무한도전>을 주말마다 기다리다 보는 마니아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챙겨보면 낄낄거리며 많이 웃었고, 가요제나, 못친소 같은 건 재방까지 찾아볼 정도로 좋아했다. 최근엔 무한상사를 OTT에서 하는 걸 보고 한두 시간을 앉아 보았다. 저자가 전하는 무한도전 장례식은 <무한도전>을 보고 드는 생각, 변화에 맞서지 못해 폐지하게 된 프로그램이다. 서글픈 마음과 조금은 반가운 마음으로 죽음을 추모한다는 저자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우리의 예능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프로그램과 예능인이 대처하는 것에 대한 성차별적인 발언들. 아울러 여성으로서 느끼는 성차별에 관한 불편함을 기술한 책이었다. 가볍게 접근했다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우리가 된 느낌이었다. 아마도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남성 일색인 진행자들이 불편할 것이며, 대사 하나에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거슬리는 말을 하는 예능인에 관한 판단을 새롭게 하게 되지 않을까. 더 원하는 건 정확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고 남녀 성별을 떠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다보면 우리 사회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아무튼예능 #복길 #코난북스 ##책추천 #문학 #한국에세이 #한국문학 #에세이 #에세이추천 #아무튼 #아무튼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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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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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증명 #최진영 #은행나무

 

최진영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다가 읽지 않은 책 중 구의 증명을 떠올렸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 중 이렇게 처절해도 되는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답 하나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남자 담과 여자 구의 사랑 이야기다. 빚쟁이들을 피하다 연인이 죽었다. 죽은 연인의 몸을 먹으며 삶을 기억한다. 매끈한 팔과 다리, 눈썹을 훑고 몸을 먹으며 슬픔을 이긴다. 지나온 삶, 처음 만났던 여덟 살 시절, 서로 모른척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기억하려 한다. 담이 구의 시체를 먹는 건 그를 기억하는 시간과 같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시간이다. 기억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 그와의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아우르는 과정이었다.

 


어렸을 적 구는 담을 괴롭혔다. 그럼에도 담은 아무렇지 않았다. 아이들이 담과 구를 놀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죽은 구를 업고 택시를 타 집에 데려왔다. 대야에 물을 담아 구의 몸을 씻겼다. 구를 방에 누이고 구의 몸 전체를 닦았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는 꿀꺽 삼켰다. 구를 먹는 작업은 구의 모든 걸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구의 몸이 자양분이 되어 자기 몸에 흡수되어 영원히 나의 몸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의 기억조차 나의 것이 될 터였다.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 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20페이지)

 


최근에 <조명가게>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를 나타낸 드라마였다. 죽은 자가 헤매는 골목은 과거와 이별하는 공간이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마음을 추스르고 결정하는 공간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지난한 과정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었다. 경계선을 나오는 자는 살 것이며, 그 안에 갇힌 자는 죽음 너머로 가는 과정이었다. 드라마를 보며 회차가 늘어갈수록 슬펐다. 죽은 엄마가 저 길을 헤매었을 거라는 생각. 살길 바라는 엄마가 구해오라는 것.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딸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까, 담이 구의 몸을 먹는 과정은 하나의 장례 의식이었다. 누구도 알게 해서는 안 되는 담만의 장례였다. 구의 기억과 내 기억이 맞물려 사랑했던 추억을 함께하는 의식. 영원히 내 마음속에 두게 하는 과정이었다.

 


너와 다른 우주에서 온전히 기억하고 있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억뿐이니까.

기억이 나의 미래.

기억은 너.

너는 나의 미래. (68페이지)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과정. 기억은 곧 사랑의 기억. 영원히 마음속에 가두어 현재를 이겨내고,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온전히 기억해야 온전히 보낼 수 있는 것처럼.


 

구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모든 말은 곧 우리의 기억. 죽는 게 죽는 게 아닌 상태의 기다림.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닿는 곳.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의 속삭임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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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 (시절 시집 에디션)
김소형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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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나누는기분 #창비교육

 

까마득한 청소년 시절을 떠올려본다. 질풍노도의 시기, 부모에게 반항했던 것도 같지만, 대체로 착한 아이였던 나.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서로의 집을 오가며 어울려 다녔다. 그때의 친구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만약 그 시절을 떠올리는 시를 쓴다면 어떤 감정을 담을까.


 

스무 명의 시인들이 청소년 시기를 떠올리며 쓴 시절 시 육십 편을 수록했다. 일명 시들의 초대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인들의 초대라고 해야 옳겠다. 시를 잘 알지 못하지만, 시를 가까이하겠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실행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늘 시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잊었던 시심을 찾아드립니다라는 모토를 가진 시절 시집 에디션이다.

 


오랜만에 시를 읽고, 시가 이렇게 좋았었지. 왜 그동안 잊고 있었을까. 이처럼 기회가 닿아야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시가 시를 부르는 것 같달까. 시 몇 편을 읽어 보자.





 

바스락대는 봉투에서

도넛을 꺼내려는

밤의 버스 정류장.

버스는 아직 오지 않고.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아도 좋고.

그런 밤의 버스 정류장.

, 도넛을 꺼낸다.

그런데 어째서

도넛은 손끝으로 집는 거지.

아슬아슬하게.

까슬

까슬

까무룩

(중략)

꺼낸 도넛을 반으로 가른다.

집으로 돌아가려 함과

집으로 가고 싶지 아니 함처럼.

정확히 나누었는지를 묻지 않기.

(후략)

(132~133페이지, 유희경 도넛을 나누는 기분중에서)


 

유희경 시인의 시 세 편은 다 옮겨오고 싶을 정도였다. 밤의 버스 정류장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과 도넛을 꺼내어 반을 갈라 설탕 가루가 떨어지는 모양 즉 '까슬''까무룩'이란 시어가 퍽 인상적이었다. 서윤후 시인의 하나를 세어 보는 수만 가지 방법이라는 시는 또 어떤가.


 

빗방울은 모두 몇 개지?

 

우산을 나눠 쓰던 네가 묻는다

모른다는 말은

너무나 큰 먹구름일 테니까

단 하나야

셀 수 없는 건 모두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중략)

 

우리는 알 수 없어서

 

비가 그친 줄 모르고 우산을 함께 쓰고 걷는다.

이 모퉁이만 지나면

집에 가는 길이 나뉘니까.

 

하나는 쪼개지면 겨우 다시 하나가 된다

조금 더 큰 하나의 어깨 쪽으로

우산을 밀어 준다

 

화창한 가운데 젖은 자리를

다독이는

 

햇빛 쏟아지는 (60~61페이지)


 

예전에 읽었던 시와 조금 달라진 거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들의 마음처럼 통통 튀는 시어들의 집합이다. 비와 우산, 빗방울. 잠시라도 같이 있고 싶어 우산 하나로 골목이 나뉘는 모퉁이까지 걷는 그 마음이 짐작되었다. 설레는 기분. 행복한 기분.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어서 시험 공부라는 핑계를 대고 친구랑 같이 잤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한 시인의 시 세 편이 실려있고, 끝나는 장에 시작 노트가 수록되어 시를 쓰게 된 배경과 느낌이 드러나 있다. 시를 잘 몰라도 시작 노트로 짐작해보게 된다. 표지도 정말 예쁘다. 마치 금방이라도 뚫고 나올 것처럼 선명한 색감에 기분이 밝아진다. 색깔이 이렇게 마음을 두드리는 것, 오랜만이다. 기억과 경험, 그리고 상상이 묻어나는 시였다. 좀 더 시를 읽고 싶게 만들었다. 어디든 아무 페이지든 펼쳐 읽어도 되고, 필사하며 읽어도 되는 시절 시집을 읽어 보자.

 

 


#도넛을나누는기분 #창비교육 #김소형 #김현 #박소란 #박준 #서윤후 #성다영 #신미나 #양안다 #유계영 #유병록 #유희경 #임경섭 #임지은 #전욱진 #조온윤 #최지은 #최현우 #한여진 #황인찬 ##책추천 ##시집 #시집추천 #한국시 #한국문학 #시절시집에디션 #시절시집 #창비청소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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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안건우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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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알베르카뮈 #녹색광선

 

살면서 내가 계엄령을 겪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엄령을 내렸던 이의 탄핵을 바라보는 초유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독재를 꿈꾸는 지도자가 존재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일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보지 않던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를 보며 세상에, 이런 일이~!’란 말을 반복했다. 자유롭던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자각했다.



 

그래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읽고 싶었다. 소설인지 희곡인지 알지 못했고, 알베르 카뮈의 책이라는 것만 알았다. 책을 읽으려고 펼쳐보니 희곡이었다. 이방인에 이어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찬사를 받은 페스트이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프랑스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인 장루이 바로의 연출을 위한 초안을 바탕으로 한 작품의 결과물이다.





 

에스파냐의 카디스에 혜성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카디스에 저주가 내렸다고 생각했다. 그 뒤 독재자 페스트가 비서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총독은 카디스를 페스트와 비서에게 이양하고 도망쳤다. 즉 카디스를 버렸다. 비서는 페스트의 명령에 따라 인간들을 선별하여 가슴에 표식을 남겼다. 표식 하나는 의심자, 둘이면 감염자, 셋은 말살자다. 표식은 페스트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페스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감시 대상이며 사랑같은 건 입 밖에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카디스는 혼란에 빠졌다.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사랑하는 사이이며 판사인 빅토리아 아버지에게 결혼 허락을 받았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비서에게 말했다가 겨드랑이 밑에 표식을 받았다. 술주정뱅이 나다는 그들의 부름에 사람들을 선별하는 업무를 부여받았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느냐 말이다. 그러나 디에고는 표식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페스트라는 독재자는 공포를 극복한 사람에게 나타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혼란스럽고 두려운 도시에도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비상계엄령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국회로 달려갔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계엄령 해제를 의결하기 위한 표결에 참여했다. 그리고 탄핵 결과만을 앞둔 이때 계엄령은 얼마나 적절한 책이냐 말이다. 계엄령은 용기를 북돋는다. 용기를 잃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국회 앞, 헌법재판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적극적으로 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현재 상황에 대한 희망적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용기, 물러서지 않는 저항정신이 우리 민주주의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뒤엎으려 하는 자가 있었고, 그를 옹호하는 세력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카뮈의 계엄령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책이다. ‘전체주의 억압에 관한 극적인 은유에 가깝다.’라고 했다. 에스파냐 내전을 재현하는 듯한 상황과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가 이를 가리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래의 문장에 나타나 있다.

 



그러니까, 결함이 있다고요.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 체계의 결함이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고 저항하기만 해도 삐걱대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체계가 멈춰 버린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죠. 하지만 어쨌든, 삐걱거린다는 거죠. 때때로 작동이 완전히 정지될 수도 있는 거고요. (131페이지)

 



체제에 순응하고 살기보다는 공포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정의이며 살아갈 힘이다. 지금의 현실과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페스트라는 독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를 따르는 자들의 행태와도 비슷하다. 이러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현재에 꼭 읽어야 할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가벼운 바닷바람이 불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것이다. 그게 간절한 바람이다.

 

 



#계엄령 #알베르카뮈 #녹색광선 ##책추천 #문학 #희곡 #안건우 #프랑스소설 #프랑스문학 #프랑스희곡 #전체주의 #에스파냐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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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동화 발도로프 그림책 12
그림 형제 지음, 다니엘라 드레셔 그림, 한미경 옮김 / 하늘퍼블리싱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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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그림동화 #그림형제 #다니엘라드레셔 #하늘퍼블리싱

 



옛날 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하는 동화를 좋아했다. 지금도 여전해서, 이 나이가 되어도 아름다운 그림동화책 표지와 그림만 보고서 펀딩 구매 버튼을 눌렀다.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책인 줄 알았더니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었다. 그림 판형이 크고 상당히 얇다는 점. 글씨 또한 커서 아이가 앉아서 몇 번이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오랜만에 동화책을 읽고 났더니 아이들 어린 시절에 동화책 한 권을 스무 번이고 읽어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기억하고 있으려나. 아이들에게는 그림 동화책을 읽는 즐거움을, 어른들에게는 아이들과 읽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아름다운 그림동화는 그림형제의 동화가 총 열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미술치료실을 운영하기도 했던 독일 작가 다니엘라 드레셔의 아름다운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개구리 왕자, 라푼젤, 찔레꽃 공주, 은화가 된 별, 재투성이 아셴푸텔, 오누이, 별별 털복숭이, 백설공주, 숲속의 세 난쟁이, 홀레 할머니. 동화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여 어린이들의 교육 효과와 더불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게 하는 힘이 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용들을 읽다 보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이 많아서 조금 웃었다. 예를 들면, 백설공주에서 난쟁이들이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해도 공주는 왜 매번 열어주느냐 말이다. 나쁜 왕비의 꾐에 넘어가는 백설공주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한 개만 팔아달라고 하는 마음을 거절하지 못하는 소위 착해서’,라고 해두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라푼젤이 상추를 뜻하는 독일어라는 것이다. 찔레꽃 공주는 우리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고 읽어왔던 동화다. 동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일반적인 동물이 아니다. 마법에 걸린 왕자님이나 중요한 예언을 하는 생물로 비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왕비님에게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나 예쁜 공주님을 낳으실 거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공주가 태어나고 열세 명의 지혜로운 요정들을 초대해 대접해야 하는데 열두 개의 황금 접시만 있었던 임금님은 열두 명의 요정들만 초대할 수 있었다. 초대받지 못한 요정이 기분 나빴던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공주님에게는 열두 번째 요정이 남아 있어서 물레에 찔려도 죽지 않고 백 년 동안 잠을 잘 수 있었던 거다.

 



우리가 신데렐라라고 알고 있는 재투성이 아셴푸텔은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인물에 가깝다. 왕자에게 신붓감을 찾아주기 위해 열었던 무도회에 자기도 가고 싶다고 말한 용기를 보라. 하지만 새어머니를 얻은 아버지는 왜 이리 무능한지 모르겠다. 자기 딸이 계모에게 하녀 취급을 받고 재투성이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게 없느냐 말이다.

 



별별 털복숭이에서 공주도 진취적인 여성이다. 아름다운 왕비가 죽자 왕은 왕비와 똑같이 닮은 공주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신하들은 깜짝 놀라서 나라가 망할 것이라며 왕을 말렸다. 하지만 왕이 뜻을 굽히지 않자 공주는 그 결정을 미루기 위해 세 가지 옷을 달라고 했다. 왕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자 얼굴과 손을 검게 칠하고 도망쳤다. 여기에서도 무도회는 빠질 수 없다. 무도회가 열리자 공주는 얼굴과 손의 검댕을 지우고 털가죽 외투를 벗었다. 빛나는 드레스로 갈아입고 무도회 장소로 가 왕자와 춤을 추었다. 자기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나섰다. 아름다운 공주와 춤을 춘 왕자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건 안 비밀.

 



예전에 어떤 책에선가, 유리관 안에 누워있는 백설공주에게 키스를 하는 왕자를 가리켜 시체 애호증 환자라고 말하는 걸 읽었다. 오늘 백설공주를 다시 읽으니 섬찟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죽은 백설공주가 누워있는 관을 달라고 한 저의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동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그 시대의 세태를 들려준 것만 같았다. 물론 백설공주는 목에 걸린 독사과를 뱉고 살아날 거라는 결말을 알고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동화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읽힌다. 동화 속 공주가 되어 왕자를 찾아 헤매는 상상을 한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계모이고 어딘가에 친엄마가 살아 있을 것 같은 상상을 안 해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동화가 우리에게 이런 상상을 심어 주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한다. 자기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계모, 그룹의 수장으로 올리려는 계모가 현재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동화가 가진 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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