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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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역사는 늘 가슴아프다. 전쟁의 역사 속 진실과 마주할 때는 특히 더 가슴아프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죽이거나 죽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상흔은 몇십 년이 지나도 가슴에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일부러 잊고 살려고 해도 가슴 한구석에는 폐허처럼 자리잡아 가슴을 허허롭게 만드는 게 또한 전쟁의 상흔이다. 어느 나라든 전쟁의 역사는 이토록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책속의 주인공 호프만 씨가 몇십년의 기억들을 일부러 꺼내놓지 않고 잊고 살았던 것처럼 전쟁의 역사는 그렇게 참혹하게 기억될 뿐이다.

 

  일흔이 넘은 호프만 씨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1941년 10월의 어느 날, 부모로부터 친척집에 가야한다고 하고 열두 살의 게오르크에게는 이웃집에서 자라고 했던 그 날의 기억들을. 게오르크는 부모가 떠나는 장면들을 보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잡혀가던 그 시절의 일들. 소년은 부모의 생사를 어느 정도 예감했으면서도 오래도록 기억하지 않으려했다. 우연히 방송에 출연하게 된 호프만 씨는 어릴적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이어 한 여성으로 부터 서류 봉투 하나를 받게 된다.

 

  봉투 겉표지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아우슈비츠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60년이 지나 아들 호프만 씨에게 배달되었다. 서류 봉투 속에 든 것은 오페라의 거장 오펜바흐의 미출간 친필 악보였고, 악보의 가치는 말할 수 없이 컸다. 호프만 씨를 인터뷰 했던 방송 기자 발레리는 호프만 씨의 대리인 자격으로 악보의 저작권 문제로 계약하러 프랑크푸르트로 떠났고, 약속 장소인 선상 레스토랑에서 다섯 명의 시체가 발견된다. 발레리는 실종되었다. 선상 레스토랑의 주인 남자도 사라졌다. 총상을 입은 다섯 명의 시체. 경찰은 누가 무슨 이유로 이들을 죽였는지 사건을 그려보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청 강력계 팀장 로버트 마탈러가 이 사건을 이끈다. 마탈러는 이 사건의 살해 동기가 뭘까 생각한다. 사건이 일어날 만한 근거를 찾아 다닐수록 수수께끼 같다. 발레리의 실종의 이유도 찾지 못하겠고, 선상 레스토랑의 주인 또한 중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으로 받은 오펜바흐의 친필 악보와 악보를 빼앗으려는 자들. 돈을 벌기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죽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갈수록 상상하지 못했던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오펜바흐의 친필 악보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얼까. 돈 아니면 역사? 좀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법도 한데 그 이유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친필 악보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이들의 분투기 정도면 상당히 실망스러울텐데, 역사 얀 제거스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 속에 숨겨둔 비밀을 숨겨두고 있었으니까. 

 

  앞서 이야기했지만 전쟁은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도 있었듯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실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소설에서처럼 실제로도 그런 인물들이 있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새로운 신분을 얻어 살아온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터. 죽을때까지 비밀로 하고 싶겠지만 어디 세상 일이라는게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언젠가는 드러나고 말 일이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청 강력계 팀장 마탈러의 활약이 돋보였다. 애인 테레자와의 관계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직원들에게도 인간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또 얼마나 차갑게 대하는지 강력계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탈러라는 인물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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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허밍버드 클래식 5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배수아 옮김 / 허밍버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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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집을 새롭게 읽고 있으려니 마음이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서 읽었던 어린시절의 동화는 상상력의 힘을 길러주었고,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동화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길러 주었다. 나이가 들어 내가 다시 읽는 동화는 어린시절의 환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이처럼 모든 시절을 총망라하며 우리에게 꿈과 낭만을 길러주는 게 동화가 가진 힘이 아닌가 싶다.

 

  안데르센 동화집도 꽤 많이 알고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내가 읽지 않은 동화도 있다는 걸 알았다. 허밍버드판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수록된 동화 중 내가 읽은 것은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백조왕자」 뿐이었다. 나는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은걸 보면 읽지 않은 「눈의여왕」, 「그림자」, 「어머니 이야기」, 「발데마르 다에와 그의 딸들에 대해서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름다워라」라는 동화였다. 이 동화집은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가 번역했다. 배수아만의 감성과 문장이 살아 숨쉬는 동화였다.  

 

  『안데르센 동화집』을 보며 느낀 것은 그림을 그림 삽화가들이 19세기에 태어난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동화와 잘 어울렸다. 현재의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의 이야기가 먼 곳에서 온것처럼 다른 감정들을 선사했다.

 

라플란드는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곳이야. 얼마나 아름다운 땅인지! 눈에 덮인 드넓고 눈부신 벌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지. 눈의 여왕은 그곳에 여름 별장을 두고 머물러. 하지만 여왕의 성은 그보다 더 북쪽, 북극에 가까운 스피츠베르겐이란 이름의 섬에 있어. (71페이지, 「눈의여왕」 중에서)

 

  카이와 게르다의 거울 조각으로 인한 모험의 여정은 한 곳에 머물고 있는 것 보다는 먼 곳을 향해,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꿈꾸게 한다.

 

  내가 읽지 않은 동화중 인상 깊었던 작품이 두 작품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그림자」라는 작품이었다. 빛이 비칠때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림자. 그림자는 빛의 방향에 따라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하는 것. 나의 분신이었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어느 날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의 행세를 하는 나의 그림자를 만났다면 그림자의 주인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더군다나 그림자는 부자고, 그림자의 주인은 가난한 학자라면. 그래서 어딘가로 떠난 여행에서 자신의 그림자 행세를 해달라고 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잘 지켜야 함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자신의 존재까지 도둑맞을지도 모른다.

 

 

 

형체의 마법이 그를 홀렸다. 그는 상자를 보았지만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 경솔함은 결혼 생활에 불행을 가져다준다. 그것도 엄청난 불행을. 상자가 망가지고 떨어져 나가면, 그제야 사람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호화로운 파티에 갔는데 바지 단추 두 개가 몽땅 떨어진 걸 안다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 (275페이지, 「아름다워라」 중에서)

 

  「아름다워라」라는 작품은 칼라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반한 알프레드의 이야기이다. 그가 보았던 칼라의 외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보는 칼라는 자신과 대화가 통화지도 않았고, 그저 거실의 정물화처럼 아름다움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외모에 홀려 사랑에 빠졌더라도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생활인 것을. 칼라의 친구 소피의 방문은 그에게 어땠었는가. 마른 하늘의 단비처럼, 막힌 곳의 싱그러운 바람처럼 느껴졌었다. 못생긴 외모였지만 소피의 박식함이 그에게는 청량감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녀와 대화하는게 너무 즐거웠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중에 외모가 아름다운 것보다 미모는 좀 못하더라도 삶의 지혜가 가득한 사람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배우자를 고를 때도 그렇지 않을까 시쳇말로 외모는 몇개월이라고 하던데. 외모 이외의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훨씬 더 많이 필요하고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야 깨닫지 않는가.

 

  우리가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것들. 동화나 문학등 언제 읽어도 좋고, 세대를 달리해 읽어도 좋은 것이 고전이다. 몇세기가 지나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경험을 대리하게 만들고 다양한 감정과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들. 마음이 다시 말랑말랑해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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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7
에드몽 로스탕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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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국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시라노 에이전시라는 곳에서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을 대신해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는 영화였다. 가장 보편적인 러브 스토리의 영화였지만 영화속 삽입곡이었던 아그네스 발챠의 Aspri Mera Ke Ya Mas(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라는 곡이 좋아 음악이 닳도록 들었었다. 아그네스 발챠의 곡이 좋아 영화까지도 훨씬 더 감동적이게 다가왔었다. 이 영화가 프랑스 소설 『시라노』라는 작품을 모티프로 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나는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았고 이 작품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이제야 이 책을 읽었다.

 

 

  소설인줄 알았던 『시라노』는 연극 무대에 올리는 희곡이었고, 대사만 보고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었던 나의 우려를 말끔히 없애 주었다. 희곡의 새로운 맛을 들였달까. 간단한 설명과 무대를 비춰주는 불빛, 출연자들의 이름들. 소설과는 약간 달라 생소했지만 대사가 살아 있어 대사 속의 감정들을 살피는 즐거움을 주었다.

 

  『시라노』의 이야기는 못생기고 코가 큰 시라노라는 남자가 있었다. 시라노는 자신의 아름다운 사촌 록산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외모때문에 혼자만의 짝사랑을 하고 있던 즈음, 크리스티앙이라는 남자가 록산을 사랑한다고 했다. 크리스티앙은 문장을 만드는 재주는 없었지만 잘생긴 외모로 록산의 사랑을 받았다. 크리스티앙의 마음을 대신해 편지를 쓰는 시라노는 자신의 온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록산은 처음엔 크리스티앙의 외모에 반했지만 점점 그가 보낸 편지의 문장들에 반했다. 크리스티앙과 만나면서도 그에게 아름다운 문장을 들려달라고 했고, 문장을 만드는 실력이 없는 크리스티앙은 또다시 시라노의 도움을 받아 떠듬떠듬 말했다.

 

  하지만 록산을 짝사랑하는 드 발베르 자작의 음모로 크리스티앙은 전쟁터로 떠나게 되고, 록산은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록산을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던 시라노는 전쟁터로 향했다. 록산이 사랑한 것은 이제 크리스티앙의 외모가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매일 두 통씩 편지를 쓸 정도로 열렬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던 문장들이었다. 시라노의 문장들이 록산을 사로잡았다.

 

  록산의 한 말 중에서 이제는 크리스티앙의 외모도 필요치 않다고 했다. 그의 지성을 알 수 있는 그가 말하는 문장이 좋다고 했다. 얼굴이 추남이어도 상관없고 그의 문장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외모가 아름다우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사랑하겠금 만드는 효과가 있지만 살다보면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걸을 우리가 일깨우는 것처럼 록산도 외모와는 상관없이 외모보다 더 중요한 사랑하는 마음, 즉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있는 문장을 사랑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어쩌면 이렇게 아이러니한지. 록산이 크리스티앙을 사랑했고, 시라노는 록산을 사랑했지만, 록산이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시라노의 마음이 배어있는 문장이었지만 록산은 그것을 몰랐다. 자신이 추남이라며, 록산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라노는 몇 번의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티앙의 록산을 향한 사랑은 또 어떠한가. 자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던 록산이 그가 보낸 편지속 문장들을 사랑한다고 했을때의 좌절감이란. 록산이 사랑한 것은 크리스티앙이 아니라 시라노의 마음, 즉 시라노의 영혼이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서로 함께 바라보는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 속에서 서로 마주보는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등을 바라보기도 하는 것. 뒤돌아보지 않는 등을 향해 있는 시선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것만 바라보느라 누군가 나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수도 있다. 오랜시간 록산의 곁에 있었던 시라노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록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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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애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7
마리 유키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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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응정신병이라고 들어봤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감응정신병'이라는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정신이상증세(환각, 망상 등)가 생활반경을 공유하는 정상인에게도 옮아가는 증상을 말한다. 이런 것도 있었던가. 만약 감응정신병 환자랑 얼마간 있다보면 그 증상이 정말 옮아갈지도 모른다. 비슷한 이야기를 자꾸 말하고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기 때문에 심약한 사람은 어느새 그 말이 정상인이 하는 말처럼 느껴져버릴지도 모른다.

 

  작가 마리 유키코는 감응정신병이라는 정신병리학 증상을 모티프로 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책을 읽다보면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하지만 어느새 이야기에 현혹되어 책 속에 빠져드는 효과가 있다. 몇 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기도 한다. 이 편에서 나왔던 사람이 다른 편의 이야기에도 나와 연작처럼 읽어지는 것이다. 

 

  만약 여성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이름을 쓰고 책 속에서 나오는 인물중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면 자신처럼 느껴질까. 우연히 연재소설을 읽었는데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고, 작가가 자기를 좋아하는게 아니냐고 생각해 버린다면의 가정을 다룬 내용. 아.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부터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프렌지》라는 패션잡지에 연재하는 하루나 미사키의 「당신의 사랑에게」라는 작품이다. 하루나 미사키가 주인공이 되어 무명의 한 개그맨을 사랑한다는 이야기.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좋아하는 연재소설인 것이다. 연재 소설에 열광하고 그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하기도 하는 것 말이다.

 

 

 

 

 

  백화점 식품 매장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특히 먹는 것을 판매하는 코너에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 가족들에게 주기 위해 크로켓을 구입했는데 거기에 사람의 손가락이 들어있다면? 다른 것도 아니고 얼마나 끔찍하겠나. TV 뉴스는 물론 아마도 그 백화점과 매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지도 모른다. 옆 판매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해도 예민하기 마련. 순간적으로 사람을 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인터넷의 시대. 자신의 마음을 달랠 곳으로 인터넷 블로그를 하는 여성은 어느 날 모 백화점의 멘치카스에 손가락이 들어있었다는 허위 사실을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 글로 인해 아이피 추적을 당해 그 회사로부터 고발되는 여성도 있었다. 소위 '카더라' 라는 글 하나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단편들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하루나 미사키의 「당신의 사랑에게」라는 소설이 실린 패션잡지 《프렌지》의 뜻을 보면 이 소설 속 사람들의 행태가 이해가 된다. Frenzy라는 뜻은 '광란'이라는 뜻이기도 하므로. 아, 정말 내 머릿속까지 어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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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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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축구대회나 야구대회를 해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때 국가 대항전이라도 하면 겨우 보는 편일까. 그나마 한일전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이상하게 궁금하기는 하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올림픽이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있더라. 나는 여태까지 한번도 야구장엘 가본 적도 없는데, 주변의 친구들은 아이들 때문에라도 자주 가고 친구들끼리도 간다는 것이다. 이런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볼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소설과는 다르게 옆집 아저씨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그래서일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열리는 때, 일본의 한 스포츠매거진의 요청으로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 및 시드니 여행기를 담은 책은 편하게 책으로 읽을 수 있었다. 최근에 열린 올림픽 관전기였다면 더 기억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약 십오년 전에 있었던 올림픽이라 그저 책에 의존하여 시드니 올림픽을 그려보았다.  

 

  지금도 여전히 마라톤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루키가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스포츠매거진이 요청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 속에서 하루키가 스포츠 마니아 인가 하면 그런것도 아닌것 같은데 말이다. 오히려 하루키는 경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기 보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과 주변 여행에 더 심취했다고도 볼수 있었다. 나 같아도 만약 다른 스포츠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올림픽 관전 겸 여행하는데 시간을 더 투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올림픽 경기장에 매일같이 다녔던 하루키는 가방 속의 물건들, 예를들면, 선글라스와 안경, 자외선 차단 크림, 녹음기,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생수를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올림픽을 관전하기에 적당한 복장도 말했다. 낮에는 더워도 초봄 날씨니 긴바지가 필요하고, 걷기에 쉬운 조깅화, 어깨에 걸칠수 있는 상의나 스웨터, 반팔 셔츠, 모자, 가방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화장실 한 번 가기도 불편한 곳에서 특히 물은 꼭 챙겨가야 한다며 강조했다.

 

 

 

  세계인이 즐기는 올림픽. 우리나라에서도 1988년도에 서울 올림픽을 했었고,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인 이유때문에라도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하는데,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를 모른척 할 수가 없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어떤 나라던가. 영국의 죄수들을 수감하려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낸 곳이었다. 수감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데 반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리잡은 인물들도 많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인 에버리진 말살 정책이 벌어졌었고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미개한 원주민 가정에 구출해 문명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원주민 복지법령'에 의거하여 부모로부터 강제로 격리시켰다고 했다. 

 

   그럼에도 올림픽은 성대했고 각 경기장엔 스포츠를 즐기려는 많은 사람으로 인해 붐볐다. 하루키의 올림픽 관전기에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한국과 일본의 야구 경기에 대한 언급이 있어 반가웠다. 그때 한국은 올림픽에서 야구부분 동메달을 획득했다고 한다. 하루키가 말하기를 일본은 중국에 강하고, 한국은 일본에 강하고, 중국은 한국에 강한다고 했던가. 예나지금이나 역사적인 사건들때문에 아시아 3개국에 대한 경기는 예민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전혀 흥미 없다. 무엇이 옳은가. 결국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든, 시간이 지나면 모든 저울은 기울어야 할 곳으로 기운다. 세상사 대부분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된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래서 무슨 대가를 치렀는가, 이다. (399페이지)

 

  올림픽은 승리의 역사다. 승리를 해야 기분도 좋고, 자국에 입국했을때 더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어디 국민들 뿐일까. 선수들 자신들도 사람들이 인식을 달리한다. 본인에게도 명예롭고 또 금전적으로도 혜택을 받지 않는가. 하루키는 실제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는 것과 TV에서 화면으로 보지 못한 것의 차이가 크다고 했다. 직접 경기를 본 사람은 경기장만의 열정을 그대로 느낄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의 심장박동이 두근대듯 관전하는 사람들의 심장소리도 크게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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