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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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난후 돌이켜보면 그리운 법이다. 그 시절의 고통이 있었기에 현재가 있는 법.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임에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우리가 견뎌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픔도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되는 법. 우리는 지금도 미래의 역사를 쓰는지도 모른다.

 

터키 이스탄불의 한 소년.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자를 판다. 시골인 아나톨리아에서 도시인 이스탄불로 나와 낮에는 중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아버지를 따라 보자를 판매한다. 여기에서 보자란 기장으로 만든 술에 가까운 터키의 전통 음료다. 짙은 노란색을 띤 음료로 약간의 알코올이 가미되어 있다. 우리의 단술 정도라고 보면 될까. 1969년부터 2012년까지 약 사십 년 간의 이스탄불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 거리를 누비는 노점상들. 소위 노동자 계층의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도 자기 집 한 칸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닮았다.

 

많은 부분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보자 장사치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오오자아아아~! 하고 외치는 소리는 우리의 과거와 닮았다. 찹쌀~떡!, 메밀~묵! 하고 외치던 소리 말이다. 때로는 집에 있는 손님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보자를 산다. 윗층에서 바구니를 내려 보내 보자를 사고 파는 모습은 정겹기까지 하다.

 

우리의 주인공 메블루트가 사촌 형 코르쿠트의 결혼식에서 형수인 웨디하의 여동생 중의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에 반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수백 통의 편지를 쓴다. 코르쿠트의 동생 쉴레이만과 형수 웨디하의 도움으로 눈동자가 아름다운 '라이하'에게 3년간이나 편지를 썼다. 그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라이하와 도망치기로 했다. 일명 신부 납치. 터키에서 신부를 데려올때는 신부의 아버지에게 지참금을 주어야 한다. 돈이 없는 메블루트는 라이하의 마음을 얻어 도망치기로 했던 것이다. 

 

신부의 아버지가 쫓아올지도 몰라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트럭을 타고 도망쳤다. 도망친 신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던 메블루트는 번개가 칠때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그녀가 자신이 그리워했던 그 소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 느꼈던 낯선 감정이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다.

 

지난 3년 간 편지를 썼던 소녀가 아내의 여동생이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메블루트는 라이하에게 자신의 감정들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를 평생을 함께 할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메블루트의 과거로, 이스탄불로 오게 되는 과정들을, 라이하와 함께 이스탄불의 격동의 현대사가 시작되었다.

 

 

 

 

소설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거리를 누비는 하찮은 보자 장수 임에도 메블루트는 누군가를 속이려 들지 않는다. 그가 식당의 매니저로 일했을때 직원들을 감시해야 함에도 그들을 고자질하지 않은 것처럼. 그의 친구 페르하트가 전기검침원으로 일했을 때 불법으로 전기 쓰는 것을 봐주며 댓가를 챙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메블루트는 적발하지 않았다.

 

사람은 도시의 인파 속에서 외로울 수 있고, 도시를 도시이게 만드는 것도 어차피 군중 속에서 마음을 스치는 낯선 생각들을 감추는 데 있었다. (131페이지)

 

메블루트의 이야기는 3인칭 시점으로 그의 주변 사람들은 돌아가며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메블루트를 바라보는 감정들,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들을 그들의 이야기로 알 수 있다. 마치 독백처럼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터키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의 궁핍한 생활. 집을 짓고 나서 마을 이장에서 서류를 임시로 발급 받는 것하며, 그 증서가 곧 그들의 재산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 군부 쿠데타로 인해 서로를 적대시 했던 행동들. 도시화로 변해가는 이스탄불의 풍경은 재산을 다투는 모습까지 보인다.  

 

나뭇잎들이, 단어들이 말을 하며 움직였다. 마음의 의도와 말의 의도 사이에 놓인 다리는 물론 운명이었다. 사람은 어떤 의도를 두고 다른 것을 말할 수 있다. 운명은 이 두 가지를 합치할 수 있다. (중략) 하지만 마음의 언어와 말의 언어는 바람, 우연, 시간 같은 운명에 관련된 것들로 인해 실현된다. 라이하와 함께 발견한  행복은 메블루트의 인생에서 커다란 운명이었고, 그것에 존경을 표해야 한다. (534페이지)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수많은 낯선 감정을 만나게 된다. 메블루트가 라이하를 처음 만났을 때 반했던 소녀가 아니었음을, 딸 아이가 태어났을때 라이하가 아이만 바라보았을때 느꼈던 질투라는 낯선 감정들처럼. 그럼에도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일테다. 두려웠던 감정들을 뒤로 하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표지속에서 보였던 지게를 짊어진 소년의 삶의 무게가 지쳐보인다. 그럼에도 미래를 향해 나아갔던 행복을 위한 발걸음이었다는 걸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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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 유물즈 리미티드 에디션 구입하고 싶다.

박물관과 유물을 애호하고 문화재 보존 과학을 공부하는 김서울이 트위터에 유물 사진을 꾸준히 올렸고, 이를 책으로 출간한게 이 책이다.

 

사진 자료를 보는데, 우리나라 유물을 다룬 다른 책과 사진 구성등이 확실히 달랐다.

갑자기 동그래진 눈.

안사면 죽을 것 것 같은 감정을 아시려나...

 

사진작가 이택우의 '손' 포스터와 동물엽서 8종, 성냥으로 구성된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이번 리미티드 에디션을 끝으로 절판 예정이라니!

역사 유물에 관심있는 분들은 얼른 구매들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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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중 알라딘의 알림을 보았다.

솔제니친의 <수용수군도> 라는 책이다.  

 

수많은 책들의 홍수 속에서 내가 읽고 싶은, 갖고 싶은 책들이 있기 마련.

알라딘의 특별 구성 때문에 또다시 책을 뒤적이고 있다.

 

 

그외 구입하려고 목록 만들어놓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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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7-12-0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림 안 왔어요 ㅠㅠ 신간 페이지보다 발견했는데 넘 반가워요.

Breeze 2017-12-08 14:45   좋아요 0 | URL
그죠? 사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하네요. ^^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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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집은 더이상 집이 아니게 된다. 사랑했던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공간을 견디지 못한다. 추억이 배어있는 사진들, 물건들.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 힘들어 사람들은 다른 공간으로 이주하거나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 나름의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다. 우리 또한 그러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지 않은가.

 

『파이 이야기』의 얀 마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구원의 길에 이르는 이야기를 한다.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자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전체의 맥락으로 보면 같은 이야기다. 시대를 달리해 고통의 시간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는가에 대한 이야기 였다.

 

1904년 포르투갈의 리스본, 고미술 박물관의 학예사 보조로 일하고 있는 토마스는 일주일 만에 아내와 아들, 아버지를 잃는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토마스는 신에 대한 반발로 뒤로 걷기 시작한다. 박물관에서 우연히 노예 무역이 활발하던 시대의 그들을 위했던 율리시스의 신부의 일기를 발견한다. 예수의 형상을 유인원처럼 만든 십자고상을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위치한 성당에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토마스는 17세기의 십자고 상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부자인 숙부에게서 자동차를 빌려 많은 물건을 싣고 그곳으로 향한다.

 

1939년의 포르투갈의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 그가 하는 일은 시신을 부검하는 일이다. 늦은 밤 자신의 사무실에 있던 그는 아내 마리아의 방문을 받는다. 마리아와 에우제비우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그날 밤에도 마리아가 찾아와서는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가 존재의 서술이며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부재의 복음서라는 이야기를 한다. 마리아가 가고난 뒤 같은 이름의 마리아가 찾아와서 남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펴달라고 한다. 마리아의 남편을 부검할 때 그의 곁을 지키고자 하는 마리아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1981년의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아들의 이혼과 손녀의 반항기까지 겹친 그는 아내를 사별한지 6개월이 되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유인원 연구소에 방문했고, 그곳에서 침팬지 오도를 바라보게 되는데 이상한 끌림이 있었다. 불현듯 오도를 구입해 부모님이 살았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이주하게 된다. 

 

세 가지 이야기 속 인물들인 토마스, 에우제비우, 피터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슬픔을 견디기 힘든 그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신을 찾는다. 부모님의 살았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위치한 집에서 피터는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그에게 침팬지 오도는 인간보다도 더 큰 위로를 주게 된다. 토마스 또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한 아이를 차에 치어 죽이게 되고 유인원의 형상을 띤 십자고 상을 바라보며 슬픔의 오열을 하며 신을 찾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내의 죽음과 같은 이름의 마리아의 남편을 부검하며 구원이라는 과정을 겪는다. 마치 하나의 선물처럼 다가온 것들이다. 마음의 안식을 얻으며 고통의 시간들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1부, 2부, 3부의 소제목처럼 우리는 결국 집을 찾기 위한 여정을 했던가. 집을 잃고, 집으로 향하는 길 또한 결국 집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안식의 집, 구원의 집. 비록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그에게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조차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로 인해 고통스럽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곳이 토마스와 피터에게 포트투갈의 높은 산이었으며 안식의 장소였다는 것을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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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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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와이오밍 주, 수렵감시관으로 일하는 조 피킷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오픈 시즌』은 우리가 여태 읽어왔던 추리소설의 범주를 벗어났다. 독특한 직업, 여타의 추리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가정적인 남자. 수렵감시관으로 근무하고 있음에도 조준을 해 쏘는 총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남자다. 그렇다고 수렵감시관으로서 완벽한 남자도 아닌 것 같다. 글쎄 사냥 시즌이 아닌 때 사냥을 하는 남자를 붙잡았다가 그만 총을 뺏기고 만 남자다. 총도 제대로 못 쏴, 이래가지고 수렵감시관으로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한 일로 조 피킷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조만간 정직될지도 몰랐다.

 

조 피킷의 큰 딸 셰리든이 밤새 괴물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악몽을 꾸었다며 본격적인 소설이 시작된다. 셰리든이 꾸었던 꿈이 꿈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었다. 조가 총을 빼앗겼던 남자가 자신의 집 장작더미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몸에 피를 흘린 채. 그는 아이스박스를 한 개 가지고 있었으며, 아이스박스 안에는 동물의 분비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셰리든은 장작더미 옆에서 동물들 몇 마리를 발견하고, 가족에게 아무말 하지 않고 자신의 애완동물로 키우고자 한다. 먹을 것을 부모 몰래 남겨 이름을 지어준 애완동물들에게 가져다 주었고, 동생과 둘이서만 알게 된 비밀이 되었다.

 

 

조 피킷은 오티 킬리의 죽음이 의심스러워 조사에 임하게 되고, 그와 함께 수렵감시관 일을 배웠던 웨이시와 바넘 보안관의 지휘 아래 보안관 대리와 함께 캠프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총에 맞은 클라이드를 발견하고 무슨 일에 연루되었음을 직감한다. 나름의 방법대로 조사를 시작하는 조. 수렵감시관이 살인 사건의 전말을 조사해도 되나 싶지만, 바넘 보안관은 크게 저지하지 않는다.

 

캠프에서 왜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가 조사를 시작한 조 피킷은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스치듯 말을 듣는다.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약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발견된다면 사냥은 금지될 것이다. 이로써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누군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일을 벌였단 말인가.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가 중요한 관건이다.

 

 

 

 

C.J. 복스는 그러한 독자의 허를 찌른다.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지 몰랐던 수렵감시관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사건의 중심에 가까이 서게 만든다. 또한 조 피킷의 가족이 타깃이 되어 피해를 입는다. 약간은 어수룩하게 보였던 가정적인 남자 조 피킷에게서 동물적인 수사 감각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으랴.

 

그러고보면 여자들은 사람에 대한 아주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것 같다. 조 피킷의 아내 메리베스가 사람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조 피킷이 주변 인물들과 꽤 가깝게 지냈었는데 그 중의 몇몇 인물들에게는 눈쌀을 찌푸렸으니 말이다. 물론 소설 속 여자들이 메리베스처럼 지혜롭거나 현명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사냥에 대해 관심이 없기에 초반엔 조 피킷의 매력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휘몰아치듯 사건이 진행되는 바람에 소설에 쏙 빠지게 되었다.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조 피킷 만의 사건 해결법에 빠졌달까. 동물에게 조용히 다가서듯 사건을 해결했다. 그것도 통쾌하게. 아마 그가 보안관이 아닌 수렵감시관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조 피킷의 다음 행보가 기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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