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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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게 안대회 선생의 『세한도』였다. 물론 다른 동양미술 관련 책에서도 자주 봐왔지만, 그 책에서 이상적과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그림을 좀더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최근에 유홍준의 『안목』를 읽으며 다시금 추사에 대한 글과 그림이 궁금했던 터에 유홍준의 『추사 김정희』는 그런 나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듯 했다. 더군다나 그의 생애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래전에 펴냈던 『완당평전』을 새롭게 펴낸 책이라고 봐도 옳다. 오류를 수정하고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전기 문학 형식으로 펴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알게 된 사실이 추사 김정희가 노론의 골수 집안이었으며 영조의 정순왕후가 추사의 12촌 대고모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특함을 미리 알아보았던 박제가는 추사를 제자로 삼았고, 아버지와 함께 청나라 연경으로 가 그곳의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특히 완원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뜻을 세워 아호를 완당이라고 했고, 당대의 금석학자이자 서예가, 경학의 대가로 자부하는 연경 학계의 원로인 옹방강과도 교류하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동양철학자인 후지쓰카 지카시는 조선 후기 북학파 학자들이 청나라와 교류한 실상과 추사가 연경에서 벌인 활약상을 치밀한 고증으로 밝혀낸 사람이다. 그는 고서점가를 뒤지며 자료를 찾았고 추사 사후 최초의 대규모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후지쓰카는 추사의 주변 인물들이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한 구체적인 내용을 소상히 규명한 논문을 계속 발표했고, 추사가 청조 고증학과 경학의 업적을 집대성해놓았고도 말했다. 

 

청조학 연구의 제일인자는 추사 김정희이다. (45페이지) 라고 했다.

 

우리가 추사 김정희하면, 그의 글씨인 추사체만 기억하고 있기 쉽다. 하지만 그는 금석학, 역사지리학, 고증학, 언어학, 차와 불교학, 금강안, 미술사가에도 뛰어났다. 저자는 추사의 많은 작품을 추려내어 수록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 또한 한문으로 된 추사의 글을 한글로 풀이해 그 맛을 더한다.

 

 

추사에게는 많은 벗과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들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재 권돈인, 자하 신위, 눌인 조광진, 우봉 조희룡, 황산 김유근, 초의 스님, 소치, 붓을 잘 만드는 박혜백, 전각을 잘하는 오귀일, 먹동이라고 불린 달준이, 장황장 유명훈 까지. 이들은 추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그를 무척 아꼈다.

 

언젠가 TV 채널에서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평소 좋아하는 유홍준 교수가 출연해 추사 김정희에 대해 강의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유배 당시 부인과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를 읽어주는데 무척 애틋했다. 무릇 사소한 사이에서 편지로 쓰는 글씨가 그 사람의 평소 글씨체라고 한다. 이렇듯 추사 또한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종이나 먹, 붓에 대한 타박 아닌 타박,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 들을 하는 과정에서 추사의 글씨와 그의 성격이 드러났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이기에 무얼 보내달라고 했을 테고 푸념도 했을 터다.

 

한 서예가의 글씨가 변해가는 과정은 무엇보다도 편지 글씨와 해서 작품에 가장 잘 나타난다. 편지란 작품이라는 의식을 갖지 않고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서예가의 필법이 거짓 없이 드러나며, 해서 작품에는 그렇게 변화된 결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214페이지)

 

 

추사는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했고, 성격도 대단히 까다로웠다고 한다. 추사의 철저한 완벽주의 때문에 김우명이나 윤상도에 의해 탄핵 상소를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된 연유로 제주로 9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했던 터다.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에술적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고도 한다. 제주 귀양살이 이후 추사체가 태어났다는 것이 정설이라고도 한다.

 

죽는 순간까지 학문과 예술에 대한 추사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추사의 만년을 건강하게 지켜준 것은 공부하는 행복, 제자를 가르치는 즐거움, 예술에 전념하는 열정이었다. 그 중 공부하는 행복이 제일 컸다고 한다. (485페이지)

 

 

 

 

유홍준은 이 책을 추사 김정희에 대한 인간적 삶에 부쳐 문학적 형식으로 썼다고 했다. 독자들이 가깝게 여겨지는 추사 김정희. 우리는 이 책으로 추사의 삶과 그의 학문적, 예술적 경지를 엿보게 된다. 물론 인간적으로 보자면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주 나중에야 자신이 함부로 뱉었던 평가를 뒤집어 용서를 구했던 것을 봐도 그렇다.

 

유홍준의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탄하게 된다. 그가 바라본 문화 예술과 작품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모습과 역사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에서도 말했지만 안목이 있는 수장가들이 있어 세한도도 지켜냈지 않은가. 유홍준이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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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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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어오면서 미출간된 시리즈 때문에 비어 있는 부분이 있어 안타까웠다. 드디어 해리 홀레 시리즈 완전체가 출간되었다. 바로 『리디머』다. 『데빌스 스타』의 다음 이야기 이자 『스노우맨』의 직전 이야기. 물론 시리즈와 상관없이 읽어도 무방하지만 이왕이면 순서에 맞게 읽어 보는게 독자의 큰 즐거움 아니겠는가. 책들이 거의 벽돌 두께라 처음부터 정주행 해보겠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날때마다 정주행하고 싶은 책이 해리 홀레 시리즈인 건 분명하다.

 

그동안 출간되었던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 왜 이 책이 맨 나중에 출간되었는지, 추리소설 속에서 구원을 말한 소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구세주나 구원을 말하는 소설이 추리 소설 독자들에게 얼마만큼의 호기심과 짜릿함을 자극할까, 아무래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전에는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구세군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있는 곳엔 마치 하나의 정적인 장면처럼 빨간 구세군 남비와 그 옆의 구세군을 볼 수 있었다. 구세군과 구세군의 구제사업, 구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게 소설의 내용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대로에서 구세군이 죽었다.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았다.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해리는 자신의 상관 묄레르가 물러나고 새로운 후임 군나르 하겐 경정과 부딪히는 한편 프린스라 불렸던 톰 볼레르의 우두머리가 있지 않을까 나름의 방식으로 조사하고 있었다.

 

오슬로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마약을 합법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정 장소에서만 팔고 있는데,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 중 『팬텀』에서 사랑했던 라켈의 아들 올레그가 마약에 중독되어 살인사건에 연류되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마약에 중독되면 자신 뿐만 아니라 부모 또한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한다. 소설의 첫 부분 마약 중독자의 자살로 그 부모에게 죽음의 사자 역할을 했던 해리의 고뇌만 보아도 그렇다. 물론 자살이 아닌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한 살인 사건이었다는 걸 밝혀내지만 말이다.

 

 

소설은 한 구세군에 소속된 한 소녀를 강간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성년자의 강간. 마치 습관처럼 하게 되는데, 어린 소녀를 강간하며 구원을 얻는다는 것부터가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닐까. 억압된 생활을 하는 자들이 자신만의 탈출구를 찾기 마련인데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일이었다는 게 마음아프게 다가온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습관처럼 계속된다는게 문제다. 누군가를 구원하는 일이 무엇인가, 나를 구원하는 게 어떤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해리는 사건의 첫인상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뇌에서 걸러지지 않은 첫 장면의 느낌을 강조했던 해리. 형사들에게 주로 묻는 질문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느꼈던 첫 장면을 그들의 말로 듣기를 바랐다. 그 장면들에서 번뜩이는 재치, 사건에 대한 감각, 해리 홀레만의 수사 방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해리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살인범을 잡아야 하는 그가 살인범을 잡아야 할 것인가, 구세주 앞에서 맹세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아들을 살려줄 것인가. 구세군을 통해 구원받은 자로서 타인을 구제하고 구원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채웠던 그를 벌할 것인가. 해리는 누구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건네는 소설이었다. 라켈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한편 해리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장면이 좋았다. 그가 알코올에 중독되지 않고 맨정신으로 수사하는 장면 또한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해리 홀레를 응원하는 팬이므로. 부디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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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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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주 얇은 책이 좋은 경우가 있다.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잠깐의 시간 동안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같은 경우 두꺼운 책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렇게 얇은 책은 좀 서운한 감이 있지만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다면 이것 또한 굿이다. 그림과 글의 조합이 좋기 때문이다. 글이 없이 그림만 있는 책을 볼 경우가 있다. 글이 더 좋다고 여겼으나 그림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글이 있지 않아도 그림만으로도 우리는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건 어른들 보다는 아이들이 더 잘할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이게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아닌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버스데이 걸』은 아주 짧은 소설이다. 카트 멘시크의 그림이 수록된 단편으로 스무 살 생일에 무얼 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각자 스무 살 생일에 무얼 했더라 열심히 생각한다. 스무 살이었던 시절이 너무 오래되어 한참을 생각해보지만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때라 친구들에게 장미를 받았을테고, 남자 친구가 없었으니 친구들과 어울려 생일파티를 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밤바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겠지.

 

스무 살 생일이 맞이하는 여성이 있다. 이탈리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생일날 근무를 바꾸지 못했다. 생일 날 근무중 한 번도 아프지 않던 플로어 매니저가 복통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다. 플로어 매니저에게는 고유의 업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식당 사장에게 저녁 식사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 일을 그녀가 하게 되었다. 식당 6층에 있는 사장의 방으로 웨건을 밀고 갔다. 생일이라는 그녀에게 사장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한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 소원은 단 한 가지여야 했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거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34페이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 뿐이야. (57페이지)

 

그 소원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지는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스무 살 생일을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인공 또한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걸리는 소원을 빌었을 것이라는 것뿐.

 

담백한 문장의 담백한 단편이었다. 우리의 스무 살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어떠한 소원을 빌었든 우리의 삶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다른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의 삶은 나의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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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디슨 애비뉴를 떠났다! - 광고, 그 따뜻함을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기
김세영 지음 / 베가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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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앞에 앉아 있을때면 보는 게 예능 프로그램 한두 개와 여행 프로그램이다. 특히 EBS에서 하는 세계테마여행에 채널을 멈춘다. 특히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더더욱 집중해서 보게 된다. 아마 이 프로그램에서 김세영 작가를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인상이 낯익은 걸 보면. 여행자들이 부럽다.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 일이든 여행이든 어딘가로 향한다는 자체가 부러운 것 같다.

 

여행하는 광고인 김세영의 에세이다. 여행 국가나 장소의 특이점,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자극하는 게 여행에세이인데, 김세영의 글에서는 그의 직업상 느낄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담았다. 광고인으로서 바라보는 세계, 그 나라의 특색, 편견으로 가득차있던 마음을 어느새 열 수 있는 글이었다고 해야겠다.

 

생각하기에 공산주의 국가도 광고를 하겠나, 제대로 이루어지겠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 또한 편견이라는 걸, 저자의 여행 기록에서 나타났다. 우리 삶에서 고민은 때로는 낯선 곳을 향하게 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발상을 얻기도 한다. 생각지 못했던 경험이 우리를 다른 삶으로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광고라고 하면, 선진국 특히 자유주의 국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작가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책 속에 세 곳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슬람 세계 즉 터키와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중국, 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의 광고를 탐색했다. 그 나라의 유명한 광고인을 직접 만나 광고 이야기를 듣고 편견을 깨는 시간들의 기록이었다.

 

15초의 시간에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는 게 광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명한 카피가 있다. 순간의 기록일텐데 카피 한 줄이 사람들의 눈을 혹은 귀를 사로잡는다. 최근 몇년 동안 라디오의 광고를 듣다보니 외울 정도가 되는데 TV의 광고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의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광고가 참 재미있게 느껴져 일부러 챙겨보기까지 한다. 광고인의 발상이 신선해서다.   

 

 

저는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요. 그런 큰 이야기들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요. 오히려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것은 그런 크고 거창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정말 작은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었어요. (252페이지)

 

크리에이티브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길 위에서,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거죠. 그리고 모든 사회 영역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게 크리에이티브에요. 만일 단순히 멋진 TV광고를 만드는 일이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에요. (288페이지) 

 

 

 

작가는 책 중간중간에 '광고인의 노트'를 실어 광고인으로서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담았다. 광고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마음가짐을 말하는 글이라고 해도 되겠다. 말미에 '광고인이 되는 길'이라는 글이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 전공을 추천했다. 예전에 어떤 가수 한 명도 이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굳이 자기가 되고 싶은 걸 전공하는 것 보다는 뭔가 다른 걸 공부해 보라는 말이었다. 김세영 작가 또한 '지나치게 실용화된 전공보다는 인문학을 전공할 것을 꼭 권하고 싶다'라고 했다. '깊이 있는 고민과 사람에 대한 성찰이 튼튼한 토양처럼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문장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인문학적인 교양이란, 교양서적의 제목을 달달 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적 교양이란, 바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기술"을 말한다! (301페이지)

 

여행을 하면 시각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일은 분명 나의 삶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결국 많은 것을 보고 겪는 다양한 경험이 삶의 질도 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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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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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참 따뜻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 여겼다. 처음엔 잔소리꾼에, 깔끔쟁이에 보통 사람이 싫어할 말만 하고 다녀 독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들이지만 어느새 그들에게 빠지게 하는 효과를 지녔다. 주인공들이 했던 행동들이 타인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소설은 초반부터 인물들이 너무 많았다. 많은 인물들을 파악하느라 더디 읽혔다고 보는게 옳다. 베어타운의 가족들의 이름, 아이들, 그들의 친구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는 쉴새 없이 읽히는 게 이 소설의 장점이다. 베어타운은 하키로 똘똘 뭉친 공동체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하키 선수이며 그들의 가족이며, 하키부가 소속된 위원회이며 혹은 하키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1페이지)로 소설이 시작된다.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느라 소설의 첫 장이 잊힐즈음 서서히 드러나는 게 이 소설의 백미다. 기타를 사랑하는 소녀 마야, 그 소녀의 단짝 아나, 하키부 단장인 아빠 페테르, 변호사인 엄마 미라가 있다. 하키부 단장인 아빠 페테르는 자신의 스승 소네를 A팀 코치 자리에서 잘라야 한다. 그 자리를 청소년팀 코치인 다비드를 보내야 한다는 이사회의 결정을 들었다. 다비드 또한 소네의 제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하키팀을 이끄는 코치나 단장, 사장, 이사회는 '이겼느냐'가 중요하다. 과정은 필요없다. 다비드가 청소년팀에게 하는 말도 '이겨라'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다. 이기는게 중요했다. 청소년팀을 승리로 이끌 선수는 케빈이다. 케빈을 전담 마크하는 이들을 물리치는 아이가 케빈의 친구 벤이(벤야민)고. 준결승전에서 승리한 날 베어타운의 모든 사람들은 승리를 축하하고, 아이들만의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를 모른척 허락해 주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술을 마시던 이들. 서로에게 호감이 있던 소년과 소녀. 열여덟 살의 소년이 열다섯 살의 소녀를 성폭행했다.

 

 

 

성폭행 당한 아이는 방에 틀어박히고, 가해자는 버젓이 운동을 계속한다. 성폭행 사건이 본격화되자 베어타운의 사람들은 소녀를 탓한다. 좋아서 같이 자놓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베어타운 하키팀의 승리와 한 아이의 고통을 놓고 보았을 때 무엇이 중요한가, 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모른척 했던 부모의 심정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소녀와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모른척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부모가 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나 또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리라.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245페이지)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소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비난해도 한 아이의 고백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허리가 아픈 엄마의 편한 일자리와 5천 크로네의 큰 돈이 있었음에도 용기를 냈던 것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비록 성폭행 가해자인 소년이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이것이 소설이 가진 힘이다. 물론 소설의 첫 문장에서처럼 스스로 단죄를 가해 그가 영원히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수도 있다. 한 마을의 공동의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한 개인의 안위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 소녀를 비난하고 소년을 환호했다. 마을의 영웅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말은 하찮은 것이다. 다들 얘기하길 말로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들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322페이지)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374페이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나는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엿보았다. 어떤 행동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집단과 개인의 차원에서 세세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사건을 똑바로 보고 고통을 느끼는 이들의 입장에 서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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