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프레임 -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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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마녀사냥은 인터넷에서 이루어진다.

언젠가 가수 한 명이 인터넷에서 테러를 당한 적 있다. 학력문제로 그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는 카페까지 만들어놓고, 그가 증명서를 내놔도 믿지 못하고, 그를 괴롭혔다. 사실을 증명한다는 증명서도 믿지 못하고 사람을 핍박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학력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카페까지 만들어 그를 괴롭혔을까. 나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행동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또한 최근에 어느 가수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는 못할 망정 각종 악성 댓글로 그의 가족들을 더욱 슬프게 한 일들이 발생했다. 나를 알지 못한 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마녀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역시 슬픈 일이다.

 

 

마녀는 실제로 존재한다기보다 얼빠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122페이지)

 

 

과거, 중세시대에 마녀를 판별할때 증거를 찾아낼 필요가 없었다 한다. 마녀 사냥은 말 그대로 주관적인 게임이었다. 마녀가 되는 순간 공포를 자아내기도 했고, 또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는 짜릿한 쾌감을 제공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마녀 재판을 보는 걸 즐겼고, 화형을 당하는 장면도 즐겼었다.

 

 

처음부터 마녀가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니었다.

마법이나 마녀를 신성시 하던 때도 있었다. 마녀사냥은 백년전쟁이 끝난 다음 본격화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를 구한 여전사인 잔 다르크도 마녀 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다고 하니, 그들은 마녀라고 우기기만 하면 되었다. 마법을 행했다는 증거도 필요없었다. 마법을 실행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람중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왜 여성을 마녀로 몰았는가. 여성이라는 존재를 유혹적이고 위험한 모습으로 그렸고, 무엇보다도 여성은 남성을 타락시킬수도 있고,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존재였다는 게, 그들에게는 어쩌면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마녀사냥에 대한 걸 더 생각해보자는 취지였을것이다.

저자는 현대판 마녀사냥에 대해 설명하기를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때 천안함 사건이 생겼을때 갑자기 북한의 어뢰때문에 천안함 사건이 생겼다고 기사에 나와서 약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북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저자는 그런 것도 마녀 사냥의 일종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마녀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161페이지)

 

 

저자는 이 책을 쓴 까닭을 위의 말처럼 같이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글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마녀의 역사 뿐만 아니라 마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마녀 만들기의 정치성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다고도 말했다.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마녀는 다시 사유되어야만 한다' (166페이지) 우리가 마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타인들을 마녀로 몰아서는 안될 것 같다. 마녀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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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이창래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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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어 보지 않는 나는 소설속에서 전쟁을 본다.

부모를 눈 앞에서 잃는 걸 보거나,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는 전쟁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피난민으로서 배고픔을 참고 견디는 법, 먹을 게 있으면, 있을 때 배를 채워두는 법, 무언가를 훔치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의 세 인물을 통해 그들은 전쟁의 참상과 그들의 내면 속 영혼을 갈구하는 책이다. 그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서 1953년의 한 고아원과 1986년의 미국에서의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전쟁을 겪은 그들, 전쟁고아 준, 미군 병사 헥터,  선교사의 아내 실비가 그들이다. 전쟁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또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어느 누구에게 선택을 하도록 해선 안 돼. (257페이지)

 

 

피난민 대열에 있는 준은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고 꽉 들어찬 기차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차 지붕에 딱 붙어 남쪽으로, 부산으로 가는 중이다. 준 자신도 어렸지만 어린 쌍둥이 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 후 아빠와 오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같이 피난을 떠났던 엄마와 언니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준은 동생들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버리지 못했다.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했을 행동들을 그대로 동생들에게 해주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동생들마저 잃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밤이든 낮이든 생존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항상 주변을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다.  (31페이지) 

 

 

전쟁을 싫어한 아버지로부터 절대 전쟁에 나가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듣고 자란 헥터.

별일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술집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갔을때 일어난 사고로 아버지가 죽자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군인으로 있던 헥터에게 처형하도록 인계받은 소년 병사때문에 그는 굉장히 견딜수 없어한다. 그뒤 전사자 처리 부대로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잘 견디지 못해 그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세계를 누비며 선교활동을 해온 실비는 전쟁속, 만주에서 부모를 비참하게 잃었다. 그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실비는 힘든 나날을 보내지만 시애틀에서 평생의 반려이자 선교사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들어와 부모가 했던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실비가 고아원으로 오게 되면서 헥터와 준은 서로 어쩔수 없이 서로 엮이게 된다. 그들의 운명과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6년의 미국에서의 준.

준은 아버지를 찾겠다며 집을 나가 유럽으로 간 아들 니콜라스를 찾을 결심을 하고, 그에 앞서 헥터를 찾는다. 그리고 그는 아들을 찾아 이탈리아로 가려고 가게를 정리하고, 집의 모든 물건들을 정리한다. 아주 싼 값에 넘기고, 신세를 진 사람에게는 그냥 주기도 한다. 그리고 헥터를 찾아 아프 몸을 이끌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몸을 하고서.

 

  

그 모든 것은 그녀의 진심이었다. (452페이지)

 

 

준, 헥터, 준. 그들의 인생을 보자면 과거의 기억, 전쟁의 처참한 기억들을 빼놓을수 없었다.

상념에 잠기면 언제나 생각나는 그 아픈 순간들의 기억속으로 빠져들었다. 1986년의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그 고아원에서의 아픔들이 저절로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아픈 기억이었다. 부모를 일본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잃은 실비가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나, 아버지를 죽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것 때문에 술에 의지하는 헥터,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과 성적인 것을 거부하기 힘들었던 것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가운데에 있었던 준. 이 세 사람의 그들이 품었던 그 모든 갈망과 모든 것을 잊고자 했던 살기 위한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전쟁은 아플수 밖에 없다.

전쟁의 상흔을 오래도록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기억들을 지우고자 하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엉켜버린 과거의 기억을 풀려는 준은 여행을 준비하고, 준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 헥터는 가시 박힌 아픈 손을 돌보듯 그렇게 준을 돌본다.

 

 

이 책 속에는 그들의 모든 아픔이 들어있다.

아플 수 밖에 없는 과거의 기억들과 현재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던 그들의 아픔이 가슴아프도록 다가왔다. 그들의 아들을 찾아 이탈리아를 헤매는 그들. 그들이 진정으로 가고 싶어 했던 곳, 솔페리노에 도착한 그들이 맞은 그 무덤들. 솔페리노는 준의 이상향이었는지 모른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에 미국으로 이민가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인 이창래의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 작가인 이창래의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의 전쟁을 겪은 한국인으로서의 아픔과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그린 작품이다. 아픔과 감동이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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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브 - 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
김소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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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으면 대충 훑어보는 습관이 있다.

이 책 또한 받자마자 작가의 친필 사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책 뒷표지를 훑었다. 그리고 책을 펼쳐 프롤로그를 읽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한 페이지를 넘겼어도 그 다음 페이지로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 놓기를 몇 번.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책 읽기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가. 그토록 책장이 넘겨지지 않았던 책이 조금씩 읽혔다. 프롤로그가 끝나고 제 1장을 읽기 시작했을때, 프롤로그 부분이 왜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는지가 우습게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생각해보면, '코카브'란 말이 내게 익숙치 않았던것 같다. 그 뜻도 몰랐거니와, 죽은 아들을 뒤로 하고 집 나간 아내를 찾으러 간 남편의 이야기라는 건 알겠는데, 코카브란 단어가 계속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었다.  

 

 

일단, '코카브'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별'이란 뜻을 지녔다.

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사 년이 흐른후 갑자기 아내가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저 아내를 집안의 붙박이처럼 생각했었다. 아들이 죽고 힘들어하는 시간을 보내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찾지 않다가 아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장모님이 받았다. 장모님댁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도리어 장모님이 형호에게 물었다. 아내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람은 곁에 있으면 소중한줄을 모른다. 그저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사라졌을때에야 우리는 빈 자리가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컸음을 그제야 느낀다.

 

 

아내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아내가 머물렀던 아들 방에서 아내의 일기장을 찾았고, 아내의 메모를 발견했다. 그리고 아내의 옷장이 비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름옷, 겨울옷을 다 챙겨갔던 것이다. 잠시의 외출이 아닌 오랜 시간을 지내러 어딘가로 향했다. 그제서야 형호는 아내에게 너무도 무심했음을 깨닫는다. 아들이 죽고난 후 4년이 지나도록 아내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무관심했음을 깨달았다. 아내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관심은 때론 동정심이나 연민마저 잃게 만든다. 또한 잔인함이란 그 방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27페이지)

 

 

아내의 행적을 찾아다니며 아내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을때, 아내의 어릴적의 일을 들으며 하나씩 알아간다. 그리고 아내가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곳은 '코카브'라는 곳이다. 시간의 문이 열린다는 그곳.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의 어떤 간절한 삶에 도달하고자 한다. 간절히 원하는 어떤 시간속으로 들어가기 모여든 사람이었다. 천문학 학회의 모습같으면서도 UFO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아내의 곁에 있지만 아내 곁으로 가지 못하고, '코카브'에서 강의를 받고, 한 방을 쓰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점점 그들이 말하는 어떤 시간을 형호도 기다리는 것이다.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을 찾아 되돌아갈 수는 있다. (21페이지)

 

 

형호의 아내가 메모한 위 글에서처럼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딱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것은 우리의 염원일 뿐이다. 어떤 일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또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까. 지극히 현실적인 나는 현실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싶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보다는 앞으로 살아가는 날들, 바로 오늘 이 순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잘 하라고 말하고 싶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잊지 말라고, 나도 작가처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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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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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성복 시인의 시집이 새로 나왔다고 해서 구입한 시집이다. 또한 SNS에서 이성복 시인이 번역한 작품 『좁은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시집부터 만나고 싶었다. 그의 시집 중 『남해 금산』을 먼저 읽고자 했으나 신작을 먼저 읽었다. 이 작품은 이성복 시인이 10년만에 낸 시집이며 '래여애반다라'라는 제목을 썼는데, 이는 신라의 향가 「풍요風謠」(「공덕가功德歌」)의 한 구절인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를 썼으며,  '오다, 서럽더라'라고 풀이된다고 한다. 신라 백성들이 불상을 빚기 위한 흙을 나르면서, 그 공덕으로 세상살이의 서러움을 위안하는 내용이라고 시집의 발문에서 시인의 제자가 설명하고 있었다. 

 

 

처음 시집을 펴 읽기 시작했을때는 마음의 울림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뒷 쪽으로 읽어갈수록 시의 제목들이, 시어들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다시 앞장으로 와 처음부터 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때는 시집의 첫편부터 마음속에 울림을 주고 있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마음이 시어속에서 숨쉬고 있었다.

 

 

시집의 첫편을 먼저 보자면,

 

그 봄, 청도 헐티재 넘어

추어탕 먹으러 갔다가,

차마 아까운 듯이

그가 보여준 지슬못,

그를 닮은 못

 

멀리서 내젓는

손사래처럼,

멀리서 뒤채는

기저귀처럼

찰바닥거리며 옹알이하던 물결,

 

반여, 뒷개, 뒷모도

그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윷말처럼,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

그 하얀 물나비의 비늘, 비늘들

 

                                    -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시는 한번 읽어서는 제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다지 와닿지 않는 시도 다시 음미하며 읽으면 그 시의 의미를 조금은 알듯 하다.

짧은 시어 속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와 더 나아가 나는 시 속에서 나의 삶을 반추하고 있었다.

 

 

이 순간은 남의 순간이었던가

봄바람은 낡은 베니어판

덜 빠진 못에 걸려 있기도 하고

깊은 숨 들여 마시고 불어도

고운 먼지는 날아가지 않는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눈 감으면 벌건 살코기와

오돌토돌한 간처녑을 먹고 싶은 날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아무래도

나는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

 

                                 -  來如哀反多羅 3

 

아주 일상적인 일을 적어놓은것 같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나의 시간이 아닌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는 구절이 참 서럽고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시인이 올해 만 육십 세 라던가. 그래서일까. 시 속에는 죽지 못해서 살고 있는 시인의 마음, 아직 살아 있음에 간절한 시간들, 그럼에도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들이 보였다. 살아 있음이 이토록 서럽다는 걸 시어들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중 략-

 

그는 한 번도 우리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연히 그를 보기 전엔 그가 있는 줄 몰랐다.

-중 략-

 

그는 누구에게도, 그 자신에게조차

짐이 되지 않았다.

-중 략-

 

도저히, 부탁하기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의 잎새는 또 잔잔히 떨리며 속삭였다.

- 아니 그건 제가 할 일이지요

 

어쩌면 그는 나무 얘기를 들려주러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얘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후 략-

 

                                       -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나이 육십이 넘어가면 죽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죽음에 대한 시 들이 많았다. 장인 장모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들, 물고기의 죽음, 새들의 죽음으로 또 다른 생명을 구하는 일. 죽음은 새로운 시작의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글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게 소설이든, 에세이이든, 시이든.

글에서 느끼는 위안은 아주 크다. 아주 짧은 몇 줄의 글에서도 우리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감성을 지녔다. 소설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글인 시.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독인다. 그리고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시는 마음을 드러내는 창. 더이상 서럽지 않기 위해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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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
델핀 드 비강 지음, 권지현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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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엄마의 삶을 물으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엄마의 인생을 소설로 쓰면 몇 권이 될지 모른다고. 내가 엄마를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많이 안다고 생각했었다. 여동생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때 내가 엄마를 몰라도 너무 몰랐었다. 동생이 말한 엄마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한 남자를 좋아하고, 결혼까지 한 이야기가 마치 소설같았다. 그리고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이곤 했었다. 나는 우리 엄마를 그때 처음으로 '한 여자'로 알았다. 우리 엄마도 한때는 여자였다는 걸,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지금도 여자라는 걸. 처음부터 우리 엄마는 엄마인 줄만 알았는데, 아주 고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한 여자이자 엄마라는 걸 아는 순간이었다.

 

 

내가 우리 엄마의 삶을 소설로 쓴다면 델핀 드 비강처럼 엄마의 삶을 한 권의 소설로 써낼 수 있을까. 죽은지 며칠이 지나 몸이 파랗게 된 엄마를 발견한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엄마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 엄마의 삶을 소설로 써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자 였던 엄마 뤼실의 이야기를. 엄마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위해 작가는 엄마의 형제자매들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삶을 조사하게 된다. 엄마가 아직 소녀였던 시절에서부터 매혹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였고, 예쁜 옷을 입고 광고까지 찍는 아이였다. 언니, 오빠, 여동생들, 남동생들속에서 뤼실은 오롯이 혼자 한쪽에 서 있는 아이였다. 보통의 아이들과는 약간 달랐던 아이.

 

 

엄마는 광활하고 어둡고 절망에 찬 땅이었다. 한마디로 위험한 일이었다.  (14페이지)

 

 

가족의 역사를 구성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다르고, 때로는 상치되기도 하는 기억들은 사방으로 흩어진 별들 같았다. (44페이지)

 

 

엄마의 삶을 조사하면 할수록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추악한 진실이 드러났다.

감추고 싶은 비밀, 도저히 감춰지지 않는 비밀, 그걸로 인해 엄마 뤼실의 삶이 나락으로 빠졌을수도 있었던 일들이 드러났다. 가족에 대한 일이면, 가족 안에서의 일이라며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뤼실의 가족처럼.

 

 

뤼실의 아빠 조르주가 뤼실을 만지고 강간했을때도 엄마 리안은 모른 척 했다.

그 아이 뿐만 아니라 뤼실의 가족과 연결된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 엄마 리안은 그런 조르주에게 참견할 수 없었다. 엄마가 정신이 이상해져 몇날 밤을 새워 타이핑을 해 한 편의 소설을 써 모든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음에도 그 누구하나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다.

 

 

나는 내 가족의 가장 즐거운 모습을, 소란스럽고 분에 넘치는 생명력을, 비극을 이겨내는 그 강한 힘을 읽게 하고 싶었다. (161페이지)

 

 

 

 

어쩌면,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냄으로써, 모든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불편할 수도 있는데 작가가 용기를 냈다고 생각한다. 되도록이면 불편한 사실들은 감추고 싶었을텐데도, 진정한 가족이야기, 엄마의 진솔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독자들에게도 전해진 것 같다. 작가는 엄마의 모든 이야기를 쓰며 엄마를 더 이해했을 것이다. 자신이 미처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실을 후회하며, 엄마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던 일들을 가슴저미도록 느꼈을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할까? 라고 수없이 자신에게 질문했을 것이다.

 

 

사실 가족은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이다.

그 많은 시간들 속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며, 가족간에 상처가 되는 일도 많이 생기지만, 가족이라는 이름때문에 아예 외면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지만 마음속에는 그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게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덧나지 않기를 바라는 게 또한 가족일 것이다.

 

 

지금은 병원에 계신 엄마의 삶을 생각나게 한 책이었다.

명절에 뵙고 왔지만, 바라볼 때마다 많은 것을 함께 하지 못해 늘 안타까운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한 책이었다. 내가 작가였다면,,,,,,,,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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