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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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나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 주었다. 전화해서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면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건넬때 적당히 한 마디씩 말을 건네주고, 더 하고 싶은 말을 하게 조용히 들어주는걸 잘했었다. 요즘의 나를 예전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것 같다. 하긴 전화보다는 휴대폰의 카톡으로 하는 세상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 흘리던 때도 꽤 있었는데, 요즘은 꽤 시끌벅적하게 노는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고 사진 찍기 놀이를 한다던가, 쇼핑을 한다던가, 아님 등산을 한다던가 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열어보일 시간을 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신 나는 작가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

짧게는 200페이지도 안되는 것, 때로는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 속에서 작가가 하는 말들을 듣는다. 누군가와 사랑하고, 어떤 이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때론 모험을 하는 이야기를 나는 묵묵히 듣는다. 몇시간이고 앉아서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 세상 속에는 이렇게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나는 작가가 하는 말속에서 대신 살고 있다.

 

오늘 나는 이레라는 이름을 가진 스물여섯살 젊은 여자의 삶을 바라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율이네 구멍가게에서 율이와 함께 앉아있곤 하는 이레는 율이를 만난지 6년, 혼자 짝사랑중이다. 율이에게 거쳐간 여자 친구들이 많아, 고백해서 그의 여자친구가 되어 곧 헤어지고 싶지는 않다. 이대로 그의 옆에서 그를 바라보기만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때론 마음속에서 불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의 마음을 얻고 싶어 그에게 사랑의 말을 하고 싶기도 하다.

 

율이는 할머니와 둘이 사는데, 여든 살이 넘은 할머니는 암에 걸렸으면서도 밝고 기운차게 살아가고 계신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직장을 찾다가 <들어주는 사람>이란 회사에 취직한다. 이곳  <들어주는 사람>의 사장은 이레가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일을 잘한다며 취직시킨다.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 <들어주는 사람>에 가입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모습은 요즘 우리의 삭막한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일주일에 두세 번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 매일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 결국에는 사람과의 소통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인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외롭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는 건 대화가 꼭 필요해서만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를 받는 사람을 많이 보아왔다. 타인에게 의견을 구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타인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스스로 고민하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결정을 하기 전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 때문이다.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라는 제목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걸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짝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제목의 말에 공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못하고, 그의 주변에서 얼쩡거리기만 하고 있을때, 만약 좋아하는 사람에게 여자 친구라도 생기면 온 세상을 다 잃은 듯 슬프기도 할 것이다. 마음속에서는 고백을 하고 싶다고 아우성을 칠테지만, 소극적인 이레는 율이에게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들어주는 사람>에서 통화하고 있을때,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때, 이레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음을 알게 되는 일도 그렇다. 사랑에 소극적일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것에도 느리게 나아가는 이레의 모습은 어느 누군가의 모습과도 겹쳐 보였다. 느려서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겠지만, 이레처럼 느리게 율이를 바라보는 것도 괜찮은 일 같기도 했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느리게 율이를 바라보았던 이레의 다급한 몸짓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나의 곁에서 나를 느리게 보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저 일상일 뿐이지만 어느 순간에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으니, 우리는 또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나 싶다.

 

나에게 건네는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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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을 보는 법 - 전통미술의 상징세계
허균 지음 / 돌베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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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일은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다.

삶이 힘겨울때, 위로가 필요할때 들여다 보는 그림은 시름을 잊게 하고 위로를 받는 일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언제 고민이 있었는지, 언제 슬펐는지 모든 것을 잊고 만다. 그런 위로와 위무의 시간이기에 그림을 들여다보는 일을 즐긴다.

 

산수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우리 선조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지고, 여백의 미에서 복잡했던 마음을 비우기도 한다. 서양화와는 또다른 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서양화와 우리나라 산수화와 다른게 여백의 미가 아닐까 한다. 비어있는 공간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마음을 비우게 되는 느낌을 받는 것. 이래서 옛그림이 마음에 더 들어오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 옛그림을 아는 법은 바로 우리 문화를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나라 선조들의 풍류와 사상들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림이 그려진 그 시대의 생각들, 염원들을 알수 있는 것이 옛그림에서 나타났다. 우리는 옛그림을 보면서 그림에서 풍겨져 나오는 흥취를 느낄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여유로움이 그림속에서 느껴진다. 

 

옛그림은 아는 법은 바로 우리 문화를 안다는 것.

  

 우리 옛사람은들은 그림속에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 누군가에게 건네는 그림에서 강한 바램을 넣기도 하였다. 달을 보며 계절의 정취를 담아 마음의 즐거움을 느꼈고, 선비들은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그리며 자신들을 고결한 군자의 모습으로 닮고자 했다. 사군자의 각 특징을 보자면, 매화는 인고와 수절의 상징이었고, 난은 문인의 품격과 정신세계를 표현했으며, 국화는 고고한 기품으로 드러내는 선비의 지조를 비유했고, 대나무는 군왕의 높은 덕망으로 군자의 동반자를 비유했다. 

 

윤용,<월야산수도>「편유영환첩」종이에수묵. 이경윤, <월야탄금도>16세기 후반경, 비단에수묵

 

위 오른쪽 이경윤의 <월야탄금도>에서도 보면 전체적으로 여백이 많이 주었다. 달밤의 자연 속에서 탄금을 타며 풍류를 즐기는 선비, 풍경도 복잡하게 그리지 않았으며, 절제미가 있어 어딘가 환상적인 공간에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그림에서 흥취를 느낄수 있는게 우리 그림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의 문학은 당, 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로 인해 조선 문인들은 당, 송의 영향력인 도연명과 그의 뒤를 이은 시인들의 시취(詩趣)에 빠져 들었다 한다. 그들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시작에 사용했다. 자신의 그림에 짧은 시를 짓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에 도연명이나 다른 이들의 시 한 구절을 넣기도 했다. 선비화가 윤두서의 작품 <무송관수도>에서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구절을 넣은 것처럼 말이다. 옛그림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림속에 짧은 시가 들어있는 것이 많았었다.  

 

허련, <일지매도>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

 

조선의 문인들은 매화를 즐겨 그려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특히 일지매는 봄의 전령사로서 특별히 사랑받았다. (84페이지)  몇 년전 이사하며서 집을 꾸밀때, 매화 그림이 너무 예뻐, 안방의 한 벽을 매화 그림으로 채워놓고 싶었다. 벽지가 너무 비싸고, 가구나 기타 다른 것과 조화가 잘 되지 않아 포기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봄의 전령사인 매화 한 가지를 그려 보낸 글에서 사람들은 안부를 느꼈고, 점점 일지매가 안부를 나타내는 그림이 되었다 한다.

 

불교에서 연꽃은 청결, 순결, 불염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자신에게 이롭게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받아들여 '연이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한다. 그래서 연꽃 그림에 연밥을 새가 쪼아 먹거나 하는 그림이 있는 것은 남자 아이를 잉태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또한 석류가 알알이 박힌 그림들 또한 남아를 잉태하는 의미로 그렸다 한다. 이런 상징성을 알고 보는 그림이 더 재미있었다.

 

또한 TV 드라마 속에서 조선의 왕이 나오는 장면에서 왕의 의자 뒤엔 <일월오악도>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월오악도>는 '왕이 하늘의 아들임을 널리 알리다'라는 뜻을 가졌다. 다섯 봉우리의 산, 파도치는 물, 흘러내리는 폭포, 짙푸른 적송, 해와 달로 구성되어진 그림이다. 군신들의 관념속에 자리잡은 우주관과 음양사상, 천명사상과 길상 관념이 모두 농축되어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림의 상징성을 알고 그림을 다시 보는 일은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

저자는 옛그림을 이해하는 법을 고전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고, 그림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알고 싶다면 문집을 읽으라고 하였다. 또한 유교 역사관의 핵심 원리인 상고주의와 복福, 녹祿, 수壽로 나누어지는 길상 사상을 이해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림의 소재를 알고, 상징을 깨달으면 옛그림이 훨씬 가까워진다고 했다. 

 

이렇게 옛그림을 보는 법을 보고나니 그림이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서양화와는 또다른 멋이 느껴지는 우리 옛그림은 우리 선조들의 사상과 흥취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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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인 아이 시험도 끝났고, 기념으로 동생네와 함께 부산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몇주 전부터 해운대 근처의 숙소를 예약하고, 밤엔 야경을 보겠다고 버스로 야경투어까지 예약을 했다.

어제 무사히 수능시험도 끝나 이제 내일 새벽에 떠날일만 남았다.

새벽 4시부터 준비해 새벽5시쯤 출발할 예정이다.

여동생도 책을 조금 읽는데, 아침 9시에 부산 보수동헌책방 골목 입구에서 만나자고 했다.

광주에도 헌책방 골목이 있는데 뛰엄뛰엄 있어서 별 재미가 없는 편이다.

인터넷으로 본 보수동 책방 골목은 책방이 모여있는 곳이어서 훨씬 멋스러워 보였다.

 

일단 여행을 가니 좋긴 한데, 주말에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게 조금 아쉽다.

 

11월 들어서 내가 구입하지 않는, 구입하고 싶은 책들이 보여 반갑고, 그 책을 다 읽어주지 못한다는게, 갖지 못한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김연수 작가의 신작이 예판한다.

많이 친해지고 싶은 작가인데, 점점 그의 글에 친해지고 있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 선집 세트가 표지도 이쁘게 현대문학에서 나왔다.

다 갖고 싶구나.

책꽂이 한귀퉁이에 넣어두고 싶다.

있는 책 빼고서라도.

 

 

 

 

 

 

 

 

 

 

 

 

 

 

 

 

아는 후배가 제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중섭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뭐 별로 볼게 없고, 집만 덩그러니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중섭을 클릭했더니 이렇게 책이 있었다.

 

 

 

 

 

 

 

 

 

김동영 작가의 신작도 보인다.

닉 페어웰의 <GO>는 가지고 있는 책이다.

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막 쏟아져 나오니까 얼른 읽어주고 싶은 작가가 되었다.

<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이란 책은 제목이 왜이리 이쁜지.

어디가서 향나무 베개를 구해다 베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역시 내가 좋아하는 예술사를 다른 서적이 출판된다.

내가 믿고 사보는 유홍준 교수의 작품이다.

예판이 뜨자마자 구입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옛그림을 보는 법>을 읽고 있는데 이것과 비교하는 기쁨이 크리라.

 

 

 

 

 

 

 

 

 

 

 

 

 

 

 

 

 

부산으로 떠나기 전날 밤인데 벌써부터 부산 해운대의 파도와 바다가 눈에 어른거린다.

결혼전부터 부산을 좋아했다.

부산의 바다를 좋아했다고 봐야겠지.

혼자서도 여러번 갔었고, 친구와도 다녀오고, 작년엔 신랑과 둘이서도 다녀왔다.

부산은 나의 제2의 고향처럼 친근한 곳.

 

떠나기 전날 읽고 싶은 신작들을 보고 괜시리 몇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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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생 홍금보 2 - 완결 앙상블
육시몬 지음 / 청어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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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게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홍콩배우 홍금보를 기억하시는지. 둥글둥글한 얼굴에 역시 둥글둥글한 몸매를 가진 이다. 홍금보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홍콩배우 홍금보인데 조선에서도 홍금보가 있었다. 그것도 다름아닌 기생으로 말이다. 제목에서부터 홍금보라는 조선 기생은 풍채가 큰 여성일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내비친다. 또한 이 책이 코믹 시대물 로맨스 쯤 되겠구나 싶은 것이다. 청어람하면 영화사 외에 로맨스 소설을 많이 펴내므로.

 

육시몬 작가의 전작 『사이코 칸타타』가 좋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도 작가의 색다른 느낌의 책을 만나겠구나 기대했다. 『사이코 칸타타』는 사회 부적응자들이 모여있는 육시몬 신경정신과에 있는 사람들과 그 건물 옥상에 사는 일명 고양이라는 여자 주인공이 합심하여 트로트 가요제에 나간다는 이야기였다. 잔잔하면서도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게 된 책이었다.  

 

『조선기생 홍금보』의 주인공 홍금보는 사백 년 늦게 태어났으면 팔등신 소리를 듣고 살았을텐데, 사백 년 일찍 태어난 죄로 기생이되 다른 기생들과는 너무 다른 육척의 키와 큰 골격을 가진 이다. 일단 키가 커버리니 아담하고 오밀조밀하게 생겼을 다른 기생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다 목청도 커 조신한 여자와는 거리가 먼 기생이다. 그런 만큼 홍금보는 아직도 머리를 얹지 못했다. 그랬던지 사람들은 금보를 독각귀라 부른다. 하지만 홍금보도 잘하는 것이 한가지 있었으니 바로 소리하는 것이다. 청아한 목소리를 가졌고, 시를 들으면 그걸로 음을 만들어 소리를 낼줄도 알았다.

 

금보에게도 오매불망 좋아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장이강이라는 이로 꽃미남과인 얼굴을 가졌다. 홍금보는 통사관 장이강을 바라보고, 장이강은 벙어리 기생인 설향을 바라보고, 푸른 눈과 금발의 백인인 박수타는 홍금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들의 시선은 마주보지 못했고, 서로의 등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수 있는게 전쟁이었다. 책의 시대적 배경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때이다. 무능한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피난을 갔었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왕이었다. 이런 왕이기에 신하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권력을 위해 상대편의 당파를 치려고 하고 당파를 지키려 한다. 활빈당을 이끄는 홍길동과 홍길동을 도우는 허균이 장이강의 벗이기도 하다. 

 

 

『조선기생 홍금보』는 완벽하지 못한 어딘가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자신은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속에서라도 완벽한 이성을 원하는 것인지 로맨스 소설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이성을 바란다. 우리 상상속의 인물로 주인공 이성에게 자신의 이상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조금씩 부족하지 않는가. 얼굴이 좀 못생겼다든지, 재산이 없다든지 하는. 이런 인물들 속에서 역사속에서 일어난 임진왜란 시기와 맞물려 이들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듯 이들도 서로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가슴아파한다.   

 

예전에  본 영화 〈음란서생 〉에서 그림을 넘기며 움직이는 그림이라해서 동영상이라고 했듯 이 책에서도 언어유희의 즐거움이 있다. 벙어리 기생 설향은 병풍 앞에서 입을 벙긋거리며 노래부르는 시늉을 하고, 병풍 뒤에서는 금보가 목소리를 내어 노래부른다고 해서 립신구(立身嘔)하는 표현에서도 그렇고, 육십갑자에 빗대어 소간지, 개간지라 부르는 것도 그렇다.  

 

로맨스 소설 특유의 달달함이 약간 부족한 듯 하지만 소설은 다분히 영화적이다.

영화속에서라면 웃음을 터트릴 만한 에피소드 들이 많았다. 신방을 차린 곳에서 박수타가 금보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다는 열망에 낯뜨거운 소설인 '색주부뎐'을 읽어달라는 설정도 재미있다. 매일밤 '색주부뎐'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라. 책은 내용도 그렇지만 스물여덟가지 체위가 그려져 있기도 하는 책이다. 밤새워서 읽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콩닥거리지 않겠는가.

 

영화로 보면 더 재미있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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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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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버스에 탔을 때 들려오는 아이들의 욕설에 놀랜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의 80%는 욕설이었다. 욕설을 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은 그렇게 욕설을 입에 담고 있었다. 욕설이 자신들의 얼굴에 침뱉기라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후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싫어하는 게 욕설이라고 말했었다. 사춘기의 아이는 친구들도 다 쓰는데 하면서도 집에서는 쓰지 않았다. 지금도 제일 싫어하는게 욕설이긴 하다. 아무런 생각없이 내뱉는 말에 눈쌀을 찌푸리기도 하는데 요즘 영화나 책에서는 욕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때가 많다. 그런 것들도 처음엔 영 거슬리더니 자주 들으니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었다.

 

다만 책에서 욕설이 난무할때 참 난감하긴 하다.

예를 들면 씨.발. 같은거. 이 단어를 읽는 것과 입밖으로 내뱉는 것,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인터넷에 쓴다는 게 상당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이 세상을 향해 하는 말이고, 엄마를 가리켜 하는 말이기도 해서, 또 이 책의 리뷰에서는 이 단어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겠다.

 

자신을 앨리시어라고 하는 여장 부랑자가 있다.

지명의 유래가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고모리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에겐 나이 든, 늙은 아버지가 있고, 젊은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밖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동생이 있었다. 고모리에서 단층집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집을 짓고 있었고, 공사장 한쪽의 식용으로 개를 키우는 개장옆 콘테이너에서 그들은 머물고 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머니가 꿈을 꾼 날이면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은 무지막지하게 맞는다. 때리면서 횟수를 세라고 하면서 때리는데, 그 폭력앞에서 늙은 아버지는 무심할 뿐이다. 모른척하며 술을 마시러 자리를 피해버리고, 동네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폭력을 방치할 뿐이다. 폭력 속에서 자라나는 소년들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 고미와 함께 고미의 아버지가 하는 고물상 곁에서 논다. 고미와 함께 구청에 가서 가정폭력상담센터로 가지만 그마저도 그들에겐 특별한 해결책이 없었다.

 

앨리시어는 잠이 오지 않는 어린 동생에게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그가 했던 이야기 중 네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네꼬는 둥근 생물로, 네꼬의 심부에는 고래 한마리가 살았다 한다. 고래를 잃고 떠다니다가 네꼬에게 차가운 것이 달라붙었다는 거다. 털투성이 조그만 것들이 네꼬의 표면에서 돌아다니다가 그것들은 교미를 하고 계속 새끼를 낳고 있었다. 그들은 배꼽을 누르며 계속 사라지고 네꼬는 밝은 갤럭시를 지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갤럭시는 은하수라는 뜻으로 앨리시어는 어린 동생에게 은하수를 건너는 네꼬의 이야기를 해주며 어린 동생을 꿈 속으로, 편안한 잠으로 이끌게 해 주는 것이다. 앨리시어는 고모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 곳에서 지내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지금은 아파트로 변해버린 고모리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며, 토끼굴을 찾듯 그곳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앨리시어는 끝없이 내리는 비를 생각한다. 단단하고 길쭉한 침처럼 지상을 향해 꽂히는 빗줄기다. 비가 내려 좋다. 이렇게 비가 올 때 이 방은 안전하게 고립된다. 바깥이 비로 촘촘하게 닫혀 있으므로 누구도 무엇도 이 방에 접근할 수 없다.  (26페이지) 

 

별과 우주가스가 모인 곳은 붉은 머리카락 다발 같고 보라색 꽃 같고 용맹한 말의 머리 같고 노랗고 파란 눈동자 같을 것이다. 지금도 부지런히 팽창하고 있을 것이다.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앨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앨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63페이지) 

 

그대에게 앨리시어의 계절에 관해 말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환등기처럼 돌아가고 돌아오는 사계에 관해 말이다. (88페이지)

 

앨리시어는 그 거리에서 오래전의 꿈을 꾸고 있었다. 자신의 냄새를 피우며, 흔적을 남겨놓고 그렇게 사람들 곁에서 오래전 고모리에서 살던 일을 기억하며, 매일매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얇다.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책으로 경장편이라고 표현되는 책이다. 얇은게 아쉽긴 하지만, 책을 한번 읽고 다시 읽었는데 읽을수록 마음에 차오르는 책이다. 고모리가 없어진 그곳을 헤매고 있는 소년 앨리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그의 아픔이 전해져 온다. 여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어머니와 흡사한 앨리시어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자신의 모습도 씨.발.년.으로 그 거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그 거리에서 나는 앨리시어의 냄새를, 흔적을 찾을 것 같다. 그가 그 거리에서 꿈을 꾸었던 것처럼, 그 거리에서 앨리시어의 꿈을 꿀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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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1-0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글에서 씨발 이니 뭐니 하는 욕을 써놓은 것을 보면 불쾌하더군요.마치 내가 욕먹은 느낌...
욕을 글에 쓰는 사람은 그냥 말하듯 쓴 것이니 친근한 표현 아니냐는 핑계를 댈지 모르겠지만...왠지 교양이 없어보이고 평소에도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Breeze 2013-11-08 11:27   좋아요 0 | URL
이 리뷰에 쓴 욕설도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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