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자크 보세 지음, 기욤 드 로비에 사진, 이섬민 옮김 / 다빈치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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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생애의 첫 도서관은 초등학교의 도서관이었다.

교실 한칸에 자리한 책장 속에 책이 가득했던 곳,  가운데 탁자가 있었고 푹신한 의자가 있었으며 그곳은 햇살이 환하게 내리비치는 곳이었다. 나의 첫 도서관인 초등학교 도서관은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처럼 기억나는 곳이다.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 나는 늘 그곳이 그립다. 책을 다시 찾아 읽으면서 내가 한 습관은 책을 쌓아놓고 있다가 책장을 들여놓는 일이었다. 거실의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나는 우리집을 도서관처럼 꾸미고 싶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 즐거움이 상당히 크다. 그것을 실제로 보지 못하고, 사진으로 책속으로 위안을 삼는 경우가 있듯 말이다. 우연히 아는 분의 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2012년도에 발간된 책이 절판되어 버렸고, 책을 원하는 분들의 성화에 힘입어 예약구매한 독자들을 위해 새로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책의 표지 사진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운 도서관이었고, 내가 책을 좋아한만큼, 책이 있는 도서관의 아름다움을 만나고 싶었다.

 

혹시나 발간이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시간이 되어 책이 내게로 온 날 무척이나 행복하였다. 몇십 권의 책을 선물받은 만큼이나.

 

 

 

좌, 파리 마자랭 도서관  우, 영국 맨체스터 존 라인런즈 도서관

 

베네딕트회 수사들에게 있어서 도서관 없는 수도원은 '무기 없는 요새'와 같았다. (24페이지)고 했다. 또한 스위스의 장크트갈렌 대수도원 도서관의 금빛 쇠시리로 장식된 육중한 출입문 위에는 '영혼의 요양소'라는 뜻의 그리스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는 1세기에 시치리아의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가 람세스 2세의 '책의 집'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책이란 것은 우리들에게 그렇듯 영혼을 요양할 수 있는 곳이며, 우리의 마음을 숨길 수있는 요새이기도 하다. 사실 몹시 우울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때 책 속의 내용에 파묻여 있다보면 우리는 시름을 잊는다. '책의 집'인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걸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서가의 오래된 책 냄새와 새로운 책들의 잉크 냄새에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좌, 체코국립도서관    우, 워싱턴D.C. 국회도서관

 

 

도서관의 역사는 글쓰기의 도래와 거의 함께한다고 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도서관들은 이 책의 사진에서처럼 아름답거나 웅장하지는 않다. 순전히 실리에 의해 지어진 건물일 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대도서관들은 모두 특권층을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아름다운 도서관들은 건축과 장식이 모두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수도원의 아름다운 도서관들이 압도적이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장식품 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기울였고, 천장화도 감동 그 자체였다.

 

위의 사진중 존 라인런즈 도서관의 경우는 엔리케타 라인런즈가 남편의 사망으로 받은 거액의 유산으로 남편을 위한 유용하고도 참신한 기념물을 짓기로 했고, 남편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서관이다. 호화롭지만 검박하고, 신고딕식이지만 모던한 건축 양식인 이 도서관은 부부상이 양쪽 끝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기도 하다.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크트갈렌 대수도원 도서관

 

애서가들의 책사랑은 그런 곳들을 감상하고 이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책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책을 소유하려 한다. 아름다운 책을 언하는 애호가들이 남들은 구하지 못한 것을 찾아 서점과 경매장을 헤집고 다니는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다.  (112페이지)

 

윗글에서처럼, 읽고 싶은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본 사람들은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유명하다는 다른 지방으로 전화해 책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우리가 생전 구경해보지도 못한 책을 간직한 곳, 200년이 넘은 웅장함을 자랑하는 도서관을 책으로나마 먼저 만나보게 되어 감동이었다.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훌륭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스물세 곳의 도서관을 소개하며 '책의 집'에 관련된 오래된 역사와 책의 숨결이 살아있는 도서관의 설립 과정등을 담은 책이다. 이 책 한 권 만으로도 도서관의 역사와 아름다운 도서관에 발디딘 것같은 흡족함이 든다. 그곳을 다녀온 느낌과 아름다운 건축물과 책냄새가 풍겨나오는 곳을 한없이 거닐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책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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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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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가야하는 마음에 잠못 이루기도 할 것이고, 왜 나여야만 했는지 원망도 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그런 시련이 왔다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에 대해 정리해야 하는 시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아무것도 못해주고, 상실감을 맛봐야 하는 터에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꿈같은 삶을 산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윌 트레이너로 잘나가던 젊은 사업가에서 한 순간의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에 갇혀사는 사지마비환자가 되었다. 그의 모든 삶, 미래 등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꼼짝없이 누워지내야 하는 그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이가 있었으니, 자신의 간병인으로 온 루이자 클라크라는 여자다.

 

루이자 클라크, 고성이 있는 곳의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지만, 카페 문을 닫겠다는 사장의 말에 직장을 잃었다. 자신의 수입으로 가족이 살아가고 있는데 어떤 곳이든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다가온 직업은 한 남자를 간병해야 하는 일이다. 면접을 보기로 한 곳에 갔더니 나이든 노인이 아닌 젊은 남자가 휠체어에 누워 있었다.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를 6개월 계약으로 간병하기로 했다.

 

윌 트레이너는 삶을 포기한 남자였다. 그토록 활기차게 일하고 움직였던 그가 휠체어에 갇혀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7년을 사귄 애인이 있었지만, 루는 윌의 곁에서 그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루는 윌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왜 자신이 6개월 한시적 간병인으로 고용되었는지, 자신의 역할을 알아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루는 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용감하게 부딪히고,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도 존귀한 일이다.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슬프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죽음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 생명이 다해 죽는게 아니라 자신이 죽음을 선택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곳도 있다는게 나는 충격이었다.

 

새삼 얼마전에 식물인간이 된 어느 할머니의 생명을 놓고 왈가왈부 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아직은 생명이 있는 사람에게 죽음을 선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스스로 생명이 다하면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생명을 인위적으로 없앤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윌 트레이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가려 했던 곳은 스위스에 있는 병원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도와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웠다. 어쩌면 이런 곳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각 국가마다 생명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이라는 곳이 존재하고, 그 곳이 안락사를 지원하는 병원이란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가족이 안락사로 죽기를 바라겠는가.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 사는 게 고통스러워 포기한 삶이지만, 어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웃을 수 있는 일이 자꾸 생겨난다면 자신에게 생명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인가. 소설속 상황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는 일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너무도 가슴이 아파 꺽꺽 울어댔다.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고, 고통스러울 만큼의 감동이 있었던 로맨스 소설이었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생각과, 마음으로 품어주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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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주문합니다 세트 - 전2권 당신을 주문합니다
플아다 지음 / 청어람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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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먹으려고 준비하는 요리는 요리에 사랑이 담겨 있어 마치 사랑을 입으로먹는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하는 요리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다른 집의 음식을 먹어보고는 그때 왜 우리는 엄마가 해주는 요리가 제일 맛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는 것, 바로 엄마의 정성이 들어갔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만약 우울하거나 슬플때 요리를 하게 되면 그 맛은 우울하고도 슬픈 맛이 나기 마련이다.

 

이는 오래전에 읽은 소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도 그렇다. 막내딸은 독신으로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것 때문에 페드로를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형부가 된 페드로를 생각하며 만든 열두 가지의 요리들은 티타의 마음처럼 섹시하고 달콤한 요리였었다. 또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이에게 음식을 해주고, 아픔을 잊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곳,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료했던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내가 읽은 모든 요리 관련 소설들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있기에 왠지 더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 책 플아다의 『당신을 주문합니다』처럼 말이다.

 

플아다의 『당신을 주문합니다』또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요리를 하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여자였다면 『당신을 주문합니다』에서는 남자다. 그것도 아주 키가 크고 잘생셨으며, 머리가 약간 큰 남자 말이다. 아주아주 쬐그만 여자애는 이 남자를 가리켜 대갈장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요리와 먹음직스럽게 꾸며낸 것 하며, 맛도 기가 막히다. 더군다나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요리를 한다는 게, 이런 멋진 남자 있으면 나도 달려가고 싶게 만들었다. 그만큼 요리잘하는 책속의 남자는 매혹적이었다.

 

대부분의 로맨스의 시작이 그렇듯, 동생의 도시락 심부름때문에 플아다 FL-ADA 라는 곳으로 직접 도시락을 챙기러 갔던 박송아는 아틀리에의 요리하는 남자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도시락 가게 플아다의 사장인 여국대와 비룡씨, 수리씨 등 세 남자는 도시락 주문이 들어오면 이처럼 100인분, 50인분의 요리들을 뚝딱 만들어내는 곳이다. 광고회사에서 하루 열두시간씩 일했던 송아는 이곳 아틀리에 플아다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1년간 다녔던 광고회사를 때려치고 다시 나간 광고회사에서도 늘 플아다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물론 플아다가 그리운게 아니고 그곳에 그리운 사람을 남겨놓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눈을 마주할 땐, 어김없이 상대방의 눈이 갓 닦은 유리창처럼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눈동자에 마주한 사람의 상이 맺히기 때문이다. 이를 '눈부처'라고 한다. (1권, 231페이지) 

 

 

 

 

오늘 만난 이 사람에게 운명을 느끼는 이유는, 과거 어느 날의 내가 느낌이 좋았던 어떤 사람을 스쳤기 때문이다.  (1권, 209페이지) 사랑은 이처럼 운명처럼 다가오기 마련이다. 만나며 좋아지는 사람도 많지만 어느 한 순간에 반해버리는 사랑도 분명 있다. 여국대와 박송아가 그랬고,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 콩깍지가 벗어진게 몇년 쯤 지났지만, 사랑이야기는 이처럼 사람을 웃게 만들고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 때문에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핑퐁 게임을 하듯 이들이 하는 사랑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좋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하도 킬킬 거렸더니 옆에서 신랑은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할 정도로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수제 도시락을 만드는 아틀리에에서 요리를 하며 사랑도 하고, 이들의 대화가 통통 튀어서 재미있었던 1권에 반해, 2권은 다소 지루함을 느꼈다. 소설 구성의 3요소가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하는데 2권에서는 사건을 너무 길게 다루었다. 물론 송아의 어린시절과 맞물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고, 국대가 표현하기를 자신의 어머니는 마녀같기도 하고 소녀같기도 한 그 성격을 알려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리 씨와 이어진 사람들의 행동도 나올 수 밖에 없는 시점이긴 한데, 내가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은 역시 국대 씨의 어머니였다. 이런 사람이 지금도 존재하려나 싶을 정도로 과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송아가 국대 씨 어머니에게 마음을 열게 했던 행동을 처음부터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다.

 

사랑은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소설로 인해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사랑하게 되면 웃기도 하지만, 눈물로 흘린다는 것을. 슬픔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쁨의 눈물도 흘린다는 것을 나타내주었다.

 

나도 나를 위해 요리하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의 멋진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싶게 만들었다. 우리집 남자도 주말이면 우리를 위해 요리하는데, 왜 소설 속의 여국대만큼 그렇게 멋지지 못하냔 말이지. 여국대만큼 훤칠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지만, 그래도 뒤에서 가만히 안아줘야겠다. 송아가 국대를 안아주었듯, 커다란 국대가 쬐그만 송아를 품어주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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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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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숨의 소설을 읽은 건 몇 편 되지 않는다.

서너편 정도 되었을까. 그런데도 무작정 김숨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책 뒷편을 보면 장승리 시인의 김숨 작가에 대한 마음이 나오는데 동질감을 느꼈달까. 어느 날 김숨 이란 작가의 이름과 어느 분이 찍은 김숨 작가의 사진을 보고 반하게 되었다. 연예인을 보는 것처럼, 잘생긴 남자 사진도 아닌데 나는 한 여자 작가의 사진을 보고 반하게 되었단 얘기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작품이 썩 마음에 와닿진 않았었다.

처음 『물』이란 작품을 읽었는데, 이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것이다. 그뒤 다른 작품들을 읽어가며 작가의 작품 스타일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김숨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쓰는 구나. 그다지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나처럼 마니아적인 독자가 생길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작가의 작품이 나오면 늘 궁금해진다.

아마도 김숨 바라기 정도 될까. 이번 신작 『국수』도 신문에서 먼저 접했다. 신문 인터뷰 기사를 보며, 김숨 작가의 사진은 몇번이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총 아홉 편의 소설은 모두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이야기하는 것, 딸이 의붓어머니를 이야기하는 것,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이야기하는 것, 이 모든 가족들은 모두 한두 가지쯤 부족한 게 있는 가족들이다. 누군가를 그토록 깊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보았던가. 이들은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게 아니다. 어딘가를 가며, 무언가를 하며 그 사람을 생각하고 과거의 시간들을 흘러보내는 것이다.

 

소설집의 첫번째 작품은 「막차」라는 제목으로 암이 퍼져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며느리에게로 향하는 막차안에서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옆자리에 앉은 남편에게 읖조리듯 하는 이야기다. 미장원을 하며 겨우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며 돈을 버는데 아들이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쳐주었던 이야기이며, 고맙다는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던 며느리의 야속함을 피력한다. 옆에 앉은 남편은 그러거나 말거나 대답이 없이 눈만 감고 있다. 우리는 그녀가 하는 말에서 며느리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그 누군가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일수도 있지만, 가족중에 죽음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걸, 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느끼고 있는 중이다. 가슴아픈 일들은 피하고 싶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김숨 작가는 「옥천가는 날」에서 죽은 엄마를 구급차에 태우고 옥천으로 가는 자매의 이야기를 건넨다. 나중에 나의 자매들 또한 엄마에 대해서 그렇게들 이야기할까 싶은게 동질감이 들었다. 엄마에 대한 정, 엄마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 등. 엄마의 주검을 태우고 가면서도 일상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는 하기는 한것 같다.

 

작가는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또한 며느리가 시아버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한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같은 경우는 임신한 며느리가 좁은 빌라에서 시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불편함을 호소한다. 매일 오리뼈를 고은 물에 식사를 하시는 시아버지, 시아버지가 머물고 있는 방에 파란 벽지를 발라 아이방으로 꾸미고 싶은 며느리, 시아버지가 머물런 곳을 팔아 남편은 펀드에 넣었다 원금도 찾지 못했고, 시아버지는 그 돈의 반이라도 받고 싶어하는데 그들에게는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국수」를 읽을때 나는 먹먹함을 감추지 못했다.

「국수」에서는 한 여자가 국수를 밀기 위해 반죽을 하고 치대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키워주었던 의붓어머니에게 한층 가깝게 다가가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를 낳지 못해 쫓겨난 새어머니는 자신들의 집으로 왔다. 새어머니가 처음 자신들의 집으로 온 날, 새어머니는 밀가루를 꺼내어 반죽을 하고 밀개로 밀어 아무런 간이 되어 있지 않은 국수를 만들어 주었었다. 자신이 직장에 다니며 자취를 할때, 첫 아이를 잃었을때도 새어머니가 끓여주었던 국수를 먹고 싶었다. 여자는 그렇게 새어머니의 온기를 국수에서 느끼고 싶어했다. 쫄깃하게 하기 위해 반죽을 치대면서 여자는 새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그렇게 건넨다. 새어머니는 안방에 주무시고 계시지만, 그녀가 국수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치대는 일들은 새어머니에게 향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여태 읽은 김숨 작가의 소설 중 제일 감동적이었던 작품이 바로 「국수」인 듯하다.

나는 「국수」에서 새어머니에게 나짓나짓 혼잣말을 건네는 여자의 말을 읽다 말고, 설움에 북받쳐 울게 되었다. 너무 뒤늦게 깨닫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일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러야 알게 되는 구나 싶었던 것이다.

 

반죽을 치대는 시간동안 새어머니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한 여자의 독백에 가슴이 먹먹해졌던 것이다. 진정한 가족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이지. 그 어느 누구보다 진정한 가족애,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김숨 작가의 작품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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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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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찾고 싶을때, 할일이 없을때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는 일을 한다.

신간 서적이 무엇이 나왔나, 어떤 책이 좋으려나, 이런 생각으로 책들을 뒤지는데, 어느 날 한 책의 표지가 눈을 끌었다. 표지에 박힌 그림때문이었다.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더군다나 담배를 물고 비스듬히 앉아 하얀 목덜미가 보이는 한 여자의 그림을 보았을때의 그 느낌. 마치 내 모든 것들에 각인되듯 그림이 들어왔고, 이게 무슨 책인가 하고 들여다 보니 책 제목도 『각설하고,』였다. 책 제목이 '각설하고' 라니. 더군다나 '각설하고' 옆에 쉼표까지 붙어 있었다. 책 제목에 쉼표가 붙어 있으면 한 박자 쉬어 가라는 뜻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 쉼표 하나에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 책의 아름다운 표지와 제목 만으로 나를 이끈 책이다.

 

책을 구입해놓고 기다리며,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작가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시인이기도 했다. 시를 좋아하지만 많이 구입하지도 많이 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는 시인이 한정되어있다는 걸 나도 안다. 김민정이란 시인을 나는 처음 알았다. 시인이라 제목 짓기에 특별한 감각이 있는 탓인지 시인의 시집을 살펴보니,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와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라는 두 편의 시집을 낸 시인이었다. 시집 제목 또한 너무 읽어보고 싶다. 고슴도치가 날 수도 있으려나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들고, 그녀가 처음 느꼈던 게 어떤 것일지 몹시도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특히 산문을 읽다보면 소설과는 다른 작가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데, 시인이 쓴 산문은 훨씬 더 시적이다. 단문의 글에서 느껴지는 문장문장들이 장편의 시, 연작 시 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 독자들은 시인의 산문을 기다리고, 산문 속에서 시인의 감성을 찾는다. 시인의 감성을 글로 읽으며, 우리 또한 시인의 감성을 닮게 되는 것 같다.

 

김민정 시인의 첫 산문집이라 한다.

글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성격은 딱부러진 성격을 가진듯하다. 편집자로 일하며 느낀 감정들, 시인으로서의 감정들, 사람 김민정에 대한 감정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통통 튀는 문장으로 담았다. 김민정의 글에서 불혹을 눈앞에 두었으나, 홀로 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소녀적 감성이었다. 그래서 시를 쓰나 보다.

각설하고, 산문에서도 시인의 시가 좀 더 실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글을 제대로 아는 게 시를 읽는 일인데, 아무래도 산문이니만큼 그녀의 시가 거의 없어 아쉬움을 그녀의 산문으로 달랬다. 산문도 다른 이의 산문보다는 짧았다. 아마도 시를 쓰듯, 시를 다듬듯, 다듬고 다듬었나 보다. 

 

맨 처음 시가 내게로 와 시를 만날 수 있었듯, 앞으로 그렇게 쓰고 읽고 결국에는 파지처럼 버려질 운명으로 나는 시를 살아갈 것이다. 그거면 족하지 뭘 더 바라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입 닥치고 쓰기나 하련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중 략)  아아, 정말이지 시라는 진정한 시의 신은 대체 언제쯤 내게 들리실지. (164페이지)

 

윗 글에서처럼 시인들도 시의 신이 자신에게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가 보다.

산문도 시처럼 쓰는 시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싱글로, 시인으로, 편집자로 살아가는 마음을 담은 산문이 참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소곤거리듯 독백을 하는 듯한 글도,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건너편의 사람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존댓말로 말하는 글들에 내가 마주 앉아 듣는 기분이 들었다.

 

김민정의 산문, 시처럼 참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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