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 영화심리학자 심영섭의 마음 에세이
심영섭 글.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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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심영섭은 영화평론가이다.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신문의, 혹은 다른 매체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때 늘 이름이 보이곤 했던 영화평론가 심영섭. 나는 심영섭 영화 평론가가 좋다고 하는 영화면 고개를 끄덕였고, 그다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영화라고 평하면 나도 영화보기 꺼려지곤 했다. 영화평론가 중에서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영향력이 컸던 분이기도 하다.

 

그런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사실은 심리학자 였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예쁘장한 외모의 얼굴에 남자이름 같다며 혼자 웃었었는데, 이번 책을 보며 알게 된 사실은 자신이 지은 이름이란다. 처음 영화평론상 수상 당시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했다' 라는 지녔다 했다.

 

아마도 이런 사항들이 나로 하여금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졌다. 또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과 영화를 매개로 한 글이 아니던가. 영화를 모티프로 하여 사람의 심리를 이야기하는 글이다. 더군다나 심리학자였던 만큼 심리상담을 하면서 상담을 했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온 인생에 대한 답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영화와 함께 우리의 삶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는 글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 그들의 결정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삶과 아주 많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것들

 

타인들의 생각과 질문만을 대상으로 하는 글이 아닌 저자 심영섭의 진심이 들어가 있는 글이었다. 남편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영화속 사람들의 심리, 자신의 심리를 말하여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그 글에 대해 공감하게 만들었다. 심리에 대한 글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너무 전형적인 심리학만을 다룬 글은 읽는 재미가 떨어지게 마련인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와 결부하여 이야기하기 때문에 더 쉽게 다가선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에 관한 설명들을 읽으면서 '그랬구나' 하고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내가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여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가장 아프고 가장 간절한 연애가 아니라면, 이러한 통찰은 다가올 수조차 없는 법이다.  (105페이지)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보지 못했던 영화 '연애의 온도'를 말할 때의 대목이다. 누군가를 아무리 사랑하였어도 내 마음속에 있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감추고 상대방의 뜻에 따라 행동하다보면 상대방은 나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래전 누군가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을때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하룻밤 자고 나면 그 모든 일들이 꿈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었다. 나는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또 원했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이별이었다. 꼬박 하루를 앓아 눕고,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그 사람이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다림이었고, 아픈 상처로 남아있었다. 나 또한 그 상처로 인해 성큼 성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겪으며 성숙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상처를 치유하고, 그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 나를 뒤흔드는 것도 실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들어있는 스스로의 시선과 검열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친 자의식과 자기검열 속에는 타인에게 사랑받고 이쁨 받고 싶은 밑 마음, 혹은 다른 사람에게 미움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173페이지)

 

영화 '미쓰 홍당무'에서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타인의 구미에 맞는 나, 바람직한 나를 연기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두자고 말한다. 나를 보호하는 것도 나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도 나인 것이다. 타인에게 다 맞춰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무조건 친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은 나이므로.  

 

나에게 아픔이 찾아올지라도 내가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 앞의 현실에 더 직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아픔을 겪으면서 우리는 한층 성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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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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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꿈을 꾸었다. 꿈을 꾼 날 아침에는 소름이 끼쳐 한동안 불안할 정도였다.

아마 이 책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어서 일까. 길다란 칼로 사람을 찌르는 소설의 내용 때문에 소름끼쳐 하면서 읽은 이 작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꿈의 내용이 희미해졌지만 그때는 괜시리 불안했었다.

 

우리나라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은지가 꽤 된것 같다.

오래전에 읽은,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은 김성종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은게 다 였으니까. 물론 최근에 나온 추리소설 기법을 사용한 소설을 읽기는 했다. 추리소설하면 영미권이나 북유럽 소설이 강세를 이루고 있어서 아무래도 그쪽 소설을 더 많이 읽게 된다.

 

그런 우려를 갖고 읽은 책인데 생각보다 괜찮은 추리소설이었다.

다만 편집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형사가 나오는 단락에서 갑자기 추리소설 작가인 민성의 이름이 나열된 식이고, 박형사가 나오는 부분에서 갑자기 윤형사라는 이름이 들어있기도 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오타는 좀 피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책 내용을 보자면, 주로 생리를 하는 여자들만으로 골라서 살인을 하는 연쇄살인범을 쫒는 이야기이다. 연쇄살인범을 쫒는 경찰서 직원들과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 작가가 쓴 추리소설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보고서를 써온 한 남자와 여동생이 실종되었다는 여대생이 주를 이루는 인물구조를 갖고 있다.

 

자신이 쓴 소설대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면 작가 입장에서도 꽤 두려울 것 같다.

이 책 속에서 작가 민성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연쇄살인범을 쫓으려 하고, 자신이 12년전의 한 사고 때문에 기억상실을 겪었던 일과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연쇄살인범을 좇는 박형사 또한 집과 꽤 먼 곳에서 목이 잘린 채 살해당한 여대생 주변을 탐문하면서 여대생의 중학교 시절 과외 교사와 함께 아이들과 만들었던 모임과 그 모임을 이끌었던 김현 이라는 과외 선생을 찾으려 한다.

 

사건 해결을 위한 그들의 행동이 거듭될 수록 사건은 12년전에 일어났던 용호 농장에서의 화재 사건과 맞물리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 얽혀있던 진실로 다가갈수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실과 맞딱뜨리게 되는데 소설은 아주 애매하게 끝이 났다.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책 속에서는 살인사건이 난 장면의 피해자의 모습을 보며 카라바조의 위 그림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끔찍한 모습이다. 피해자가 발견될 때마다 목이 잘리는데 이런 의식을 거행했던 것이다. 

 

영미나 북유럽 소설에 비해 촘촘하게 짜여진 추리소설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짜릿함도 있었다.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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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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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한 책이라면 일단 눈길을 뗄수 없다.

풍경화도 좋지만, 각양각색의 모습을 비추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그림은 다양한 그림만큼 다양한 생각을 갖게 한다. 춘화를 보더라도 혜원의 그림과 단원의 그림이 다르듯 모든 그림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하물며 다른 화가가 그린 사람의 그림들도 모든 다른 모습, 다양한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림은 서양의 그림과 우리나라의 그림은 다른 멋을 가지고 있다.

서양화 속의 그림이 나타내는 얼굴이 적나라하다면 동양화 속의 그림은 숨김의 미학이다. 가느다란 선 속의 그림에서도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그 표정마저 다양한 표정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사람이 나오는 옛 그림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옷차림과 표정들을 보며 사람 보는 눈, 그림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전에 동양화를 볼때는 그림 속에 자리한 사람의 세세한 표정들을 볼 수 없었다. 전체적인 그림만 보고 지나쳤다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설명하는 사람의 표정, 전체적인 그림에서 사람의 그림은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자리했는데도 그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가느다란 이목구비를 나타낸 자그만 그림 속에서도 그들의 표정은 다 제각각이었다는 게 새로운 발견들이었다.  

좌, 유숙 <오수삼매>  우, 이명기 <채제공 초상>

 

위 그림 왼쪽 유숙의 <오수삼매> 그림을 보자. 고개를 떨구고 낮잠을 자는 승려의 모습을 담았다. 오원 장승업의 스승이기도 한 유숙의 그림인데, 저자는 이 그림에서 승려의 옷자락의 낡음까지 집어 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승려의 모습에서 눈썰미가 살아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한 우측의 그림은 정조의 특명으로 그려진 채제공의 초상이다. 처음에 그림을 볼때는 느끼지 못하였지만, 그림 속에서 채제공의 눈은 사시이며, 마마자국까지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초상화 속에서만 볼수 있는 그의 실제 모습이다. 이는 정조 때의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도 얼굴 그림에서는 한 수 접을 정도의 실력파인 이명기의 그림이다. 

좌, 작자미상 <물에 뜬 달>    우, 심사정 <국화와 돌>

 

그림은 참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 달이 둥실 떠올라 있는 위의 그림에서 강물에도 그 달의 모습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림을 살펴보면 배에 탄 노인이 강물에 비추는 달을 뜨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자는 저 노인이 시인 이태백 임을 설명하고 있다. 작자미상의 그림이지만 옛 사람의 정취가 그대로 엿보이는 그림이다.

 

옛 사람들은 그림속에 기원을 담아 그렸다.

화조도에서 모란과 수탉 그림을 자주 볼수 있는데, 모란과 수탉은 '부귀공명'으로 통했다. 또한 석류는 촘촘하게 씨가 박힌 모습을 가리켜 자손이 무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산'을 나타낸 것을 볼 수 있다. 심사정의 <국화와 돌>의 그림을 보자. 노란 국화는 '별이 가득한 하늘', 자줏빛 국화는 '술에 취한 신선'이다.(253페이지) 라고 했다 한다. 심사정은 위의 그림에서 자줏빛 국화를 그렸다. 옛 그림에서 보이는 옛 사람의 흥취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좌, 신윤복 <단오풍정>   우, 김홍도 <빨래터>

 

조선 풍속화의 뛰어난 인재였던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비교해 보는 즐거움도 컸다. 비슷한 그림이면서도 전혀 다른 멋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이다. 신윤복의 그림 속 여인들이 농염함을 나타낸다면, 김홍도의 그림은 좀더 수더분한 모습의 여인상을 담고 있다. 이는 기녀와 여염집 여인의 차이랄까.

 

옛 사람의말이 "나무의 나이는 나이테에 묻고 사람의 이력은 얼굴에 물어라"고 했다. 얼굴이 딱 그 사람의 자서전 격이다.  (85페이지)

 

그림을 보는 일은 즐겁다.

더군다나 옛 그림 속에서 옛 사람들의 모습들을 다시 살펴보며 옛 사람들의 정취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보며 옛 사람들의 모습을 알게 되고, 우리는 그림을 다시 보게 된다. 그 그림 속에서 새로운 감정들을 엿볼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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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삼성출판사 판으로 읽었던 한국문학전집이 생각난다.

화사한 표지로 30권 정도 되는 책을 한질 구입해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세계문학전집도 자꾸 눈에 뛰게 하더니,

이번에 보니 한국문학전집도 1차분 20권이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었다.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을 단권으로 자주 구입해 읽고는 하지만, 이처럼 전집으로 나오니 더 가치있게 보인다.

작품의 표지를 살펴봐도 상당히 고급스럽다.

 

 

 

 

 

 

 

 

 

 

 

 

 

 

 

 

 

 

 

 

 

 

 

 

 

 

 

 

 

 

 

 

표지만으로도 상당히 호감가는 책이다.  

20권의 책중 내가 읽었던 책은 가만보니 몇 권 되지 않는다.

 

또한 책들을 살펴보니 한국고전문학전집도 보여 반갑다.

학창시절에 의무적으로 읽었던 고전문학이 아니던가.

 

 

 

 

 

 

 

 

 

 

 

 

 

 

 

 

 

 

 

 

 

 

 

책들이 참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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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
진주 지음 / 로코코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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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그렇다. 어느 순간 바람처럼 다가와 온 마음에 스미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미처 사랑을 깨닫기도 전에 함께 하며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이의 사랑이 어떻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면 사랑은 참 비슷한 모습이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해왔던 사랑도 그렇고 다른 이의 사랑을 보아도 사랑은 참 간단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보면 진주 작가의 작품 속 사랑은 잔잔함을 가장한 격랑을 품고 있다.

사랑이 어떻게 잔잔하기만 할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모든 것에 모든 감각이 향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아픔을 품고 있어도 사랑으로 그 아픔과 상처가 치유될 수도 있다. 진주 작가의 작품 속 여자주인공 들은 하나 같이 아픔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아픔을 가진 주인공이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사랑은 격랑을 헤쳐나가 잔잔한 파도를 탈때까지 무심하고도 격정적인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의 남우도 그렇고, 『꽃송아리』의 연이도 그랬다. 아픔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들이었지만, 오롯한 사랑을 받음으로 인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지 않았던가.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은연중에 작가의 작품속 주인공들의 비슷한 모습을 기다려왔던가. 그렇게 많은 인물이 아닌데도 그렇게 느끼고 말았으니.

 

사람마다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속의 수안도 아픔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많이 보아왔지만, 실제로 좀 산다는 사람들에게서는 많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한 일. 아름다운 배우였지만 욕심이 많았던 엄마때문에, 또는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모든 죄를 대신 집어 쓰고, 집안에서 죄인처럼 살아가는 이가 수안이다. 자신의 다른 삶일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사랑을 위해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집안의 이익을 위해 결혼시키려는 할머니의 뜻을 거절하지 못한다. 수안은 그게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이었고, 조금이나마 엄마의 죄를 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이 어디 그렇던가.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의 정략결혼전에, 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과 불타는 사랑을 해야겠다 하는데, 그 사람과의 마지막을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냐 말이다. 한번 사랑에 빠져버리면, 그 사람의 다정함을 알아버렸는데 그 사랑을 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안에게 깊이 빠져버린 체이스를, 체이스에게 빠져버린 수안은 이제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순전히 자신 스스로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갓 태어난 인간은 형태 없는 찰흙 덩이에 불과하다. 어떻게 만져지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는 올곧은 인간이 되고, 늑대의 무리에 섞여 자란 아이는 늑대가 된다. 그건 내재된 본성과는 무관한, 단지 처한 환경의 상이함이 만들어 낸 차이에 불과하다. 들판에 뿌리 내린 씨앗은 메꽃이 되고, 해변에 뿌리 내린 씨앗은 갯메꽃이 되는 것처럼. 그래서 생명은 위대하고, 또한 그래서 생명은 나약하다.  (330페이지)

 

사실 『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의 스토리는 아주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그 가슴떨리는 설렘도 부족한 듯도 하다. 하지만 수안의 체이스를 향한 마음, 체이스가 수안을 향하는 마음을 표현한 문장들이 정말 좋다. 윗 글에서의 갯메꽃의 표현도 좋고, 문학 작품을 사랑하는 작가의 모든 마음들이 수안에게 투영되어 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려 바다가 내다보이는 큰 창을 만든 도서관 속에서 마음의 위로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도서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문학 작품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던 그 마음들이 보였다.

 

진주 작가의 글은 심연 속을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깊게 침잠한 심연 속에서 작가가 말하는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그저 마음이 저려온다. 남해의 햇살에 반짝이던 짙푸른 바다가 생각났다. 반짝이는 빛에 반사된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남해 냄새가 나던 곳, 햇살마져 남해 만의 햇살이 비추던 그 곳, 바다가 생각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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