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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레터 - 잎맥의 사랑 연대기
황모과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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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상상의 산물이다. 물론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인 건 상상력의 세계를 글로 표현한 것이다. 아울러 작가의 상상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여, 부디 건강하길, 어디서든 안전하고 평안하길. (51페이지)
책 소개글에 혹해 구매 후 읽게 된 책이다. 보라. ‘얼음산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륀이 ’비티스디아‘라는 식물의 잎을 해석하려고 애쓴다. 비티스디아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희귀종 식물이다. 키우는 사람의 마음을 들어 잎새에 간직하고 그걸 해석하는 이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잎맥의 사랑 연대기'라니.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황모과의 『그린 레터』는 디아스포라의 소설이면서도 사랑의 연대기여서 마음 한구석에 따뜻해지는 작품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세계를 그리는 대부분의 작품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린 레터』는 식물을 매개로 하여 인연과 그로 인해 평생의 사랑을 간직하고 찾아 헤매는 내용이다. 희망의 메시지, 사랑의 메시지로 가득하여 디아스포라라는 생각을 잠시 잊었다.
식물을 기를 때, 음악을 들려주거나 사람에게 하듯 다정하게 말을 건네라는 말을 남편에게 들었다. 처음엔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지만, 지금은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말을 건넨다. 어서 잘 자라라고, 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라는 마음을 담는다. 만약 식물이 인간과 소통할 수 있다면, 쿠진족의 비티스디아처럼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잎맥을 받은 사람은 그걸 해석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굳이 잎밖에 내어 말하지 않아도 잎맥 하나로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소설이다. SF 혹은 판타지로만 끝나는 소설도 아니다. 분쟁국가의 한 가운데서 양쪽으로 갈라져 오갈 수 없는 지역이 되고, 쿠진족이라는 세계에 있었던 이들은 그들이 속한 얼음산국에 가기 위해서 종이로 된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했었다. 분단국가가 된 우리나라를 짐작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푸룬이 로밀야에게 향하는 마음을 담은 엽첩과 반대로 로밀야가 푸룬에게 마음을 전하는 엽첩은 사랑이라는 건 어떤 순간에도 스러질 수 없는 깊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증조 할아버지가 키우던 비티스디아 잎맥을 해석하는 연구에 매달렸던 이륀에게 비티스디아의 해독키를 가지고 있다는 메일이 오는데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쿠진족을 일컫는 무시의 대명사(너, 쿠진족이야? 같은)로 치부되지 않기 위해 비록 4분의 1이지만 쿠진족이라는 말을 숨겼던 이륀이었다. 증조 할아버지와 비티스디아 해독키를 가지고 있었던 마을을 만든 선조 할머니가 서로에게 건네는 마음은 감동하기에 충분하다. 푸룬이 가족에게 겉돌았던 이유도 사랑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사랑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원래 비티스디아는 결혼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 식물을 키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잎사귀를 건네는 풍습이었다. 비티스디아 잎사귀를 편지 삼아 건넸던 것이다. 비티스디아 정원을 보고 싶다는 이륀의 말에 부끄러워하는 발루의 표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생각나게 하는 게 몇몇 보인다. 돈을 벌기 위해 탄광에 가서 일했던 결과와 무참히 살인을 저지르는 국가, 독립을 외치는 단체와 그들을 무시하는 발언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해 식물을 키우고, 잎맥에 깃든 마음을 알게 되는 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이처럼 어떠한 순간에도 꽃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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