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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평점 :
F.스콧 피츠제럴드를 생각하면, 우디 알렌의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 속 주인공이 파리의 밤거리를 걷다가 1920년대의 한가운데 예술가들이 모여있던 한 장소로 가서 신기한 경험을 하는 내용이었다. 영화에서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가 술을 마시며 파티를 즐기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은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좋아하여 번역가로도 활동했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엮은 책으로 술에 기대어 악화일로의 길을 걷던 와중에 쓴 소설과 에세이가 실려 있다. 마지막에야 드러났던 생의 진면목이 아름다움의 형태로 드러났다. 암울한 시대 절망을 딛고 새로운 광명을 찾으려고 애썼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1920년대에 피츠제럴드는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어 유럽 여행 중이었다. 성공에 힘입어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여행은 알코올 의존증과 신경쇠약을 불러왔다.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삶은 여러 작품의 인물과 배경으로 나타났는데, 작품 속에서 우리는 삶의 한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이국의 여행자」에서 젊은 부부는 유럽 여행 중이다. 여행 중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그중에서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행 장소에서 마주치는 부부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켈리 부부가 행복할 때는 행복한 모습으로, 건강이 나빠져 스위스에 도착했을 때는 건강이 좋지 않은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그 부부와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여긴다. 자신들과 거울처럼 닮았음을, 그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작품 속에서 작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자기의 삶을 작품 속에 투영시켜 더 나은 삶을 도모하고자 함일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한순간에 어그러진다. 바람을 피운 남편은 건강을 위해 멀리 요양을 떠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남겠다고 한 아내를 향한 마음은 절망의 다른 모습이다. 작품의 진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 드러나기도 한다. 「크레이지 선데이」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등학교 때 읽고 깊이 감탄했었던 작품 「바람 속의 가족」을 보자.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생을 망친 의사가 거대한 토네이도를 만나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약국을 운영 중이던 의사는 동생의 아들이 머리에 총알이 박혀 목숨이 위태로워도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포탄 소리가 기관총 소리 같은 탁탁거리는 소리로 들렸던 토네이도는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집이 사라진 풍경을 생각해보라. 절망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사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고 조카의 머리에서 총알을 빼준다. 아빠를 잃은 어린 소녀를 생각하는 것 또한 새로운 변화다. 아마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으리라. 희망을 찾아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며 아빠를 잃은 소녀를 딸처럼 생각하며 변화를 꿈꾼다.
그의 삶은 새로운 식림(植林)을 필요로 했고,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의 토양이 그 숲의 성장을 다시 한번 지탱할 수 있기를 그는 바랐다. 그의 토양은 최고의 토양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귀 기울이고 관찰하는 대신 과시하는 약점을 일찍부터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211페이지, 「어느 작가의 오후」 중에서)
아내는 요양 중이고, 빚이 쌓였으며 딸을 돌보아야 하는 작가는 글을 쓰지 못해 고민이다. 산책을 나서 본다. 새로운 풍경을 보면 글을 써지지 않을까, 바깥 공기를 쐬면 괜찮지 않을까. 작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다는 건 남다를 것 같다. 더군다나 20년 전에 번역했던 작품을 다시 엮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큰 즐거움이지 않을까.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고 다듬어 새로운 작품으로 내놓은 작업 말이다.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피츠제럴드의 후기 작품집이다. 물론 사십 대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작가의 마지막 즈음에 쓴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망가진 3부작을 비롯해 다섯 편의 에세이는 작가의 상황을 좀 더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열정과 활력이 너무 이른 시기부터 끊임없이 졸졸 새기 시작한 그 틈이 어디인지 알아내야 했다. (332페이지, 「취급주의」 중에서)
인생이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이를 통해 젊음을 유지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돈이라는 주요 목표가 당연시되고 흔들리는 명성이 그 매력을 잃었을 때, 나는 영원한 ‘해변의 카니발’을 찾아 꽤 오랜 세월을 허비했다(솔직히 나는 그 세월을 후회할 수 없다). (354페이지, 「젊은 날의 성공」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피츠제럴드를 좋아했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영미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과 해설, 후기가 수록되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피츠제럴드의 자전적인 경험이 응축된 후기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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