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퉁이 집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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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을 적어놓고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꽃말을 알게 되면 꽃에 대한 지식이 느는 것 같았다. 이제 꽃을 직접 키우기 시작하면서 삶이란 꽃과 같다는 걸 새삼 느낀다. 꽃을 심고 싹이 트는 걸 지켜보고, 꽃망울을 터트리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겨우내 얼어 죽지 않을까 지푸라기를 감싸주며 다음 해를 기약한다. 꽃이 피어있는 시기는 얼마나 짧은가. 그 짧은 시기임에도 활짝 핀 꽃은 아름답지 않은가 말이다.

 


이영희 작가는 꽃을 사랑하는 작가로 꽃을 모티프로 하여 작품을 쓴다. 그 모퉁이 집은 꽃에 대한 판타지 소설이다. 꽃혼, 꽃의 전달자, 꽃말 등이 나온다.




 

불에 탔다가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모퉁이 집에 낯선 남자 두 명이 이사 왔다. 문패에는 모도유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현지마을에서 동우와 용남은 하나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꽃집 딸 마디는 모퉁이 집에 매일 꽃 배달을 했다. 마디는 한의 목소리와 닮은 아쟁을 탄다. 과거 1945, 아쟁을 타는 기생 강은조와 진주에서 동아염직소 대표인 고윤송, 은조를 보살피는 옥이, 진주경찰서 형사부장 구헌이 있었다. 과거의 인연이 현재까지 이르러 삶이 반복되는 것 같다.

 


마디는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상태에서 모퉁이 집에 꽃 배달을 하며 문득 떠오르는 기억을 마주했다.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해눈은 도유를 설득한다. 타인들에게는 높은 콘크리트 담이었던 모퉁이 집 담벼락이 마디와 도유, 해눈에게는 홍가시나무라고 생각해보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외할머니가 살던 천녀도에서 마디는 한 소년을 만났다. 이름이 없는 그에게 해눈이라는 이름을 주었고, 해눈은 할머니가 부르던 이름, 마디풀이라 불렀다. 해눈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마디풀이었다. 또 한 사람, 죽어가던 자기에게 물을 나눠주었던 아씨를 그리워했다.


 

상상해보라. 꽃과 대화를 하고, 주변에 나비들이 날아가며 꽃들이 온통 그를 향해 방긋거리는 장면을 말이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향기의 인장이 박힌 사람은 초록색 식물을 부릴 수 있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사람을 칡넝쿨이 감싸줄 수도 있으며 부러진 해바라기에게 생명을 줄 수도 있다. 독사에게 물릴 찰나 꽃들의 언어로 알려줄 수도 있다. 꽃을 부리는 사람. 꽃의 혼을 가지고 있는 자. 그들의 세계에서 꽃은 생명과도 같다.

 


아쟁 선율이 흐른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가 울려 퍼진다. 한이 서려 있는 아쟁의 선율이다. 소설을 읽고 아쟁 연주곡을 찾아보았다. 아쟁 소리를 듣다 보니 소설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꽃들의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해주었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꽃들의 인연과 함께 아쟁의 선율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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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6-0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워 판타지....매혹적인 개념이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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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돈키호테 #김호연 #나무옆의자


 

베스트셀러가 된 불편한 편의점시리즈를 읽으며 우리와 맞닿은 주변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보는 장면이 다가 아니라는 것.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상대방을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지 못했던 발상일 것이다.


 

불편한 편의점후속작 나의 돈키호테는 최근 이슈가 되는 유튜브와 지나간 기억과 추억을 반추하는 소설이다. 진솔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외로웠던 중학교 2학년 시절, 가족처럼 안아주었던 돈키호테 비디오의 주인 돈 아저씨를 찾는 과정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와 닮았다. 돈키호테를 오마주한 것처럼. 솔은 라만차 원정대의 찐산초가 되어 모험을 시작한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대전으로 온 솔은 엄마에게 기대어 있는 상태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 방송 피디 경력으로 프로덕션 일을 다시 할 것인가. 자신이 좋아했던 일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솔은 경력을 살려 인생 2막을 유튜브에서 열기로 했다.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가 있었던 건물의 카페에서 콘텐츠 기획안을 만들다가 익숙한 목소리를 발견했다.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이었다. 돈 아저씨가 있었던 지하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를 통해 사라진 돈 아저씨를 찾는 공개방송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돈키호테 비디오의 주인인 돈키호테는 어디 가고 찐산초만 남았을까요? 이 가게를 운영하며 저를 비롯한 선화동의 소년소녀들에게 돈 아저씨라 불렸던 그분은 과연 어디로 가신 걸까요? 저 역시 궁금합니다. 그래서 찐산초의 방송은 돈 아저씨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그를 찾아 떠나는 모험입니다. (53페이지)


 

구독과 좋아요, 필수.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의 주인장 찐산초는 돈키호테필사노트를 시작으로 그때 보았던 책과 영화들을 리뷰한다. <굿 윌 헌팅><고양이를 부탁해> 등이다. 그 시절 라만차 클럽이었던 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 솔과 한빈을 비롯해 대준과 성민은 찾았으나 새롬만 연락이 없었다. 유튜브 방송을 통해 돈 아저씨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대학 동기에서 학원 원장과 영화 관계자를 만나며 아저씨에게 점점 다가갔다.


 

아저씨를 찾는 여정은 추억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외롭고 힘든 시기에 위로를 주었던 사람과 그 사람을 찾는 과정이 소설 돈키호테와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 편의 동화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비디오 세대에게는 그 시절의 추억을, 유튜브 세대에게는 컨텐츠의 주제에 관하여 생각해볼 수 있겠다. 어떤 컨텐츠로 자신을 표현할 것인가. 공감할 수 있을 것. 지루하지 않을 것. 재미있을 것.




 


작가의 경험과 삶이 소설 속에 녹아 있어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버거워도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것. 꿈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갈 것. 작가의 출간 작품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인물들이 나와 각자가 가진 특징을 강조한다. 한편의 버라이어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돈 아저씨가 이상향을 꿈꾸었던 장소, 그 장소를 찾아간 한빈의 행동들은 이상향과 꿈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상상해보라. 돈 아저씨와 라만차 클럽이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출생을 기념하여 거리 행진을 하는 장면을. 돈키호테 다운 행동들이다. 제도에 순응하지 않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돈키호테. 정의로운 세계를 위해 앞장서 달리는 우리의 돈키호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산초가 되어 농사를 지어도 상관없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돈키호테가 산초가 될 수도 있으며, 산초가 돈키호테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사람을 이끌 줄 알아야 하며 앞장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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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프팅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1
범유진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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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프팅 #범유진 #다산책방

 

학교가 힘든 아이가 있다. 반면 학교가 유일한 안식처라고 여기는 아이가 있다. 두 아이가 갈 만한 곳은 어디일까. 만약 다른 평행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면, 그곳이 학교가 없는 세계라면 어떨까. 상상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경험이든 할 수 있다. 첫 챕터 제목처럼 같은 학교 다른 마음처럼 말이다.


 

스피드 클라이밍 선수인 나로아는 마지막 1미터를 넘기지 못했다. 친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완벽한 가족이라고 감탄했지만 로아는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나마 학교가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로아에게 학교는 숨 쉴 수 있는 바다였다. 바다를 유영하는 물고기라고 여겼다.





 

박도율에게 학교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최악의 시스템이었다. 편법으로 주소를 옮겨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한 도율은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고, 차주혁이 가하는 폭력이 힘들어 상상 속에서 몇 번이고 학교를 폭파했다. 담임 선생님에게 학폭에 대하여 건의를 했으나 무시당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평행세계로의 쉬프팅이 실현되었다. 로아와 도율이 도착한 곳에 학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계급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학교가 있었던 세계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디마이와 논디마로 나뉘어 있었으며 미성년인 아이들이 직업훈련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교육사업은 완전 붕괴되었다.


 

어떤 사람은 디마의 세계에 남고 싶을 것이며, 학교가 있던 곳으로 가고 싶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 지위가 달라지면 선택할 수 있는 것 또한 달라진다. 차주혁과 박도율의 관계가 그렇고, 태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로아에게 도움을 준다.


 

소설에서 도율은 어른에게 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도움이 무시당했을 때 도율이 했던 행동은 옳지 않았다.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는 어른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보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도율은 점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안타까운 부분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했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부모와 학교 교사의 역할을 강조한 작품이다. 모든 아이에게 관심을 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민 학생을 관심 있게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전가하지 않아야 하며 자기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평행세계로 간다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십대의 나였다면 달라겠지만 지금 상태에서 평행세계를 꿈꾸지는 않는다. 평행세계라는 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감히 어떤 세계로 가고 싶다 말하지는 못하겠다. 우리가 꿈꾸는 학교는 어떤 곳일까.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청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이제는 힘들다. 다만 청소년 문학에서 짐작할 뿐이다. 현재는 과거와는 달라서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그저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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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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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한국 시인으로 아이오와에 가게 된 시인 문보영의 일기 형식의 에세이다.

 


IWP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이 3개월간 한 호텔에 머물면서 리딩, 강연, 토론 등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IWP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다양한 나이대다. 시인은 그중에서 비슷한 또래의 작가 코토미와 에바와 특히 친하게 지냈다. 다른 작가들은 아이오와를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은데, 문보영 시인만은 아이오와로 다시 돌아올 거라 말한다. 아이오와에서 그는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열렸던 호텔은 아주 낡아서 어둡고 서늘했다. 작가들에게 주어진 전망은 벽에 가로막혀 있는 곳이 많아 전망이 없는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이 작가들은 중정 안에 있는 종이컵을 주제로 글쓰기 모임을 했으며, 해가 비치는, 전망이 있는 곳으로 탈출하고자 긴 호소장을 작성하기도 한다. 호소장을 건네주지 못하고 가방에 품고만 다니다가 IWP 최고령 작가인 메리가 요구는 정당하다며 전달하라는 부추김에 넘어가고 만다. 그러면서 메리는 호텔 기둥에 숨어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작가가 아이오와에서 느꼈던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피드백을 해줄 뿐 아니라 자기의 시를 낭독하는데 이때는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살짝 들어내기도 한다. 한 문단을 들어내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효과가 생긴다. 어차피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니 가능하다.

 


아이오와는 뭔가를 잊을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라던 동료 작가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 말은 어쩌면 들판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난 끝없이 들판을 걸어보고 싶다. 반대 방향으로 걸었을 때 우연히 진짜 삶을 발견하게 되어 지금까지의 삶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유를 발견한 것과 같이. 그것은 들판이 내게 준 것이었다. (5~6페이지)


 

낡은 호텔이었지만 작가에게 좋았던 건 너른 들판이 있었다는 거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타인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할 거로 보인다. 그런 까닭일까. 각자만의 길로 들판을 거닌다. 삶에 뛰어드는 길, 들판의 길이 있는데 작가는 다른 작가들이 가지 않는 나무 길을 걷는다. 이 길은 들판의 나무를 관찰할 수 있으며 마음의 준비라고 부른다.


 

들판을 산책하는 것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는 일이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사색에 잠긴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느라 부딪치는 것들이 있다. 산행길의 오르막에서 힘이 드니 하늘과 나무를 바라볼 생각은 하지 않고 땅바닥 혹은 앞사람의 신발만 보고 걷는다. 너른 들판은 다르다. 샛길로 가면 울퉁불퉁한 길이 있으며 그 길에서 혹시 사슴을 만날지도 모른다.


 

노엘은 매일 새벽 5시에 호텔을 떠나 들판으로 향한다. 사슴을 찾으러. 새벽 산책은 그녀에게 의식과도 같다. 길이 아닌 길을 따라 걷는 것, 그것은 진짜 실을 걷기 위한 준비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길이 아닌 길을 충분히 걸어야 사람이 걷도록 만든 길도 걸을 수 있게 된다고 나는 믿고 싶다. (71~72페이지)

 


새로운 경험은 우리 삶을 좀 더 풍부하게 가꿔준다. 타인을 외면하고 살았던 한국과는 다르게 아이오와에서는 세친구와 어울리고 오릿과 뜻깊은 교류를 한다. 영어로 시를 써 서로의 방문 안에 넣어주는 일이다. 모국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과 이국의 언어로 글을 쓰는 일은 다르다. 감정 표현 방법도 다르며 새로운 발상일 수 있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었다. 낯선 언어로 말하는 일이 힘들 것 같은데, 작가는 영어를 사용하며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말이 통하지 않은 경우가 있잖은가. 작가는 영어가 서툰 코토미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코토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언어가 달라도 몸짓과 눈짓으로 통하는 게 있는 법이다.

 


외국에 나갈 때면 영어를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이 부럽다. 간단한 인사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부족하다. 여행을 마치며 한국에 돌아가서는 꼭 언어를 배우겠다 다짐한다. 하지만 결국 여행 때마다 반복되는 서사다. 문보영 시인의 아이오와 일기를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어를 공부해야겠다. 시인이 하고 있다는 아침 전화 영어도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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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쌍둥이
홍숙영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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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태어나 생일이 일 년이 채 차이 나지 않는 아이들을 아일랜드 쌍둥이라고 부른다. 형 재이는 17일에 태어났고, 존은 같은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태어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재이가 죽자 존은 재이가 원했던 군인이 되었다. 작전 수행 중 피폭되어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재이의 삶을 대신 살고자 했던 게 문제였을까.

 


군대에서 남동생을 잃은 수희는 견딜 수 없어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상담과 미술치료를 공부하고 있었다. 존의 엄마 조안 집에서 지내다가 그를 만났다. 그를 미술치료로 이끌어 죽음으로부터,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방법을 배운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기저에 깔려 있다. 동생이 죽었던 바다에 가지 못하는 수희. 형 재이의 죽음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존의 고통이 전해온다. 과거의 고통은 트라우마가 되어 마음을 지배한다. 고통을 표출해야만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존과 에바, 수희는 미술치료 워크숍을 하며 비로소 자기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 삼촌, 재이와 함께였던 가족은 이제 뿔뿔이 흩어졌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층에 세를 놨던 젊은 여자와 바람난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계속 기다리는 어머니. 천재 같았던 형의 발병과 죽음은 고통의 시작이었다.




 


부모와 나의 관계, 사랑했던 연인.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그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의 신체를 본을 떠 표현하는 방법, 오브제와 사진, 종이 등을 이용해 보물 상자를 만들고, 인간을 구성하는 우리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 등 상처를 드러내고 타인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법이다.

 


에바의 사연이 인상적이었다. 에바는 흑인 엄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다지증을 갖고 태어났다. 덧붙여진 손가락은 바로 수술해서 사라졌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근원을 향한 질문을 건네는 인물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에 대한 상처와 고통의 근원을 표현하는 에바를 보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그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알에서 부화하고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를 받아먹던 아기 새는 이제 독립해서 스스로 날아야 한다. 새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날 준비를 해야 한다. 암울함에서 벗어나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야 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며 사막을 걷는 순례자처럼, 빨리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지막 꽃잎처럼, 높은 골짜기에서 메아리라도 들으려는 산지기처럼 나는 지독하게 외로웠다. (120페이지)


 

한 발 더 내딛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모두에게서,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고, 침묵했고, 슬픔의 힘으로 버텼다. 너무 많은 나를 가두었고, 북적거리는 내면이 내는 소리가 시끄러워 귀를 막은 채 미움과 원망을 타진할 때까지 시간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었다. 한 발 나아가려면 나를 응시해야 하는데, 아직도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164~165페이지)


 

슬픔을 그림으로 나타내며 내면의 고통을 치료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마주할 수 있어야 치유가 가능하다. 누군가 자기의 고통을 말할 때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더 이상 마음을 다치지 않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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