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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평점 :
책을 읽을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속에 와 닿는 그런 책들이 있다.
이번에 또 그런 책을 하나 만났다. 김중혁 작가의 책은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었을 뿐이고 젊은 작가상 대상을 받았던 「1F/B1」을 읽다 만 전적이 있다.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으면서 책 속에 있는 삽화나 책 속의 내용을 읽어보고 상상력이 굉장히 풍부한 작가구나 싶었었다. 이 책의 저자 사인본을 받았을때부터 그림과 함께 글씨체도 마음에 들고 무언가 느낌이 새롭구나 싶었는데 역시 책을 읽어보자 빵빵 터졌다. 특별한 생각을 품고 있는 작가인 듯 하다. 인터넷 서점의 웹 디자인을 했던 작가의 이력 때문에 책 속의 그림도 직접 그려 보는 사람의 재미를 더 했다.
어떻게 보면 소설가 한테 이런 말 한다는 게 누가 될수도 있겠지만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산문이었다. 마치 유머집처럼 킬킬대며 읽게 되었다. 버라이어티쇼를 즐겨 본다고 하셨던가, 책 날개에서 보는 작가의 사진을 보면 무던하게 생기셨는데 소리와 냄새에 아주아주 예민한 성격이고, 또 햇볕 알레르기까지 있는 까탈스러우신 분한테 이런 유머스러운 면이 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 중에서 제일 웃긴 건 역시 대학때 별명이 'F4'라고 하며 'F4'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놀 때 였다. 소설에서 이렇게 유쾌한 글을 만나고 싶어 했던건데 산문집에서 이런 유쾌한 글을 읽게 되어 내 기분까지 즐거워졌다. 스스로 발명가 김씨라며 이상한 발명품들을 카툰으로 그려낸 걸 보고 마음속에 무슨 생각주머니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온갖 기발한 생각들을 생각주머니에 품고 있는가 보다.
시간은 늘 우리를 쪽팔리게 한다. 우리는 자라지만, 기록은 남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기록은 정지하기 때문이다. 자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쪽팔림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쪽팔림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17페이지 중에서)
데뷔작 「펭귄뉴스」를 소설집으로 펴내며 부족한 면이 보였지만 글을 썼던 자신만의 시간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었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소설집에 포함시켰다는 작가의 생각을 적어놓은 글이다. 이처럼 우리는 과거에 써 놓은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때의 그 시간들, 그 감성으로 써놓은 글들이기 때문에 발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문학을 선택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름다움의 정체를 상상하고 싶었고, 그 상상의 줄기를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반 고흐의 작품을 보고 난 후 생각해보니 문학 역시 '종이라는 평면'에 펼쳐지는 예술이 아니었다. 반 고흐가 캔버스에 두껍게 붓질을 햇던 것처럼, 나는 내가 원하는 장면의 시간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다. 1년을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으며 한 시간 동안의 일을 책 한 권으로 쓸 수도 있다. 같은 단어를 계속 반복할 수도 있으며, 어떤 단어는 전혀 쓰지 않을 수도 있다. (60페이지 중에서)
발명가 김씨의 카툰처럼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너무도 진지한 생각을 품고 있는 작가인 것 같다. 혹시나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은 책이 너무 가볍다느니 하는 그런 평가를 내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소설보다 산문이 오히려 좋았다. 자신의 진심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내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속내를 보게 되어서 그의 마음속에 무궁무진한 소설의 소재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내가 읽어보지 못한 그의 다른 작품들이 너무도 궁금해져 한동안 그의 작품들을 뒤적거릴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몇일 동안이 책 속의 그의 그림처럼 너무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