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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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내 심장을 쏴라』로 각인된 작가.

어느 날 신문의 문화면을 보았을때 우연히 작가의 사진과 함께 짧은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7년의 밤』에서의 소설속 장면, 그 곳을 방문했을때 물을 내뿜고 있는 안개에 휩싸인 듯한 댐의 풍경이 소설속에서 나왔던, 자신이 그린 상상속의 음산한 풍경과 너무도 흡사해서 깜짝 놀랬었다는 짧은 글. 충격처럼 내게 다가온 기사였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곳. 부근의 몇몇 도시에서 그곳에 의지해 물을 먹고 있는 곳. 순천 주암댐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이었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었던 내게 마치 무언가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그렇게 이 작품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첫 장을 펴들었을때부터 나는 '세령호'에서 빠져 나오질 못했다.

 

꿈 속에서 매번 아버지를 목매다는 나, 아버지의 사형집행인. 살인자 최현수의 아들, 살인자의 아들이라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서원. 친척들의 집에서조차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버림받았고, 학교도 많이 다녀야 한 곳에서 3개월 정도.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바로 짐을 싸야 했다. 세령호에서의 룸메이트였던 아저씨와 함께.

 

어느 날 배달되어 온 미완성작인 한 편의 소설, '세령호'

7년전 세령호 사건이 소설로 씌여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오로지 가족만이 모든 전부였던 치과의사 오영제.

아내와 딸을 너무도 사랑하는 오영제는 자신이 그어놓은 잣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교정'을 서슴치 않았다. 마른 나무로 직접 깎아 만든 회초리를 걸어놓고 알몸으로 때리는 일. 오영제는 학대와 폭행을 '교정'이라고 불렀다. 딸 세령이 사라진 날도 그랬다. 조금의 교정이 필요했던 세령이었건만 아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몇일 뒤 119 잠수부에 의해 떠올린 딸아이의 시체. 딸아이를 죽인 남자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똑같은 방법으로, 아니 더한 방법으로.     

 

술을 마시고 무면허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사고로 여자아이를 친 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그 아이를 목졸라 죽이고 세령호에 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점점 미쳐가는 전직 야구선수 출신 최현수. 한 순간의 실수였지만, 그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점점 파멸해 가며 벼랑끝으로 몰리는 그.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씌우는 이에게서 아들을 지키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현수.

 

두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드러나는 진실 속에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탄식을 하고 있었달까.

집착과 광기로 뒤덮인 부정. 그것들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치밀한 구성과 이야기 속으로 쏙 빠져들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연민을 보태주지 않고 끝까지 냉정하게 밀어붙이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너무도 사실적인 내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마치 작가가 직접 겪은 일들처럼 그렇게 사실적이었다. 사람의 심연속 내면을 그렇게까지 깊이 파헤칠수 있다는 작가의 치밀한 조사와 표현 능력에도 감탄을 했다.  

 

박범신 작가가 정유정 작가를 가리켜 그리스 신화 속의 여전사 '아마존' 이라 했다.

한동안 소설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던, 마치 소설속 붉은 수수밭 한가운데에 있는 우물속에 빠진 것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했던 놀라운 작가의 '아마존' 같은 놀라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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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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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부터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내가 이 책을 읽을때까지 자세한 것은 알고 싶지 않았고 영화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책을 먼저 본 후에 영화도 보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었을까. 고작 열세 살의 나이로 이런 살의를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누구에게나 가정에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씩은 문제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고, 사춘기의 아이일 경우에는 죽음에 대한 것도 생각해보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일거라 생각된다.  요즘 아이들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 아님 내가 다른 아이들도 아닌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마나미를 잃은 여교사 유코라면 어땠을까. 마음이 그다지 좋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고백 형식으로 된 이 소설은 각자의 고백에 맞게 사건을 재구성하게 된다. 각자의 시점에 따라 고백을 하는데 그 사람의 입장을 더 알게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마음을 다친 더군다난 사랑하는 딸을 누군가가 죽였을때 하는 복수. 모두들 복수를 꿈꾸지만 그것을 어떤 식으로 하게 되는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딸을 잃은 중학교 여교사의 고백.

다른 아이들도 아닌 자기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 아이들 중에 딸을 죽인 범인이 있다고 고백하며 그 살인을 한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을 죽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교사로서 그 아이들에게 바른 길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하에 하게 된 복수가 그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아주 상세하게 보여 준다. 또한 사건을 놓고 볼때 사람에 따라 그 사건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다르게 표현하고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품는지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과히 충격적이다. 학기가 끝난 후, 담임 선생의 고백에 한 아이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학교에 등교도 하지 않는 아이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학교에 나오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 사실을 알고 있는 같은 반 아이들의 그 아이에게 가해지는 집단 폭행.

 

각 장 마다 사건에 관계된 인물들의 고백 형식으로 된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딸을 잃은 엄마가 되었다가, 사건을 일으킨 두 아이들이 되었다가, 살인을 한  아들을 둔 부모가 되었다가, 그 모두를 바라보는 제 3자의 입장도 되어가며 이 사건을 바라보게 되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로 탄탄한 구성과 인물들의 심리를 아주 상세하게 잘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야행관람차』보다 훨씬 심리묘사가 뛰어났던 이 소설을 읽으며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모든 것은 가정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아이의 모든 성격이나 뇌가 형성되는 시기가 만 두 살 까지라는 것을 봐도 가정이 먼저라는 걸 알 수 있다. 아이의 성격 형성에 많은 역할을 하는 엄마의 역할도 얼마나 중요한지. 엄마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우리들에게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딸의 목숨을 끊은 아이에게 어떠한 식으로 복수를 하는 반전까지도 우리를 안심시켜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할 교사로서 직업적 윤리관을 애써 무시하고 한 아이를 잃은 엄마의 입장에서 다른 일을 계획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비뚤어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내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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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연애
김은정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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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다큐를 잘 보지 못한다.

아주 오래전 메디컬 다큐를 보면서 아픈 아이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며 얼마나 울었던지 몇시간 동안 두통이 생기기도 하고 슬퍼서였다. 그 부모에게는 모든 것일 아이들이 아파하는 모습과 부모의 애타는 마음이 느껴져 다시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메디컬 다큐를 찍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고 문득 예전의 메디컬 다큐가 생각이 났다. 새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우리는 감동을 받고 생명의 탄생에 대한 숭고함까지 든다.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이되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것과 산부인과 의사로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생각들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텔레비젼에서 아름다운 외모로 뉴스나 다른 프로그램 들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결코 멋들어진 직업만은 아니라는 사실과 의무적으로 아이를 받고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따뜻함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던 산부인과 의사들이 실제로 마음 속으로는 생명에 대한 생각이 아주 강하다는 걸, 따뜻함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산부인과 의사들과 알지 못하는 상태라 내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속 주인공이 더 그렇게 그려질수도 있었겠지.

 

저 하늘의 별들 같아, 아기들이. 세상에 나오는 아기들을 받을 때마다, 내가 만든 별이 하늘에 쏘여 올라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226페이지 중에서)

 

로맨틱한 소설의 리뷰를 쓰며 의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게 좀 우습긴 하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인 윤표의 이 말은 참 사람을 경건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나운서 2년차인 유채. 고정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없어 의기소침해 있는데 연인이었던 희재마저 촬영을 위해 갔던 출장에서 다른 피디와 바람나 버리자 홧김에 방송국 홈페이지의 '시사 고발' 코너에 바람난 희재에 대한 고발의 글을 쓰고 지우려 했건만 고장난 컴퓨터 때문에 그 글이 등록되어 버리고 시말서까지 쓰게 된다. 할일없이 있다 콜이 들어와 생방송으로 진행하던중 어떤 인간으로부터 임산부의 몸에 좋지 않은 음식과 술을 먹자 임산부가 미쳤다며 방송사고를 내게 된다. 방송사고후 '국민 산모'로 불리우게 되고 역시 '국민 의사'로 불리게 되는 두 사람. 때마침 방송국에서 메디컬 다큐를 찍자고 해 윤표가 다니는 병원에서 촬영을 하게 된다. 같이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며 촬영을 하다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참 재미있다.  

 

김은정 작가의 글은 이웃 블로거로부터 재미있다는 말을 들어 전부터 읽어보려 했으나 인연이 닿지 못하다가 이번에 신간으로 만나게 되었다. 방송국 아나운서라는 직업과 산부인과 의사에 대한  것들을 너무 과하지도 않게, 우리를 뭉클하게 만들기도 하고 킬킬거리며 읽을 수 있게 재미를 주기도 하더라. 이렇게 작가의 글을 만나고 보니 역시나 그의 전작들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글이 참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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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1 - 관 속에서 만난 연인
앤 포티어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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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줄리엣, 그리고 줄리엣 하면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킬것이다. 다른 줄리엣은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리들의 머릿속을 각인시켰다. 캐플릿가와 몽테규가의 집안 싸움. 열여덟, 열여섯의 순수한 사랑, 결혼, 그리고 죽음등 아주 극적인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소설이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점이 놀라웠다. 

 

과거 600년전 중세의 시대에 살았던 실존 인물인 줄리에타와 로미오의 사랑, 원수집안에 대한 살육,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를 다룬 사건을 연계해 현재의 줄리엣에게 과거 줄리에타 톨로메이가 조상이었다는 것을 내세워 과거의 줄리에타와 로미오를 찾아 그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은 상상력의 산물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스릴러 속으로 들어간 고전이라고 할까. 고전과 스릴러 소설의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킬수 있는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보다 한 세기도 더 전에 마수키오에 의해 씌여진 작품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우리를 1340년대 중세 후반의 이탈리아 베로나가 아닌 시에나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한다. 원수지간인 톨로메이와 살림베니 가의 역사를 재현해 낸 작품이다.

 

쌍둥이 여동생 제니스와 줄리를 키워주셨던 로즈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로즈 할머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줄리는 자신의 본래 이름이 줄리에타 톨로메이였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외울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줄리엣의 후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탈리아 시에나로 향해 엄마의 유품을 받게 된 줄리는 시에나 곳곳에 서려있는 톨로메이 가와 살림베니 가의 인물들을 만나게 되며 줄리에타와의 연관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시에나에서 줄리에타 톨로메이 라고 말할 때의 놀라움의 표정을 짓는 사람들과 시에나에서 만난 사람들. 엄마의 유품을 도둑맞을 뻔한 사건과 누군가에게 쫓기는 줄리에타의 모습들은 영화를 보는 듯 스릴있고 흥미로웠다. 소설은 1340년대의 시에나의 살림베니 가로부터 부모와 가족을 잃은 줄리에타와 로미오의 비극적인 사랑이 한 편으로 전개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현재의 줄리에타의 엄마가 어딘가에 숨겨두었을 줄리에타의 보물을 찾아가며 점점 숨겨져 있던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책을 읽으면서 시에나의 풍경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불태우는 중세의 젊은 연인들과 서로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현재의 젊은 연인들, 아름다운 시에나의 골목골목으로 이어지는 멋진 풍경들. 축제의 한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를 바랬던 한 남자와 자신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안타까워했던 연인들의 모습들 또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그려졌다.

 

좀더 줄리엣에게 다가간 느낌이다.

스릴러 보다는 고전에 더 가깝고, 영화적인 내용이 강해 영화로도 기대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셰익스피어 인 러브' 가 연상되기도 했고, 오래전 올리비아 핫세가 주연했던 영화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했던 영화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 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줄리엣의 진정한 자아찾기 정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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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
최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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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작가를 만난다는 것.

요즘의 내게 신나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것들이 뿌듯하기도 하다. 작품속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기도 하는 시간. 그리고 내 마음속에 그 말들이 고스란히 들어오기도 하는 시간. 그 시간들이 즐겁다.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윤. 치밀하고 정교한 사유와 문체 미학으로 한국문학에 하나의 획을 그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 최윤. 작가의 작품을 읽는 다는 것에 두근거리는 설렘이 일었다. 작가가 8년 만에 신작을 냈다. 제목의 뜻을 제대로 알수 없는 『오릭맨스티』라는 책을. 

 

책에서는 이름이 없는 인물들이 나온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어떤 것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을때 그 것은 우리 마음속으로 깊게 들어오게 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았나.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 그 시처럼 우리는 이름을 붙여 주기를 좋아한다. 내 것에 속하길 원하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그런데 작가는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 그냥 '남자'와 '여자'가 나올 뿐이다. 가진것도 별로 없고  특별히 학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저그런 직장에 다니는 적당히 속물적인 인물들이다.

 

'남자'는 중견기업의 영업직사원으로 자신이 좇는 쾌락을 숨길줄도 아는 남자로 키가 크고 옷 잘 입는다. 여자가 특별하게 마음에 든건 아니지만 사회적인 것과 50대 후반의 젊은 홀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결혼을 하게된다. '여자' 또한 특별히 예쁘지도 않고 내세울만한 직장이 아닌 평범한 경리직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여자다. 아빠와 엄마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치다시피해서 결혼을 한 전력을 알고 있어서일까. '여자'는 부모 몰래 결혼을 진행시키고 돌이킬수 없는 상태에서야 부모에게 말한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먹구름. 아슬아슬한 절벽에서의 여름 휴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야기인 책을 읽어갈수록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줄을 타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함과 조마조마함.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그들을 보며 불안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런 우리의 불안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나 보다.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말해주던 작가는 이제 1인칭 시점으로 '나' 박유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말해주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그래, 이들에게도 이름이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나, 박유진. 혹은 외젠 뒤발.

그 옛날의 충격때문일까.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뾰족한 것이 심장을 찌르고 누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기이한 수면상태에 빠지는 증상을 겪는 유진. 자신이 속했고,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알고싶어하는 유진이 정신이 돌아올 때쯤 내뱉는 말 '오릭맨스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유진도 엄마도 알 수 없지만 그 말은 간절한 염원을 담은 말이다. 오릭맨스티, 오릭맨스티, 오릭맨스티.

나도 한 번 되뇌어 본다. 무언가의 간절함을 담아.

 

작가 최윤의 글은 무언가 심상하면서도 마음의 울림을 주는 글들이다.

짧은 내용을 담았지만 그 여백만큼이나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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