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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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많은 꿈을 꾸었었다.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것도,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날 꿈들을 꾸었었다. 내가 꿈꾸었던 대로의 모습을 지금 하고 있는가. 전혀 아니다. 일상에 젖어 아직도 가슴속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잊었던 옛날의 꿈을 꾸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꿈속에서 나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내 곁에 누군가가 있었지만 나는 그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딘가에 내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지나가는 기차를 향하는 시선을 늘 가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가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 곳이 꿈속인양 그렇게 만족하지 못했던 모습 말이다. 꿈 속에서 나는 이 글을 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기차는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기차를 많이 타지 않던 시절에 늘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싶어 했다. 성년이 되어 내가 여행을 갈 때에도 버스를 이용하기 보다는 늘 기차를 이용했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바퀴의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좋았고 창에 기대어 지나치는 풍경들을 바라보기를 즐겼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배는 북서쪽으로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붉은 부표 저편에
두 시절의 만남
양귀비
그가 돌아왔다
럼주차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중 략)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 「곰스크로 가는 기차」 중에서)

대학가에서 개인이 번역한 이 책이 떠돌게 되어 소리소문없이 퍼지게 되어 오르트만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TV에서 단막극으로 만들었던  '곰스크' 마니아층을 이루고 있었던 단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 오르트만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 수 없고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애썼던 옮긴이의 노고를 알 수 있었고, 옮긴이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이 나오게 된거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도 하나의 운명이 아닐련지.
친한 이의 리뷰를 읽고 '곰스크'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이 책을 꼭 읽어야 하겠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내 손으로 책이 들어온 일, 또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거라는 감정까지. 이 책이 나에게로 온 것도 나의 선택에 의해서 운명처럼 내게 다가 온 책이다. 이러한 감동이 있는 책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나는 나의 '곰스크'를 그려본다. 나의 곰스크는 아마도 '프랑스 파리' 쪽일거라 생각이 든다. 늘 가고 싶었고 지금도 늘 마음속에 있는 도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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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창문으로 영국을 보다 - 맨밥 같은 일상, 양념 같은 여행 처음 여는 미술관 2
김혜란 글.그림 / 인문산책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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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여행서적을 꽤 좋아하고 읽고 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영국으로가 기러기 엄마로 생활하면서 그곳의 일상들을 담은 내용이라고 해서 저자의 소소한 일상과 함께 영국의 풍경들을 볼 수 있겠다 싶어 읽게 되었다. 저자가 영국에 살면서 느끼는 이웃사람들과의 관계, 영국 사람들의 습성, 그리고 늘 흐린 영국의 날씨를 보면서 외로워하고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담겨있었다.


저자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상을 조근조근하게 말해주는 것은 크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아,,,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그런 느낌. 남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저자가 소개한 영국의 풍경들은 상당히 고풍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재수 없다며 이빠진 접시나 찻잔 등을 사용하지 않는데 반해 영국인들은 조상들의 숨결이 묻어 있어서 이 빠진 찻잔을 많이 쓴다는 것에 대해 전에도 들었었지만 검소한 그들의 삶들을 알수 있었다. 요즘에 내가 집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영국의 오래된 건물들을 보며 이렇게 집을 지어놓고 살아도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오래된 건물 위로 늘어진 초록빛 나무들과 현관 양쪽에 울긋불긋 자잘한 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은 참 정겹게 다가왔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구나. 삭막한 회색 콘크리트의 박스 속에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예쁜 집에서 살고 싶은 나는 그 건물들이 못내 부러웠다.


나는 여러 챕터 중에서 저자가 여행한  '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편이 가장 좋았다.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이로서 작가의 고향을 찾아 그들이 글을 쓰고 살았던 곳을 보는 기쁨은 직접 가보지 못해도 대리만족을 느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폭풍같은 사랑을 그렸던 브론테 자매나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의 생가나 기념관을 보는 기쁨이 컸다. 그리고 중학교때이던가 보았던 영화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의 고향이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생가까지 내겐 기쁨이었다.


저자가 몇 년째 그림일기를 쓴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저자의 몇 컷씩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마음에 와닿지 않고 굳이 글이 있는 걸 만화식의 그림을 넣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약간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어 영국의 풍경들과 저자의 생각들을 담은 글이 있었다면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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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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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게 대체 뭘까.
대개 가족이라 함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서로 화목하고 서로 위해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이되 가족보다도 못한 관계들이 많고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도, 재산을 위해 싸우는 파렴치한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요즘엔 새로운 가족제도가 많이 생기기도 한다. 혈연으로만 묶여 있지 않은 그런 가족관계 말이다. 오히려 혈연으로 묶여있지 않는 사람들이 더 가족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에 대해 배려하는 사람들 말이다. 한 집에서 같이 살지만 너무도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 제각각인 사람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의 같은 식탁에 앉아 음식을 마주해도 마음속엔 저마다 다른 생각들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가족 구성원 중에서 누군가가 사라졌을때 자신들의 뒷모습을 들여다보는지 잃어버리는 아이를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제각각이던 가족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 들이는 모습에서 상대방을 향한 배려를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화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남에게 베풀줄은 모르고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외면 받을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아버지 김상호가 하는 일을 보며 너무도 거부감이 들었다.
전에 영화 '아저씨'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사회의 부조리가 보이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면서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 과정들이 너무도 싫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도 않고 거부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고 싶은 것인지도.


정이현 작가의 소설은 처음으로 접했다.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이런 작가가 있구나 하고 별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런 작가의 작품이 나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는데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아주 날카롭게 파헤친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다섯 명의 가족 구성원이 있다. 하지만 저마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을 뿐더러 제각각 생활하고 있는 가족이다. 이 가족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의 마음이 다칠까 염려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며 그래도 아직은 '가족'이라는 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거구나 하고 믿고 싶다. 가족 문제를 다루는 소설을 보면 왠지 불편한 감이 있다. 아주 날카롭고도 덤덤하게 써내려간 걸 보며 그래도 마지막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만하면 됐어. 하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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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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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김훈 작가의 책을 나는 두 권 밖에 읽지 못했다.
『공무도하』와 『내 젊은 날의 숲』.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칼의 노래』조차도 읽어보지 못했다. 작가의 직업탓인지 날카로움과 감정이 배제된 듯한 차가운 글에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 작품 또한 내게는 감정을 배제한 글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거부할 수 없는 건 무엇 때문인지 나 자신조차도 잘 모르겠다. 

 『자산어보』를 지었던 정약전이 머물렀던 흑산도. 그 흑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정조가 죽고 순조가 왕이 된후 수렴청정을 했던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성리학적 질서와 전통을 고수하려 천주교 박해를 가하였다. 그로 인해 독실한 천주교도였던 정약종은 죽임을 당하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되었고, 정약전의 형 정약현의 사위 황사영은 정씨 형제들로부터 천주교를 알게 되고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을때 제천의 배론 산중으로 피신하여 조선 천주교 박해의 실상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글인 백서를  토굴속에서 작성한 인물로 능지처참을 당한 인물이다. 그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천주교를 믿었던 서캐처럼 천한 신분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너무도 담담하게.

많은 인물들이 나온 만큼 더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았는데 좀 짧은감도 있었다.
정약전과 황사영의 주변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라 줄거리를 따라감에 있어 감정이 분산되는 느낌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파악하느라 그랬을수도 있겠다. 등장 인물에 대해서 어떠한 사적인 감정을 갖지 못하겠금 차단막을 친 느낌이랄까. 정약전과 황사영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면 더 깊이 빠져 읽고 그들의 삶에, 그들이 느꼈던 감정들에 깊이 동화되었을수도 있겠다. 

종교란 이런 것인가. 
종교에 깊이 빠져보지 않는 나로서는 이 작품 속에서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구원과 그들이 찾고자 했던 새 세상에 대한 마음들을 이토록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러고보면 내 마음은 얼마나 차갑게 식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종교 박해가 있을때 매를 때리고 고문할 때 끝까지 버티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살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같은 뜻을 품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말해 그들을 배반하는 일. 그 배반하는 사람으로 인해 핍박을 당하면서도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저 먼 곳을 본 사람들로 인해  이렇게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나는 여기에서 산다. (작가의 후기 중에서)  

이 책을 읽고 나는 정약전의 형제인 정약용, 정약종의 이야기가 담겨진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이 궁금해진다. 그들의 삶을, 천주교 박해가 있었던 시절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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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를 버리러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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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작가를 좋아한다.

솔직히 그의 책이 재미있는 거냐고 묻는 다면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책은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류의 책이 아니다. 따뜻한 글을 좋아하는 내게 김숨 작가의 글은 굉장히 차갑고 너무도 이지적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도 무심하면서도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연속에 가라앉게 한다. 우리에게 글 속에서 표현하는 또는 그 속뜻을 생각하게 하고 더 깊은 무엇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려움을 느끼게 하고 또 실제로 어려운 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김숨 작가가 좋다. 무언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써도 나는 김숨 작가의 글에 속절없이 빠져들게 된다. 

이번 책 또한 그러했다.

처음에 책을 펴고 첫 장을 읽었을 때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다루려 하는 것인가 고민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첫 장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번. 나는 어떻게 전개되는 스토리를 기대했던가 보다. 하지만 김숨 작가가 내보인것은 스토리가 아닌 끝없이 반복되는 단 음절의 시처럼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노란 개를 버리러 가는 소년과 그 소년의 마음들을 자꾸 속삭이고 있었다. 노란 개를 버리러 간다고. 아빠의 택시 트렁크에 있는 노란 개를 버리러 가고 있다고. 택시에는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은 엄마, 밤을 새워 김밥을 싸고 매일 김밥을 싸며 배가 고프면 단무지를 씹어 먹던 엄마의 노란 입. 엄마가 입을 벌리면 엄마의 노란 혀가 마치 노란 개의 눈동자처럼 그렇게 번뜩였던 엄마와 택시를 타고 노란 개를 버리러 간다. 버리자던 노란 개는 보이지 않고 택시에는 밤의 손님이 마치 그림자처럼 앉아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탔는데도 택시는 빈 차라는 빨간 등을 켜고 달린다. 살고 있는 도시에서부터 멀리멀리로 노란 개를 버리러 그렇게 떠난다.

김숨 작가의 작품『노란 개를 버리러』는 독자에게 친절하지가 않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처럼 우리를 혼몽에 빠져들게 한다. 쉽게 설명해주지도 않고 끝없이 반복되는 단어들. 그리고 그 속에서 뜻하는 말 한 마디, 한 문장들이 우리의 가슴을 치는 것 같다. 우리는 노란 개를 버리러 떠나는 아빠와 말이 없는 엄마, 끝없이 의문에 차 있는 소년, 그리고 밤의 손님 옆 빈자리에 타고 그들과 함께 노란 개를 버리러 떠나는 여정을 함께 했다. 저기가 좋겠느냐고 물으면 저기는 아니라고, 더 멀리 가자고 소년의 말을 같이 읖조리며 자꾸만 자꾸만 더 멀리로 가고 있었다. 도대체 트렁크 속의 노란 개는 정말 존재하는지, 노란 개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게 진짜로 노란 개가 짖는 건지 의아해 하며 소년이 택시를 타며 만난 사람들. 열두 사람이었다가 혹은 열한 사람이었다가 어쩌면 아홉 사람이기도 했던 그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달렸다. 

처음과 끝을 알수 없는 모호함.

노란 개를 버리러 가야 된다며 소년을 깨우는 아빠는 이 책의 처음이었다가 부분부분 노란 개를 버리러 가야 된다며 우리를 일깨우기도 하고, 혹은 마지막이기도 했다. 함께 있되 부재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곁에 없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혼몽속에 빠져들게 한다. 악몽을 꾸는 것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를 저 깊은 심연의 바닷속으로 유인한다. 달콤한 목소리와 노래로 뱃사공들의 영혼을 빼앗았던 세이렌처럼.

내게 김숨 작가는 세이렌의 목소리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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