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의 배당금을 받아가면서도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는 이 땅에서 그나마 연대하고자 전국에서 달려간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 

 

 

고용조정 당하는 노동자들을 볼 때 구제역으로 살처분 당하는 가축들이 연상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고용조정이란 미명속에 해고는 노동자의 살처분에 다름 아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생명을 경시하는 이러한 행위를 용인하는 순간 언젠가 우리도 살처분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아니 살처분되지 않기 위해 일상을 죽기살기로 살아가며 살처분된 동료를 이웃을 바라보며  
안도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다음 세대에게 이런 사회를 물려줄 수 있는가?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와 희망... 놓을 수 없는 우리의 생명의
동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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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교수가 대담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장소는 진보신당 부천시당협의회 사무실이었고 날짜는 6월 25일 이었다. 당대회 전날이고 통합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더구나 김상봉 교수는 진보신당 내에서 이른바 독자파로 분류되는 분이라 대담은 미묘하고 뜨거웠다.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이 아닌 나는 그 흐름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진보신당이 출범하면서 당헌, 당규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던 김상봉 교수로서는 이번 통합사태에 대해 많은 감정을 느끼는 듯 하다. 일단 대의를 떠나 공식적으로 당이 해산하지 않고 남아 있는 당원들이 있다면 자신은 그 당을 지켜야 하는 숙명이 있음을 토로했다. 그것은 당 이념을 정초한 사람의 원죄와 같은 것이리라. 그럼에도 사실상 당 강령에 의하면 통일에 대한 규정등을 봐도 사실상 통합에 반대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점도 설명했다. 통합에 대한 논의의 복잡함과 모순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문제는 과연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무엇을 위해 통합하는 것인가이다. 어떤 가치로...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진보의 비젼과 가능성을 가지는가에 대한 의문은 이러한 통합논란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한 비젼에 대한 확답을 내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위적인 진보의 통합은 새로운 패권주의에 대한 의심과 기존 관계들에 대한 냉소로 빛이 바래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통합에 대한 어떠한 실질적 논의도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남의 의견을 배척하는 제로섬게임만이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진보의 길은 무엇일까? 새로운 진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김상봉교수는 먼저 맑스 주의 부터 버리라고 한다. 사실상 진보의 실천을 보면 이미 사회주의 강령은 폐기되고 (물론 견결하고 고수하는 분파도 있다) 기껏 사회민주적인 사회개혁 활동으로 전화되고 있음을 이제는 고백하자는 것이다. 두번째로 자신을 보다 올바르게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번 사태에서 보여주는 진보신당의 모습은 민주노동당을 극복하겠다고 나온 그때의 모습이 아니고 오히려 극복하려했던 부정적인 모습의 확대 재생산에 다름 아니라고 보는 듯 하다. 여기에 무슨 새로운 진보가 가능할 것인가에 묻는다.  

새로운 진보에 대한 고민에서 우선적 과제는 재벌해체라고 한다. 재벌의 경영권 소유권을 민주화하지 않고는 사회를 민주화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상은 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기업내에서 독재적 지배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고서 전체 사회의 민주주의는 더이상 진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념적으로 아무리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실천하더라도 기업에서 먹고살기위해 독재를 수긍하는 이중적 정신을 지닌다면 결국 민주주의는 진전될 수 없는 것이고 자본주의의 가장 첨예한 모순은 역시 노-자간의 모순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법은 기업의 민주화다. 경영권은 누가 가지는가? 주주들? 경영자들? 노동자들? 이해관계인들? 일반적으로 경영권은 기업의 경영자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근거는 희박하거나 아예없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가져야 한다면 삼성의 경우 연기금이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건희 일가의 주식이 3%정도라 할때 연기금의 삼성주식은 7%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주주에 의해 경영을 위탁받은 사람이지 경영권을 쥐고 흔들 주체가 되지 못한다. 노동자는 당연 배척해 버린다. 노동자는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임에도 기계나 원료의 부속품 취급을 당한다. 그러니 구조조정에 의한 살인적 해고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자본가가 못쓰는 원자재를 폐기한다고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이해관계인 조차 그 기업에 감놔라 배놔라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 소유에 기초한 경영권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실체도 없는 경영권으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이 시스템을 누가 용인하고 유지하고 있는가? 

김상봉 교수의 논지는 간단하다. 기업의 경영권은 기업구성원 전체가 투표를 통한 대표를 선출하고 그 대표에 의해 발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건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아니라 경영권을 창출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재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새로운 진보의 시작이라고 한다. 왜 경영권이 이렇게 창출되면 안되는지에 대한 주장도 필요없다. 지금까지 경영권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되물어야 한다. 도데체 너희들이 행사하는 경영권의 근거는 무엇이냐고?  너희들이 살인적 해고를 마음대로 하는 권리는 어디로 부터 나오는 것이냐고...? 그 대답은 자본가가 해야한다.  

김교수의 주장과 비스한 논지의 기고문이 레디앙에 올라왔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것 역시 정치의 문제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실천해야 이 사회를 극복하고 좀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모호하지만 가야할 길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레디앙 기사 : 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

한진중공업, 노동자 그리고 사회주의
 
[투고] "누가 기업의 주인인가, 진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한진중공업이 조씨 일가의 것인가, 주주들의 것인가, 노동자들의 것인가? 이 질문의 대답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리해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가' 여부가 달려 있다. 또한 '이 세상이 만들어져 나갈 방향은 어느 쪽인가'에 대한 문제도 걸려 있다.

한진 중공업은 조씨 일가의 것인가?

이에 대해 가장 쉽게 나옴직한 답변은 돈을 투자한 사람, 즉 주주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주주들이란 사실 매우 무책임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번 돈에 대해서는 절대적 권리를 요구하지만, 잃은 돈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인 책임만을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하준은 책임지고 경영을 해나가는 오너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오너들이 과연 그럴 권리가 있는 존재들인가?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럴 권리를 가질 만큼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 기이한 지배구조를 통해 주주들이 투자한 돈을 전용하고 때로는 횡령하는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또한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이 실패했을 때 그들은 정확히 보유한 주식량만큼의 책임만을 진다. 그리고 사실은 횡령을 통해 비자금을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덜 책임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는 자본의 소유자가 아니라, 자본의 일부이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의 한 종류일 뿐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노동자들의 기업에 대한 권리란 전혀 없다.

하지만,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기업을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더구나 기업이 실패했을 때 노동자는 그의 생존의 모든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일터를 잃어버림으로써, 사실상 이에 대해 가장 강력한 책임을 진다.

"소유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소유란 절대적인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 원래부터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소유는 상대적인 개념이고 역사적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받아 왔다. 이는 기업이 누구의 소유라는 것에 대해 자연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새롭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이 법적으로는 주주의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오너 일가의 소유인 것이 현재의 실정이지만, 노동자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나려고 하는가에 대한 입장과 의지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재벌 지배에 대한 가장 세련되고 정치한 비판이라는 <시사인> 이종태 기자 식의 논리가 신자유주의적이라면, 주주의 도덕적 무책임에 대한 대안으로 오너에 대한 존중이라는 태도를 제시한 장하준의 생각은 초기 자본주의 시기의 부르주아적 자율성에 대한 환상을 담고 있다. 실제적으로 기업을 만들고 이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가 노동자라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해야 한다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다.

분명해 알아야 할 것은 앞의 두 입장으로는 기업의 정리해고를 결코 제대로 비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너나 주주가 기업을 소유한다면, 그가 단지 생산수단으로 구매하고 소모하는 노동력에 대한 자유로운 처분을 행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직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태도만이 해고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수 있게 한다. 당장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기업을 접수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관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관점은 결코 포기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에 입각한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은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주장하고,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실천을 가리켜 우리는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실천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관점이 중요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통합진보정당이 사회주의를 강령에서 삭제하는 것에 대한 당내의 비판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범야권과의 차이 때문에 통합을 거부하는 진보진영의 입장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들이 있기 때문에 한진중공업과의 근본적인 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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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8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자 설 전날 들려온 가장 반가운 소식은 지엠대우 비정규직 투쟁이 타결되어 농성중이던 노동자가 농성을 풀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농성을 지원하기 위해 단식을 진행하던 지회장도 단식을 풀었을 테다... 처음 촛불집회에 지엠비정규직 복직을 위해 선전전에 나왔던 지회장의 얼굴은 오랜 단식으로 확고한 브이 라인이 생성되었고 가끔 자기전에 먹고 싶은 음식들을 생각한다고 말하던 그 아련한 표정이 안쓰럽기만 했는데...  

겨울에 농성을 한다는 것은... 정말 목숨을 내놓은 일이다. 더구나 이번 겨울처럼 이상 한파와 눈보라가 수시로 덮쳐오는 겨울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측과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으면서도 언제나 완고한 사측의 입장을 알고 있었던지라 이번 협상의 타결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15명 중 1명이 하청에 재하청을 받은 직원인지라 회사가 강경하게 거부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하청이건 하청에 재하청이건 지엠의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라는 점이 틀리지 않을 진데 회사는 결국 고용에 대한 최소한의 부담만 지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다.  

추운날 농성장 앞에서는 드럼통에 나무를 때우면 농성을 지원나온 노조, 시민,사회단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비닐과 침낭으로 밤을 함께 지새운 많은 자원자들이 있었다. 내부 사정도 많이 복잡했지만 그래도 설전에 협상이 타결되어 다행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의미가 각별할텐데...  

더이상 물러날 수없는 사람들의 싸움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다시 의식을 바꾸고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차별받는 사람이 있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용인하는 사회의식 또한 병들어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도 중요하지만 소외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정치를 변화시키는데 의미가 있다. 어쩌면 정치를 다시 이해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다시 수정하는데 현실에서의 싸움이 그 기반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신봉하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회의하고 삶은 경계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와 정의가 아닐까.... 

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18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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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에서 옮겨온다. : 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

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보따리를 싸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지난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짤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된 시간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 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스물한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면의 밤들.
이렇게 조합원들 짤려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자 죽은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 씨는… 재규 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김진숙 올림

* 이 편지글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6일 새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미터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오르며 황이라 부산본부 상담부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김 지도위원은 이날 오전 5시 40분께 황 부장에게 “책상 위에 편지글이 있다”는 문자를 보냈으며, 앞서 그는 오전 3시경 홀로 크레인에 올랐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 1981년 10월 1일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의 옛 이름)에 입사해 선대조립과에서 용접 일을 했으며, 지난 86년 7월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명예실추, 상사명령 불복종’ 등의 이유로 해고됐으며, 지난 2009년 11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해고 부당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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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헤부터 잔인한 노동의 현장을 알리는 기사들이 넘치고 있다.
처음에는 회사가 쓰러져서 한다는 구조조정이 이제는 상시적으로 회사 이윤을 위해 행하는 일상적
업무가 되는 분위기다.
승자독식이라지만, 임원들의 급여는 천정부지로 올려 놓으면서, 바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추운겨울 맨 몸으로 거리로 몰리고 있다. 이윤을 위해 인간을 버리는 이러한 과정을 합리적인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야만의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링크해 둔다. :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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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제가 김진숙 씨가 쓴 <소금꽃나무>를 읽으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애환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어서 마음 아팠습니다. 이 글을 다시 보게 되니
씁쓸하기도 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같은하늘 2011-01-1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부당해고된 하청노동자 2명, 9m정문위 고공시위
4년째 복직요구…“21명 직접고용때까지 버틸것”  

한겨레 기사 링크 : www.hani.co.kr/arti/society/labor/451679.html  

 

» 금속노조 지엠(GM)대우 비정규직지회 소속 황호인(농성자 중 왼쪽), 이준삼 조합원이 1일 오후 인천 부평구 갈산동 지엠대우 부평공장 정문 위 구조물에 올라 “GM대우는 비정규 해고노동자를 복직시켜라!”, “GM대우는 불법파견 중단하고 정규직화 실시하라!”라고 쓰인 펼침막을 건 채 농성하고 있다. 두 조합원이 올라간 정문 꼭대기 구조물은 지상 8~9m 높이다. 인천/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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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현대자동차 비졍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면, 인천에서는 지엠대우차비정
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2010년 12월 첫째날.... 2007년 부터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해고와 농성, 복직과 다시 해고를 반복하면서 2010년까지 끌고온 험난한 싸움의 한
복판에서 내가 이들을 만난건 인천인권영화제 세째날 '삶의 자리'라는 다큐멘터리 상영때 였다.  

직장을 잃고 정문 앞에서 복직투쟁을 하던 그들은 천막 농성을 벌였다. 1000일이 넘는 천막농성
도중에 많은 동료들이 떠나고 몇 남지 않는 이들이 힘겹게 싸움을 이어나가는 그 현실을 김수목
감독은 카메라 테이프 300여개에 그대로 담았다고 한다.  

영화 상영 후 지엠대우차 비정규직지회장과 노동조합원 그리고 김수목 감독을 모시고 잠시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삶의 자리'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찍은 감독에게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였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하고 울먹인다. 그간 지엠대우차 노동자 
들과 함께 부대낀 시간의 질감 때문인지 흐르는 눈물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관객 앞에서  
참으려 해도 터지는 눈물에 사람들은 말을 잊어야 했다.   

1000일이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얼마나 기막힌일이 많았을까? 그저 남들과 똑같이 일하니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이 평범한 정의 하나를 실현시키기 위해 그들이 흘려야했던 피눈물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삶의 자리' 게스트로 오신 비정규직 노동자분은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주변 동료들과 알게
모르게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앞으로도 더 힘차게 싸우겠다고...
선량하고 착해 보였던 그리고 마이크 잡는 것을 수줍어 하던 그 노동자....
감독이 목이 메여 울먹일 때, 곁에서 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져 안절부절하던 그 비정규직 노동자... 유난히 체구가 작아서 이 힘든 싸움을 어떻게 견뎌낼까하던 그 노동자가 고공농성에 돌입한
이준삼씨다.  

다시 '삶의 자리'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목숨까지 위험한 고공농성으로 들어간 노동자들이
그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농성을 풀었을 때는 정규직이 누리는 그 평범한
권리를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 누가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가? 그것은 이윤밖에 모르는
자본이고 자본의 편만 드는 권력때문이다. 이들이 순박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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