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칭찬이라고 하긴 힘들겠지만, 마치 이 만화에서 지금껏 나왔던 인물군들이 삶을 대처함에 있어 자주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은 실패작이다. 스토리적으론 흥미로울 수 있는 새로운 배치와 소재들이 있었지만 도저히 제대로 살아났다곤 할 수가 없다. 원작보다 더 붙었지만 살려내질 못하니 거추장스러웠고 쓸 데 없었다.

이 작품이 기이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뒤로 가면서부터 작화와 스토리 양쪽에서 동시에 보여줬던 붕괴에 가까운 퀄리티 하락이었다. 마치 원작자인 타키모토 타츠히코는 주인공 타츠히로처럼 이 고정 월수익 만화의 미래를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만화 자체가 보여주는 정서적인 혼란과 파쇄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던 건, 이 만화가 월간 연재로 8권까지 채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끌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을 질질 끌려온 것 같다. 제 속이 다 까발려져 보일 정도로.

물론 가까스로 살아나는 순간들이 있다. 완전히 구렁텅이에 빠진 만화를 구제한다기보다는 거의 작가 자신의 버둥거림에 가까울 만치로, 박살나기 직전까지 굴러가는 타츠히로의 의식이 자각되는 간헐적인 순간들에 이르러 이 만화는 자신의 가치를 가끔씩 일깨우게 된다. 마치 진행시켜야 하는 억지스러운 흐름에 대한 반발처럼도 느껴지는 그런 장면들은 가까스로 이야기를 작품 본래의 파멸적인 흐름에 대한 자각의 즐거움으로 환기시켜주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8권에서 또한 그런 장면들이 간간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이야기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실패작이다. 실패를 구술하는 것 자체가 실패라는 방법론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다. 그 모습이 측은하여 이 작품을 마음 속으로나마 구원하는 것도 이 비뚤어진 것에 대한 비뚤어진 여정 만큼의 비뚤어진 애정이라 부를 수 있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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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이야기를 갖고 논다는 게 보임. 1권을 통째로 투자하면서 얻어낸 것은 베짱과, 미래를 향한 강력한 가독성.

 

"다정하게 대해주면 저쪽에서 알아서 찾아오잖아. 만날 협박만 하면 인생 피곤해서 어떻게 살아." 아이구 눈물이....

 

생각해보면 내가 완결까지 끝까지 본 만화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돈데.... 암튼 이건 끝까지 보게 됐음. 뭐.... 그렇다. 좀 맥이 풀림.

 

의외로 볼만한데?

 

보긴 보는데 뭐 어쩌자는 건지 싶은 기분은 여전함....

 

"'이 녀석, 바보구만!', '역시 이런 식인가?!'라는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뻔한 전개로 노력하겠으니 응원 부탁드릴게요!..." 진짜 대놓고 만든 하렘물. 어떠한 머뭇거림도 안 보이는 프로의식의 결과. 여기서 나오는 외계인은 아서 클라크의 영향 때문일 듯(아마도). 지구의 운명을 건 하렘이라니...

 

아는 얘기들의 재확인이어서 썩 재미는 없었던 건 내 탓인가-_-

 

커트 보네것이 삶을 견지하는 것과 똑같은 내용의 자연적, 통계적 결과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음. '돼지가 세상을 지배했을 때'

 

커트 보네것 소설 세계의 축약으로 여겨도 될 정도. 여유 있는 유머와 팔순 넘은 영감 다운 느긋함. 무리를 안 주는 오래된 생강다운 느낌의 깨달음들.

 

한영애의 리메잌 앨범을 더 구하고 싶게 만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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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8-01-06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나왔다고 기사 실렸을 적에 일주일 정도인가 장윤정 씨가 쓴 줄 알고 아아 정말 똑똑한 가수군하라고 생각했던 때가 살포시 떠오르는군요. ;;. 이영미의 책하고 비교해서 어떤가요? 책값 핑계대고 아직도 안 봤네요.

hallonin 2008-01-0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미의 책은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서요. 이영미의 저작이 가요 통사라고 하면 장유정의 저작은 제한된 시간대를 다루고 있죠. 완성까지 10여 년 걸린 것 답게 자료량도 풍부하고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2선들.

솔직히 킹왕짱인데 까먹었음.

 

아 난 송강호 너무 좋음. 연기 개같이 잘함. 근데 여기선 쎅쓰가 안 나와서.... 는 농담이고. 너무 정석적인 흐름에 대한 거부감. 성적으로조차 거세된 대한민국 중년숫컷들에 대한 정말 절절한 관찰기. 이런 세계를 관찰하기에 [연애의 목적]에서 비루한 발정 남성상에 대한 까발리기에 성공했던 한재림 만큼 딱 맞는 감독은 없었으리라.



인생 뭐 이렇지.

 

좋긴 좋은데 기시감 때문에. 아 근데 좋긴 좋음.

 

존나 좋긴 좋은데.... 확신을 못 내리고 있었음. 나윤선의 프로젝트 앨범하고 같은 경운데, 한때 징그럽게 들어서 이젠 영 귀가 안 가는 보사노바삘이 풀풀 나는 판에 노래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라이트한 에너지를 받아들이기에 자신이 너무 어두침침했나 봄.

 



예고편에 쓰였던 음악 찾아볼려고 존나 돌아다녔는데 결론은 트레일러에만 쓰였던 오리지날이라는 거.... 에바 그린 예뻤고. 전체적으로 잘 빠진데다 영리한 블럭버스터.

 

아마도 제대로 된 AV 시스템이 있다면 마지막 배틀씬에서 천국 가까이에 간 느낌을 느끼게 만들 게 분명하겠지만, 그 엉망진창인 내용만 봐선 도저히 추천은 불가능. 아 뭐 그래도 이런 엉망진창을 재밌게 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즐거웠음.

 

'gentle giant' 한곡이 환장할 정도로 좋음.

 

와우 존나 맘에 드는데, 역시 올린다는 거 까먹어버렸음.

 

첫 음이 울려퍼졌을 때의 충격은 생생하다. 그러나 뒤에까지 버틸 수 있을 정도로는, 나자신의 끈기가 부족했다.

 

카바니예. 아직 더 들어봐야 할 듯.

 

정말 질리게 많이 들었고, 또 그만큼 상처를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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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1-1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일생 만화, 씁쓸하군요.
인생 뭐 이렇지. 후~
 

벽두부터 서브컬쳐의 가능성에 대한 모종의 확신을 심어주게 만들다. 또한 라이트 노블이라는 경계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까지도. 사실상 이것이 기화점이었다.

 

시무라 다카코의 재평가와 더 넓은 층의 독자와의 만남. [방랑소년]은 제목 그대로 시무라 다카코의 작품일 수밖에 없는, 머뭇거리는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를 살 떨리게 귀엽게 그려낸다.

 

대부분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혹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야냐리투의 전적에 비추어 시원찮다고 여기지만, 난 그 모든 공격이 셀러브리티의 화신인 브래드 피트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분명 초국적인 연결을 노리는 [바벨]은 야심이 크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해석학은 그 자체로 나에겐 발견이었다. 더없이 훌륭한 변명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그리고 그 절정은 리쾨르였다.

 

부서지는 인간들, 완성되어가는 이야기들이라는 고전적인 법칙을 훌륭하게 완수해냈다는 점에서, 너무나 동화적이지 않은가.

 

뒤로 갈수록 만개하는 절대 찌질 묵시록.

 

포기하지 않는 법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잔인한 화해를 보여준다.

 

다시 봐도 재킷이랑 노래랑 어지간히 매치가 안 되는....

 

모리 카오루의 포지션이 빅토리아 시대 오타쿠로 그 풍경의 재현에 방점을 두고 있었던 만큼, 여기서부터 본편을 뛰어넘는 외전이 시작된다.

 

이제는 흔하디 흔해진 스타일이지만, 모무스에게는 (이것 또한 우스운 표현인데) 원본이 가질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권위가 있다(는 걸 잘 자각하고 있다). 오래 전에 익히 들었던 'lady of shalott'가 담겨있는 줄 알았던 POLKTRONIC 앨범은 내가 알던 그 노래가 아니었던데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짜증났지만 이 앨범은 정반대의 의미에서 강력했음.

 

처연하다 인생이여. 하지만 이렇게 우리는 위로 받을 수 있지 않는가.

 

부드럽고 치명적인 유혹(기간, 대상 한정)에 대한 탁월한 해설. 더러운 쓰리디에 상처 받은 이들을 위해 뒤늦게 찾아온 교양서적.

 

가만히, 아무리 시끄러운 부분에서라도 너무도 고요하게 느껴지는 이 신기한 느낌.

 

내내 웃게 만든다. 다국적 시대의 다양한 까다로운 요구들을 만족시켜 줄(표현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완벽한 파티용 음악.

 

빛의 아름다움.

 

'또' 골드베르크다. 그러나 훌륭하다. 음악을 말함에 있어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기 힘든 것처럼.

 

톤톤 매코우트는 여러가지 록의 전통을 통해 다듬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이한 고립감의 원인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이고 에너지가 살아 넘치지만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아우라 때문인가.

 

올해 들었던 목소리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다.

 

우연에 의한 발견. 아랍과 유럽의 경계에서 빚어진 오백 년 전 음악의 재래. 음악 자체에 있어서나 음악외적인 면에 있어서나 그 풍부한 텍스트성에 매혹되지 않기란 힘들다. 엄숙하고도 화려하며 오래 전 이슬람 문명의 탁월한 성취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로써 제시될 수 있는 멋진 작품.

 

진짜 진짜 뿅가게 만드는 완성된 싸이키델릭 음악의 착각스러운 귀환.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리고 미셸 우엘벡은 (왠간해선) 실망시키지 않는다. 2007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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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8-01-0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스트에 올라간 책들이랑 영화는 대부분 저도 읽은거라 반갑네요. 저 책 중 한권은 읽으면서 펑펑 울었던 것. ^^

hallonin 2008-01-0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보이즈 온 더 런....

sudan 2008-01-03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아뇨. 마이조 오타로의 소설이요.

hallonin 2008-01-03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항-_-
 


이 영화는 이어지는 처음의 두 씬에서 영화의 모든 것이 설명되고 있다. 우선 살인. 그 행동엔 어떠한 거리낌도, 감상주의적인 어떤 불필요한 요소도 없다. 희생자와 살인자, 그리고 순식간에 행해지는 죽음. 이 영화에서의 행동이란, 그리고 살인이란 그렇게 깔끔하고, '경제적으로' 이뤄질 것임이 여기서 암시된다.

그리고 다음으로 보여지는 대형 마트의 풍경. [아메리칸 갱스터]는 전혀 화려하지가 않은 영화다. 또한 [대부] 식의 장중하고 비장미 넘치는 클래식 드라마도 아니다.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다는 리들리 스콧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 스콧 특유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미학은 최대한 거세되어 있다. 액션씬조차도 마지막에 가서야 단 한 번, 그것도 마이클 만보다도 더 가라앉은 난잡한 총격전으로 드러난다. 리들리 스콧은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신 침착한 시선으로 중간상과 소매상을 붕괴시키면서 증식하는 대형 마트의 풍경과 비교하여 프랭크 루카스가 지향한 세상이 얼마나 비즈니스적이며 심지어 자본 지향적이기 때문에 진보적이기까지 한 것인지 알려준다(부동산과 이자 재테크의 귀재기도 했던 프랭크 루카스의 재산은 그 시절에 무려 2억 5천만 달러에 달해 있었다). 말마따나 그는 정말 30년 쯤은 훌쩍 앞서 있었던 진보적인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독점자본에 의해 대형화되어가는 세상, 미국식 제국주의, 그리고 FTA를 통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회한 통찰이다. 그 세련되게 포장된 비즈니스 가면들에 갱스터라는 단어를 붙여놓음으로써 이 이야기는 명백히 조롱과 우려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미 국경이 사라진 단일 블록으로 진화중인 EU와 달러가 신의 지위를 잃어버린 현재에 있어 이 지적은 단순히 미국외 국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익숙하게, [아메리칸 갱스터]는 악과 선이 갈리지 않는 (대부분의) 세상의 공모에 대하여 보여준다. 이 장르의 영화에서 흔히 써먹게 되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진부한 표현은 [아메리칸 갱스터]에서도 거의 동어반복의 수준으로 다시 해당된다. 범죄자는 과연 지옥에 가는가? 글쎄. 경찰도 지옥에 갈 판인데 범죄자까지 신경 써 줄 수 있을까. 어차피 그 사이 좋은 커플들의 진한 동지의식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적 면죄부와 함께 다같이 지옥에 가게 될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오래된 영화적 클리셰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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