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이 세계를 걷는 나만의 방식
한수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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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연히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라는 책 소개를 어디선가 읽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책이 절판된 뒤였다.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중고서점이라도 뒤져야 하나 했는데, 마침 개정판이 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개정판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라는 제목은 모리 준이치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차용한 것인데,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출구가 없는 원이 아니라 언젠가는 출구로 나오게 되어있는 나선이며 직선보다는 멀리 돌아가게 되겠지만, 돌아가기에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를 갖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책에 관한 이야기이고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보면 인생을 살아온 시간 순으로 배열되어있다는 걸 느끼는데, 그래서인지 앞부분에 집중되어있는 결혼, 사랑, 헤어짐과 같은 20대에 겪을법한 지나치게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들은 아무리 책과 영화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더라도 조금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후 좀 더 (나와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일, 생활, 어른, 인생, 관계..등의 키워드들은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싶을 정도로, 어딘가에 적어놓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특히 그 부분에 등장하는 책들은 온라이서점에서 검색해 장바구니에 넣어두거나 절판된 책은 중고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나선으로 걸으면서 직선으로 걷는 같이 인생이 심심할 때, 나선으로 걷고 있는데 반복되는 원을 따라 걷고 있는 것처럼 답답할 때, 내 원래 인생은 이런게 아닐 것 같은데..이럴리가 없는데..라면서 어긋난 궤도를 온몸으로 느낄 때, 이런 책들을 읽어보자. 한발짝 쉬어간다고 해서 더 나빠지지 않는다.


칙칙해지지 말자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자

크게 소리 내어 웃어라

먹고 마시고 흥겨워해라

순간에 충실해라

삶은 계속된다

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말을 되뇌어라

'그렇다고 별 수 있나'

여기,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다 

-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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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도도 - 사라져간 동물들의 슬픈 그림 동화 23
선푸위 지음, 허유영 옮김, 환경운동연합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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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을 향한 사랑은

인간의 가장 고결한 특징이다 - 찰스 다윈


   정말? 인간이 그런단 말이야?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자문을 하게 된다. 심지어 나도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도도는 지구상에서 멸종된 대표적 종으로서 'as dead as Dodo'라는 숙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비극으로 남아있는 생물종이다. 지구가 생겨난지 약 45억년, 지구에 생물이 출현한 지 약 38억년, 수많은 생물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멸종은 새로운 종의 탄생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토록 '멸종'에 집착하는가? 우리가 우려해야하는 부분은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멸종이다. 한 인종이나 생물의 탄생과 멸종은 생태계의 고리와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서로 연결고리로 이웃해 있는 한 개체가 어떤 징후나 예고 없이 한순간에 사라질 경우,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된 자연에 위기가 찾아온다.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있는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생물종의 멸종으로 인해 인간이 감내해야 할 무언가를 강조하지 않는다. 결국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기적인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이미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있는 생물들을 다루지만, 그 생물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던 원주민들의 멸종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멸종' 시킬 권리가 있는가. 누군가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개척한 콜럼버스를 위인으로 칭송하겠지만 누군가는 "콜럼버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침략과 종족 멸종을 가져온 선구자였다" (p254)라고 평한다. 다음의 저자의 말에 씁슬하지만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생명을 존중했느냐가 되어야 한다.

그 생명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마찬가지다. (p255)


   우리가 굳이 보태지 않아도 자연은 멸종과 탄생의 순환을 반복한다. 인간 역시 하나의 생물종이며 멸종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구와 모든 동,식물을 위해 인간이 멸종해야 한다'는 섬뜩한 농담이 현실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반성해야한다. 자연의 섭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종은 야만이라 불러 마땅하다. 자연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만은 버려야한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싶지 않다면 진짜 생각 좀 하고 살자,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과 동물들이 이미 가진 자의 더 갖고자 하는 탐욕으로 인해 더 이상 자연의 일부로 남을 수 없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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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여행 × 파리 -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파리의 예술문화답사기 아트인문학 여행
김태진 지음, 디디에 앙사르게스 사진 / 카시오페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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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년전, 같은 저자가 쓴 <아트인문학여행, 이탈리아>를 굉장히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르네상스의 대가들과 함께 했던 여행은 아직까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일주를 꿈꾸게 했다. 이번에는 파리로 옮겨왔다. 늘 로마를 동경하고 로마가 되고 싶었던 파리가 결국 로마를 추월해서 예술의 중심지가 되기까지, 그 시대에 순응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시대를 거스르며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달려온 시대의 혁명가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로마 예술을 동경하고 경외하던 파리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성공의 바로미터였던 아카데미를 부정하고 자신들만의 확고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여 세계 예술의 중심이 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들고 파리로 가야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사진작가인 디디에 앙사르게스의 파리 곳곳을 촬영한 사진들이 더더욱 우리를 선동한다.


   이번에도 등장인물들은 너무나 유명한 이들이라 그들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더 이상 남아있을까 싶기도 했다. 특히 마네, 모네, 고흐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예술가들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재주를 가졌다. 마치 300살 정도 되는 노화가가 파리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회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는 루이14세, 루이16세, 나폴레옹 등 한때 프랑스의 왕으로 군림했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왕들이 사랑했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것이며, 하마터면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뻔한 모험담이 우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할지도 모를일이다 . 당시 시대적 주류이던 아카데미 품평에서 낙선한 화가들의 작품만 모아서 전시한 낙선전에서 보았던 도발적 그림들과 도무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도 어려운 괴상한 그림들을 기억해낼 지도 모른다. 산업혁명의 상징인 기차를 처음 타보았던 떨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파리의 멋진 풍경에 갑자기 생겨난 요상한 철탑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게 에펠탑임을 우리는 눈치챌 것이다.


   파리가 가장 아름답던 시절인 '벨 에포크'의 시기의 번영이 가져온 파리의 매력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마치 호우시절처럼 우리의 건조한 마음을 적시면서 기억 속 어딘가 잘 묻어놓았던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의 싹이 다시금 올라올 수 있도록 일깨우기 때문이다.


난 감탄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내 그림 앞에서 누군가 생각에 잠겨

자신의 내면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이 내 그림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입니다 - 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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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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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작가는 굳이 자기 소개가 필요없을만큼 공인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정치인, 방송인, 작가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졌지만 지금의 '지식 소매상'이 가장 어울리는 분이다. '썰전'을 가끔 보기는 했지만 이 분 책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는데, '알쓸신잡'을 계기로 출연자들의 저서와 그들이 언급한 책들을 읽거나,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의 독서>는 2009년, 그러니까 유시민 작가가 여전히 정치인이었을 때, 본인이 지나온 여정들을 위대한 책들에 기대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썼다는 집필동기를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혀 정치적인 책이 아니다.  끝까지 읽지 못할 것 같아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던 책들에 대한 갈증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완충재로 삼아 놀라운 고전의 세계로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총14권의 책을 다루는데, 푸시킨의 <대위의 딸>이나 최인훈의 <광장>,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같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도 포함하고 있으니 <청춘의 독서>-<고전>-<청춘의 독서> 이런 순으로 읽어보아도 좋겠다. 단, 이 책은 2009년에 쓰여진 책의 리커버 에디션이라 내용 수정은 없는 에디션이다. 그래서 2009년에 작가가 찾기 어려웠던 번역본도 지금은 나와있을 수도 있고 작가가 읽었던 판본의 책들이 더 이상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참고하자.


   작가가 살아온 삶의 지도를 함께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왜 위대한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다. 도대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왜 읽어야 한다는 것일까. 1860년데 제정러시아 때의 이야기가 오늘날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읽어야 한다는 것일까. 이미 사회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 무엇일까. 위대한 고전들은 우리 삶의 근원적인 물음들에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역사에 현재를 비추어 보게 해주고, 역사에는 종말이 없으니 지나간 과거라고 방심하지 말라는 따끔한 경고도 해주고 편협한 나의 생각에 일침을 놓기도 하며 여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부조리에 순응하지 않도록 해준다. 즉,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외롭지 않도록, 그래서 결국 다시 지도에 표시된 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위대한 책들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다.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좋은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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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박물관 -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매기 퍼거슨 엮음, 김한영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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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존재하고 그들이 사람들의 삶에 끼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은 다 헤아리기 어렵다. 나만 하더라도 대학생이 될때까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적어도 가본 기억이 나지 않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의 존재가 그 이후에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덮칠때 느꼈던 감정들을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후 그들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책을 엮은 저자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인상 깊었던 박물관을 다시 찾아가 기억 혹은 무의식 언저리에 묻혀있던 추억을 듣고 싶었나보다. 단, 전문 미술 비평가들이 아닌 작가들에게서 말이다. 이 책은 24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유년 시절의 한자락을 차지했던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이다. 때로는 즐거웠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끔찍했던 기억도 떠올린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유효한 곳도 있고 그 때와 다르게 느끼는 장소도 있다.


   자, 이제 24명의 작가들의 추억의 장소로 이동할 준비가 되었는지.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거대한 박물관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된 듯 하다. 등 떠밀려 다니며 겨우 멀리서 인증 샷 하나 찍을 정도로 번잡한 (물론 작가들의 유년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박물관이나 너무나 거대해 무엇을 봐야할 지 모르는 박물관에서는 아무래도 작가적 상상력이 발동하거나 사유를 위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여기에 소개된 박물관들은 대부분 가보기는 커녕 내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 많다. 24곳 중 내가 실제 가본 곳은 파리의 <로댕 미술관>,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그리고 빈의 <레오폴드 미술관>이다.


   24인 작가들의 경험은 대체적으로 흥미롭고 그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박물관들 역시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들의 작품도 나에게 맞는 스타일이 있듯이 각 작가들의 짧은 글들도 호불호가 생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듯 하다. 우선 내가 가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묘사가 너무 추상적이거나 심하게 기억의 편린에 의존한 것일 경우, 도무지 머릿 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호감도가 하락한다. 어딘지 어수선한 느낌이랄까. 특히 마지막에 실린 작은 사진들을 제외하면 박물관을 시각적으로 이해시킬 사진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본 박물관들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지진했고 가보지 않았어도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야기도 분명 있었다. 그러니 독자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해둔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에게 끌리는 박물관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시간이었고 그들의 추억 속 24곳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박물관을 더욱 탐하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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