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막의 게르니카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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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과 비밀의 결합만큼 흥미로운 조합이 또 있을까. <다빈치 코드>를 처음 읽었을 때와 비슷한 흥분이 책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느껴진다. 세로 약 350센티미터, 가로 약 780센티미터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 암막에 가려진 게르니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기 전부터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된다. 르네상스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미술은 꽤 여러번 반복해서 관심을 가져왔지만 현대미술은 아직까지 낯선 영역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피카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예술가임에도 막상 피카소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글쎄, 자신이 없어진다. 그의 대작 게르니카마저 자세히 들여다본건 이번이 처음일 것 같다.


   소설은 스페인이 내전으로 고통받고,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대변하는 나치와 파시스트가 전 유럽을 위협하던 1937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945년의 프랑스와 9.11 테러가 났던 2001년부터 2003년까지의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파리만국박람회에 출품할 그림을 준비하던 피카소는 히틀러의 게르니카 폭격 소식을 듣고 전쟁의 비극을 담은 <게르니카>를 그리게 되는데, 모노크롬으로 그려진 그림은 피비린내나는 전투 장면도, 자극적인 색조도 사용되지 않았지만 그 어떤 검이나 무기보다 강렬하게 전쟁의 참상을 담고 있다.


"미술사상 가장 강렬하게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묻게 될 작품.

이것은 검이 아니다. 그 어떤 병기도 아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어두운 색의 그림물감을 칠한 캔버스. 단순한 그림 한 장일 뿐이다.

하지만 검보다도, 그 어떤 병기보다도 강하게, 예리하게, 깊게 인간의 마음을 도려내는.

세계를 바꿀 힘을 가진 한 장의 그림." (p133)


 파리만국박람회는 끝났지만 <게르니카>는 피카소의 아틀리에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조국 스페인이 결국 프랑코 독재자의 손에 들어가자 그는 <게르니카>를 MoMA에 전시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이렇게 말한다.


"<게르니카>를 MoMA에 남겨주시오. 스페인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돌아올 때까지."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이라크에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승인한 UN 안보리의 결의를 발표하던 날, 안보리 회의장 로비벽에 걸려있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똑같이 그린 태피스트리가 암막으로 뒤덮인 사건을 계기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다시 한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게르니카>를 1981년 스페인에 반환할 때까지 무려 44년을 보관해온 뉴욕현대미술관 MOMA의 큐레이터이자 피카소 전문가인 요코는 9.11 테러로 사랑하는 남편 이든을 잃고 '암막의 게르니카' 사건을 지켜보면서 피카소가 인류에게 전하고자 했던 반전과 전쟁의 비극에 관한 메세지를 다시 한번 일깨우고자 '피카소의 전쟁'이라는 특별 전람회를 기획하면서 이미 스페인에 반환된 <게르니카>를 다시 한번 뉴욕으로 가져오고자 한다.


  소설을 읽고나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인지 궁금해진다. 특히 <게르니카>의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던 도라 마르라는 여성이 궁금해진다. 피카소의 뮤즈이자 연인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어진다. 미술사를 전공한 작가라서 그런지 픽션과 팩트의 경계가 자연스럽다.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사건이나 배경 설명이 집중을 방해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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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박은식 평전 - 국혼의 지사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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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아무리 승자의 기록이고 기록된 시기의 상황에 맞추어 편리하게 기록된 것이라 해도 여기저기 뒤지다보면 진실의 조각은 발견되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빙자하여 감히 대한민국 수립의 날을 왜곡하려 했지만 국민의 힘으로 막아낸 것만 보아도 그렇다. 물론 앞으로도 그러한 시도는 꾸준히 있겠지만 김삼웅님처럼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를 알리려 부단히 노력하는 분들이 있는 한 어림없는 소리라고 믿겠다. 저자의 인물평전 저서들은 잘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행적과 역사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글로 일제에 항거한 인물이다. 안중근전을 비롯 독립운동가들의 전기를 기록하고 언론인으로 각종 신문과 잡지에 사설과 논설로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으며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의 역사서를 집필하면서 독립운동의 도구로 삼기도 했다. 직접 몸으로 독립운동을 실현하는 거사도 위대하지만 당시 진실로부터 차단되어있고 일본의 거짓 선전에 노출되어있던 국민들의 계몽을 위한 그의 글과 저서들이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비록 일제에 '백'을 빼앗겼지만 민족의 '혼'만 잃지 않는다면 완전한 국망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꼭 나라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혼백론'의 역사관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실제 <한국통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국교.국학.국어.국문.국사는 국혼에 속하는 것이요, 전곡.군대.성지.함선.기계 등은 국백에 속하는 것으로 국혼의 됨됨은 국백에 따라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 박은식 <한국통사> 중.


   이승만의 무책임하고 독선적인 태도로 분열의 위기에 처한 임시정부의 제2대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3개월동안 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행하여 권력을 분산시키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던 그의 태도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자신은 1925년 향년 67세의 나이로 나라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였지만 그가 독립에 기여한 공헌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이제 나라는 독립하였지만 여전히 국혼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신다면 아마 호통을 치실지도 모르겠다. 피 흘려 쓴 독립운동사가 친일파들에 의해 교묘하게 가려지지 않도록 깨어있는 것이 후손들의 본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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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ls’ Rights 동물의 권리
헨리 스티븐스 솔트 지음, 임경민 옮김 / 지에이소프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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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은 이 책이 1894년에 출간되었고 동물 보호론의 고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굉장히 단도직입적이고 완고한 문체는 거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도 훨씬 전에 동물의 권리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확고한 논리에 바탕을 둔 책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인류는 그보다 겨우 약 100여년전까지만 해도 노예제도가 존재했으며 신대륙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토착민들을 몰살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인간에 의해 가축이 된 동물들이 종의 입장에서는 개체 수의 드라마틱한 증가를 가져왔으니 어찌 보면 진화적으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개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반갑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랄지 '천부 인권론' 같은 건 아마도 인간이 아닌 다른 종들을 짓밟기 위한 합리화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동물에게도 그와 유사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게 가축이든 야생 동물이든 마찬가지이다. 내용은 크게 네가지의 소항목으로 분류되는데 식용을 위한 도축과 스포츠로 간주되는 취미로 즐기는 도살행위, 그리고 인간의 사치를 위한 제조업과 과학이라는 명목으로 실험실에서 자행되는 각종 잔학행위들로 이야기를 엮어낸다. 양심의 가책과 자기합리화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읽었던 부분은 당연히 '식용' 파트인데, 여전히 육식을 버리지 못한 나로서는 매우 난감한 주제이기도 했다. 인간의 몸은 채식을 하도록 되어있다라는 말을 여러번 듣기는 했으나 나는 아니다라며 발뺌한 적도 여러번일 것이다. 저자 역시 먹거리 개혁이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책이 쓰인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육식은 존재하며 그와 관련된 논쟁 역시 여전히 뜨겁게 진행 중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채식주의자가 될 날이 오기나 할지 모르겠으나 과거 식인종들이 문명과 접촉하면서 식인의 습관을 버렸던 것처럼 우리 인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믿음은 근거있는 확신일까 순진한 소망일까.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마지막에 있다. 본문이 다 끝났음에도 수십 페이지에 걸쳐 저자가 참고한 문헌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담겨있으며 톨스토이가 쓴 하워트 윌리엄스의 <식이의 윤리>라는 책의 러시아 번역본 서문 중에서 '첫걸음'이라는 제목이 달린 부분을 옮긴이의 발췌로 볼 수 있다. 채식주의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동물들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데, 그가 도축장에서 직접 본 도축의 끔찍한 과정들이 묘사되어 있으니 노약자와 임산부는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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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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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작가분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분들이 많길래, 거기에 호평까지! 그래서 나도 대열에 동참해보았다. 서점의 분류에 따르면 과학서라고 되어있지만 과학서라기보다는 저자의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다. 그녀의 성장과 식물의 성장이 번갈아가며 박자를 맞추듯 펼쳐진다. 과학 교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실험도구를 장난감 삼아 놀면서 과학자의 꿈을 갖게 되지만 당시 과학자들의 세계란 여성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꽤나 높았던 모양인지 (지금은 어떤지 철저한 문과생인 나로서는 여전히 모를 일이지만) 자런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마주쳐야 했던 '유리천장'에 관한 부분은 비단 과학계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성들이 전문분야에서 자신의 경력을 계속하고자 할 때 어떤 단계에서든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숙명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하는 나무와 식물에 관한 연구는 대단한 발견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엄청난 물질적 이익을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저자는 그런 과학을 '호기심에 이끌려서 하는 연구'라고도 부르는데, 그런 연구들에 대한 국가의 투자우선순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 역시 순수과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를 꺾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좋아서 하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자런은 자신의 삶을 미화시키지도 않고 더 불행하게 보이게끔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하고 솔직하게 일기를 써내려가듯 들려준다. 발아하기 위해 수백년을 기다리기도 하는 씨앗처럼 과학자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했던 일들을 풀어놓는다. 아르바이트로 수액을 만들던 경험부터 인생의 소울메이트가 된 빌의 이야기, 연구비를 타내기 어려워 빌에게 충분한 월급을 주지 못했던 시절을 비롯 우울증으로 괴로웠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사랑하는 클린트를 만나고 아들이 태어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탈탈 털어놓는다. 식물의 이야기와 그녀의 이야기가 교차로 반복되면서 식물의 삶과 그녀의 삶이 마치 칡 넝쿨처럼 얽혀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녀는 식물과 나무의 미래를 걱정한다. '식물들이 4억년 전에 고생 끝에 푸르게 만들었던 곳에서 식물의 흔적을 없애'고 이 모든 과정을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걱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날마다 들여다보고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인간을 상상한다.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씨앗처럼 그녀 역시 결국은 인간이 식물을 지켜낼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 같은 과학서라니..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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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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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6년 작품인지라 초반 작품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처럼 생각되는 작품이다. 드라마나 영화 제작도 많이 될만큼 탄탄한 플롯과 드라마적인 요소가 잘 조화되어있는 소설이라 그럴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읽은 작품이지만 이번에 번역도 좀 다듬고 해서 새로운 판본이 나와서 다시 한번 읽어보았는데,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흔히 일본 추리소설하면 통상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잔혹, 엽기 등의 단어를 비껴가는 두 작가가 있는데, 한명은 미야베 미유키이요, 다른 한명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살인사건'이라는 범죄안에서도 순수와 사랑과 헌신 같은 용어를 떠올리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의 많은 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시작한다. 고전적인 추리 소설에서 보여주는 '누가 범인인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왜' 범인이 이런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에 초첨을 둔다. 마치 수학 문제 같다고나 할까. 예전의 수학 시험이 풀이 과정은 생략한 채 정답만 맞추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정답보다 풀이과정을 중시하는 것처럼, 소설 역시 자신을 괴롭히는 전 남편을 죽인 야스코와 미사토 모녀를 도와 범죄를 은폐하는 옆집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공범임을 우리는 소설 첫 부분에서 이미 알게된다. 이시가미가 모녀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경찰들의 선입견을 이용해 수사에 혼선을 주는 행위는 '기하학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함수문제'라는 그의 말과 닮아있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약간 우쭐해진다. 범인이 누구인 줄 모르는데다가 이시가미가 곳곳에 완벽하게 펼쳐놓은 함정들에 걸려든 형사들보다 어쩐지 내가 더 나아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가 함수문제라는 걸 모르고 기하학의 공식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리포트의 과제를 물성론으로 풀어나간 학생에게 왜 그렇게 했냐는 유가와의 질문에 '그게 물성론 시험이라서'라고 말하는 그 선입견에 우리도 빠져있었던 것이다. 이시가미가 만든 알리바이는 허점이 있는 듯 하면서도 완벽해서 형사들이 알리바이의 깨질듯한 허점에만 집착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가 야스코와 미사토 대신 사체를 처리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행위가 그의 '헌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철통 같은 알리바이가 깨질 때 그의 진정한 헌신이 드러난다. 사건은 갈릴레오라고 알려진 '유가와'라는 물리학 교수가 개입하면서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는데, 유가와 교수는 단순히 사건의 해결이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시가미의 대학 동창으로 등장함으로써 이 소설의 '헌신'이라는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 추리 소설의 특성상 다시 읽으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라는 편견을 제대로 깨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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