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제임슨 - 맑스주의.해석학.포스트모더니즘, 문예과학이론신서 28
숀 호머 지음, 이택광 옮김 / 문화과학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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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프레데릭 제임슨의 이론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의 이론이 공산권 붕괴 이후 과거를 청산하고(?) 가볍게 문화로 공중부양하는 현대 이론이 다시금 중력을 느끼게끔 해주었다는 점, 그러면서도 9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천착되어 온 관심사들로부터 수도사기질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홍콩무협처럼 난무하는 이론들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맑시즘의 중력도 지켜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대표적 <정치적 무의식>을 비롯해서 다수의 저작들이 번역되지도 못했고 이렇다할 소개서(얼마전 번역된 윌리엄 다울링의 '정치적 무의식을 위한 서설'이 있긴 하지만)마저도 드물었기에 프레드릭 제임슨의 매력에 접근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 깔끔한 책은 그래서 단비와 같았다.

이론이 무지개 동산으로 놀러갈 때 '역사는 반드시 돌아와 우리를 한방 먹이게 되어있다.' 헤겔을 때려잡으면 지적 영웅이 되던 극장 판타지가 끝나면 역사라는 운명이 우릴 다시 부여잡는다. 만일 우리가 역사의 끈질김을 놓치지 않고 이론의 다양함마저 동시에 추구하고자 한다면 프레드릭 제임슨은 그에 대한 좋은 전범이 되어줄 듯 하다. <정치적 무의식>의 번역발간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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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사 1 -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읽은 신라와 신라인 이야기
이종욱 지음 / 김영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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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국사학계는 이론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면이 있다. 국정 교과서 역사책들을 보면 강박증에 걸린 듯 단군을 끌어들이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막아보려는 신화의 역사로 시작된다. 신라사도 마찬가지다. 저자에 따르면 기존의 신라사 연구는 사상누각이란다. 중국의 <삼국지>나 인용해 신라를 발견하고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삼국사기>를 세밀히 읽고 분석하여 신라사를 기원전 12세기까지 끌어올린다(기존 시각은 풍물지 <삼국지>에 근거해서 3세기). 그의 주장은 이미 실증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풍납토성의 연대 측정 결과가 한 예다. 다만 정통으로 자기 권위를 지키려는 관학파들이 몽매하게 길을 막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신라사를 배우고 있는 중고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꼭 읽어둘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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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아일랜드 - 역사와 문학 속의 아일랜드
박지향 지음 / 새물결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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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 월드컵에서의 명승부를 꼽자면 한국 대 이태리 경기와 함께 스페인 대 아일랜드 전을 든다. 우리 팀 처럼 눈에 띠는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근성과 조직력으로 강호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다. 아일랜드 응원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아일랜드 서포터즈들은 한국 서포터즈들과 비슷했다. 그들이 경기를 보는 태도 속에는 슬픔과 감격이 어우러져 있다. 아쉽게 스페인에게 패하긴 했지만 아일랜드팀은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그러던 차에 박지향 선생님의 이 신간을 보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동양의 아일랜드'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두 나라의 역사와 심성는 너무도 닮았다. 본서는 박지향님의 영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비교 연구의 곁가지 산물이다. 주로 '아일랜드'라는 민족적 정체성, 특히나 '슬픈 아일랜드'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복잡한 관계를 들춰본다. 고스란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오버랩되기 때문에 매우 흥미있는 이야기다. 이 분야에 관심이 돋아 저자의 다른 저서 <제국주의 신화와 현실>도 찾아보게 되었다.

아일랜드가 '슬픈' 이유는 다음의 인용으로 대신한다. '잉글랜드 인들이 '아일랜드의 민족성'이라고 부른 것은 실은 잉글랜드성이 투사되어 나타난 굴절된 이미지였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아이러니는 이러한 앵글로-색슨의 태도가 아일랜드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인종적 문화적 신화를 만들어내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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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의 철학적 의미는
토마스 네이글 지음, 김형철 옮김 / 서광사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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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빗나간 대답은 그것이 답을 주기 때문이란 식의 것이다. 삶과 죽음이 무어라고, 의미와 무의미가 무어라고, 감각과 역사가 무어라고, 과학과 예술이 무어라고... 이런 식의 대답을 줄 것이라고... 그런 기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리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대답이 있었고 그 대답들은 소크라테스니 공자니, 데카르트니 칸트니, 비트겐슈타인이니, 하이데거니 하는 브랜드로 담론계를 떠돌아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철학은 답을 해주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의 본령은 오로지 '묻는' 데 있다. 묻더라도 아주 지독하게 묻는다. 근본적으로 뿌리까지 파들어가지 않고는 직성이 안풀린다. 그걸 위해서는 이 세상의 상식과 감각 쯤은 일순 뒤짚어버릴 수도 있다는 기세로...

토마스 네이글이 이 얇디 얇은 책은 아주 쉬운 문장으로 그걸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는다. 독자의 머리는 오로지 질문꺼리들로 꽉 채워진다.이 책은 한 번만 읽어도 전부 이해가 되지만, 두 번 읽으면 더 깊어지고, 세 번 읽으면 골똘해지고 네 번 읽으면 답을 찾아 길을 떠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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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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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씨의 패러디 솜씨는 알아주어야 한다. 아마 전에 내놓은 책의 타이틀이 <한 줌의 부도덕>이었다. 아도르노의 <한 줌의 도덕>을 패러디한 거다. 아도르노의 자못 육중한 모더니즘적 톤에 비해서 가볍고 포스트모던(?)하다. 아도르노가 미쳐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한 줌의 도덕으로 버티는 고민많은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진중권은 한 줌도 안되는 꼴통들과 패거리들에 의해 온 나라를 미쳐돌아가게 하는 한심한 꼴을 조소하고 전복했다.

그 패러디의 기조는 <폭력과 상스러움>에서도 이어진다.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을 패러디했다. 지라르는 희생양만들기라는 폭력을 통해 세워지는 성스러움(혹은 자기 동일성)을 다룬다면, 진중권은 우리 사회의 폭력과 그것이 구현하는 상스러움에 대해 다룬다. 르네지라르나 아도르노가 '근대의 작용과 부작용'에 대해 다룬다면 진중권은 탈근대는 커녕 근대에도 이르지 못한 한국의 전근대가 어떻게 근대의 이름표들과 불륜을 벌이는지 간단하게 파헤친다. 방법은 간단하다. 연막을 헤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근대인 척 하지만 그게 다 연막이고 핵심에는 전근대적 요소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다. 우리 사회에게 아직 '근대'란 '귀찮은 것'이다. 일본인들 중 일부가 식민지와 전쟁책임을 외치는 아시아인들을 '귀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런지 금방 '탈근대'에 열광한다. 진중권이 말하는 바는 다른 게 아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누워라!' 이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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