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아킬레우스나 헥토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문헌이나 전승은 없다고 한다.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에게해가 암흑시대로 접어들고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준비되면서 창작되거나 과대포장된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단지 이름과 영광만 있는, 어쩌면 '암시'에 더 큰 기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두 인물들은 여타 인물들의 비루함에 대비되며, '탁월함(아레테)'으로 변별된다. 아가멤논은 권력욕에 눈이 멀었고 프리아모스는 자만과 자기도취에 빠졌으며 파리스는 여색에 무너졌다. 그런 모든 불완전한 인간들에 대해, 호메로스는 '탁월한', '완벽한', '신이 질투할 만한'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쑤셔넣은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수백년간의 암흑기 이후 그리스인들에게 처세술이자 윤리교과서처럼 암송되어졌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사실상 당시 판도의 중심인물은 아가멤논이다.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놓고 수많은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 영웅들이 사방으로 연결된다.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배치하면 세상은 황량하고 무의미하며 쓸쓸해 보일 것이다. 우선 그의 아버지 이야기부터가 아주 잔혹하다 .그의 아버지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의 살벌한 복수극(세네카의 <티에스테스>)은 아마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오레스테스, 엘렉트라의 이야기(아이퀼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도 끔찍스런 이야기다. 모두가 인간의 무절제한 탐욕과 욕정에 휘둘려 초래된 잔혹스런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아킬레우스를 다른 인물들과 결정적으로 변별시켜 주는 것은 그의 초월에의 의지다. 그는 불멸의 신과 필멸의 인간을 비교했고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하고 신을 능가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만의 준칙'이 되었다. 다른 인물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그려냈다면 아킬레우스는 위를 꼬나보면서 자신을 그려냈다. 그는 신을 질투했고 업신여겼다. 신은 영생을 누리지만 그로인해 권태에 갇혀있다. 인간은 모두 죽지만 이름을 남길 수 있으며, 매순간 마지막 삶을 살기에 권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영화 속 아킬레우스의 행위의 준칙이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사촌이 아니라 전우였다. 아마도 헥토르-파리스에 대응하는  형제애를 만들어 극적 대칭 구도를 만들 요량으로 그렇게 바꾼 모양이다. 그 덕에 아킬레우스는 무지막지한 전쟁기계에서 좀 더 인간 쪽으로 움직였다. 거기다가 브리세이스까지 넣었고, '죽음을 초월하는 명예'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으로 결말을 잡아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가슴을 찌른 창을 뽑을 때 그 창에 횡경막과 영혼이 함께 걸려나오는 식의, 내면적 세계와는 전혀 인연없는 호메로스 시대의 거친 인간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헐리우드 영화에 그런 그로테스크한 요구는 과욕이겠지. 대신 이런 군상은 박찬욱의 <올드보이>나 강제규의 <태극기휘날리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삼천포로 빠지지만, 아무래도 한국인들은 도시인보다는 들판의 인간 쪽에 더 익숙한 모양이다. 한국의 근대사야말로 황량하고 쓸쓸한 들판의 역사였으니... 내면적 세계는 사치였을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는 '양심'을 모르고 '양심적' 병역거부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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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5-3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로이를 그렇게 보셨군요...은근히 님 리뷰를 기다렸습니다. ^^;;

간달프 2004-05-3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예술이란 아무리 호의적으로 보아도 긴장을 풀며 진행되는 퇴화이며, 성실함과 실질적인 것을 강조해야만 하는 의무로부터의 일시적 해방이다. 예술 속에서 우리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그러면 순식간에 옛날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이미 오래전에 잊었던 박자로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2, 142)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많이 뒤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자주 일시적인 삶의 부담을 덜어주는 상태 요구하다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실제적으로 개선하는 을 게을리하게 된다. (2,143) 

[...] 니체는 당시의 예술적 욕구에 대해서 아주 날카로운 사회학적인 분석을 한다. 누가 예술을 요구하고, 그들은 예술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우선 지식인들이 예술을 요구한다. 그들은 제단의 향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종교적 위로를 완전히 무시할 만큼 자유롭지는 않으며, 그들이 예술을 찾는 이유는 예술 속에서 사라져가는 종교를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을 찾는 또 다른 사람들은 우유부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삶을 원한다. 하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으며, 그래서 그들은 예술에서 '다른 상태'를 찾는다. 다음에는 공상하는 삶들이 예술을 원한다. 그들은 헌신적인 노동을 피하려 하며 예술은 그들에게 빈둥거리며 쉬는 침대다. 영리하지만 할 일이 없는 명문가의 여자들이 예술을 원한다. 그들이 예술을 원하는 이유는 단지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나 상인, 그리고 공무원 등이 예술을 원한다. 이들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가슴속에 있어서 고상해 보이는 것을 곁눈질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은 그들에게 잠시 동안 불쾌함, 지루함, 양심의 가책을 잊게 만들며, 그들은 또한 예술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성격의 결점을 세계 운명의 결점으로 거창하게 포장한다. (2,447:MA) 여기에는 안락함과 건강이 넘치지 않는다. 대신에 결핍의 경험이 예술로 그들을 몰아간다. 이러한 예술 옹호자들은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니체는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자기 불만(2,447)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 오윤희 역 (문예출판사,2003) p.3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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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여행자 2004-06-0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퍼갈게요.
 
칸트 평전 - 한 꼬마가 세계적 현자가 되기까지 미다스 휴먼북스 10
만프레트 가이어 지음, 김광명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칸트의 세계를 "암시의 세계"라고 칭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칸트가 우리에게 진정 해주고 싶었던 말이라 여겨진다. '암시의 세계'는 중세적 신성의 세계에 대한 근대적 대체물 노릇을 한다. 그리고 인간의 위치는 중세 시대의 순수한 무지의 '어린 양'에서, 아이와 어른의 요소를 동시에 지닌 이중적 존재이면서 '암시의 세계'의 숭고를 머금고 있는 가능성의 존재로 이동한다.

뉴튼이나 스베텐보리 등이 현상 세계의 과학적 원리를 추구했지만 이는 인간에게 (강유원의 말을 빌어) '쓸쓸함'만을 남겨주었고 그 쓸쓸함에 지쳐버린 그들은 급작스레 신으로의 도약에 휩쓸렸다. 그들은 섯불리 신을 보았고 만졌고 말했다. 쓸쓸한 세계로부터 환영적이고 신비주의적 도약 혹은 도피...

"지성적 세계의 이름 아래에서 공허한 초월적 개념의 영역으로 무력하게 날개를 펴지 않으며, 거기서 나오지 못한 채 유령으로 사라져버리지도 않는다." (IV.100)

칸트는 뉴튼의 굳건한 어깨 위에 섰지만 그에게 세계는 뉴튼의 것처럼 쓸쓸하지는 않다. 아마도 그가 인간에게 부여한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인간은 오성 세계와 감각 세계가 공존하는 이성적(이중적/모순적) 인간으로, 이성의 한계 내에서 자기 창조적인(자율적인) 존재이며, 현상 세계의 입법자이기도 하다. 비록 인간이 이 세계나 자신을 완벽한 존재로 만든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지라도 인간은 완전성을 희망하며 그 완전성은 대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인간에게는 숭고한 느낌으로 내재한다.

칸트의 일생은 '모순'으로 보인다. 그는 누이의 부양을 위해 시간을 쪼개 일을 했지만 그  누이와는 거의 25년간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었고, 일평생 아내도 아이도 없이 살았지만 그는 사교적 모임의 훌륭한 재간꾼이기도 했으며,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서방 변방의 작은 도시에 틀어박혀 떠난 바 없지만 그는 언제나 '세계 시민'을 이야기했다. '모순'은 칸트가 본 인간 조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순 덕에 인간은 좀 더 숭고해지는 듯 하다.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이 사소한 존재가 모순의 압력으로 인해 좀 더 숭고한 어떤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압력이 없을 때 우리는 그냥 주저앉아 동물이 되거나 무중력 상태에서 스스로 신을 참칭할 것이다.

이 평전은 칸트가 본 인간의 이중성, 그리고 네가지 형이상학적 근본 질문으로 구성된다. 1장과 2장에서는 칸트가 일평생 구축하고자 한 인간상이 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첫울음'과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함께 이야기되고, 3장은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영혼을 본자가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4장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오직 비판의 길만이 열려있다"), 5장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네 자신의 오성을 스스로 사용하는 용기를 가져라"), 6장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내 안의 도덕법칙-선의지와 근본악 사이에서")과 연관이 있고, 마지막 7장은 다시 1장에서 다뤘던 생명력이나 열정의 문제와 연관된다.

나같은 문외한에게 직역투의 문장은 좀 고역이었다. 그러나 칸트의 저작에서 직접 인용된 문장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듯 하다. 옆에 칸트의 철학 용어 사전이라든가 따위를 놓고 함께 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저자가 말하듯 그가 떠난 20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틀렸던 아니든 상관없이) 그의 업적을 논하지 않고서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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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 2004-05-3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대단히 일찍 분별있게 되었지만, 그들의 오성은 그 후에 같은 비율로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 그들은 정신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 담배, 아편 그리고 다른 강한 것들에서 자극적인 것을 찾았다. [...] 인간성은 백인 종족에서 가장 큰 완성상태에 있다. 황색의 인도인들은 보다 떨어지는 재능을 가졌으며, 흑인들은 더 낮고, 가장 낮은 종족은 아메리칸 인종 중의 일부이다. [...] 그들은(백인들은) 언제나 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다."
-- 칸트의 <물리적 지리학> 중에서. R.B.Loudon, Kant's Impure Ethics:From Rational Beings to Human Beings, (Oxford, 2000) p.99 재인용
 

역사, 단죄대상인가 기억대상인가
[한겨레 2004-05-24 19:03]

[한겨레] 임지현교수, "'사회적 드러냄'으로 극복" 주장
조희연교수, "독재정당화 오용우려" 지적

2004년 봄, 한국 학계에는 ‘대중독재’라는 묘한 깔때기가 있다. 역사는 단죄가 아니라 ‘드러냄’의 대상이라는 이 깔때기를 거치면, “역사를 심판함으로써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 된다.

이런 논쟁적 주장을 본격 제기했던 임지현 교수(한양대 사학과)가 최근 관련 연구성과를 모아 <대중독재>(책세상)라는 책을 냈다. 때맞춰 조희연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는 <역사비평> 여름호에서 이른바 ‘대중독재 프로젝트’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선 임 교수의 <대중독재> 출간은 자신이 주도해 설립한 ‘비교역사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대중독재 개념을 더욱 정교화시키려는 기획의 하나다. 임 교수는 이 책에서 “역사가들이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성명을 채택했지만 시민사회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고”, “그러한 현실을 설명해야 하는 역사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때문에 ‘근대 독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결국 문제는 임 교수가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설명하면서 그 역사의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쏠린다. 그는 일단 대중독재론에 대한 ‘차가운 반응’을 단독 돌파하기로 맘먹은 듯 하다. 동료들의 “엉뚱한 힐난과 의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중적 지식인’의 포즈에 연연하는 이들과 비생산적인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현실과 소통하겠다”며 나치즘·파시즘·스탈린주의 등에 대한 공동연구를 전개한 것이다.

이 연구의 지향점은 “강제와 폭력이라는 피상적 이미지의 물밑에서 작동하는 대중의 자발적 동원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게 임 교수의 주장이다. 그 메커니즘은 “모든 사람이 체제의 희생자이자 지지자”라는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말로 집약된다. (독재의 역사 앞에서) 어느 누구도 순전히 희생자는 아니며 모두가 어느 정도는 책임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한걸음 나아가 “하벨의 논리는 사실상 아무도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답변을 함축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부터 대중독재의 깔때기는 ‘역사청산’의 문제의식을 걸러내기 시작한다. “소수의 나쁜 그들에 대한 인적 청산이 곧 역사적 청산은 아니”므로 “법정의 심판을 통해 과거를 단죄하고 청산하는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임 교수의 생각은 분명치 않다. “과거를 드러내 살아있는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때 비로소 과거는 극복될 수 있다”는데, 그것이 임 교수가 중시하는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인지는 일러주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친일청산법을 17대 국회 개원 직후 개정하겠다는 시민사회와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등의 노력에 대해 임 교수가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역사청산의 ‘현실’은 그 법안을 둘러싼 논란에 집중돼 있는데도 말이다.

<역사비평> 여름호에 ‘박정희 시대의 강압과 동의’라는 글을 실은 조희연 교수도 그런 우려를 전한다. “파시즘의 헤게모니를 당연시하는 오류와 ‘우익화’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임 교수의 학문적 논의는 유석춘·복거일 등에 의해 “파시즘 비판 논리의 확장이 아니라 파시즘 정당화 논리의 징검다리로 활용”된다.

그렇다면 ‘대중독재론’은 일부 우파 인사들에 의해 단지 ‘오독’되는 것에 불과한 걸까. 조 교수는 임 교수의 논리 안에 들어선 오독의 씨앗을 찾는다.

조 교수가 보기에 (파시즘에 대한) 민중의 동의는 항상 지배전략 차원에서 강압과 긴밀한 연관 아래 ‘창출’되는 것이다. 강압없는 동의는 없다. 동의 또한 지배의 한 ‘기획’이다. 여기서 동의의 확장은 △강압에 의해 민중의 인식지평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 △권력의 폭력과 강압에 대한 공포가 곧 지배에 대한 동의로 해석되는 경우 △대안부재로 인해 현존하는 강압 지배가 유일한 대안인 경우 등에 의해 이뤄진다. 파시즘의 다양한 지배전략 앞에서 대중(민중)은 과연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얻어 동의의 기반을 자발적으로 창출해낼 수 있을까.

문제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임 교수의 판단에도 있다. 임 교수의 애초 문제인식과는 달리 “박정희는 적극적 동의를 광범위하게 창출해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한 것이 아니다”라는 게 조 교수의 지적이다. 박정희 체제는 18년 동안 10여 차례 이상 위수령·계엄령·긴급조치 등 “통상적 공권력이 아니라 국가강압력의 최후 보루인 군대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체제”였다.

나아가 박정희 체제는 권위주의적 반공·개발동원체제에 기반한 일종의 ‘준전시 또는 의사전시체제’였다. 폭력적·강압적 반공주의라는 ‘공포의 시대’를 거쳐 근대적 개발의 기획을 통해 ‘남북 경쟁’이라는 또다른 반공주의 효과를 강화한 지배체제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의창출을 위한 지배전략도 불구하고 박정희 체제는 ‘광범위한 동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오히려 그것은 정치위기의 연속이었으며, 폭력적 강압력의 연속과 이에 대한 저항의 연속이었다. 결국 임 교수가 상정한 그런 ‘동의’는 박정희 시대와는 거리가 멀다. 히틀러 체제의 대중동의를 박정희 체제는 획득하지 못한 것이다.

박정희를 설명하기 위해 히틀러를 ‘차용’했던 임 교수는 ‘박정희와 히틀러는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공격에 처했다. 당초의 기획이 박정희 체제에 대한 ‘변호’인지 ‘비판’인지도 의심받고 있다. 과연 대중독재의 ‘깔때기’는 친일·독재에 대한 한국사회의 청산·극복 노력에 의미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까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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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대중적 기반 분석...'근대권력'과 '독재' 혼동
본격서평 : 『대중독재』(임지현 외 편, 책세상 刊, 2004, 588쪽)
2004년 06월 16일   장문석 서울대 

 
장문석 / 서울대 서양사

‘대중독재: 강제와 동의 사이에서’는 파시즘, 스탈린주의, 박정희 체제 등 각국의 20세기 독재의 경험들을 아우르는, 19편의 논문들로 구성된 풍성하고 흥미로운 연구서다. 저자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그 제목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여기서는 ‘대중독재’라는 자못 도전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쟁점들을 간추려 이 책을 읽은 감상과 소견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근대 독재는 “폭력과 억압이라는 악마적 이미지로 단조롭게 채색돼”왔으나, 실제로 그것은 “위로부터의 강제적 동원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동원의 체제를 구축”했다. 이로부터 이 책은 20세기의 독재가 “강제와 폭력이라는 피상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광범위하게 향유했다는 점에서 “대중독재”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이런 시각은 파격적이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하다. 파격적이라 함은 지금까지 독재라고 하면 으레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지배를 떠올리는 사고 습성을 깨뜨릴 것을 이 책이 주문하기 때문이다. 평범하다 함은 잘 생각해 보면 ‘순수한’ 민주주의에서도 경찰과 군대가 상징하는 강제력들이 엄존하듯이 모든 지배에는 동의와 강제의 계기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강제’와 ‘동원’ 사이의 무인지대 탐색

그런데 독재라는 정치 환경에서 ‘동의’를 말하는 데에는 약간의 난점이 따른다. 과연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의’를 말할 수 있을까. 독재를 거부할 때 뒤따를 박해와 유배, 그리고 독재를 수용할 때 누릴 경력과 안정 사이에서 선택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사람들은 어느 이탈리아 역사가가 말했듯이 “소수의 공공연한 반란자”이거나, 아니면 “겉으로는 어떤 것을 말하고 속으로는 다른 것을 생각하는 다수의 니고데모”이기 십상이다. 설령 ‘동의’를 말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존재하는 층위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체제의 가치와 이상에 의식적이고도 자발적으로 점착하는 태도가 있는가하면, 자생적이고 조건부로 독재에 점착하거나 독재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도 이런 ‘동의’의 모호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가령 저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코모다시옹(적응)”이라든지 “수동적 동의”, 혹은 “체념적 순응”과 같은 표현들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동의가 강제의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강제가 동의를 배제하지 않는, 다시 말해 강제와 동의가 상호침투돼 있는 “역사 현실의 복합성”을 강조한다는 점도 저자들의 고민과 생각의 깊이를 보여준다. 여하튼 이 점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강제와 동의라는 이분법적 틀을 현실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이 아니라 이 책의 부제가 보여주는 대로 “강제와 동의 사이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무인지대를 탐색하고 드러내는 작업일 것이다.


‘동의’의 문제처럼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또 다른 논점은 독재가 퇴행이나 정체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인 변화의 도구였다는 것이다. 가령 독재가 모순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산업화와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중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파시즘이 기성의 사회적 가치와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려고 한, 反 부르주아적이고 평등주의적인 ‘혁명적’ 잠재성을 갖고 있다는 견해도 낯익은 주장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인용된 이탈리아 역사가 에밀리오 젠틸레는 파시즘이 신화, 상징, 의식들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려는, 이른바 “인류학적 혁명”을 추구했다고 본다. 확실히 파시즘이 갖는 그런 ‘혁명적’ 차원들을 단순히 선전이나 수사로만 치부해서는 파시즘이 갖는 대중적 호소력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파시즘과 독재, 근대권력의 지형도 위에서 파악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이탈리아 파시즘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극히 이질적인 경향들의 ‘반죽’과도 같았다. 게다가 파시즘의 역사는 늘 까다로운 일련의 협상들과 타협들로 점철돼 있었다. 파시즘의 ‘혁명적’ 잠재성은 기성 제도들의 저항에 부딪쳐야 했고, 그럴 때마다 ‘포퓰리즘’과 ‘사회적 데마고기’의 요소들이 파시즘에 착종돼 있음이 드러나곤 했다. 그렇기에 파시즘을 두고 “전구 하나밖에 못 켜는 발전소”라거나 “무거운 진흙 주전자에 달린 약한 손잡이”라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것도 실없는 소리가 아닌 것이다.


한편, 이 책이 독재의 동의적· 대중동원적 차원을 “문명화된 파놉티콘의 전방위적 감시 체제”와 근대적 국민주권론으로 설명하는 대목도 유익하고 계몽적이기는 하지만 논란을 불러일으킴 직하다. 왜냐하면 대중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들을 동원하며 주체화하는 과정은 이미 그람시나 푸코와 같은 이론가들이 탁월하게 밝혔듯이 독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근대 권력 일반의 속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대중을 근대 주체로 구성하면서 국민주권을 관철시키는 ‘방식’이 전체주의적/독재적/권위주의적이냐, 아니면 다원주의적/민주주의적/자유주의적이냐 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분명 사소한 것이 아니다. 물론 파시즘과 독재를 근대 권력의 속성과 근거로 설명하는 것은 그것들을 반근대적 현상으로 보는 견해에 대한 비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파시즘과 독재를 근대 권력의 지형도 위에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갖는 진정한 장점과 가치다. 그럼에도 근대 권력이 구현되는 ‘방식’의 차이를 논하지 않는 한 근대 국가와 근대 독재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기 쉽다.


인식의 모호함은 실천의 모호함을 낳는다. 즉 제도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독재의 억압 기제와 심리적-신체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근대적 규율 권력의 억압 기제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는 공존하면서 서로를 제한하고 구속하며 변형시킨다. 따라서 진정 문제가 독재와 관련된 것이라면, 강압적 지배 기구에 대한 비판 없는 내면적 반성은 공허하며, 내면적 반성 없는 강압 기구에 대한 비판은 맹목일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대중독재’가 대중에 ‘의한’ 독재이면서 동시에 대중에 ‘대한’ 독재임을 새삼 확인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 책의 실천적인 문제의식, 그러니까 근대 독재의 광범위한 대중적 동의 기반을 밝혀냄으로써 “소수의 사악한 가해자 대 다수의 선량한 희생자”라는 허구적인 이분법을 극복하고 “과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은 완전히 타당하다. 반독재 저항이라는 소수의 경험을 다수의 경험으로 둔갑시키려는 정치적 편의가 우선시되면서 일반 대중이 독재와 공모하고 그것에 연루된 역사가 망각됐고, 그런 정치와 역사의 괴리 속에서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성숙한 시민 의식의 발전이 저해된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내면적 ? 역사적 반성은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적 현실과의 대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 교육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으며, 거꾸로 정치적 비판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이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서양사를 전공해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논문으로 ‘19세기 이탈리아 농촌공업화와 ‘유연한 이행’: 비첸티노 지방의 직물공업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만들기, 이탈리아인 만들기: 리소르지멘토와 미완의 국민 형성’,  ‘무솔리니: 두체신화, 파시즘, 이탈리아의 정체성’ 등이 있고, 역서로는 ‘종말의 역사’(공역), ‘만들어진 전통’(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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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는 열우-민노의 긴밀한 협력”

도올 김용옥의 ‘민중이 헌법이다’는 옳다

 

월간말 editor@digitalmal.com

 

안병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작년에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필자에게 최근 드라마틱하게 진행되었던 탄핵정국은 역사적으로는 유감스러운 사건이었지만 정치학자로서는 ‘고마운’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일상적 시기엔 10년이 걸려야 경험할 수 있는 한국 정치 지형을 며칠만에 압축적으로, 그것도 심층적 단면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탄핵정국은 여야 정치세력간 적대적 대립의 성격과 원인에서부터,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민주적 대통령제로 이행해 가는데서 나타나는 한국의 삼권(입법, 행정, 사법) 분리 제도의 취약성, 사회구성 원리로서 헌법의 한계 등에 이르기까지 잠재되어 있던 모순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했다. 마치 파우스트의 구절처럼, 이처럼 ‘푸르른 소나무’ 같은 현실은 지금까지의 회색빛 이론들을 다시 생명력 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지로부터 집필을 요청 받고 이 글을 쓰는 총선 투표 다음날 저녁 현재, 온갖 신문지상은 정국 시나리오에 대한 경마식 보도로만 넘쳐흐른다. 마치 대장금 드라마의 스펙터클같은 선거의 마력에 취한 듯 대부분의 기사가 지금까지의 갖가지 제도적, 정치적 취약성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심화된 고민을 잊은 채, 주연배우들의 다음 행보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거나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탄핵정국에서 나타난 제도적, 정치적 특성들과 무관하게 자유로운 주체들의 선택이 가능하리라고 필자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연결하여 현실의 복합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비록 필자의 이 글은 아직 충실한 선거결과 자료가 주어지지 않아 짧은 에세이에 불과하지만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작성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선거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4․15 총선의 세 가지 의미에 대한 단상을 기술하는 것을 통해 선거가 위치한 복잡한 현실의 일단을 조금이나마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탄핵정국
선거의 의미 I : 미국식 '다른 수단의 정칼의 패배와 탄핵후폭풍의 승리

탄핵심판론이 줄곧 주요 쟁점이었던 이번 총선을 그 직전의 탄핵정국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고일 것이다. 탄핵정국은 미국의 긴즈버그와 세프터가 부른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로 표현될 수 있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란 민주정치의 꽃인 선거에서 상대 경쟁 후보를 심판하기보다는, 권력이 분산된 정치체제의 일상적 국정운영 과정을 활용하여 선거를 치르지도 않고 상대를 패배시키려는 것을 말한다. 흔히 인사청문회, 특별검사의 기소를 비롯, 사법제도의 정치화와 탄핵 등이 이를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미국의 1998년 탄핵정국이나 한국의 2004년 탄핵정국은 둘 다 거대 야당이 현직 대통령을 ‘반문명세력’(깅그리치 하원의장이 클린튼 대통령을 가리킨 표현)으로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주도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의회의 회기 막바지에 이루어진 ‘다른 수단의 정치는 오히려 곧이어 치러진 선거에서 거대야당이 역풍을 맞게 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특히 놀랄만한 것은 두 나라 모두 현직 대통령의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예외적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예상을 깨고 집권당이 하원에서 5석이나 더 얻었고 한국의 경우에는 아예 제 3당에서 과반수의 당으로까지 뛰어올라 민주화 이후 최초의 ‘단점 정부’(대통령과 의회의 다수당의 당적이 일치함을 말함)가 성립되었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투표율의 측면에서 세계사적 하강의 추세와 달리 16대보다 2.8% 가량 높아지는 이변까지 연출하였다. MBC-엠비존 조사에 따르면 20대 49%, 30대 56%의 투표율은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의 20대(37%), 30대(51%) 젊은 층의 투표율 보다 더 의미 있게 상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에 40대(65%), 50대(67%)는 2000년의 40대(67%), 50대(76%)에 비해 투표율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e윈컴 4월 16일자). 이는 평소 주로 탄핵에 비판적인 젊은층이 높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투표에 참여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선거의 핵심적 의미는 탄핵가결과 같은 ‘다른 수단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것에 분노한 민심의 표출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민심은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규정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법학자 브루스 애커만이 지적했듯이 고양된 시기에 나타난, 다수 민심이 결집된 의사의 표현은 헌법적 해석으로 투영되어야만 한다. 바로 이럴 때만 민주사회에서 사법제도가 귀족주의적인 기구가 아니라 민주정치의 핵심기제로 작동할 수가 있다. 애커만은 민주사회는 일상적 법제정 과정과 특별히 고양된 시기에서 다중의 직접적 의사결집이라는 이원적(dualistic) 바퀴가 균형을 이룰 때 가장 바람직하다고 충고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치게 다중의 의사결집에 부정적이기만 한 우리가 귀담아 들을 만하다.

또한 탄핵정국과 선거운동 기간 동안 나타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에 대한 비판적 민의를 어떻게 제도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낼 것인가가 앞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많은 논자들이 이러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캄를 단지 기존 거대야당이 수구적 세력이기 때문에만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비록 이번 탄핵정국의 경우에는 맞는 지적이지만 미국적 스타일의 ‘다른 수단에 의한 정캄는 민주적 삼권분립이라는 토양 속에서 자라는 바이러스로서 매우 ‘선진적’ 현상이다.

예를 들어 다른 수단의 정치가 빈번히 의존하는 특별검사제가 원래 정치개혁 아젠다로 미국과 한국에 도입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캄는 미국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앞으로도 한국 정치가 민주화될수록 빈번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철저히 추구함이 없이 단지 기존 거대야당의 체질 개선만을 기대한다면 이는 민의의 생산적 반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후 어떤 정당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캄의 남발로 민주정치에 치명적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설계하고 공론화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는 의회를 단지 행정부나 사법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견제하는 방안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본인의 졸고, 「노무현과 클린튼의 탄핵 정치학」(푸른길) 참조).

선거의 의미 II: 거리의 정치의 패배와 ‘거여견제론’ 미디어 정치의 선전

비록 집권여당이 ‘단점 정부’를 구성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한나라당의 개헌저지선 확보는 기존 거대야당이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님을 또한 의미한다. 이들의 부분적 부활의 과정은 한국 정치지형의 현 단계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우선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 것은 별로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슈이지만, 탄핵 가결이후 ‘거리의 정캄가 어떻게 소멸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필자가 보기엔 ‘거리의 정캄가 소멸된 것은 담론적, 법적 차원에서 패배의 결과이다. 우선 담론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자유주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헌법재판소의 법리적 판단을 기다리자는 지배적 담론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항적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도올 김용옥의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는 선언은 비록 생경하게 들리지만 위에서 지적한 애커만의 이원적 민주주의론과 같이 고려해볼 문제의식을 가진다. 그러나 보수적 언론은 물론이고 자유주의, 진보 진영에서도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법적인 측면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 대통령 구하기’의 의미를 내포하는 ‘거리의 정치가 바로 노무현 정부 스스로 강한 자유주의 정부를 지향하며 만들어 놓은 집회시위법에 의해 계속 방해를 받았다. 또한 선거가 다가오면서 열린우리당 같은 한국의 자유주의 진영이 흔쾌히 합의하고, 진보진영이 미적지근하게 대응한 풀뿌리 민주주의 배제 및 미디어 정치 위주의 선거법에 의해 두 세력(자유주의, 진보)은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앞으로 선거법의 창조적 혁신은 주요한 아젠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거리의 정치가 진행 중인 와중에 총선 일정이 눈앞에 와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정치위기로의 발전을 근심하는 많은 정치학자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은 그 연장선상에서 총선에서의 심판이 다가옴에 낙관적 희망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탄핵심판의 민의와 총선에서의 민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총선은 탄핵의 여부를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국민투표가 아니라 정당, 인물의 경쟁이라는 독자적인 문법을 가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한나라당의 효과적인 담론 투쟁과 열린 우리당의 한계가 시작된다. 사실 정책, 인물 선거, 거여견제론이라는 담론들은 그간 수구적 정당 주도의 지역차별주의, 흑색선전 선거, 일당독재를 비판하는 개혁적 담론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 개혁적 담론을 ‘공중납치하여 열린우리당의 탄핵심판론을 비이성적 바람의 정치로 규정하고 권력 견제의 필요성을 심는데 일정 정도 성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대선과 달리 한나라당이 미디어 정치에 썩 성공적으로 적응했다는 것이다.

 미디어 정치의 효과적인 전술은 감성의 정치, 사운드 바이트(몇 초 짜리 구호), 의사(擬似)이벤트(텔레비전을 위해 연출되는 이벤트)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박근혜 대표의 눈물광고, 거여견제론 구호, 전당대회 효과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특히 박근혜 대표는 이 세 가지 전술 구사의 중심에 서서 마치 미국의 엘리자베스 돌(밥 돌 상원의원의 부인) 200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쟁자를 연상시키는 온정적이며 기품 있는 보수주의자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효과적 전술에 힘입은 한나라당의 생존이 장기적으로 한나라당에 이익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영남지역에서 탄핵을 주도하였던 의원들이 모두 생존한 것에서 보이듯이 당의 근본적 체질 혁신에는 여러 장애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실언에서 비롯된 소위 노풍(老風)은 2000년 대선 이후 지속되어온 세대적 분열구도에 불을 끼얹으면서 급속도로 한나라당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의 실언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집권 이후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줄곧 취해온 세대적 갈등의 관점이 필연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정치적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기에 이는 단순한 실언이상의 지속적인 파괴력을 가졌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선거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노풍의 교훈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세대간의 갈등을 강조하는 관점이 곧 진보는 아니다. 오히려 민주적인 가치(시민적 덕성)를 중심으로 모든 세대들을 훈련하고 통합하는 문화를 창출하고 이를 위한 창조적인 제도적 방안들을 고민해야 한다. 선거 이후 각 정치세력들은 자신 나름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기반을 두어 통합의 정치를 추구할 것이다. 과연 어느 정치세력이 선도적으로 자신의 가치와 제도를 다수의 동의로 만들어낼 것인가가 주목된다.

선거의 의미 III: 진보정당의 원내진입과 보수정당 혁신의 시작

최장집 교수가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듯이 ‘냉전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이념적 범위가 지극히 협애한 보수독점적 정당구조가 지속되어온 한국정치는 사회적 요구로부터 괴리된 현상안주적인 무기력한 정당들을 양산해 왔다. 이는 정당 간 차별성이 부재한 속에서, 정책경쟁 대신 증오나 지역감정 동원의 정치가 만연하고 탈정치화를 부추기는 등 수만 가지의 부작용을 낳는 중심 고리로 작용해왔다. 이번 진보정당의 원내진입은 의석수의 단순한 산술적 효과를 넘어, 보수독점 양당 체제의 부분적 붕괴라는 점에서 획기적 의의를 지닌다.

자세한 심층면접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어떤 점에서는 보수적 지역까지 포함하여 10~21%를 상회하는 고른 전국적 지지표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에 대한 계급적 승인이라기보다는 전반적 정치체제 개혁의 중심고리로 민주노동당의 역할에 대한 전술적 기대에 더 기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로부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두 가지 이원적 역할을 부여받은 셈이다.

하나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의 독자적 추구이다. 다시 말해 열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각각 자유주의 정당, 진보 정당으로 이에 걸맞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상호 치열한 경쟁과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우위를 증명해야한다. 아마 이들은 정책입안 단계에서부터 풀뿌리 차원의 대중적 조직들과 결합하여 정책을 형성해가는 심의적 민주주의이자 운동적 정당의 모델을 전면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한국의 지식인들은 의회 내에서의 협력만을 절대적으로 강조할 뿐 제도권 바깥의 세력들간의 결합에 매우 부정적이다. 하지만 21세기 현대 대통령제는 제도권 바깥의 사회적 힘을 부단히 제도 네트워크 내로 투입할 때만이 건강한 혁신이 이루어진다고 지적할 수 있다. 애커만이 지적하듯이 미국의 민주당의 경우 이에 성공하였던 1930년대가 혁신의 시대라면 제도외적 연결이 느슨해지는 오늘날은 퇴조의 시대이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전국적 지지의 민의가 의미하는 것은 이들 두 정당이 현 정치체제의 건강한 혁신이라는 과제에서 긴밀한 협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 이들의 건강한 경쟁과 협조 관계를 가로막을 가장 결정적인 암초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포퓰리즘과 민주노동당의 자유주의 진영에 대한 경직된 거부감일 것이다. 지난 일년간 노무현 정부의 활동엔 규제완화, 정치 영역 축소, 노동 등의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와,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서민의 절대적 대변자라는 포퓰리즘이 기묘하게 결합되어 왔다.

이는 1980년대 이후 남미, 동구 등에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 포퓰리즘과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유형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노무현 정부의 사회적 기반을 지속적으로 침식시켜왔고 그는 이를 노사모 등을 동원한 포퓰리즘으로 보완해왔다. 앞으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정치양식을 대체하는 모델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신자유주의에 전투적 저항의 관점을 가지는 민주노동당 간의 균열은 매우 증폭되리라 예상된다.

특히 한국의 자유주의 정당은 미국과 달리 비판적 지지세력으로 노동진영을 안정적으로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초가 더욱 취약하다. 이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게 ‘다른 수단의 정치'를 구사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반면에 민주노동당은 재신임 정국, 선거 기간에서 보이듯이 그간 자유주의 진영과의 제휴에 때로는 다소 유연하지 못한 태도를 취해왔다. 앞으로 그 제휴가 실패, 자유주의 정부가 흔들린다고 해도, 이 흔들림이 반드시 진보진영의 이익으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막연한 정치환멸주의의 확산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주의적 포퓰리즘과 달리 조지 부시 현 대통령처럼 온정적 보수주의의 얼굴을 한 반동적 포퓰리즘의 길이 다음 한국 대선에서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암초는 노정권의 신자유주의 포퓰리즘과 민노당의 경직성

결국 이번 총선에 나타난 민의에 대한 파악은 단순히 탄핵심판이냐, 거여 견제냐의 표피적 이분법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민의에 대한 해석은 ‘역사의 결’(grains of history)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이러한 역사의 결에 대한 올바른 파악은 각 정치세력들이 무엇이 현재의 지형 하에서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가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 준다. 또한 단순히 정파적인 이익을 넘어서서 탄핵정국에서부터 드러난 제도적, 정치적 결함들을 장기적으로 수정해나갈 시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함의 수정은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이 각 사회적 세력들의 ‘구성하는 행위’(constituting act)의 결과이며 궁극적으로는 헌법(constitution)의 혁신으로 일차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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