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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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백광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만세 소리와 일장기가 소용돌이치는 고향 역 플랫폼에서 남편은 죽음의 전쟁터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고, 아내는 뿌연 유리창 너머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부정을 고백한다···. 모든 죄의 악연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_3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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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더할 나위 없는 렌조 미키히코표 미스터리의 걸작"이라는 극작을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며 고백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때마다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고백이 끝날 때마다 독자들로부터 '뭐, 정말 그랬던 거야?'라는 비명이 절로 터져 나오게 만드는 충격적일 정도로 놀라운 반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_이사카 고타로


평범한 가정에서 네 살 난 조카딸의 사체가 발견된다. 여동생이 문화센터를 다니며 매주 목요일 돌보게 된 조카를 잠시 치매 증상이 있는 시아버지에게 맡기고 외출한 사이 벌어진 일. 흐드러지게 핀 진한 오렌지색 능소화 나무 아래 묻혀있던 네 살 소녀의 죽음으로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흔들리게 된다. 아이와 함께 있었던 시아버지는 치매로 인해 사건에 대한 설명조차 힘든 상황이지만 사건 시각 당시 그 집을 들어갔다 나오는 젊은 남자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는듯했다.


자신의 아이를 언니에게 맡기고 그 시간 호텔에서 불륜남과 있었던 동생 유키코, 조카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은 사토코,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확신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가정을 지켰던 다케히코, 마지막 즈음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토코의 남편 류스케등 일곱 명이 사건에 대한 고백들이 이어지는데, 평범해 보였던 일가족의 음울한 진실들이 밝혀지며 각자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에 빠져들게 된다. 진실된 고백을 읽으며 과연 진실인가? 거짓인 것일까? 진범이 맞는 걸까? 등등을 추리하게 된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듯 의외의 반전 이미지를 갖게 하는 인물이 있어 소름이 돋는다. '와.... 이렇게까지 했다고?' 할 정도로 빈틈없는 구성은 '그래서 대체 범인이 누구라는 거야?'라는 반전을 거듭하며 파국을 향한다. "범인의 정체에 놀라지 않았다면 전액 환불해 드립니다" 환불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튜디오 오드리 공식 계정 @studioodr에서 확인 가능하다. 강렬한 책표지만큼이나 매력적인 소설, 반전에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도전!


나는 먼저 목욕을 하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하려다가 무심코 유키코와 나오코를 돌아봤는데 그 순간 문득 휴일 저녁의 평화로운 광경에서 거짓을 감지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함께 노는 동안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조금 거리를 두고 돌아본 내 시선은 그 방에 넘치는 행복이 그저 겉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그 행복이 오로지 나의 인내로만 버텨가고 있다는 것을, 나의 인내가 절벽을 떠도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 _118~119p.


지금까지도 이 집이 평범하고 평온했던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그런 척했을 뿐이다. 석고의 싸구려 가면에 금이 갔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 깨어진 곳에서 흘러나온 거무칙칙한 콜타르 같은 것이 그날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도... _193p.


#렌조미키히코 #양윤옥 #모모 #반전소설 #소설추천 #환불이벤트 #일본소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스튜디오오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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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지 않을 권리
김태경 지음 / 웨일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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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용서하지않을권리


잔혹한 사건 뒤에 남겨진 사람을 생각한다.

"범죄의 잔혹함에만 주목하는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책!"


해마다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 연간 형법 범죄 발생 건수는 인구 10만 명당 1900~2000건 가량이다. 기대수명을 감안할 때 이는 국민 한 사람이 평생 살아가면서 형법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1이 넘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니 더더욱 주변 사람을 의심하여 불안해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니 누군가 범죄 피해자가 되었을 때 우리의 일부가 상처 입었다고 생각하고 그 아픔을 건강한 방식으로 공감해 주자는 말이고, 그들이 잘 회복해서 건강한 이웃으로 돌아오도록 돕자는 말이다. 여러 연구에서 범죄 영향을 벗어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요인은 '주변의 지지'임을 공통되게 보여준다.

이 말은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범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누군가를 도울 유일한 자원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_50~51p.


잔혹한 범죄 뒤에 남은 피해자, 지독히도 운이 나빠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사회와 이웃이 함께 도울 수 있는 일도 있을까? 범죄 피해자들이 후유증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을 돕기 위해 힘쓰고 있는 김태경 교수의 이야기는 실제로 그가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기반에 두고 있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 과연 옳은 것일까?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시간들을' 회복할 시간이다.


내가 아직 범죄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은 그날,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었던 피해자보다 좀 더 운이 좋아서 였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잔혹한 범죄를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 또는 유족,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시간이 흘렀으니 범인을 용서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금껏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의 잔혹성이나 동기 등 가해자 위주의 보도가 넘쳐나고, 피해자의 존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 갔다. 저자는 잔혹한 사건 뒤에 남겨진 피해자와 가족, 주변인에게서 나타나는 심리적 신체적인 반응과 직접적인 범죄 피해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수사와 재판 절차법체계 내에서 피해자가 경험하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많은 범죄 피해자가 내게 묻는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 사건 기억을 잊을 수 있나요?"라고. 안타깝게도 트라우마적 사건은 생존과 연결된 기억이기 때문에 결코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기억이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게 할 수는 있으며, 심리 상담이 그 과정을 도울 수 있다. _27p.


누군가 범죄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그날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지독히도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직 범죄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은 그날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었던 피해자보다 좀 더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범죄는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범인이 범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당신이 범죄 피해 없이 지내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특별히 선하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단지 아직까지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_90~91p.


국가의 다양한 노력에도 범인이 마음을 먹는 순간 누구나 쉽게 강력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지금부터라도 피해자들이 범죄 피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소중한 이웃으로 남아 살아가도록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기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절박한 이유다. _104~105p.


#김태경 #인문에세이 #에세이 #에세이추천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웨일북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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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김도영 지음 / 봄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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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교도소에들어가는중입니다


고백합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 솔직히 저는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세상 끝에 서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려는 사람들을 받쳐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다시 우리 사회로 돌아오니까요. 더 이상 그들이 다시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이곳에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저는 오늘도 세상 끝에 서서 그들을 기다립니다.

제가 있는 이곳은 그들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재생되어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않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들은 결국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들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지금부터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 안에서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하려 합니다. 담장 안과 밖의 경계선에서 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_프롤로그


항공지도에도 표시되지 않고, 내비게이션에도 검색되지 않으며 카메라, 녹음기, 휴대폰을 소지하고 들어갈 수 없는 곳, '세상 끝'이라고 불리는 사회 최후 전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 대한민국 교도관 김도영.

매일 담장 안으로 출근하는 그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범죄 이력을 가지고 수감 중인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가까이 그들과 생활하며 직접 경험한 교도소 안에서의 생생한 에피소드는 죄와 벌, 사람과 사회, 죄와 벌, 가해자와 피해자 등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는 교도소의 일상은 여느 직업과 다르게 그 난이도나 스트레스가 엄청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스트레스의 강도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걸...)


형기를 마친 사람들은 결국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쉽게 넘길 수 없었지만 읽고 나서도 수많은 생각들과 안타까움에 묵직한 여운이 짙게 남았던 글이기도 했다. 담장 뒷면에서 직접 겪고 보고 들은 일들을 기록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을 '교정' 역할을 하는 교도관의 에세이는 부족한 예산과 인력난 속에서도 어떻게든 교육과 치료를 이어가려는 교도관들의 노력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높은 담장에 가려진 진짜 교도소 이야기

세상 끝을 떠받치는 교도관의 번민과 다짐


"그냥 죽게 놔두시지..." "네?" 아니요,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그녀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응급실로 다시 들어갔다. (···) 그로부터 1년 후. 우리가 살려낸 그 남자는 출소 후 두 달 만에 다시 구속됐고, 죄명은 살인이었다. _38~40p.


"어린 연령의 청소년들이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벌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특히 어린 나이에 구속된 사람들일수록 사랑으로 보살펴줘야 합니다. 그들도 이 사회가 만든 또 다른 피해자 일 수 있습니다." 사회가 만든 또 다른 피해자라... 내 생각에는 그 말이 그들에게 피해당한 피해자를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말 같다.

그 전문가는 단 하루라도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인과 24시간 붙어 대화하며 그들을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 (···) 반성하지 않는 그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오히려 피해자인 그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들었을 때, 나는 분노한다. 강력한 처벌과 교화. 그 갈림길에서 나는 매일 길을 잃는다. _68~69p.


구금의 목적은 무엇일까? 범죄 행위에 상응하는 형벌을 가하는 것? 아니면 범죄자를 사회에서 격리해 사회의 안전을 유지하며 아울러 범죄자 교화와 재범 예방에 힘쓰는 것? 교도관인 나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수용자들은 교도소에 처음 수감될 때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 기본적인 자유조차 빼앗긴다는 박탈감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교도소 안이 교도소 밖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들은 범죄 행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때 자신이 지은 죄를 죄로 생각할 수 있을까? _129p.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또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 나는 오늘도 교도소로 출근한다. 첫 출근 때 선배가 해준 말처럼 이곳은 정말 세상 끝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세상 끝에 서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려는 사람들을 받쳐주어야 한다.

그들은 다시 우리의 사회로 돌아온다. 더 이상 그들이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이곳에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나는 오늘도 세상 끝에 서서 그들을 기다린다. _229~230p.


#김도영 #봄름 #에세이 #교도관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에세이추천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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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2 : 집으로 가는 길 팍스 2
사라 페니패커 지음, 존 클라센 그림, 김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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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팍스2


전쟁으로 가족과 자신이 사랑했던 여우를 야생으로 보내야 했던 피터는 자신을 지지해 주는 볼라 아주머니의 보살핌도 짐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다. 하루빨리 부모님과 살던 집으로 돌아가 혼자 남고 싶은 피터는 전쟁으로 오염된 강을 치유하는 워터 워리어에 합류하여 길을 떠나고...

피터를 떠나 야생에서 자신의 가족을 갖게 된 팍스는 새끼와 가족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런데 그런 팍스를 따라온 새끼 암컷!! 설상가상 함께 하는 중에 오염된 물을 마시고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새끼를 보며 팍스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인데... 소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전편의 이야기를 모른 채 <팍스 2>를 읽기 시작했지만 대략적인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은 없었고, 금방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피터와 팍스의 시점으로 교차되어 진행되는 이야기는 화자가 둘이라 그 호흡이 더 빠르게 느껴지고 이들이 과연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는 피터와 팍스의 마음 변화의 흐름은 사랑과 우정, 친절과 관계등 피하고, 놓고자 했던 것으로부터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갖게 된 피터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처를 딛고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소년과 여우의 이야기는 아이와 함께 읽어도, 어른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소년이 나를 해칠까 봐 두려워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내가 그 소년을 퍽 좋아하고 난 다음부터는 종종 난 소년이 아플까 봐. 소년이 나를 돌봐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지."

"인간을 사랑할 수도 있어요?"

"응"

"그게 두려워요?"

"응, 사랑하고 나면 두려워져. 여우들처럼." _191~192p.


#팍스 #사라페니패커 #존클라센 #칼데콧 #칼데콧상 #고학년추천도서 #청소년문학 #어린이문학 #환경 #제로웨이스트 #동화추천 #그림책 #아르테책수집가 #arte #책수집가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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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순례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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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목소리순례


두 살이 될 무렵, 내 귀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선천적인 감음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장애인 수첩에는 “감음성 난청에 의한 청각장애 (좌:100dB, 우:100dB)” “음성.언어 기능 장애”라고 기재되었다. _12p.


나에게 사진을 찍는 것은.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순례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아빠가 작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하게 되셨다. 때론 소리가 울리고, 귀에서 삐~소리가 나기도 한다고, 피곤하면 그 증상이 조금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셨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는지 잘 몰라 몇 번이고 물어보시기에, 가끔은 버럭 짜증을 내기도 했다. "이야기할 때 잘 들으면 되잖아요!" 그랬다, 그저 듣는 아빠가 처음에 하는 말을 흘려듣고, 말하는 사람이 귀찮게 몇 번이고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비인후과에서도 한 쪽 귀의 청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보청기를 권했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하셨고,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계시지만 해마다 청력이 더 나빠지고 있는 걸 본인도, 가족들도 느끼고 있다. 아빠의 경우 노화로 인한 청력 저하로 언제고 누구든 겪게 될 일이고 나도 그 입장에선 제외될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체감하고 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저자가 직접 세상과 부딪히고 경험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치열하지만, 타인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저자가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오히려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이들보다 더 '자세히' 보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리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듣지 못한다는 것, 침묵의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책을 완독하고도 정리되지 않고 떠다니는 생각과 지금 내가 경험 중인 현실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다른 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을 향한 이해의 발판이 되어줄 이야기다.


‘수어’라고 쓰지만, 결코 ‘손’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손의 표현’과 ‘얼굴과 몸의 표현’,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수어가 성립한다.

수어는 손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몸의 흔들림, 나아가 말하는 사람을 둘러싼 공간까지 보는 언어였다. 자연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찍는 풍경 사진처럼 그 사람의 손뿐 아니라 존재까지 듬뿍 녹여서 찍는 것. 그 방향이 내가 생각하는 ‘손으로 말하는 사람’의 상과 가까운 것 같았다._63p.


시간이란 시곗바늘처럼 일정한 속도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이라는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가면, 순간이 영원처럼 농밀하게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꼈다. _137p.


인생이든 사진이든 무슨 일이든, 단 한 사람과 마주해야 비로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른 한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는 소박한 감동을 거듭하여 느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대화의 원초적 풍경이 일깨워주었다._139p.


사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티 없는 풍경이 펼쳐지는 창으로 그 자리에 있게끔 하는 터무니없는 힘이 사진에는 있다. _162p.


#사이토하루미치 #김영현 #에세이 #까마어리앤의작은서재 #에세이추천 #다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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