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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평점 :

#김밥천국가는날 #도서협찬
#전혜진 소설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진한 콩국수는, 생콩을 여러 시간 물에 불려 부드럽게 삶아낸 뒤 굵은 입자가 느껴지도록 갈아낸 것이었다. 그런 것을 진짜 콩국수라고 생각했듯이, 그렇게 아이에게 먹을 것 하나까지도 정성을 들이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진한 콩국수만이 진짜인 것은 아니듯이, 지금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달려가서 먹을 수 있는 콩국수, 아이가 좋아하고 묽고 가볍고 달달한 김밥천국 콩국수도 괜찮은 것이듯이, 하루 종일 일을 하느라 아이와 보내는 시간 자체가 짧다고 해서 이 사랑이 가짜이거나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_315p. #콩국수
동네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김밥천국,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24시간 열려있었던 곳이라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도 부담 없이 들렀던 분식집. 전혜진 작가의 분식 소설 <김밥천국 가는 날>은 24시간 어둠을 밝히는 인천의 한 김밥천국을 배경으로 현대인들의 고단하고, 치열하고, 짠한 열 편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는 견딜만하지만 매일같이 이어지는 민원전화를 견뎌야 하는 공무원, 취업난으로 1년마다 계약 갱신을 기다려야 하는 비정규직, 베트남에선 엘리트였지만 한국에선 조롱과 차별로 속상한 나날을 보내는 결혼이주여성, 대장암 말기 환자면서 당장 내일을 알 수 없음에도 학습지를 구독하는 세무사, 같은 조직 내에서 성폭력을 당했지만 그 사람의 조직 내 이미지가 좋다는 이유로 신고하지 못했던 성폭력 피해자, 불규칙한 퇴근시간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워킹맘 등 김밥천국의 메뉴 하나에 얽힌 이야기 하나들은 소시민의 치열한 삶과 고단한 하루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치즈떡볶이, 김밥, 오므라이스, 김치만두, 비빔국수, 돈가스, 오징어덮밥, 육개장, 콩국수, 쫄면
언제든 소박한 한 끼를 마련해 주듯, 따뜻한 음식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허기를 위로하는 열 편의 이야기,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꼽고 싶은 올해의 소설!
죽음을 앞둔 사람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걸 봤는데, 아직 40대 후반이면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그렇게 늦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떡볶이에 치즈 한 장을 더하듯이. 무언가가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더라도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쌓아가다 보면 쌓아 올린 작은 것들이 파가 되고 치즈가 되어 자신의 인생에 조금은 더 깊은 맛을 더해줄지도 모른다. _44p. #치즈떡볶이
과장은 직원들이 자꾸 휴직을 하거나 그만두거나 전보 신청을 내는 것을, 요즘 젊은 여자애들은 나약해서 고작 민원 전화 따위에 일 못 하겠다고 그런다고 말했다. 민원 전화 하나를 단호하게 못 끊고 질질 끌려다니느라 업무를 못 하는 게 아니냐고 눈치를 주기도 했다. 그는 모른다. 억지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현재의 인권 감수성에 맞지 않는 유행어나 문제적인 표현에 정당하게 항의하는 사람도 많았다. (중략) 우리 조직은 상명하복 하는 곳이라고 찍어 눌러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튕겨져 나가곤 한다.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별 볼 일 없는 조직이야.
옆에서 보면 멀쩡해 보이지, 솜씨 좋은 사람은 줄 맞춰 썰어 놓아도 터진 흔적을 감출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상은 여기저기, 열심히 일하고 재주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튀어나가는. _63p. #김밥
"세상에는 말이다, 공짜로 크는 사람도 없고, 공짜로 출세하는 사람도 없어요. 남자든 여자든 결혼해서 자식 낳고 잘 키우면서도 사회에서 순조롭게 출세를 했다면 그건 뒤에서 누군가 살림 돌봐주고, 애 키워준 사람이 있었다는 거지. 남자들이 그거 진짜 잘 잊어버리는데, 사람이 그 헌신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기다. 그게 가족 중에 누구든 말이다." _229~230p. #오징어덮밥
사실은 신고해야만 했다. 그게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두려웠다. 피해를 입은 것은 자신인데, 모두가 가족이나 이웃사촌처럼 서로서로 잘 아는 이 공동체 안에서 부당한 오명을 쓰게 될 것 같아서 불안했다. 힘들게 얻은 직장인데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눈앞에 범인을 두고도 멀리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여상히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조차도 쉽지 않아 먼저 눈길을 피해야 했던 것은 언제나 이쪽이었다. 가방 속에 넣은 부의 봉투를 구겨 쥐었다. 그 새끼가 암으로 한껏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은 건 경사스러웠지만, 나 주무관과 그 아이에게는 뭐라도 조금이라도 보태주고 싶다는 생각에 두툼하게 채워 넣은 봉투였다. _278~279p.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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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