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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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호수의일

#이현 #창비


사람은 왜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제 마음의 일을 어째서 자신이 모를까. 그건 제 안에만 담긴 거라서 남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인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면 끝내 아무도 모를 일인데._152p.

_


시간은 순서대로 흐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_89p.


호정의 일상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17살,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게 되기도 했다. 예민했고, 그만큼 감정이 풍부했고 가족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던 마음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흔들리고 복잡했던 그 시간들...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지금 그 시간들을 문득 떠올려보면 불안했고 불완전했지만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계절을 따라 깊어지는 마음과 복잡한 감정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호정의 사랑과 우정의 가족 간의 갈등까지 섬세하게 펼쳐낸 <호수의 일>.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호정의 반으로 전학 온 은기, 소녀와 소년의 불안한, 미안하고 사랑스러운 감정들이 한 겹씩 쌓여가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가족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지 못해 아프기도 했고, 설레었으며, 사랑했고, 붙잡을 수 없어 떠나보내고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시간들을 지탱하게 해준 친구들의 우정과 그러한 호정을 묵묵히 바라보고 응원하는 선생님까지... 이렇게나 공감이 가고 빠져 읽었던 성장소설이 얼마 만인지, 책장을 덮고도 여운이 길게 남아 한참을 머물렀던 소설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겨울과 봄 사이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소설로 꼽아두려 한다. 불안전한 시기를 지나는 청소년과 가족이 함께 읽어도 좋을 소설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흐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있는 호수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도, 추운 겨울 두꺼운 얼음이 얇아지며 깨어지는 봄바람에도 안전하고 잔잔해 보이지만 흔들리는 불안함은 늘 거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집 밖에서의 나는 다르다. 쌀쌀맞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성격이 좋은 애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린다. 편한 친구라고도 한다. 롤링 페이퍼 같은 걸 하면 그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나였고, 엄마가 모르는 나였다. 나는 엄마한테 그런 나를 알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없게 됐다. _65~66p.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대단치도 않은 순간이었다. 은기는 그저 웃으며 뛰어왔을 뿐이다. 아주 먼 곳으로부터 달려온 것처럼. 마침내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웃고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떤 기억은 너무나 강렬해서 결코 그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그때는 그런 줄 전혀 모를 수도 있지만. 아니,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순간들이 이렇게나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그렇게 환히 웃었지, 너는.

이제 와 그 웃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미안해진다. 화가 난다. 나에게? 너에게?

그 무엇보다 은기가 보고 싶다. _122p.


슬픔은 다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시간은 다했다. 그런데도 몇 걸음 가지 않아 은기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어떤 일은 절대로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나쁜 일만 그런 건 아니다. 좋은 일도, 사랑한 일도 그저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눈처럼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눈 내리던 날의 기억마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 밖에도 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말들, 자꾸만 내 마음에 떠오를 말들, 드문드문 떠오르다 언젠가는 다할 말들.

내 마음에 빈방이 생겼다. 그 때문에 나는 슬플 것이다. _356p.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 #소설추천 #청소년소설


본 서평은 창비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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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쬐기 창비시선 470
조온윤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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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쬐기 #조온윤


#그림자무사



나를 대신해서 명랑하게 살아줄

그림자를 찾습니다

나에게는 실체랄 게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거든요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어주어서

나는 마음 편이 눈을 감았다

내일의 일들 따위 잊어버리고

내일모레의 일들 따위 전부 잊어버리고


그림자는 나를 대신해서 친구들을 만나 하하호호

농담을 주고받았다

주말에는 낯선 애인과 영화도 봐주었다

되풀이되는 말싸움도 대신해주고

사랑이고자 하는 게 곧 사랑이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격렬하게 살아주었다


모든 게 가짜라는 걸

들키지 않았던 거 같지만


그림자야

진심이고자 하는 게 곧 진심일 수 있다면

가짜였던 마음은 언젠가 펄떡이는 심장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거기에 없어도

밤이면 거리는 어두컴컴해지고

가로등엔 불이 켜진다는 걸 안다

아, 실재하는 세계를 걷고 싶다


네가 거기 있다는 걸 안다

따라오지 말고 나란히 걷자고 말한다



■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_10p.


■ 우리의 불행을 처음 발견할 사람이 곤란하지 않도록

우리가 불행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_44p.


* 본 도서는 창비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시 #창비 #문득아무페이지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book #bookstagram #책


+ 겨울의 끝자락,

이제는 이 찬바람도 그리워지는 계절이 오겠구나,

곧 봄이 시작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날,

햇살 같은 시집 한 권을 며칠이고 읽었다.

조금 낙낙한 후드를 걸치고, 주머니에는 시집 한 권을 넣고 걷다가 읽다가 그렇게 산책하듯 읽으면 좋을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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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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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다정하기싫어서다정하게

#김현 #에세이 #창비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 느낌이 일어나는 마음을 정(情)이라고, 다정(多情) 한자 그대로 정이 많다고!!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출간 당시부터 눈길을 끌었던 제목이었다. 다정하기 싫은데 다정하다고? 다정하기 싫지만 다정하다고?

개인, 사회, 직장, 관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글을 읽으며 '사랑'과 '삶' 그리고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흘러가듯 이어지는 문장들은 꼬리물기를 하는 것처럼 이어진다. 가벼운듯하다가도 이내 깊게 파고드는 문장을 만나게 되기도 했던 에세이 길고 긴 겨울의 끝자락과 너무 잘 어울렸다고 할까?


나 혼자가 아니라 인류가 공평하게 절망하는 지금. 통쾌하지 않음? 나만 힘이 부치는 것이 아니고 나만 힘에 부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면 정말, 통쾌하지 않음? _25p.


애원하며 살지 않으려고 해도 애원하며 산다. 누구나 그렇다. 아닌 척할 뿐. _48p.


인생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큰코다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하루가 하나둘씩 더 늘어난다는 것. 다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울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하루가 하나둘씩 더 늘어난다는 것. 그러니 허투루 살아라, 청춘이여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보다는 낫지?). _83p.


행복에도 크기가 있을까?

행복에 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크고 무거운 행복이 아니라 작고 가벼워서 어디든 들고 갈 수 있고. 언제든 버릴 수 있고,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행복. 시시한 생각이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 방바닥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겨 잇다 보면 '이거 꽤 행복한걸'하고 어깨를 으쓱하게 되기도 한다. _90p.


어른이 된다는 건 그저 나이를 먹는 일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의 얼굴은 나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의 얼굴은 상상해 보게 한다. 그의 삶을. 그의 삶을 토대로 한 나의 삶을. 우리의 미래를. _149p.


#에세이추천 #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책


본 서평은 창비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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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생각한다 창비시선 471
문태준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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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스럽게


지난여름 낮에 풀을 뽑고 있는 내게 지나가던 그 사람이 말했네

- 그걸 언제 다 뽑겠다고 앉아 있어요? 미련스럽게. 풀 못이겨요.


그리고 가을이 물러서는 오늘 낮에 풀을 뽑는 내게

그 사람은 말했네

- 그걸 왜 뽑고 있어요? 미련스럽게. 곧 말라 죽을 풀인데.


조용히 움직였지만 실은 발랄한 풀과

오늘에는 시름시름 앓는 풀이 그 말을 나와 함께 들었네

잠시 손을 놓고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서. 미련스럽게.


* 본 도서는 창비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아침은생각한다 #문태준 #시 #창비

#문득아무페이지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book #bookstagram #책


+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았던 시는 #꽃 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론 길고 길게만 느껴졌던 겨울,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운게 싫어지는지… ㅠㅠ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게 되는 시들을 읽을 수 있어 며칠을 읽고 또 읽었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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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닮은 소녀
에릭 포스네스 한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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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사자를닮은소녀

#에릭포스네스한센 #손화수 옮김 #잔

 

"할 수 없어요! 이런 옷을 입고 나갈 수는 없다고요. 내 모습을 보세요!"

"괜찮아. 그건 단지 네가 이런 옷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내 눈에는 아주 예쁘게만 보이는걸."

"하지만 다들 이상하게 쳐다볼 거라고요."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지금 내 모습을 보라고요. 나는...."

"하지만 네게 잘 어울려. 매우 이국적으로 보이는걸. 이제 얼른 나와보렴.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어. 이건 네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잖아." _18p

 

서커스단의 홍보 멘트로 시작하는 글의 시작은 독특한 외모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에바가 무대에 오르기 전 무대 뒤의 상황으로 시작하고 있다. 보통의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황금빛 털은 더욱 무성하고 아름답게 길었고 털에 가려진 얼굴에선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갓 태어난 에바를 돌봐준 약사 부부, 에바의 탄생을 도왔던 의사, 그녀의 유모인 한나와 에바를 편견 없이 봐준 무선사 등 그녀의 주변에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돌봐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바가 성장하면서 학교를 다니게 되고, 아이들의 악랄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차별은, 외로움 속에서도 사랑을 갈망하는 소녀의 성장기는 인류와 보편적인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소녀가 어른이 되어가며 겪어가는 성장통이라기엔 참으로 힘겹고도 뭉클한 슬픔이 있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러 시작 부분을 다시 넘겨보게 될 것이다.

 

더 가까이 오세요. 북유럽의 작고 외딴 시골 마을에서 온 저를 가까이에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보세요. 더 가까이 오세요. 곧 장막이 걷힐 거예요.

당신도 더 가까이 오세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벌써 만났을지도 모를 당신. 내가 보이나요? 이제 나를 볼 수 있나요? 더 가까이 오세요. _프롤로그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보다 그들이 예의 바르게만 행동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려나를 사랑해도 타인의 사랑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홀로 지내는 걸 훨씬 좋아했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꿈을 버렸고, 우정이나 동지애에 관한 유치한 환상도 갖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바라지도 않았다. _325p.

 

나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질에 결코 무지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았지만 그를 찾아 나서는 걸 거부했다. 아직 어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제3자의 눈에 비친 내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경멸과 조소가 담긴 말들, 어른들의 손가락질과 놀란 표정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얼굴 그리고 항상 닫힌 문을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고립된 나의 처지. 동시에 내 몸은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불쾌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_353p.

 

#북유럽소설 #소설 #도서출판잔 #까망머리앤의작은소설 #노르웨이 #zhanpublishing #차별 #따돌림 #카펠렌상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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