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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평점 :

가지이 미나코는 최근 몇 년 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한 수도권 연쇄 의문사 사건의 피고인이다. 결혼 사이트를 통해 만난 남자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세 사람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녀가 체포 직전까지 글을 올린, 맛있는 음식과 사치품 사진으로 넘치는 블로그가 화제였다. 취미는 맛집 찾아다니기와 온라인 쇼핑, 요리에도 상당히 자신 있는 것 같았다. 인터넷을 무대로 한 오늘날 세태에 걸맞은 사건이라 언론은 지금까지 지치지도 않고 다루고 있다. 현재 그녀는 도쿄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_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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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욕망을 일으키는 것은 굉장히 즐겁다.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버터가 녹듯이 상대의 눈이 빛나며 드러나는 달콤한 굶주림이 눈에 보인다. 자신의 힘을 동원하여 누군가를 열광하게 하는 것은 나쁜 일, 비열한 일,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_82p.
수도권 남성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 가지이 마나코, 주간지 기자인 리카는 사건의 용의자인 가지이 마나코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녀를 면회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가지이가 원하는 대로 먹어보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둘, 큰 키에 중성적인 외모를 지닌 리카는 자신의 체중을 늘 관리하며 살았는데, 가지이와의 만남을 통해 먹는 즐거움과 '버터'를 마음껏 즐기게 되면서 자신의 삶과 여자로 '관리하는 여자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끊임없이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관리해야 하는 걸까?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인 기지마 가나에는 2017년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 생활을 하고 있으며, 옥중에서 세 번이나 결혼했으며 현재 남편은 <슈칸신초>의 편집자라고 한다. 가지이 미나코가 정말 남성들을 연쇄살인했을까? 그렇다, 그렇지 않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지만 <버터>의 주된 이야기는 음식과 몸에 대한 이야기이다. 허기 지지만 한편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의 피인 우유, 그 우유로 만들어진 진한 '버터'를 마음껏 탐닉할 수 없는 이유는 버터 자체가 체지방의 은유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갓 지은 밥에 냉장고에서 막 꺼낸 에쉬레 버터를 올리고 간장을 조금 올려 먹는 버터 간장밥! 을 먹어야겠다.
예쁘고, 예쁘지 않고를 떠나서 그녀는 일단 날씬하지 않았다. 이 일로 여자들은 격하게 동요하고,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혐오감과 증오를 드러냈다. 그러잖아도 성숙함보다 처녀성이 존중받는 나라다.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철이 들 때부터 누구나 사회에 세뇌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뚱뚱한 채 살아가겠다는 선택은 여성에게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이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동시에 무언가를 갖추기를 요구한다. _30p.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친구는 필요 없어."
가지이는 윤기나는 머리칼을 가볍게 흔들면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숭배자뿐. 친구 따위 필요 없어." _156p.
식욕도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는데, 살은 빠지지 않았다. 166센티미터에 59킬로그램이었다.
그렇지만 분명.... 몇 킬로그램을 빼도 합격점은 나오지 않으리란 것을 리카는 이제 알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워져도, 회사에서 고위직에 올라도, 가령 앞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더라도 이 사회는 여성에게 그리 쉽게 합격점을 주지 않는다.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기준은 계속 올라가고 평가는 점점 엄격해진다. 이런 무의미한 심판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아무리 두렵고 불안해도, 누가 비웃지 않는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도,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_550~5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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