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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상하든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평점 :

#도서협찬 #얼마나이상하든
가끔 누군가의 슬픔과 상실을 들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고통과 고독을, 실패와 불안을 알고 싶어질 때가 있다.
(···) 웃는 이유가 아닌, 우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에게 닿는 일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생의 이치가 그러함에도 모두 다 그 자리에 있어주면 좋겠다.
어떤 이는 당신이 있기에 살아간다.
당신은 또 다른 누군가가 있기에 살아가고, 어쩌면 그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있기에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_작가의 말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로 강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정해진'. 그녀의 주변엔 그녀만큼이나 어디 하나쯤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잠들지 못해서 '불면증 편의점'을 확장해가는 사장, 외출이 싫어 배달을 달고 사는 게으른 극작가, 수녀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동갑내기 배우 지망생, 라면과 김치가 좋아 한국에 눌러 앉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비행기를 타지 못해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영국인, 우체통을 지키기 위해 매일 같이 편지를 넣는 초등학생, 연예인만큼이나 예쁜 맞은편 집의 행운의 여신, 과거를 회상하며 편의점으로 담배와 맥주를 사러 오는 꽃할매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 주변인데 이제 형체 모를 무언가도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다.
정해진 '해바라기 해'자를 쓰는 스무 살의 해진과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끊임없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측은한 마음을 갖고, 도울 수 없더라도 들어주는 마음이라도 갖는 것이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잔잔하게 보여주는듯했다. 또래의 다른 이들보다 조금은 많이 뒤처진 것 같은 해진과 동갑내기 승리는 '그럼에도'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찾은듯한 열릴 결말은 너무도 좋았달까? 불안한데 이상하고, 그런데도 묘하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는 그들의 삶게 꼽사리 끼고 싶을 만큼 따숩고 참 좋았다.
그러니 혹시 길을 가다 그와 닮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도망가지 말고 이렇게 물어봐 주면 좋겠다. 얼마나 이상하든.
"저도 심심하고 쓸쓸해서 그러는데, 저랑 놀아줄래요?"_284p.
몇 년 후에 우리 또래의 인생은 크게 보자면 공무원과 비공무원으로 나뉠 것이다. 그 선택에 따라 어떤 어른으로 살지 정해질 테고, 그리고 그 선택은 다시 내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이며, 어떻게 늙어가고 어떤 식으로 죽어갈 것인지까지 간섭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경우의 수를 다 살아볼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인생이 얄궂게 느껴지곤 했다. 치사하게 연습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삶이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삶에 완벽한 준비라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완벽한 준비를 마칠 수 있다면 그게 어떻게 시작이고 과정일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건 끝과 죽음밖에 없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시작이 서툴고 불안한 건 너무나 당연했다. _50p.
그러고 보면 우리 또래는 모두 비슷비슷한 고민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등한 실패 뒤에 우리는 비등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우리에게는 아직 인내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인고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찰흙 덩어리 같은 현재의 삶은 언젠가 무슨 '모양'이 되어갈 터였다. 다른 무늬와 다른 형태로, 다른 크기와 다른 몫으로. 다만,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게 내일이기를 그리고 또 내일이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게 막막하고 초조할 뿐이었다. _79p.
생각해 보면 "그 나이는 모두 그럴 나이야"라는 말처럼 부당하고 폭력적인 건 없었다. 왜 모든 실패와 좌절은 우리 차지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실패란 녀석은 젊음과 청춘을 너무 호구로 보는 게 문제였다. _155p.
나는 생각했다. 쉽게 돈을 벌고, 아무런 성장통도 겪지 않고 성장을 하고, 시행착오와 반성, 후회 없이 어른이 된다면 우리는 어른의 세계를 너무 만만하게 보게 될지 모른다고.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좌절하다가 고통과 고독 속에서, 혹은 상처와 슬픔 속에서 삶의 본질을 깨달아갈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언제 어른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되느냐'인 것 같았다. _268~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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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