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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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들이 하는 다양한 언어의 발견, 일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그들의 시선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홍인혜(루나)의 첫 에세이부터 눈여겨봐 왔고, 이 책 또한 평이 좋아 기대하고 읽게 되었던 에세이, 역시는 역시!

세월이 흐른 만큼 더 깊어지고 다양해진 저자의 언어와 문장에 새삼 반한 에세이. 조금 오랜 시간을 들고 다니며 아껴 읽게 되었던 책이기도 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행복했던 책.

작가님의 첫 책부터 팬이었지만, 이 책을 통해 더더더 좋아졌다!


다양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좁은 속에 어쩜 이렇게 여러 마음의 지층이 있는지. 어두운 마음 안에도 우울과 슬픔, 고독과 허무의 결이 다르고, 밝은 마음 안에도 설렘과 환희, 감동과 충만함의 계조가 다르다. 이토록 다양한 가슴속 감정들을, 팔랑거리는 색색의 나비 떼를 추스르듯 애써 살아가는 것이 인생 같다. _79p.


나는 끝내 혼자가 되었다.

이것은 만족스러움의 문장이다. (…). 혼자가 꼭 결핍일까? 혼자는 완성의 말이다. 나는 혼자일 때 비로소 자유롭고 평화롭다. 물론 영원히 혼자이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사회적인 인간이라 때로 혼자인 게 진력이 나고 타인이 그립다. 우리의 거제 여행처럼, 함께일 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맺는 관계가 ‘부족한 혼자’ 끼리 만나 서로 완성하는 관계이기보다 ‘완결된 혼자’끼리 서로 부딪치며 건배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혼자는 충분하고 충만하다. _126~127p.


한때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의 차이에 대해 골몰하곤 했다. 어린 날의 낭만적인 감상이었지만 당시 내가 생각한 차이는 ‘투신’이었다. 자신을 던질 수 있느냐 없느냐. 좋아하는 것은 나를 지키며 상대를 애호하는 일이었고, 사랑하는 것은 나를 허물며 상대에게 무너지는 일이었다. _139p.


나를 대할 때의 풍부한 사유와 도량은 남 앞에서 인색해진다.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납작하고 또 납작하다. 인간이라는 다층적인 존재는 ‘나’라는 필터를 거쳐 삽시간에 밋밋해진다. 표정이 어두운 친구는 그저 툭하면 우울한 애가 되고, 종종 지각하는 동료는 마냥 게으른 사람이 되고, 늘 즐거워 보이는 동창은 생각 없이 밝은 녀석으로 일축된다. 나를 설명할 때는 많은 서사를 끌고 들어와 이해와 폭을 넓히면서 타인은 게으르게 헤아린다. 현상만 보고 가볍게 판단하고, 손쉽게 재단한다. _144p.


#도서협찬 #고르고고른말 #홍인혜 #루나 #카피라이터 #만화가 #시인 #홍인혜의언어생활 #에세이 #에세이추천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창비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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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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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거리로나온미술관


공공미술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평범한 일상에 예술의 향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빽빽한 건물 숲속, 장을 보기 위해 찾은 마트 근처, 출퇴근길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 그 어디든 공공미술은 24시간 연중무휴 간판을 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거리 위 작품 관람 시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이나 인원수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심지어 관람선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 언제든 편안하게 산책하듯 다가가 만날 수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가끔, 아주 잠시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면 공공예술 작품들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올 것이다. _에필로그중


굳이 미술관을 가지않아도 일상속에 미술품이 있다?!, 하지만 언제든 볼 수 있는 그 작품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미술품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손영옥 미술평론가의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거리위 조각물과 건축물이 누구의 손을 거쳐 탄생했는지, 미학적인 가치와 시대사적 맥락, 설치된 배경과 어떤 점에 포인트를 두고 보면 좋은지등을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친절한 거리예술 안내서'이다.


다만, 인천공항과 울릉도의 건축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수도권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리위의 미술관 산책은 서울이라는 공간, 수도권에 국한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개인적으론 오랜시간 오가며 보아왔던 작품들이 많아 책을 읽으며 생생하게 이해가 되고 와 닿았지만, 실제로 작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읽었을때의 감상은 어떠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가까이 풍경이 된 작품들의 거리위의 특별한 도슨트 투어는 새로운 미술산책이 되어줄 것이다.


조각은 어디에, 어떻게 세워져 있는가에 따라 맛이 다르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미술관에서 예술의 오라(aura)를 풍기며 전시되는 작품도 거리로 나오는 순간 처지가 달라진다. 미술과에서는 모든 환경이 작품을 떠받들어주지만, 거리로 나오는 순간부터 미술 작품은 일상의 풍경과 경쟁해야 한다. 자전거 거치대,알록달록한 간판등 시선을 뺐는 다른 요소들 때문에 작품은 잡다한 도시 풍경에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_82p.


집을 짓는 건축가들이 공공미술의 영역으로 나온 것은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공공미술이 처음 등장하며 미술관에서 전시하던 조각을 크기만 키워 야외에 내놓는 방식이 성행하자, 한쪽에서는 이에 대한 반성이 일었다. 미술작품이 놓이는 장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1970년대 중반부터는 주변의 건축물과 풍경을 고려하는 공공미술이 새롭게 태어났다. 이 시기부터 건축가들이 공공미술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국내에서는 2010년대 들어 현대미술 분야에 건축가들이 뛰어드는 흐름이 생겨났다. _246p.


#손영옥 #자음과모음 #자모단3기 #자모단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에세이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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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집은 내가 되고 - 나를 숨 쉬게 하는 집
슛뚜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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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가끔집은내가되고


가장 상징적이고 쉽기 때문에 모두들 집을 집이라고 부르지만, 꼭 진짜 '집'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편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럼 그곳은 곧 나의 집이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관계에서도 상호작용은 중요하다. 내가 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집은 정말 내가 정의 내린 공간이 되어버린다. (···) 누군가 살지 않으면 의미 없는 콘크리트 건축물일 뿐이지만 누군가 들어와 애정을 주는 순간 그곳은 달라진다. (···)

이 책을 시작하기 전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집은 어디이며 어떤 의미인지. _10~11p.


내가 머무는 공간에 취향이라는 것이 담겨 있었던가?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며 덜어낸 짐도 많지만, 쌓아두고 보면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싶은 물건도 많다. 이사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이삿짐을 부려놓은 그대로의 상태로 수면 공간만을 조금 비워두고 '날이 풀리면 정리할 거야' 하며 미루고 있던 차였는데...


<가끔 집은 내가 되고>를 읽으며 생각도 많아지고 공간, 취향, 생각이 나 습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다 필요한 것들일까? 살아가며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을 가지고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을 부렸던 적이 있었던가? 단순히 '나는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기엔 게으르고 생각하지 않아서인 건 아니었을까? 저자의 글을 읽다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다시 페이지를 넘기며 타인의 취향을, 공간을, 생활을 보며 온전한 나만의 공간에 대해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나의 집은,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


막내 인턴도, 졸업 준비 위원회 미디어 팀장도, 누구의 딸도 언니도 누나도 아닌, 그냥 나. 좋은 친구들과 지인이 많아 그 시기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감정을 처리할 시간은 분명히 필요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순간에는 누구나 각자의 가면을 쓰게 된다. 에의 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있고, 도리일 수도 있는 가면, 하지만 낡은 원룸 오피스텔에서만큼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베베와 함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세상과 단절될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 _28~29p.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살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삶에 목표라는 게 없고, 태어났지만 죽지는 못해 그저 하루하루 살고 있는 '살아지는 삶'. (···) 살아지는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지만, 주체적으로 사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목표가 필요하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_84~85p.


내가 정성스럽게 꾸미고 가꾼 집. 깨끗하고 쾌적한 집, 애정이 담긴 집에 사는 사람은 당연한 수순으로 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농도가 짙어지고 집에 머물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안도감과 편안함 같은 감정들이 차오른다. _182p.


#슛뚜 #공간에세이 #일상기록 #상상출판 #상상팸12기 #상상팸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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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대한민국만세 - 삼둥이와 함께한 지구 반대편 여행 기록
송일국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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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유럽에서대한민국만세


아이들은 여행하기 가장 좋은 나이였고, 유럽은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의 거대한 놀이터가 되어주었습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과 수천·수백 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문화 유적들, 카메라만 가져다 대도 그림이 되는 풍경들까지,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인생의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대한, 민국, 만세는 아직까지 당시의 여행을 재미의 척도로만 판단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것은 살아가는 동안 큰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_prologue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삼둥이 대한, 민국, 만세. 삼둥이가 코로나 시국 시원시원한 유럽여행 포토에세이로 찾아왔다. 여행은 2018년쯤인 걸 보니 지금은 훌쩍 더 성장했겠지만, 기억 속 그 쪼꼬미들이 그대로 키만 조금 더 큰 것 같고 더욱 개구진 표정의 삼둥이들이 유럽을 여행하며 담은 사진들은 여행에세이보다는 포토에세이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보다는 아이들 뒤로 빼꼼히 보이는 풍경에, 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더욱 눈길이 가는 사진들이다. 유럽을 여행하며 아빠 송일국이 담은 가족의 사진과 짧은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어, 랜선 이모 삼촌들은 또 설레겠다~ 책의 시작과 마지막에 대한, 민국, 만세가 직접 쓴 삐뚤빼뚤 손글씨 또한 살짝 심쿵사!


#송일국 #삼둥이 #대한민국만세 #상상출판 #여행에세이 #포토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상상팸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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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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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끗의 자리에서, 끗과 함께, 한 끗 차이로도 완전히 뒤집히는 세계의 비밀을 예민하게 목격하는 자로 살아가고 싶다. 여기 이곳, 단어들이 사방에 놓여 있는 나의 작은 놀이터에서. _260p.


2년 전 여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으로 처음 알게 된 안희연 시인. 시인이 이야기하는 단어들은 어떻게 풀어갈까?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를 위한 선물로 구입했던 책을, 1월을 시작하며 매일 밤 조금씩 넘겨 보았다. 단어의 사유들과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 다정한 태도가 단어에서 시작해 오늘의 삶 한복판에 이르게 한다. 단어와 일상을 살피며 생생한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글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놓칠세라 야무지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매일 같은 일상, 그 안에 어떤 단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지 부러 찾아보지 않아서였을까? 매일같이 짧은 기록을 남기는 일기에도, 쓸만한 일상이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단어장과 에세이들을 소리 내어 조용히 읽어보기도 하고, 마음이 닿는 단어들과 문장들은 독서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면서 '내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이다. 궁금하쥬? 궁금하면 읽어보아요. ^^


버티어 대항하는 힘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어.

정말 그렇다. 지금이 있기에 그때는 더욱 환하거나 어두워지고, 저곳이 있기에 이곳은 특별하거나 사소해진다. 한 방향으로만 뻗어가는 힘이나 목소리는 금세 상하거나 차게 식기 마련이다. 싸움도 둘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혼자 하는 싸움이더라도 사실은 혼자 안의 둘이 싸우는 것처럼.

그러니까 소망은 크든 작든 원래가 까다로운 것이 맞다. _17p.


이따금 나의 생활 반경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 때 먼 곳의 여름을 떠올린다. 나라는 존재가 운명 혹은 시간의 몰드(거푸집, 주형, 틀) 안에서 서서히 구워지는 반죽 같을 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유연함, 부드러움, 생기는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간다는 생각에 두려울 때. 먼 곳의 여름을 떠올리면 나의 몰드가 그만큼 넓어지고 환해지는 기분이 든다. _50p.


삶이란 흘러가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손에 잡히기도 한단다. _83p.


삶이 형벌 같다는 마음. 그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세상이 내게 감추고 있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흐릿해진다.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살도록 프로그래밍 된 게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딱 한 번, 가장 찬란한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깨닫기도 전에 끝나 있다. (지금인가? 설마.) _109~110p.


#단어의집 #안희연 #한겨레출판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에세이추천 #추천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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