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라이프 - 삶을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서
사사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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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엔드오브라이프

#사사료코 #스튜디오오드리


이 책은 각 장 제목대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재택 의료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취재하고 그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원고에 쓰지 못한 일까지 7년 동안 적지 않은 죽음을 접하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질문을 던져 왔는데도 여전히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 마음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탐욕스럽게 해야 한다. 망설임 속에서라도 내 발이 가려는 방향으로 한걸음 내디뎌야만 한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큰 목소리에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지워져버릴 것 같다면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성실하게 살아가려 하는 것. 그것이 종말기를 지내는 사람들이 가르쳐준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다. 적어도 나는 그들에게서 '삶'을 배웠다. _ 375~376p.


재택 의료 현장에서 만난 환자, 보호자, 의료인을 취재한 논픽션인 <엔드 오브 라이프>는 생의 마지막,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일상이 드라마가 아니듯, 환자가 어떤 의사와 의료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던 글이기도 했다. 더 이상 병원에서의 치료가 무의미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 병원에서 남은 생을 마감할 것인가?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가족과 집에서 생을 마감할 것인가? 재택 의료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급작스러운 상황이 언제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위증증 환자를 전문지식이 없는 가족이 케어할 수 있는가? 재택 의료를 선택한 이들을 위해 의료인들은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마지막 삶에, 그 마지막 순간에 모두가 열심히 살았다고 이제 편히 쉬라고 손뼉을 치며 보낼 수 있는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는, '나는 어떻게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으로 남겨지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에겐 생소한 재택 의료가 어쩌면 머지않은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급속도로 노화되어가고 있는 사회, 병원과 호스피스 병동에서 이 모든 이들을 수용해 낼 수 있을까? 하지만 가족의 일상도 있기에 쉽지 않은 일임은 알지만 사회와 의료인, 가족의 호흡이 맞는다면 불가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살아온 그대로의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 된다면 조금 더 잘 살아내고 싶지 않을까? 하루하루를 보다 더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퀄리티 오브 라이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애초에 삶의 질이란 대체 뭘까. 무리를 해서 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후회할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과연 도전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로 돌아간 선택을 다시 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때 그럴 걸 그랬다'하고 후회하는 생물이다. 돌이킬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담당 의료진도 "꼭 실현시키세요" 하고 환자의 등을 밀어주기를 주저하게 된다. _29~30p.


왜 계속 살아야만 하는 거죠? 작가님 같으면,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 생각도 못 하는 인생을 몇십 년씩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 통증을 참아내는 의미 같은 게 있을까요? (···) 나는 모르겠다. 안락사를 인정하는 나라는 있다. 국경을 넘어가면 또 다른 윤리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으로 가면 나카야마는 편안해질 수 있을까. _132p.


재택 의료라고 하면 의사나 간호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기 쉽지만 일상생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간병인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생활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소리 지르고 욕하며 막무가내로 구는 환자를. 혼자 사는 치매노인을 우리는 어떻게 돌봐야 할까?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를 가족 주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채 돌보는 것이 가능할까? 재택 의료의 현실은 어디에 와 있는가? _136p.


나의 선택에 따라 가족이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된다면 어떨까?

길고 가혹한 투병 생활로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을 보면서도 계속 힘내라고, 견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한 선택지가 늘어나면서 선택에 따르는 가혹함도 자꾸만 늘어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놓을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 _240p.


#천감재 옮김 #endoflife #studioodr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인문에세이 #에세이 #에세이추천 #재택의료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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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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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관통당한몸

#하니포터2기 #크리스티나램


나는 1998년에 이르러서야 강간이 전쟁범죄로 처음 처벌되었다는 사실(르완다 국제 형사재판소의 아카 예수 판결-옮긴이)에 충격을 받았다. (…) 제2차 세계대전 때 자행된 잔학 행위에 분노하며 승전국은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뉘른베르크와 도쿄에 최초의 국제재판소를 세웠다. 그러나 성폭력 기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_21~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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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살아가는 동안 세 명 중 한 명꼴로 성폭력을 경험한다. 성폭력은 인종도 계급도 국경도 가리지 않는다.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 변호사를 찾아갈 여력이 없고 미디어에도 접근할 수 없는 여성은 어떻게 할까? 강간이 무기로 쓰이는 나라의 여성은 어떻게 할까? _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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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안전한 집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이 모든 일이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여성들도 이런 일이 자신에게 결코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분쟁지역 성폭력은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다. 콩고의 한 여성이 말한 것처럼 숲에서 시작돼 계속 타오르는 불과 같다. 침묵을 지키는 한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 괜찮다고 말하는 일에 공모하는 것이다. _476p.


종교적인 이유, 때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약탈하고 빼앗기 위해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왔던 전쟁. 전쟁이라는 지옥문이 열리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가야 한다. 가족을 무너뜨리고 마을을 텅 비게 만드는 전시 강간은 인류가 아는 가장 값싼 무기이다. 전시 강간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한다. 전쟁에서 당연하게 약탈되는 여자들, 그리고 재산처럼 이리저리 팔려 다니고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는 강간. 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러한 일은 반복되고 더욱 잔인해지는 것일까?


세계 곳곳의 전장에서는 지금도 여성의 몸에 끔찍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그 어떤 전쟁무기도 강간보다 끔찍하지 않을 것이다. 전시 강간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비극의 한계치를 넘어선다. 1994년 르완다 집단 강간, 보스니아의 가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 독일 여성에 대한 소련 군대의 성폭행과 하루에 1000명의 여성이 강간당하고 있다는 콩고까지 전시 강간 생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끔찍한 피해와 범죄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생존과 극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아픈 역사가 있기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읽고 소리 내어 말하며, 전시 강간이라는 비극적인 일이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글이었다.


강간당한 여성의 수는 전시 강간을 ‘전쟁의 흔한 부산물’로 여길 만한 수치를 훨씬 넘어섰다. 강간의 목적은 적에게 모멸감을 주고 사기를 꺾는 것만이 아니었다. 야디지족과 보코하람에 납치된 나이지리아 소녀들, 로힝야족에게서 내가 목격한 것처럼 파키스탄 군에게는 강간도 체계적인 전쟁 무기였다.

“개별적으로 벌어진 일들이 아닙니다. 고의적이고 정책이고 이념에 근거한 정책입니다.” 모피둘이 말했다. “무슬림에 의한 무슬림의 대량학살이지요. 우리를 열등한 존재로, 적절한 무슬림이 아닌 존재로 낙인찍고 우리를 학살한 겁니다. 강간은 불신자들을 정화해야 할 그들의 ‘의무’였습니다.” _121p.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_240p.


모든 남자는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고삐가 풀릴 수 있는 잠재적 강간범인가? 그는 내 질문에 깊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무기를 들고 있고, 처벌이나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남자들은 어느 정도까지 똑같은 짓을 저지를까요?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_340p.


그건 성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는 수법입니다. 피해자의 내면에서 사람이라는 느낌을 빼앗는 것이지요. '너는 존재하지 않아,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걸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의도적인 전략이지요. _363p.


2013년 6월부터 2016년까지 48명의 아이들이 강간당했다. 가장 어린아이는 18개월 아기였고,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열한 살이었다. _402p.


이 책은 전시 강간을 포괄적으로 다룬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슬프게도 전시 강간은 너무 많은 나라에서 일어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부터 콜롬비아까지, 그리고 과테말라부터 남수단까지. 그 모두를 다루었다면 내가 짜는 태피스트리는 결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분쟁하 성폭력에 대한 UN 사무총장 특별 대표실은 2018년 보고서에 전시 강간이 일어나고 있는 19개 나라와 전시 강간을 자행하는 12개 나라의 군대와 경찰, 39개 비국가행위자의 목록을 공개했다. 보고서도 인정했듯 결코 포괄적이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목록일 뿐이다. _440p.


#강경이 옮김 #한겨레출판 #추천도서 #사회정치 #문장발췌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book #이밤이책 #독서노트 #몰스킨독서노트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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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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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호수의일

#이현 #창비


사람은 왜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제 마음의 일을 어째서 자신이 모를까. 그건 제 안에만 담긴 거라서 남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인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면 끝내 아무도 모를 일인데._152p.

_


시간은 순서대로 흐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_89p.


호정의 일상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17살,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게 되기도 했다. 예민했고, 그만큼 감정이 풍부했고 가족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던 마음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흔들리고 복잡했던 그 시간들...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지금 그 시간들을 문득 떠올려보면 불안했고 불완전했지만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계절을 따라 깊어지는 마음과 복잡한 감정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호정의 사랑과 우정의 가족 간의 갈등까지 섬세하게 펼쳐낸 <호수의 일>.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호정의 반으로 전학 온 은기, 소녀와 소년의 불안한, 미안하고 사랑스러운 감정들이 한 겹씩 쌓여가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가족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지 못해 아프기도 했고, 설레었으며, 사랑했고, 붙잡을 수 없어 떠나보내고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시간들을 지탱하게 해준 친구들의 우정과 그러한 호정을 묵묵히 바라보고 응원하는 선생님까지... 이렇게나 공감이 가고 빠져 읽었던 성장소설이 얼마 만인지, 책장을 덮고도 여운이 길게 남아 한참을 머물렀던 소설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겨울과 봄 사이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소설로 꼽아두려 한다. 불안전한 시기를 지나는 청소년과 가족이 함께 읽어도 좋을 소설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흐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있는 호수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도, 추운 겨울 두꺼운 얼음이 얇아지며 깨어지는 봄바람에도 안전하고 잔잔해 보이지만 흔들리는 불안함은 늘 거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집 밖에서의 나는 다르다. 쌀쌀맞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성격이 좋은 애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린다. 편한 친구라고도 한다. 롤링 페이퍼 같은 걸 하면 그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나였고, 엄마가 모르는 나였다. 나는 엄마한테 그런 나를 알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없게 됐다. _65~66p.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대단치도 않은 순간이었다. 은기는 그저 웃으며 뛰어왔을 뿐이다. 아주 먼 곳으로부터 달려온 것처럼. 마침내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웃고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떤 기억은 너무나 강렬해서 결코 그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그때는 그런 줄 전혀 모를 수도 있지만. 아니,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순간들이 이렇게나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그렇게 환히 웃었지, 너는.

이제 와 그 웃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미안해진다. 화가 난다. 나에게? 너에게?

그 무엇보다 은기가 보고 싶다. _122p.


슬픔은 다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시간은 다했다. 그런데도 몇 걸음 가지 않아 은기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어떤 일은 절대로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나쁜 일만 그런 건 아니다. 좋은 일도, 사랑한 일도 그저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눈처럼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눈 내리던 날의 기억마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 밖에도 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말들, 자꾸만 내 마음에 떠오를 말들, 드문드문 떠오르다 언젠가는 다할 말들.

내 마음에 빈방이 생겼다. 그 때문에 나는 슬플 것이다. _356p.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 #소설추천 #청소년소설


본 서평은 창비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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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쬐기 창비시선 470
조온윤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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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쬐기 #조온윤


#그림자무사



나를 대신해서 명랑하게 살아줄

그림자를 찾습니다

나에게는 실체랄 게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거든요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어주어서

나는 마음 편이 눈을 감았다

내일의 일들 따위 잊어버리고

내일모레의 일들 따위 전부 잊어버리고


그림자는 나를 대신해서 친구들을 만나 하하호호

농담을 주고받았다

주말에는 낯선 애인과 영화도 봐주었다

되풀이되는 말싸움도 대신해주고

사랑이고자 하는 게 곧 사랑이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격렬하게 살아주었다


모든 게 가짜라는 걸

들키지 않았던 거 같지만


그림자야

진심이고자 하는 게 곧 진심일 수 있다면

가짜였던 마음은 언젠가 펄떡이는 심장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거기에 없어도

밤이면 거리는 어두컴컴해지고

가로등엔 불이 켜진다는 걸 안다

아, 실재하는 세계를 걷고 싶다


네가 거기 있다는 걸 안다

따라오지 말고 나란히 걷자고 말한다



■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_10p.


■ 우리의 불행을 처음 발견할 사람이 곤란하지 않도록

우리가 불행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_44p.


* 본 도서는 창비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시 #창비 #문득아무페이지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book #bookstagram #책


+ 겨울의 끝자락,

이제는 이 찬바람도 그리워지는 계절이 오겠구나,

곧 봄이 시작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날,

햇살 같은 시집 한 권을 며칠이고 읽었다.

조금 낙낙한 후드를 걸치고, 주머니에는 시집 한 권을 넣고 걷다가 읽다가 그렇게 산책하듯 읽으면 좋을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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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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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다정하기싫어서다정하게

#김현 #에세이 #창비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 느낌이 일어나는 마음을 정(情)이라고, 다정(多情) 한자 그대로 정이 많다고!!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출간 당시부터 눈길을 끌었던 제목이었다. 다정하기 싫은데 다정하다고? 다정하기 싫지만 다정하다고?

개인, 사회, 직장, 관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글을 읽으며 '사랑'과 '삶' 그리고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흘러가듯 이어지는 문장들은 꼬리물기를 하는 것처럼 이어진다. 가벼운듯하다가도 이내 깊게 파고드는 문장을 만나게 되기도 했던 에세이 길고 긴 겨울의 끝자락과 너무 잘 어울렸다고 할까?


나 혼자가 아니라 인류가 공평하게 절망하는 지금. 통쾌하지 않음? 나만 힘이 부치는 것이 아니고 나만 힘에 부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면 정말, 통쾌하지 않음? _25p.


애원하며 살지 않으려고 해도 애원하며 산다. 누구나 그렇다. 아닌 척할 뿐. _48p.


인생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큰코다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하루가 하나둘씩 더 늘어난다는 것. 다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울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하루가 하나둘씩 더 늘어난다는 것. 그러니 허투루 살아라, 청춘이여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보다는 낫지?). _83p.


행복에도 크기가 있을까?

행복에 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크고 무거운 행복이 아니라 작고 가벼워서 어디든 들고 갈 수 있고. 언제든 버릴 수 있고,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행복. 시시한 생각이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 방바닥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겨 잇다 보면 '이거 꽤 행복한걸'하고 어깨를 으쓱하게 되기도 한다. _90p.


어른이 된다는 건 그저 나이를 먹는 일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의 얼굴은 나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의 얼굴은 상상해 보게 한다. 그의 삶을. 그의 삶을 토대로 한 나의 삶을. 우리의 미래를. _149p.


#에세이추천 #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책


본 서평은 창비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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