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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평점 :

#도서협찬 #관통당한몸
#하니포터2기 #크리스티나램
나는 1998년에 이르러서야 강간이 전쟁범죄로 처음 처벌되었다는 사실(르완다 국제 형사재판소의 아카 예수 판결-옮긴이)에 충격을 받았다. (…) 제2차 세계대전 때 자행된 잔학 행위에 분노하며 승전국은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뉘른베르크와 도쿄에 최초의 국제재판소를 세웠다. 그러나 성폭력 기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_21~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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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살아가는 동안 세 명 중 한 명꼴로 성폭력을 경험한다. 성폭력은 인종도 계급도 국경도 가리지 않는다.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 변호사를 찾아갈 여력이 없고 미디어에도 접근할 수 없는 여성은 어떻게 할까? 강간이 무기로 쓰이는 나라의 여성은 어떻게 할까? _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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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안전한 집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이 모든 일이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여성들도 이런 일이 자신에게 결코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분쟁지역 성폭력은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다. 콩고의 한 여성이 말한 것처럼 숲에서 시작돼 계속 타오르는 불과 같다. 침묵을 지키는 한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 괜찮다고 말하는 일에 공모하는 것이다. _476p.
종교적인 이유, 때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약탈하고 빼앗기 위해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왔던 전쟁. 전쟁이라는 지옥문이 열리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가야 한다. 가족을 무너뜨리고 마을을 텅 비게 만드는 전시 강간은 인류가 아는 가장 값싼 무기이다. 전시 강간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한다. 전쟁에서 당연하게 약탈되는 여자들, 그리고 재산처럼 이리저리 팔려 다니고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는 강간. 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러한 일은 반복되고 더욱 잔인해지는 것일까?
세계 곳곳의 전장에서는 지금도 여성의 몸에 끔찍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그 어떤 전쟁무기도 강간보다 끔찍하지 않을 것이다. 전시 강간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비극의 한계치를 넘어선다. 1994년 르완다 집단 강간, 보스니아의 가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 독일 여성에 대한 소련 군대의 성폭행과 하루에 1000명의 여성이 강간당하고 있다는 콩고까지 전시 강간 생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끔찍한 피해와 범죄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생존과 극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아픈 역사가 있기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읽고 소리 내어 말하며, 전시 강간이라는 비극적인 일이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글이었다.
강간당한 여성의 수는 전시 강간을 ‘전쟁의 흔한 부산물’로 여길 만한 수치를 훨씬 넘어섰다. 강간의 목적은 적에게 모멸감을 주고 사기를 꺾는 것만이 아니었다. 야디지족과 보코하람에 납치된 나이지리아 소녀들, 로힝야족에게서 내가 목격한 것처럼 파키스탄 군에게는 강간도 체계적인 전쟁 무기였다.
“개별적으로 벌어진 일들이 아닙니다. 고의적이고 정책이고 이념에 근거한 정책입니다.” 모피둘이 말했다. “무슬림에 의한 무슬림의 대량학살이지요. 우리를 열등한 존재로, 적절한 무슬림이 아닌 존재로 낙인찍고 우리를 학살한 겁니다. 강간은 불신자들을 정화해야 할 그들의 ‘의무’였습니다.” _121p.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_240p.
모든 남자는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고삐가 풀릴 수 있는 잠재적 강간범인가? 그는 내 질문에 깊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무기를 들고 있고, 처벌이나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남자들은 어느 정도까지 똑같은 짓을 저지를까요?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_340p.
그건 성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는 수법입니다. 피해자의 내면에서 사람이라는 느낌을 빼앗는 것이지요. '너는 존재하지 않아,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걸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의도적인 전략이지요. _363p.
2013년 6월부터 2016년까지 48명의 아이들이 강간당했다. 가장 어린아이는 18개월 아기였고,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열한 살이었다. _402p.
이 책은 전시 강간을 포괄적으로 다룬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슬프게도 전시 강간은 너무 많은 나라에서 일어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부터 콜롬비아까지, 그리고 과테말라부터 남수단까지. 그 모두를 다루었다면 내가 짜는 태피스트리는 결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분쟁하 성폭력에 대한 UN 사무총장 특별 대표실은 2018년 보고서에 전시 강간이 일어나고 있는 19개 나라와 전시 강간을 자행하는 12개 나라의 군대와 경찰, 39개 비국가행위자의 목록을 공개했다. 보고서도 인정했듯 결코 포괄적이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목록일 뿐이다. _4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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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