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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평점 :

"돈이 제일 무섭다는 거 놀면서 깨달았어."
진심이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트라우마 운운하기에 수경은 너무 현실적이었다. 어떤 분노는 가난 때문에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수습되어버린다. _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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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 알림을 볼 때마다 늘 대기 상태로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 끄면 되는데 그게 도무지 쉽지가 않다. 딱히 할 일이 없으면 슬슬 운전해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런 식으로 자신을 설득하다 보면 핸드폰을 놓을 수 없게 된다. 단가가 점차 인상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권을 쥔 도박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 이쯤에서 배팅해? 쉬기로 결심했더라도 그런 결심은 금세 무효가 된다. 그런 식으로 휴일과 노동일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이젠 주말에 쉬는 것조차 죄책감이 느껴졌다. _172p.
노부부와 경력단절 4년차의 남편, 수경이 실질적인 가장이었지만 '사건'으로 인해 사람을 한다는게 두려워졌다. 수경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던 가족의 침몰을 느끼고 이제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30년 된 15평짜리 낡은 빌라에 사는 여섯 가족.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가족들은 저마다 플랫폼에서 무언가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택배 배달, 배달 앱, 틴챗, 키오스크 사용, 헬프 미 시스터 등 앱을 통해 사람을 상대할 일이 없는 플랫폼이 안전한 세상인 것만 같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플랫폼이야말로 안전하지 않는 곳일지도 모른다.
답답할법도 하건만 다그치치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최선을 다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가족들, 다양한 세대의 인물들이 지금을 살아내는 모습은 때론 고통스럽지만 '지금'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오늘을 살아간다. 올망졸망한 가족들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는 현실의 막막함 속에서도 한 조각의 기쁨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들의 삶의 연대를 묵묵히 응원하게 된다.
"현재만 사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을 때가 있어요. 현재가 제일 중요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일거리가 죄다 일회적이고, 일거리를 캐치하는 순간에만 노동자가 되는 거니까 나머지 시간엔 노동자로서의 존재감이 희박해지죠. 그런데 자꾸 드는 생각이, 일이라는 게 원래 이런 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일거리를 캐치해서 살면 되지 않을까, 그래요. 이상해지는 거 같아요. 사람이." _281p.
어쩌면 양천식 씨의 말대로 기적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 모두 이렇게 한마음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웃고 있다는 것이 기적.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모든 게 기적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_3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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