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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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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여객기와 똑같은 비행기가 JFK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것이 지난 3월 10일 17시 17분의 일이었습니다. 정확히 백육 일 전이지요." (···)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동일한 비행기가 두 번 착륙을 했다고요?"_186~1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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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바뀝니다. 예전과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고, 집세를 내야 하니까 일하러 가고, 먹고, 마시고, 예전처럼 사랑을 나눌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살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착각을 증명하는 모든 것에 눈을 감고 삽니다. 그게 인간이죠. 우리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_437p.
21년 3월 10일 파리에서 출발한 뉴욕행 에어프랑스 여객기가 극심한 난기류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착륙한다. 그리고 세 달 뒤인 6월 24일, 동일한 여객기가 동일한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나 동일한 착륙 지점으로 향하고 있는데... 도플갱어, 또는 그대로 복사한 것 같은 똑같은 기장, 똑같은 승무원, 그리고 승객들... 이를 사건으로 인지한 미국정부는 여객기를 뉴저지 공군기지로 비상착륙 시키고, 극비리에 과학자들을 소집한다. 초자연적 현상, 신의 개입, 외계인, 프로그래밍설 등등 3월에 뉴욕에 도착해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 3개월이라는 시간을 건너 6월에 나타난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들의 DNA까지 일치하는데, 이를 뭐라 입증해야 할지 이들의 삶은 어떤 선택을 하고 나아가는지를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성실한 가장이자 살인청부업자인 블레이크, 『아노말리』라는 소설을 쓰고 자살 후 명성을 얻은 빅토르 미젤, 미혼모인 뤼시와 그녀를 사랑하는 건축가 앙드레,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데이비드(여객기 기장),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변호사 조애나, 동성애자임을 숨긴 채 활동하는 뮤지션 슬림 보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소녀 등 세 달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3월의 '나' 와 6월의 '나'를 마주하고 선택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과 다른 가설을 생각해 보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대로 선택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코로나라는 팬데믹 이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아노말리」는 ‘이상’, ‘변칙’이라는 뜻으로, 주로 기상학이나 데이터 과학에서 ‘이상 현상’, ‘차이 값’이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나도 알지 못했던 '내'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기상이나 데이터 과학이 아닌 '사람'에게 나타난 현상! 놀랍고도 흥미로운 소설의 여운은 길고도 깊게 남아, 추천하고 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어쩌면 이 불타는 마음도 프로그래밍된 걸까? 그러면 또 어떤가. 어쩌면 삶은 우리에게 삶이 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시작인지도. 어차피 그들에게 달라질 것이 있나? 시뮬레이션된 것이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살고, 느끼고,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창조하고, 죽는다. 저마다 미미한 흔적을 시뮬레이션에 남기면서. 앎이 무슨 소용이 있나? 과학보다는 미스터리를 귀히 여겨야 한다. _286p.
3월의 앙드레가 말한다. "'가상 재난' 개념이 작동하든 안 하든, 그 집을 살 거야. 우리는 10킬로미터 거리를 두가 각자의 집을 갖게 될 거야. 휴가 때 놀러오는 친구들도 두 집에 나눠 맞이하면 돼. 우리 중 누가 더 호감을 사는지 보자고."_332p.
두 남자는 서로 서글프게 미소 짓는다. 애정 어린 공모의 미소, 형제의 미소를. 이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지만 둘은 훨씬 강해진 기분이었다. _347p.
이 여자는 사악한 침입자가 아니다. 잊힌, 불행한 내부인이다. _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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